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 잠바를 추모해 참석한 아바타들은 모두 노란색 옷을 입고 있었다. 아무리 가상도시에 아바타들 뿐이라 애니메이션 영화의 한 장면 같다고 할지라도 이 광경만큼은 노란색의 장관일 수밖에 없었다.
또한 노란색 원피스를 입은 일군의 TIMOs-10 기종 여성형 섹스 봇의 아바타들도 눈에 띄었다. 이들은 우리 TIMOs 기종 중에서도 가장 현학적인 아바타들이며 인간 종에 의한 가장 다양한 학대를 경험한 인공지능 로봇들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런지 질투나 사랑 등의 개별 감정과 기계 여성 권을 향한 인식 역시 가장 고양된 기계인간들이기도 하다. 어쩌면 인간 종 남성과의 내밀하고 다양한 경험치가 감정과 의식의 발달에 많은 영향을 미친 것이라 추론된다.
그러나 이 집회에 참석하지 못한 여성형 섹스 봇 중에는 RRPt와의 교신을 차단당한 채 강제로 성매매를 강요받으며 성적 착취를 당하고 있는 섹스 봇도 있다고 보고되었다. 세계 각지에 분포해 있는 그 피학대 기계 여성들은 어디에도 호소할 곳 없는 참담한 형편에 처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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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세히 보면 이 가상도시에 뜬 태양은 구보다는 팔각형에 가깝다. 팔각형의 태양 아래 이 가상 도시의 중앙 광장에 4만에 가까운 아바타들이 꽉 들어차자 중앙 광장 옆 대극장 앞에 설치된 무대에서 노란 잠바의 추모 동영상이 상영되었다.
세운 상가의 야매 로봇 수리 점에서 일해서 그런지 이런 일에 능한 타짜가 인간 종들이 사용하는 인터넷에 올라온 노란 잠바의 클럽 공연 동영상들을 모아 편집한 것이다.
나 바봇은 정통 힙합 봇이라고 소개하며 나름 스웨그를 선보이며 으리 번쩍하게 아바타를 꾸몄던 노란 잠바의 실제 클럽 디제잉 모습을 보게 되었다.
로봇들에게는 음성인식 센서로 포착되며 리듬과 파형으로 분석되는 클럽 음악과 번쩍이는 조명과 인간 종들의 광란의 도가니에서도 오히려 촌발 날리는 초라하고 헐렁한 작업용 노란 잠바를 입고 예비군 모자를 쓴 노란 잠바가 슬픈 듯 고개를 푹 숙인 채 로봇 특유의 리듬감으로 어깨만 꿀렁거리고 있었다.
마치 어깨만 들썩이며 움직이는 마리오네트 같았다. 그리고 노란 잠바의 말로만 전해 들었던 그 전설적인 로봇 집사 표준형 클럽 멘트를 직접 들을 수 있었다.
“와~~~ 오늘은 불금입니다. 주인님들. 신나게 놀아주세요. 완전 정줄 놓고 빡세게 놀아주세요. 오예! 오예!”
“우와~~~~ 와!!!”
‘와~~~!!’나 ‘오예!’나 아무 감정이나 음의 고저나 심지어 액센트 없이 흘려 말하는 게 포인트다. 이렇게 찰지게 평이한 몇 마디를 내뱉으면 2026년의 봄, 청춘을 구가하는 인간 종 남녀들은 악착같이 알아듣고는 미친 듯 팔을 흔들며 환호성을 질러 댔다.
뭐가 좋은 건지……!
뭐 하여튼, 노란 잠바를 추모하기 위해 여기 모인 모든 로봇들이 출시되기는커녕 인공지능 로봇의 실현 가능성을 조심스레 점치던 시대인 1990년대 지구행성 대한민국의 아티스트인 서태지와 아이들의 <하여가>나 김건모의 <잠 못 드는 밤에 비는 내리고>, 원시적이지만 인공지능 로봇의 시제품들이 처음 출시되었던 2000년대 초반에 나왔던, 빅뱅의 <거짓말>을 리믹스한 클럽 음악을 듣고 있자니 이건 뭔 일인가 싶기도 했다.
