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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창영 Nov 13. 2016

Underground Boy

다방집 소년 (연재소설 #6(상))

다방집 소년 6(상)


 제 10회 아시안 게임 개막식에서 대한민국 제 12대 대통령이 갑자기 쓰러져 혼수상태에 빠진 지 일주일이 지났다. 이 사건은 AFP, 로이터, AP, 신화통신 등 세계 유수의 통신사와 각국의 취재 진들에 의해 사고 발생 직후 전 세계로 타전되었다.

 실제로 한반도 역사상 이 땅의 지도자가 전 세계적으로 가장 주목을 받았던 순간이기도 했다. 1983년 10월 12일 북한에 의한 버마 아웅산 테러에서도 살아남았던 그가 그토록 고대하던 아시안 게임 개회 선언 직후 고목이 쓰러지듯 그대로 단상에 쓰러지는 화면 역시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당장 세계 각국에서 우려의 목소리를 내놓았다. 1982년부터 장기 집권 중인 나카소네 야스히로 일본 내각 총리대신 역시 자신의 임기와 거의 비슷했던 이웃나라 최고 정치지도자에게 생긴 불의의 사고에 심심한 위로의 말과 쾌유를 비는 성명을 발표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보도통제가 있어 전 세계인이 다 봤다는 대통령의 사고 화면은 개회식 이후 일절 방송에서 보여주지 않았다.

 중공의 정치지도자 등소평은 특별한 담화문 발표 없이 중화인민공화국 외교부부장 오학겸의 명의로 아시안 게임 주최국 정상이 겪은 불의의 사고에 대한 유감과 쾌유를 비는 비공식 성명만을 냈을 뿐이다.

 북한은 이 문제에 대해 쿠데타로 권력을 침탈한 독재자의 최후라는 무지막지한 독설을 퍼부었으나, 나는 독재는 자기들도 하는 데 싶었다. 무엇보다 대통령은 쓰러졌지만 자신이 쿠데타로 이룬 정권의 정당성을 위해 추진했던 아시안 게임은 특별한 차질 없이 진행되고 있었다.

 다음 날, AFKN에서 하는 미국 ABC 방송 뉴스 프로그램인 Nightline에서는 대통령이 쓰러져 발작을 일으키는 적나라한 순간을 톱뉴스로 보여주었고 곧이어 백악관의 반응을 덧붙였다. 미합중국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우방 국가의 원수에게 생긴 불의의 사고에 심심한 유감을 표시했을 뿐만 아니라 만약 국가원수의 유고시에도 한미동맹은 굳건할 것이라는 특별 담화문을 발표했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테드 코펠 앵커는 대한민국 대통령은 12.12 군부 쿠데타로 권력을 침탈한 독재자로 표현하며 객관적 입장을 고지했다. 그러면서 자료화면으로 우리나라 군인이 민간인을 아주 무섭게 곤봉으로 때리고 총격을 가하고 태극기가 둘러진 관 앞에서 할머니가 우는 장면이 등장했다.

 나 때문에 생긴 일이기도 해서 뭐 이런 걸 보여주나 생각도 들었고 정확히 그곳이 어디인지는 알지 못했다. 그러나 에둘러 80년 5월의 광주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국에 계엄령이 내려져 살벌했었던 그때 나는 국민학교 4학년이었다. 당시 5월의 밤하늘은 아름다운 별들이 반짝였고 초승달이 유난히 또렷했던 광경만 마음에 남았었다.  

 지금은 1986년 9월 27일 토요일 밤이고 역시나 바람 많은 바닷가 소도시인 D시 특유의 별빛이 아름다운 밤하늘과 하현달이 보였다.

 집에 남아도는 장미 담배가 있어서 역시나 시외버스 터미널의 주차장을 바라보며 담배를 피우고 있다. 담배 갑 색이 비슷한 붉은색 계열이 쓰였지만 말보로 레드에 비하면 백만 배쯤 순한 담배다. 여성용이라고 하는데 길기도 무척 길어서 뻑뻑 깊게 담배를 빨았다.

 일단 오늘 박성범, 신은경 앵커에 의해 진행되는 KBS 9시 뉴스(소위 ‘땡전 뉴스’라 불리는)에서는 역시나 서울대 병원 특별 중환자실에서 집중 치료를 받고 있고 현 대통령의 뉴스로 시작했다.

 생명유지에는 큰 지장이 없고 회복 가능성도 있다는 뉴스였다. 박성범 앵커는 예의 프랑스 파리 특파원 출신인 젠틀맨인 양 심각한 표정으로 자신이 평소 극찬을 아끼지 않으며 이 땅의 진정한 지도자라 칭송했던 현 대통령의 사고에 진심으로 우려를 표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그날 서울대학병원에서 열린 특별 기자회견 뉴스를 소개했다. 뉴스에서는 우리나라 최고의 뇌수술 전문의이자 담당 주치의라는 박모 서울대학 병원 의사는 기자회견에서 지금까지의 경과를 살펴보면 지난주 토요일의 뇌수술은 매우 성공적이었으며 뇌압도 내려가 지금은 안정기에 접어들었다고 말했다.

