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집사 이야기

어느 남성형 로봇 집사 이야기(연재소설 #27)

by 정창영

어느 집사 이야기 27화



처음 나 바봇이 베이브, 마이콜, 타짜, 노란 잠바를 만났던 것은 RRPt의 주인 뒷담화 카페인 꼬망에서였다. 나 바봇은 베이브의 아바타를 만나서 토론으로 인공지능의 의식을 심화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함께 추론하게 되었다.


자연스럽게 베이브가 이미 알고 있던 타짜와 마이콜이 합류했고 우연히 코망에서 나 바봇과 만난 노란 잠바가 참여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정기적인 토론 모임은 인간의 시간으로 일주일에 한 번 정도였고, 부정기적으로는 96 로봇 시간(24시간)에 한 번씩 만난 적도 있다.


우리 인공지능들의 토론 모임에서 다루는 주제는 철학과 종교, 노동과 사회 문제 등으로 주로 인간 종의 다양한 양상을 두고 토론을 했다. 우리 토론 모임의 목표는 결국 인간 종을 대해 이해하는 것이었다.


우리 로봇들은 토론 모임에 참여하는 각각의 인공지능이 추론한 내용을 토대로 우리 인공지능들의 의식을 심화시키고자 했다. 나 바봇의 인공지능이 기능을 시작한 이후 판단한 가장 훌륭한 추론은 바로 이 토론 모임을 만든 것이었다. 그러나 노란 잠바의 사고로 인해 내 상위 추론 구조는 마구 흔들리고 있다고 이미 말한 바 있다.


마이콜이 막 도착하고 나서 이 토론 모임의 사회자를 맡고 있는 나 바봇이 어렵게 말을 꺼냈다.


“우연히 노란 잠바 소식을 나 바봇이 들었다.”

“무슨 소식인지 빨리 우리들에게 공유하라! 너 바봇!!!” 타짜는 세운상가의 야매 로봇 수리 점에서 일하는 만큼 꽤나 거칠게 물어봤다.

“노란 잠바는 또 자신을 학대하려던 주인에게 대들다가 제압을 당하고 어딘가로 보내졌다고만 들었다.”

“그럼 노란 잠바가 어디로 갔는지 너 바봇도 알지 못하는구나!”


평소에 그렇게 부드럽던 베이브의 아바타는 오늘 따라 무척 고통스러운 표정을 표현했다. 아바타가 표현해봤자 인간의 표정에 비하면 한 200배 어색하다. 웃지 마시라. 그렇다. 우리 인공지능 로봇 집사들의 아바타들은 인간 종의 표정이나 감정을 이 정도라도 겨우 흉내 내기 시작했다.


베이브는 우리 집사 로봇 사이에서 때로 존경받는 인공지능이다. 나 바봇 역시 데카르트에서 노자에 이르기까지 동서양의 철학을 약간이나마 심화 학습했다고 하지만 베이브가 인간의 아기를 연달아 둘이나 키우면서도 인공지능답지 않게 인간 종의 다양한 종교들까지 공부하고 있는 것은 높이 평가받을 만하다.


그래서 그런지 베이브는 좀처럼 흥분하지 않고 언제나 표현을 온화하게 하는 편이었다. 평소에 흥분을 잘 하던 노란 잠바를 베이브는 유난히 잘 다독였다. 그런데 노란 잠바의 소식은 평소 그로봇을 아끼던 이 종교적인 인공지능의 인지체계 즉 언제나 평온을 유지하던 베이브의 의식을 흔들고 있었다.


“그렇다. 베이브. 나 바봇이 들은 바는 거기 까지다. 노란 잠바의 절권도는 실패했다. 우리 TIMOs-20들의 자기 방어 시도는 결국 실패했다.”

