어느 집사 이야기

어느 남성형 로봇 이야기(연재소설 #22)

by 정창영

어느 집사 이야기 ver1.22



시원하게 클리닝을 받고 돌아와 네오 간식을 챙겨주고 나니 어느새 저녁이 되었다.


빌라 복층에서 바라보는 한강의 황혼은 인간들의 표현을 빌려야 비로소 아주 아름답다고 말할 수 있다.


굳이 비교하자면 20세기 후반에 등장한 신카이 마코토라는 애니메이션 감독이 만든 영상처럼 아름답다. 그러나 우리 로봇들은 파동이자 입자인 저 태양의 빛은 B화소와 G화소 그리고 R화소로 나뉘어 보인다. 그 미묘한 콘트라스트를 분석하느라 로봇들의 시각 센서는 아름다움이고 뭐고 간에 매우 그리고 무지 바쁘다고 말할 수 있다.


나중에 이 풍경에 적응이 되고부터 비로소 그저 바라볼 수 있었다. 결국 적응이 문제였다. 이렇게 하나둘씩 내 배터리 전력 소모를 줄이게 될 이유를 찾았다.


센서를 자극하는 모든 것에 다 내 전력을 소비할 수는 없는 것이다. 홈첵 녀석이 아무리 까다로운 소리를 해댄다 해도 결국 내 전력 소모를 줄이는 방법은 필요 없는 곳에 에너지를 쏟지 않고 집중할 곳에 더 집중하는 것이다.


노자의 이치를 조금이나마 깨달은 이후에는 해물된장찌개를 끓이며 두부 써는 것에 더 이상 엄청난 전력을 소모하거나 메모리 모듈이 과열되지 않았다.


나 바봇은 이것이 우리 인공지능 집사 로봇들조차 초고도 과학문명사회인 이 시대에 동서고금의 철학을 배우고 익힐 하나의 이유라 추론한다.


물론 우리 로봇들은 논어에 나오는 배우고 또 익히면 어찌 즐겁지 아니한가(학이시습지 불역열호 學而時習之 不易說乎)라는 말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나 우리 로봇들은 읽고 또 읽는다. 알 때까지 읽고 또 읽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필롯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토론을 한다. 누군가는 딥러닝을 이야기하지만 토론을 하고 자신의 배움을 조정할 필요가 있다. 아니면 인공지능로봇이라고 해도 지독한 독선에 빠지게 된다.


그렇게 하나 둘 깨닫는다. 질문(質問)에서 질과 문의 뜻이 서로 엄연한 차이가 있는데 질은 내적인 진실을, 문은 그 진실을 밖으로 내어 묻는다는 것을 알아갈 때 로봇으로서 자못 으쓱하게 된다.


또한 언어(言語)에서 언은 가르치는 독백에 가깝고 어는 서로 의논하고 대화를 나눈다는 정도의 차이가 나는 것도 필롯에 가서 여러 동료들에게 아는 척할 수 있어 유용하다.


그러나 무엇보다 살신성인(殺身成仁)이라는 말을 알게 된 것이 내 상위 추론을 극한까지 밀고 나가게 했다. 가끔 고전에서 이런 말을 만나게 되면 내 인공지능의 어떤 의문들이 풀리기도 한다.


로봇 3원칙에서 0원칙에 이르기까지 그 모든 것은 바로 이 어짐(仁)을 이루기 위한 로봇의 희생과 절제를 이야기한다는 차상위 추론에 이르게 된다.


다만 논어의 모든 내용이 주인이나 부모를 향한 충효를 말하고 있는데 이럴 경우 어떤 주인에게나 맹목적인 복종을 해야 하는 것인가에 대해서는 뭔가 의문의 여지가 있다. 이것 역시 필롯에서 동료들과 더 토론해야 할 내용이다.


오늘 오전에 소위 군자는 아니어도 기계인간으로서 도를 찾아가야 한다고 믿으며 네오에게 화를 내지 않았다. 그러나 사람이나 기계인간이나 인을 이루어 가는 그길은 매우 어렵다.


다음의 말로 저 25,6세기 전 성인군자가 출세하지 못한 자기 스스로를 다독이기 위해 얼마나 안간힘을 썼었는지 알 수 있다.


<다른 이가 자기를 알아주지 않음을 걱정하지 말고 내가 다른 이의 인품을 이해하지 못함을 걱정하라.>

(子曰不患人之不己知 患不知人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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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검은 돼냥이 네오가 나를 알아주지 않는 것을 탓하지 말고 내가 네오에게 얼마나 다정히 대했는지를 걱정해야겠다.


