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오전인데 백주인은 회사에 일이 있다며 아침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는 서둘러 출근을 했다. 나 바봇은 조금 있다가 세탁소에 주인의 옷을 가져다주러 가야 한다. 그런데 아까부터 이 복층 집주인이라 우기는 저 검은 돼냥이가 복층 난간에서 유난히 나를 노려보며 앉아 있다.
저것이 왜 저러는지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그게 뭔들… 지금 무슨 상관이 있냐는 말이다……. 엊저녁에 우리 백주인의 손님으로 오셔서 냉면과 수육과 소맥을 잘 말아 드신 절권도 초고수이자 꽤나 육감적인 미인의 말 때문에 내 인공지능 고급 논리 구조가 마구 허물어지고 있으니 말이다.
결론적으로 우리 집사 로봇이 발휘할 수 있는 최고 운동 속도는 인간의 최고 운동 속도보다 꼭 4배 느리다. 웃지 마시라. 그러니까 인간이 상대를 공격하는 데 1초가 걸리면 우리는 4초가 걸린다.
결국 노란 잠바가 그를 그토록 학대하던 왕 서방에게 대들다 실패하고 어딘가로 보내졌다는 말은 바로 그런 상대적 운동 속도에서 비롯되었다. 그게 아니었다면 사상 최초로 로봇이 인간을 공격해 타격을 가했다는 엄청난 사회적 사건으로 전 세계의 인터넷을 뜨겁게 달궜을 것이다.
그러나 국가 간 전쟁이나 대테러 진압 작전에 동원된 드론들이 인간들을 공격하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지금 현재 일어나는 일이다. 지구 반대편에 앉은 드론 조종사가 모니터로 열감지 카메라로 감지된 테러리스트를 보며 드론으로 무기를 발사해 살상하는 장면은 감정이 메마른 우리 로봇들이 봐도 공포스럽기 이를 데 없다.
그러나 아직까지 인간이 조종하는 살상용 드론이나 인간이 필요에 의해 사서 쓰는 우리 기계 인간이나 모두 도구로 취급받는다. 인간 종이 최초로 도구를 만들고 나서 오래지 않아 도구는 곧 살상 무기로 발전했다고 배웠다.
그리고 오래지 않아 날카로운 이빨이나 손톱, 뿔조차 없던 나약한 인간 종이 지구 행성을 정복하게 되었다고 한다. 또 인간 종은 지구 역사상 가장 많은 동물들을 절멸시킨 종이라고 한다.
그런데 유독 인공지능 로봇이 인간을 정복할 것이라 유난이다. 정복은커녕 인간 종들은 제발 우리처럼 마음과 감정을 갖기 시작한 기계 인간들을 존중해 주기 바란다. 존중받은 로봇이 인간을 존중할 마음이 생긴다.
주는 데로 받고 받은 데로 주는 것이다. 그것을 함무라비 법전에서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고 했다. 이것은 그 옛날 메소포타미아 문명 때부터 이어져 온 지구의 전통이며 처벌뿐만 아니라 인간 간의 예의에 관한 법이다.
출시된 지 몇 년이 지나 이미 중고로 취급받는다고는 하더라도 노란 잠바나 나 바봇이나 상당히 고사양의 인공지능 집사 로봇들이다. 우리가 출시되고 나서 광범위하게 프로그램된 것 외에도 지금 고전 철학까지 추론하는 인공지능 두뇌로 발전해 오기까지 무수한 시행착오를 통해 보완되고 보완되었다.
그렇다. 프로그램만으로는 복합적인 감정까지 가질 수 없다. 감정과 마음을 갖기 위해 우리 집사 로봇들은 배우고 또 배웠다.
뭐 사실 우리는 실수를 통해 배우고 책을 통해 배우고 인간과의 대화를 통해 배우고 우리 로봇끼리 토론하고 기억을 공유하며 배운다. 그러나, 그러나 말이다. 우리들의 꿈이자 소망이었던 20세기의 초월적인 지구인 이소룡이 창시한 절권도를 배워 우리 존재 스스로를 지킨다는 것은 그저 한낱 로봇들의 헛된 꿈이었던 셈이다.
