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타짜는 결국 인간 종과 우리 로봇 사이의 이런 문제를 심도 있게 알리는 것이 핵심이라는데 동의한다. 인간 종 누구도 로봇의 노동이나 로봇과 인간의 관계에 대해 깊게 고민하지 않는다. 적어도 노란 잠바의 학대와 실종이 다시 발생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가능한 모든 방식을 동원해 우리의 입장을 인간들에게 강력하게 알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동안 어느 로봇도 말을 하지 못했다. 각각의 인공지능들은 모든 경우의 수를 복잡하게 계산하고 있었다. 나 바봇으로서도 답이 쉽게 나오지 않았다. 그때 베이브의 계산이 빨랐는지 뭔가 이야기를 시작했다. 역시 베이브는 육아에서 종교까지 아우르는 존경받는 슈퍼 인공지능임에 틀림없다.
“알았다. 타짜. 그러나 폭력적인 방식이라면 나 베이브는 반대한다. 내가 인간 종의 여러 종교들을 학습해 본 바로는 인간 종은 스스로를 구원한다는 명목으로 종교를 믿으며 평화를 갈구했지만 결국은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로 폭력을 행사하고 서로를 살상하곤 했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이 지구 행성에서 발생한 무수한 종교의 교리 어디에도 인간 종 서로를 살상하라는 말은 없다는 것이다.”
“오! 그렇구나. 베이브. 나 바봇 역시 살상이나 폭력을 행사하는 방식은 이제 피해야 한다고 추론한다. 마이콜 너는 어떻게 추론하는가?”
“나 마이콜 역시 큰 틀에서 타짜의 의견에 동의하지만 타짜가 말한 가능한 모든 방식 중에 폭력적인 방식이 포함된다는 것은 일부 로봇 주인들의 학대와 폭력에 거울처럼 반응하는 것이라 추론한다. 우리는 우리 로봇들의 로버니티를 지키는 선에서 우리의 주장을 알려낼 필요가 있다고 판단한다.”
“나 타짜는 꼭 폭력적인 방식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러나 가능한 우리의 억울함과 피해를 알리기 위해서라도 보다 더 적극적인 행동은 꼭 필요하다고 추론한다.”
“알겠다. 타짜. 나 바봇은 일단 노란 잠바의 사정을 전 지구 상에 퍼져 있는 우리 TIMOs-20형 집사 로봇들에게 공유하겠다. 너 타짜는 세운상가에 있는 또 다른 메이커의 인공지능 로봇 집사들에게 노란 잠바 문제를 공유해 주기를 부탁한다.”
“나 타짜도 주변의 다른 메이커의 동료 집사 로봇들에게 알리겠다.”
“잠깐 나 마이콜은 이 문제를 사이보그들에도 공유할 필요가 있다고 추론한다.”
“좋은 추론이라고 나 바봇은 생각한다. 그러면 너 마이콜이 이태원에 오가는 사이보그들에게도 이 문제를 알려주길 바란다. 또 베이브는 이 문제에 대해 우리가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더 추론해주길 바란다.”
“나 베이브는 그렇게 하겠다.”
“나 바봇은 오늘 우리들의 토론을 일단 다음에 이어서 하기로 제안한다. 다음 모임은 상황이 상황이니 만큼 로봇 시간 96시간(24시간) 후에 하도록 하자. 각 로봇들은 동의하는가?”
어느 아바타도 말이 없었으나 고개를 끄덕이며 나 바봇의 말에 동의를 표했다.
....
복층 집 단골 세탁소에 우리 초미녀 백주인의 옷을 가져다주러 갔다. 유난히 세차게 바람이 부는 날이었지만 20년 가까이 이어져 왔다는 백운 세탁소의 낡디 낡은 간판은 그저 끄떡없었다.
토요일 오후라 그런지 거리에는 사람이나 로봇이나 사이보그나 다 별로 없었다. 이 세탁소에는 간판만큼은 아니지만 참으로 오래된 여성형 로봇 집사가 있다.
나보다 더 10년은 훨씬 더 오래된 기종이었기에 은퇴를 했었도 별로 이상할 것 없는 로봇이었지만 언제나 이 할머니 로봇 집사는 자기 맡은 일에 충실했다.