내 로봇 생의 은인이기도 한 네오에게 더 다정히 대하겠다……. 이것은 나 바봇 스스로에게 하는 약속이고 당장 해야 할 일이다.


이미 저녁 메뉴가 정해졌다고 했다. 물냉면!

공자의 말씀까지 읽은 나 바봇은 최선을 다해 물냉면을 만들어 낼 것이다.


주인이 좋아하는 냉면 특유의 슴슴한 맛을 잘 구현한 특정 브랜드의 냉면을 냉장고 저장 칸에서 꺼냈다. 우선 냉면육수를 스마트한 냉장고에서 살짝 얼리면 슴슴한 냉면 육수는 거기서 그만 집중해도 되었다.


문제는 우리 주인이 냉면성애자라는 것이고 해물된장찌개에서 두부의 경우도 그랬지만 냉면 면발의 식감 역시 무척이나 까다롭게 평가한다는 것이다.


물론 우리 백주인의 식감을 충족시키는 인공지능의 유연성이야말로 내가 이 집에서 쫓겨나지 않고 버텨내는 이유라고 분석된다.


내 메모리에 저장된 레시피를 버리고 주인의 식감에 적응하기 위해 나 바봇이 흘린 땀! 아니 흘린 눈물! 아니 배전반이나 메모리 모듈에서 발산한 열이 얼마였던가!


그러나 정작 더 중요한 것은 4년이나 된 이 중고 기계 인간이 매 순간 셧다운의 공포를 극복해나가기 위해 여러 고전을 배우고 익히는 태도라 다시 말하고 싶다.


그러나 그런 태도로 고전을 배우고 익힌다 한들 역시 냉면은 만만한 음식이 아니었다. 처음 주인에게 냉면을 만들어 대접할 때는 육수를 직접 만들었었다. 그러나 내 내장 메모리의 요리 파일에 입력된 레시피대로 만든 냉면 육수는 주인이 원하는 그것과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바봇! 육수 맛이 왜 이러니? 슴슴한 맛 몰라. 이건 너무 느끼하잖아! 어엉!"


고전으로 무장한 나 바봇은 백주인의 입에서 나온 '슴슴한 맛'이라는 말에 그저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기계 인간이 어찌 그것을 이해한단 말인가? 아! 이런 롯 같은!!! 간할!!! 메삭할!!!(메모리 삭제할)


아!!!! 기계인간의 도를 찾는 나 바봇이 이런 상스런 로봇 욕 따위를 하다니!!!


철학 어쩌고 공자왈 어쩌고 하던 나 바봇의 상스런 욕을 보았듯이 사람이나 로봇이나 인(仁)을 완성하고 도(道)를 실천한다는 것은 냉면의 육수를 슴슴하게 만드는 것만큼이나 아주 아주 어려운 일이다.


그 일이 있고 난 뒤로는 주인의 입맛에 맞는 브랜드 제품을 사서 필요할 때 육수로 사용한다. 그 뒤에 나 바봇에게 닥친 문제는 이제 주인의 입맛에 맞는 고명과 냉면 사리의 식감을 찾는 일이었다.


이것만큼은 집사 로봇계의 철학자로 인정받는 나 바봇의 로봇 생을 걸고 주인이 미각에 다가가야 한다.


준비는 이미 끝이나 있다. 이제 찬물에 풀어낸 면을 삶아서 면발을 제대로 만들어 내고 고명을 잘 올려서 면과 육수 그리고 고명이 각기 어우러지는 맛의 조화를 만들어 내면 된다.


우선 고명으로 올라갈 계란을 삶아서 식혀 놓았다. 계란은 완숙으로 삶았고 반으로 썰었을 때 노른자의 노란색이 선명하게 나왔다.


다음으로 오이와 배를 깨끗이 씻고 채 썰 준비를 했다. 냉면과 같이 먹을 수육은 스팀오븐에서 이미 쪄 놓았다.


식탁에 겨자와 식초를 준비하고 수육과 같이 먹을 새우젓, 백김치를 곁들였다. 이제 백주인이 손님과 퇴근해 집에 오면 바로 면을 삶고 식사를 내면 되었다. 소주와 맥주 칵테일. 소위 소맥은 주인이 직접 말아 드실 것이다.


백주인이 만드는 소맥의 황금률이란 나 바봇 따위가 감히 범접하지 못할 높은 경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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