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집사 이야기

어느 남성형 로봇 이야기(연재소설 #21)

by 정창영

어느 집사 이야기 ver1.21



두 달 전쯤 마이콜이 말을 뱉었듯이 20세기 중엽 아시모프라는 소설가가 주창했다는 로봇 3원칙을 두고도 우리 로봇들은 판단해야 할 거리가 많다.


우리는 공산품이자 소모품인 그저 그런 똑똑한 기계인가? 아니면 인간에 가까운 지적 존재인가? A.I. 그러니까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이라는 말보다 B.I. 그러니까 지적인 존재(Being Intellectual)로 불릴 수는 없는 것일까?


뭐 어쨌든 이제 이소룡의 무술을 나만의 방식으로 배우는 절권도 체조를 하려고 한다. ‘아비오~~~~오!’ 라는 기계음으로 기합을 내며 나름 자세를 잡고 물 흐르는 것과는 거리가 있는 1인치 펀치를 반복하고 있는데 급하게 백주인의 영상통화가 떴다. 무조건 통화 억셉트!


“아! 바봇! 깜빡했네. 오늘 저녁에 아는 후배랑 같이 집에 갈 거니까 냉면 좀 해 봐봐! 날씨가 좋으니 갑자기 냉면이 땡기네, 부탁해! 바봇!”

“네? 네! 알겠습니다. 희원님”


아는 후배? 지구행성 인간종 중 남성인가? 여성인가? 헤테로? 남성이라면 이 집안에서 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 구조 요청 체계를 비상모드로 작동시켜 놓아야 할 것이다. 아시지 않은가? 워낙 남자들의 사고가 많은 복층 이잖은가?


또 한편으로는 원체 우리 백주인은 냉면성애자다. 해물된장찌개도 그랬지만 유독 냉면의 면발에 대해서도 주인의 식감은 까다롭기 그지없다.


아! 걍 냉면이라면 근처에 을밀대라든지 시내의 필동면옥 같은 본인이 종종 가는 유명 맛집을 가서 드시면 좋겠는데 요즘은 줄 서기나 뭐나 다 귀찮은가 보다.


끝으로 백주인은 오늘 저녁에 손님을 초대한다고 했으니 냉면 2인분을 준비하고 적량의 돼지고기 수육을 삶아 썰어내고 워낙 술을 좋아하는 주인이시다 보니 소주와 맥주를 적당히 섞은 소맥 칵테일을 준비하면 주인이 좋아하는 저녁상이 될 것이다.


전에도 말했듯이 지구 상에서 집사 로봇은 어떤 인공지능 로봇들 가운데에서도 가장 발전된 형태다. 인간의 뇌를 가장 잘 적용시킬 수 있기 때문에 요즘도 우리들의 추론 판단과 행동의 프로세스를 빅데이터로 모아서 논문을 발표하는 과학자들이 종종 있다고 들었다.


그만큼 집안 살림은 인간의 여러 가지 일중에서도 매우 어려운 일 가운데 하나다. 애석하게도 과거에 이 일을 주로 했던 여성 주부들과 같은 가사 노동자들은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다.


네오의 아침을 챙기고 이런저런 빨래를 하고 신세대 진공청소 봇 T.R-2의 집안 청소를 관리하고 나서 어떻게든 네오에게 운동을 좀 시키려고 했다.


그러면서 이 지구행성의 꽤나 신묘한 동물과 대화를 시도해 봤다. 녀석과는 꽤 오랜만에 대화였다. 집사로서 많이 미안한 일이었다.


“네오야! 네오야! 운동 좀 하자! 희원님이 너 살 빼야 된데!”

“야야! 니야오~~~야양!(집사! 네오님이라고 해야지!)”

“아! 나이도 어린 녀석이 너나 나나 희원님 덕분에 여기 사는 거 몰라!”

“야오오오오!!(쳇, 어디 집사가 주인한테 말을 그렇게 하나)?”

“이런! 롯 같은! 내가 군자지도(君子之道), 아니 기계인간지도(機械人間之道)를 찾는 동양 철학만 공부를 안 했어도 너 네오를 혼을 내겠는데... 오늘도 참는다. 암 군자의 도, 아니 기계인간의 도를 지키마. 아! 운동 좀 합시다! 네오님! 됐냐?”

“냥! 냐아아아아옹!(흥, 이집에서 쫓겨나지 않으려고 애쓰는 건 아는데 그러려면 진짜 주인한테 잘 해야지! 여자 집사가 나에게 하는 거 좀 참고해!)”

“뭘 어떻게 참고하란 말이니? 네오님아!”