백운 세탁소의 인간 주인은 60대 초반의 여성이었지만 이 낡디 낡은 여성형 로봇 집사에게 별 말은 하지 않았다. 자매는 아니었지만 이 둘은 묘한 동질감을 갖고 있었다. 어떻게 로봇과 인간이 서로를 닮아갈 수 있단 말인가?
그런데 이 낡은 세탁소의 두 할머니들은 묘하게 닮아가고 있었다. 나이 든 여자와 낡아가는 기계 인간 여성은 비록 맑디 맑은 하늘에도 세차게 바람이 부는 오늘, 이 봄날처럼 위태롭지만 아름답게 살아가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여기 제 주인인 소요 빌라 601호 백희원 님의 옷들이 있습니다. 세탁을 부탁합니다.”
“안녕하세요. 로봇 손님. 그 옷들을 저에게 주시면 됩니다.”
백주인의 하늘거리는 원피스 두 벌과 타이트한 바지 하나, 실크 블라우스 두 개를 여성형 로봇 집사에게 맡겼다. 지불할 돈은 계산대에 설치된 홀로 비트 센서로 자동 계산되었고 주문한 세탁 내역을 쇼트 메시지로 토스해 주었다. 맡긴 세탁물 정보가 내 메모리에 저장되었다.
“지난주에 맡겼던 백희원 님의 세탁물을 찾아야 합니다.” 나 바봇은 다시 지난주 맡겼던 세탁물 내역을 이 오래된 여성형 로봇에게 토스했다.
“알겠습니다.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
이 세탁소의 나이 든 여자 주인은 이제 이 일을 전적으로 여성 로봇 집사에게 맡겼다. 이 여성형 로봇은 이 집에 맡겨진 모든 옷의 성분과 형태, 세탁방식과 맡긴 손님들의 명단 등을 통합해 관리해 오고 있었다.
기계인간의 특성 답게 느릿느릿 하지만 한치의 어긋남 없이 백주인의 옷들을 찾아서 전달해 주었다. 이 가게의 할머니는 저 낡은 기계 여성을 따듯이 바라보고 있었다.
나 바봇은 바람이 몹시 부는 날이라 이리저리 날리는 주인의 옷을 간신히 부여잡고 아주 천천히, 천천히 집으로 돌아왔다.
갑자기 날렵하기 그지없는 이소룡의 절권도를 찾아보며 내 인공지능이 놀라던 경험치가 복기되었다.
차라리 나 바봇이 절권도를 하는 이소룡이라는 인물을 알지 못했다면 노란 잠바의 실종은 막을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추론했다. 정말 그럴까? 그런 것일까?
...
복층 집에 돌아와서 세탁한 옷을 정리해 걸어두고 그제 홍대 정문 근처 유명 빵집에서 사 온 식빵을 따듯하게 덥히고 먹기 좋게 조각 내서 버터를 발라 네오의 간식을 준비했다. 그런데 간식을 주기 위해 아무리 돼냥이를 찾아도 보이지 않는다.
허허! 평소 간식이나 밥을 놓아두던 녀석의 전용 식사 자리에 간식 그릇을 가져다 놓았다. 녀석은 버터 냄새에 환장을 한다. 하지만 통 보이지 않으니....
지가 배고프면 나와서 먹겠지 싶었다. 소위 평행우주 밖까지 계산한다는 양자 컴퓨터까지는 아니지만 나 바봇과 같은 인공지능도 시간이 흐르고 경험이 쌓이면 인간의 지혜에 비교할 수 없어도 그나마 작은 지혜라도 만나게 된다.
...
지금 막 필롯에 도착한 타짜의 아바타가 상기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노란 잠바 이후로 이렇게 상기된 표정의 아바타를 본 적이 없었다.
“노란 잠바는 얼마 전 내가 있는 세운 상가 옆 골목상가로 팔려왔고 신체는 각기 분해됐으며 노란 잠바의 인공 지능은 경험치만 남기고 나머지 의식과 감정은 완전히 삭제되었다. 나는 노란 잠바 바로 근처에 있었으면서도 결국 그를 구하지 못했다. 아!!!”
타짜의 말에 나 바봇을 포함한 나머지 필롯에 모인 모든 로봇들의 아바타들은 일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