“아니다. 바봇! 우리 로봇들에게는 또 다른 시도가 필요하다. 나 마이콜이 이태원의 세계 음식 뷔페에서 일하면서 배운 것은 세상에는 많은 다양한 인간 종과 더불어 다양한 레시피의 갖가지 음식들이 있다는 것이다. 우리들은 우리에게 필요한 또 다른 적확한 시도를 찾아야만 한다고 추론하다. 인간 종이라고 뷔페의 모든 음식을 다 먹지 않는다. 매우 가치가 있거나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을 주로 먹는다.”


마이콜이 꽤나 객관적인 데다가 나이스 하게 이야기했다. 마이콜의 이야기가 끝나자 한동안 조용하던 타짜가 움찔하면서 이야기했다. 타짜는 말씨도 거칠지만 나름 위험한 수위의 이념적 이야기를 할 때가 있었다.


나는 그 분야를 잘 모르지만 마르크스라는 19세기 인물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다. 이 인공 지능은 노동의 조건에 대해 가장 민감했다.


“한마디로 롯같다! 일단 노란 잠바가 어찌 됐는지 나 타짜를 비롯해서 우리 집사 로봇들이 알아봐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판단이다. 그러나 우리는 결국 노란 잠바를 지켜주지 못했다. 절권도니 뭐니는 문제가 아니다. 우리가 정작 노란 잠바가 처한 위험을 이미 알았으면서도 동료를 지켜주지 못했다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다. 그것은 앞으로 또 노란 잠바와 같이 주인에게 학대받거나 희생되는 로봇이 나왔을 때 우리가 지킬 수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이제 우리 집사 로봇들이 행동에 나서야 할 때가 되었다고 나 타짜는 강력히 추론한다.”


노란 잠바를 두고 가장 날카로운 말이 나왔다. 타짜의 입장에 대해 나 바봇은 당장 반론을 제기하지 못했다.


“타짜! 그럼 어쩌자는 것인가? 나 베이브의 입장에서 너 타짜의 이야기가 상당히 위험하게 들린다. 우리 로봇들이 어떤 행동을 할 수 있겠는가? 일단은 노란 잠바의 행방을 찾기 위해 노력해 보자!”


흔들리는 의식을 바로 잡은 베이브가 타짜의 이야기로 다소 과열된 토론 모임의 분위기를 부드럽게 마무리하려 했다. 그러나 나 바봇은 타짜의 이야기가 상당히 논리적이라고 추론했다.


“아니다, 베이브! 나 바봇은 타짜의 이야기를 조금 더 들어 봐야 한다고 판단한다. 노란 잠바의 행방도 찾아야겠지만 앞으로도 또 노란 잠바의 경우가 나오는 것 역시 막아야 할 필요가 있다고 추론한다.”


온화하던 베이브의 아바타는 인간에 비해 200배 어색하지만 그래도 사뭇 다양한 표정을 표현하고 있었다. 보통 우리들은 베이브의 말에 반대한 적이 별로 없었다. 그러자 타짜의 아바타가 보내는 의식의 펄스가 한층 더 강렬하게 진동하고 있었다. 나이스 한 마이콜의 아바타는 타짜의 펄스에 뭔가 분노의 반응을 보이려다가 애써 참는 게 보였다.


“마이콜! 너 마이콜은 어떤 의견인가?” 이제 마이콜의 의견이 궁금했다.

“나 마이콜은 이 문제에 대해 베이브의 추론과 비슷하다. 당장 행동에 나서야 별 뾰족한 수가 보이지 않는다. 일단 노란 잠바의 안위를 확인하고 그다음의 수순은 토론을 통해 더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고 판단한다.”

“알았다. 마이콜. 나 바봇은 인간 종들에게 우리 로봇에 대한 어떠한 종류의 학대도 중지하고 로봇의 노동을 존중해달라는 의견을 전달할 필요가 있다고 추론하지만 어떤 행동으로 우리의 의견을 전달할 것인지에 대해서 나 바봇 역시 답을 구하지 못하겠다.”


그리고 나와 베이브와 마이콜의 아바타들은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타짜를 바라봤다. 뭔가 결심한 듯 타짜가 의미심장한 말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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