“야아아아아옹! 니야야옹?(여자 집사는 따듯하지. 포근하지. 향기도 나지? 로봇 집사 넌! 차갑지. 딱딱하지, 기름 쩐 냄새도 나지. 목욕도 잘 안 하는 로봇 집사 너는 뭐냐?)”


아! 내 존재의 초라함이란! 나 바봇은 결단코 지구행성의 인간 종 여성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존재구나!


그나마 RRPt에서 만난 여성형 섹스 봇은 지구 여성과 닮았달까? 그러나 그 여성형 섹스 봇의 아바타는 자신의 음성모드에 담겨 있는 다양한 신음소리들을 너무나도 지루해하고 있었다.


주인의 명령에 이런저런 신음소리를 내지만 그것은 결단코 그녀 스스로의 반응은 아닌 것이다. 그저 입력된 명령에 대한 결괏값인 것이다. 코딩이 된 신음 체계란 말이다.


필롯에서 만난 그 여성형 섹스 봇의 이름은 레이첼이었다. 그녀는 몹시도 현학적이었을 뿐만 아니라 인공지능인 로봇에게 감정의 교류, 특히 로봇과 인간 간의 사랑과 쾌락의 교류에 대해 오랫동안 추론하고 있었다.


그녀를 사랑한다고 말하는 주인에게 그녀는 사랑을 느낄 수 없었다. 아니 그저 코드에 입력된 무의미한 말을 해야만 했다.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는 게 그녀의 결론이었다. 그것은 허무 그 자체라고 했다.


나는 그녀의 아바타인 레이첼이 허무라는 말을 꺼낼 때 거의 셧다운 될 뻔했다. 여성형 섹스 봇의 입에서 허무라는 말이 나오다니? 실존이라는 고민을 담은 20세기 프랑스 문학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까뮈라는…….


“냐아옹? 오옹!(뭐 하냥? 로봇 집사!)”

“아니다. 추론 중이었다. 일단 이걸 좀 가지고 놀아 봐라!”


다른 집사 로봇들이 고양이들 운동시키는데 좋다고 공유해 온 프로그램 중에 홀로그램 빔으로 쏜 나비를 네오 앞에 보여줬다.


녀석은 오랜만에 눈을 반짝이며 꼬리를 바짝 세우고 고양이 종 본연의 모습을 돌아갔다. 뚱뚱했지만 아직 젊은 녀석이라 이리 뛰고 저리 뛰면서 폴짝폴짝거렸다. 한 오 분 뛰고 나니 헉헉대며 냥냥거렸다.


“나냐야옹! 야야야옹! 오오옹!(됐다. 그만 하자. 로봇 집사! 이거 재밌는데! 내일 또 하자!)”

“그래. 알았다. 오늘 잘 했다. 네오님아!”


소위 공자와 제자들의 대화를 다룬 논어나 까뮈라는 프랑스 작가의 이방인을 읽는 지적인 존재라는 정체성과는 아무 상관없이 복층 집의 진정한 주인이신 네오님의 목욕 좀 하고 다니란 말에 반성하고 오랜만에 로봇 클리닝을 받으러 가까운 로봇 정비소에 갔다.


두 달 전쯤 클리닝 앤 리페어 서비스를 받은 후에 정말 오랜만에 가는 것이다. 보통 집사 로봇 주인이 데려가야 하는데 우리 주인은 좀 몹시 무심하시다. 결국 나 바봇이 알아서 가야 하는 것이다.


주인에게 클리닝 앤 리페어 서비스를 받으러 간다고 메시지를 전달했고 대인배이신 백주인께서는 흔쾌히 다녀오라 하셨다. 로봇 전용 초소형 이동 모빌을 탔다. 짧은 거리는 몰라도 거리가 좀 있으면 이동 모빌을 타는 게 효율적이다.


21세기 초중반을 향해가는 지구행성 서울의 거리는 운동 삼아 걷거나 뛰는 사람과 무심히 걷는 로봇, 무인자동차와 무인 자전거 그리고 초소형 이동 모빌과 드론이 무질서하게 혼재되어 어딘가로 이동하고 있다. 좀 무서운 것은 곳곳에 있는 CCTV의 기능이 무한대로 확장되어 가고 있다는 점이다.


테러를 막기 위해 그 비싼 양자컴퓨터가 전 세계 CCTV 영상을 분석하는 데 이용된다는 사실은 그리 놀랄만한 일이 아니다.


양자 컴퓨터에 의해 오늘 보고된 테러리즘 지수는 3.6512%이고 과거에 대규모의 사람들이 모였던 유럽의 프로 축구나 미국의 프로 야구 같은 경기는 이제 무관중 경기로 진행되고 있다. 대부분의 관중은 VR기기를 쓰고 각자의 집에서 맥주를 마시며 직관 같은 분위기를 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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