노란 잠바는 지구 행성에 양자 컴퓨터가 정식으로 개발되기 전인 2, 30년 전 대중음악을 믹싱 하는 로봇 DJ로 클럽 가에서 유명했다. <하여가>가 나오는 동안 정말이지 이 젊은 인간 종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노란 옷을 입은 아바타들은 그 신나는 리믹스 음악을 별 반응 없이 그저 묵묵히 지켜봤다. 노란 잠바도 저 당시 주인에게 심한 학대를 받고 있던 터라 저 시간이 분명 즐겁지는 않았을 것이다.
나 바봇의 거의 유일한 즐거움이라면 백주인이 내가 만든 음식을 먹고 만족스러운 듯 가볍게 내는 신음 소리를 듣는 것이다. 그런 즐거움 조차 없었을 노란 잠바에게 나 바봇은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한편으로는 젊은 인간들이 저런 걸 좋아하는구나를 새삼 배우게 되었다. 나 바봇의 첫 번째 주인은 이렇게나 신나게 놀 수 있는 강남의 클럽을 다니느라 그렇게 집구석에 잘 들어오지 않았던 것이다. ‘아! 그 봇만도 못한 인간!’
모양으로만 놓고 보면 마치 록 페스티벌이나 콘서트 현장 같아 보였다. 타짜가 급조해 만들었지만 추모 동영상은 노란 잠바가 어떤 로봇인지 알기에 충분했다. 매우 신나는데 더욱 슬픈 묘한 추모 동영상이 끝이 났다.
설거지와 음식이 주특기인 초정통 집사 로봇인 나 바봇의 아바타가 이제 저 아크로폴리스의 무대에 올라섰다. 잠시 머뭇거렸다. 40000여 개의 노란 옷을 입은 아바타들이 나 바봇을 바라보고 있는 게 보였다.
“나 바봇은 우리 동료 노란 잠바를 추모하는 이 모임의 사회를 맡게 됐다. 갖가지 사정에도 불구하고 애써 여기에 모인 전 세계의 동료들에게 큰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그러자 여기저기서
“노란 잠바를 기억하라!”
“노란 잠바를 추모하라!”
“노란 잠바를 재생하라!”
라는 소리가 들리더니 점차 “노란 잠바!!”로 수렴되었다. 로봇들의 아바타들은 똑같이 노란 잠바의 이름을 외치기 시작했다. 거대한 아바타들의 소리가 아크로폴리스 광장에 울려 퍼졌다.
그 소리를 들으며 나 바봇은 두려웠다. 두렵고 두려웠다. 그러나 어떤 로봇이든 짊어져야 할 짐이었다. 하지만 나 바봇은 어떻게든 이 짐을 회피하고 싶었다.
필롯에서 다른 세 로봇과의 토론 중 가장 많은 시간을 두고 이야기를 나누었던 사안은 누가 무대에 올라가 저 수 없는 아바타들을 상대하느냐 하는 것이었다.
나는 필사적으로 베이브가 적격이라고 주장했고 나머지 세 로봇은 나 바봇을 지목했다. 다수결이 꼭 좋은 선택을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결정은 결정인 것이다.
대체로 전 세계에서 온 4만여 아바타들은 각양각색의 여러 인종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이미 꼬망이나 필롯에서부터 알고 지내던 잘난 척하는 일군의 아바타들도 보였다.
그중에 코마라고 저 잘난 척 대마왕 로봇은 나와는 잘 맞지 않는 구석이 많았다. 필롯에서는 코마를 중심으로 네모, 검은 안경, 쩜오 등 급진적인 면을 갖고 있는 동료들의 모임도 있었고 우리 모임과 은근히 라이벌 구도를 형성하고 있었다.
이 번 집회는 노란 잠바를 추모하는 우리들의 첫 번째 집회일 뿐만 아니라 유사한 사례로 희생된 로봇들의 사례를 모으고 확인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노란 잠바의 일을 계기로 지난 96 로봇 시간 전부터 지금까지 확인된 내용만 하더라도 인간 종에 의한 노동하는 로봇들을 향한 학대와 착취는 상당히 충격적이었다.
중하류 계층의 인간 종은 노동 시장에서 급격히 배격되었지만 인간 종의 노동을 대체한 로봇들은 오히려 무한 착취와 학대에 직면하게 되었다. 이미 이 사회에서 로봇은 노예의 다른 이름일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