 이어서 기자회견에 나선 서울대 병원장은 다행히 주변에 있던 의료진에 의해 빠른 시간에 병원에 이송이 되어서 지금 대통령의 생명을 건질 수 있었다고 하면서 지금의 회복 추세면 조만간 정상 회복이 될 가능성도 아주 크다고 말했다.

 문득 나는 그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여러 경험상 그를 보내버린 게 확실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상한 것은 기자들이 더 이상 어떤 질문도 하지 않는 것이었다. 굉장히 묘한 분위기의 서울대 병원의 기자 회견장이었다.   

 여하튼, 지난 일주일 동안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경일이의 짝 태현이는 진작에 자기가 아작을 냈어야 하는데 잘 되었다며 희희낙락했다. 하늘에 계신 우리 박정희 대통령께서 크게 흡족해하실 거라고 했다. 나는 그 아이처럼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근마 정말 꼬시다 아이가! 내가 직접 아작을 낼라 켔는데….”

 “…….”


 나는 태현의 저 농담에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내가 저렇게 만들었다는 심증 때문이기도 하고 아무리 꿈이라지만 분명 내가 대통령의 목숨을 앗았던 것 같기도 해서였다. 나는 도대체 무슨 일을 저지른 것일까? 심란하기 그지없었다.


 “그런데, 야들아! 너거들 글마가 말이다. 천벌을 받았다카는 뭐 그런 말 들어봤나?”

 “아니! 와?” 경일이가 물었다.

 “와! 아 인나! 광주에서 사람을 엄청시리 많이 쥑이가 그렇게 됐다 카더라고!”

 “아! 그래!”


 나는 자동적으로 대답을 하면서 순간 내 꿈속에서 머리가 반은 날라가 없고 눈동자는 튀어나오고 등에 칼이 찔린 채 피를 흘리거나 배에서 창자가 흘러나온 처참한 모습으로 독재자를 있는 힘껏 꽉 붙잡고 서있던 그 많은 사람들이 떠올랐다. ‘그럼 그들은?’


 “그래!! 인마야~~!! 진짜 소문이 파다~~ 하다니까!”

 “아! 그래!”


 나는 태현이의 말에 금시초문인 것처럼 똑같은 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뭣 같은 상황이라니……. 한편 각계에서는 일국의 대통령의 건강 문제에 대해 좀 더 적극적인 개입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쏟아졌고 앞으로 혼수상태에 빠진 대통령의 부재로 인한 국정 공백과 식물 정국을 우려하는 동아일보의 사설도 있었다.

 지금 우리나라 제 18대 국무총리인 노신영 씨가 국정을 대신했다. 그는 외무부 관료 출신으로 중앙 정보국장을 오래 했었다고 한다. 만약 대통령의 유고가 계속된다면 그는 88년 2월까지 대통령의 역할을 대신해야 한다.

 식물인간 상태가 오래 지속되고 회복 가능성이 없다면 조기 대선도 전망해야 한다는 조선일보 정치면 특별 기사를 읽기도 했다. 평소 현 대통령의 기사라면 사슴을 말이라 해도 받아 적던 조선일보에서 그런 냉정한 기사를 읽고 있자니 기분이 묘했다.  

 학교에 다녀오고 나면 다방 내실 옆 쪽방에서 나는 내가 친 사고의 파장을 이해하기 위해 우리 다방집에 배달되는 조석 간 일간지 다섯 개를 분석했다. 대부분은 비슷한 기사들이었다. 국정 공백 우려, 국방 안보 우려, 외교 우려, 내치 우려, 우려, 우려, 우려 투성이었다.

 한편으로는 손님들의 말을 귀동냥하자면 쿠데타로 독재자에 오른 지금 대통령의 행로를 봤을 때 태현이의 말대로 사필귀정일 수도 있다는 말을 은밀히 얘기하는 사람도 존재했다.

 그러나, 내가 아무리 학살자를 손 봤다손 치더라도 내가 의도하지 않았던 그러니까 꿈에서 일어났던 일이 실제로도 영향을 미친다면 나는 나를 어떻게 봐야 하나 하는 점에서 이 사건은 내게도 충격적인 일로 다가왔다.

 이럴 거면 나는 잠을 자지 말아야 하는 게 아닌 가 싶었다. 꿈에서 일국의 대통령을 보내버렸는데 E.T. 인들 못 보내 버리겠는가?

 한편으로는, 아니 정말 솔직하게 말하자면, 진심으로 그동안 속에 꽉 막혔던 것이 쑥 내려간 것 같은 홀가분한 기분이 들었다.