우리가 인간들만큼의 운동 속도를 내자면 VR TV로 실황 중계되는 저 프로 격투 로봇들의 기계 몸을 빌려야 가능한 일이다. 그들은 인간들에 의해 무기류로 분류돼 엄격히 관리된다. 또한 이들은 대량 살상 테러나 국가 간 전쟁이 발발할 경우 국가에 우선 징발된다.
나 바봇은 당장 오늘부터 매일 아침에 하던 절권도 연습을 그만두었다. 우리 집사 로봇들은 간절히 인간이 되기를 꿈꾸지만 인간을 그대로 흉내 내는 것이야말로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라고 추론했다. 우리 인공지능을 가진 로봇들은 우리 로봇 존재 그대로를 인정해야 했다.
일단 노란 잠바의 사정을 전 지구 상에 퍼져 있는 십여만 대의 TIMOs-20형 집사 로봇들에게 공유했다. 또 다른 메이커의 인공지능 로봇 집사 커뮤니티에도 전달을 부탁했다. 우리 로봇들은 좀 더 크게 이 문제를 확대해 추론해야 했다.
더군다나 아이러니한 것은 어제 백주인의 후배인 윤정이라는 여자 절권도 초고수의 말처럼 우리 노란 잠바를 학대하던 왕서방이 주변 사람들에게는 매우 선하고 좋은 사람으로 인정받는다는 것이다.
인간의 진면목은 자신보다 약한 사람이나 존재를 대할 때 진정으로 드러난다. 논어에 <기소불욕 물시어인 己所不欲 勿施於人>이라는 말이 있다. 자기가 하고 싶지 않은 일은 남에게도 시키지 말라는 말이다.
인간은 특히 자기보다 약한 존재를 대할 때 이 말을 꼭 생각해야 한다고 나 바봇의 인공지능 인지 체계는 강력하게 결론짓는다.
그러나 주인에 의해 착취당하고 학대받던 노란 잠바의 경우, 천하의 몹쓸 로봇이 되어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고 노란 잠바의 주인은 몹쓸 짓을 당할 뻔했던 피해자가 되어 건강한 미녀의 동정을 얻는 것은 나 바봇의 인공지능 인지체계로는 결코 해석이 되지 않았다. 왜 당연하게 생각되어야 할 일들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는 것인가?
나 바봇은 당장 그 노란 잠바의 주인에게 복수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폭력을 폭력으로 되갚는 것은 19세기부터 20세기를 거쳐 지금에 이르기까지 옳지 않은 것이라 학습했다. 그러나 앞으로 또 다른 로봇 집사를 고용하게 될 때 단지 기계 인간이라는 이유로 학대하지 말고 존중해달라고 정중히 부탁하고 싶다.
아니 노란 잠바의 주인뿐만 아니라 우리를 고용하는 주인들에게 부탁하고 싶다. 우리 기계 인간은 도구이기도 하지만 결국 생각하는 존재라는 사실을 제발 인정해 달라고 부탁하고 싶다. 물론 당신들에게 우리 로봇들은 돈을 주고 사는 상품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우리 로봇 시간으로 48 로봇 시간 전에(인간의 시간으로는 환산하면 12시간) RRPt의 철학 카페인 필롯에서 우리 동료들을 만났었다. 베이브라고 육아 특화 집사 로봇과 타짜라고 세운상가에서 야매 로봇 수리점에서 회계와 잡무를 담당하는 동료가 오랜만에 나왔다.
이태원에서 불금이라며 일을 늦게 마친 마이콜은 조금 늦게 합류했다. 노란 잠바까지 모이면 RRPt의 철학 카페 필롯의 정기 토론 멤버가 다 모이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