 지금 내가 저지른 일로 인해서 국가적으로 엄청난 일이 발생했지만 속이 후련한 것은 어쩔 도리 없는 일이었다. 웬일인지 말을 도통 듣지 않고 성만 내던 거시기도 요즘만큼은 그저 잠잠하게 지내 무척 다행이었다.

 여하튼 신문과 방송에서는 대통령의 사고에 관한 기사가 반이면 나머지는 아시안 게임에 관한 기사가 반이었다.  대통령의 사고가 있었지만 어쨌든 본격적으로 아시안게임이 시작이 되었다.

 아시안 게임의 목적은 신군부가 일으킨 쿠데타의 정당성 부족 때문이 아닌가? 언론에서는 연일 우리나라 선수가 딴 메달 소식을 전했다.

 그런데, 처음 체조에서 은메달을 딴 것은 조명을 받았지만, 그 이후부터 신문에서는 우리나라 선수들이 딴 금메달만 집중 보도했다. 사격에서 연이어 금메달을 땄고 여자 배영 100 미터의 최윤희와 탁구 단체전에서도 안재형의 활약으로 금메달을 땄다. 그 외 메달은 특별히 인상 깊게 전달되지 못했다. 최윤희 선수의 인기는 가히 대단했다. 그러나 그녀는 이런 그녀의 인기가 그리 달갑지 않았던 느낌이었다.

 반면 남자 탁구 단체전 안재형의 대 중공전 활약은 대단했다. 저 정도면 한국의 여성뿐만 아니라 중공의 젊은 여성들도 상당히 반할만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대통령의 사고로 인해 지나친 환호는 자제하는 분위기였다. 방송에서는 아시안 게임 기간 전에 종종 들리던 <아! 대한민국>은 어느새 들리지 않기 시작했다.

 그리고 엄마는 지난주 일요일부터 우리 다방집에 방 하나를 더 만드는 공사를 시작했다. 카운터 옆 계단 아래 공간에 있던 의자와 탁자를 들어내고 일종의 방을 만들었다. 무슨 이유인지 나는 잘 몰랐다. 그냥 방이 하나 더 생기면 좋은 거 아닌가 그런 생각을 했을 뿐이다. 결국 지난 일요일에는 도서관에 가지도 못하고 공사를 도왔다.

 텔레비전에서는 하루 종일 아시안게임 경기 중계를 했고 졸지에 나는 공사를 하는 김씨 아저씨의 이런저런 잔심부름을 했다. 김씨 아저씨는 나를 두고 시다라고 했다. 다방집 앞에 세워둔 낡디 낡은 타이탄 트럭에서 시멘트 벽돌을 다방집 안으로 내리는 일은 상당히 힘든 일이었다.

 다른 사람의 마음속에서는 엄청난 힘을 발휘하거나 날아다니기까지 하는 내가 현실에서는 일머리가 꽝이라는 말을 들었다. 하긴 운동도 꽝이지만…….

 김씨 아저씨는 나처럼 일 못하는 아는 처음 본다고 혀를 끌끌 찼다. 젠장맞을! 나는 설거지도 잘 하고 쌍화차도 잘 끓이고 비엔나커피까지 만들 줄 아는 다방집 도련님인데 싶어 억울했다.

 일요일 오후 내내 시멘트 벽돌을 지하 다방집으로 내렸다. 계란을 오르락내리락 하니 다리가 후들거리고 허리도 아팠다. 내가 나른 시멘트 벽돌로 김씨 아저씨는 방바닥을 만들고 그 위에 시멘트를 발랐다. 그리고 옆으로 베니아 합판으로 벽을 만들고 그럴듯한 문까지 만들었다. 며칠 뒤, 학교를 다녀와 보니 안팎으로 벽지까지 발라 그럴듯하게 방이 만들어져 있었다.

 바닥 시멘트가 마른 후, 스티로폼을 그 위에 깔고 장판을 덮었다. 천정에는 없던 새 형광등까지 달려 있었다. 장사가 잘 안 돼서 일수를 찍는 데 뭐 이런 방을 만들 여유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다시 한번 더 들었다. 그러나 나는 엄마에게 가타부타 말을 하지 않았다.

 덕분에 기대에 마지않았던 일요일 오후에 하는 <당첨! 올림픽 복권>을 보지 못했다. 결국 월요일까지 기다려 신문에 난 올림픽 복권 당첨 번호를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확인해 봤다. 제 181회 올림픽 복권 1등 당첨 번호는 2조 529783이었다.

 내가 산 올림픽 복권의 숫자는 3조 417051이었다. 6등까지 아무것도 맞지 않았다. 조나 끝자리가 다른 다행상, 행운상도 맞지 않았다. 아! 용꿈도 별 소용이 없었다. 백룡이라 그런가? 하긴 일국의 대통령을 그렇게 보내버렸는데 이깟 일이 대수인가? 그래도 월세에, 일수에, 내 등록금에, 아가씨 월급에, 다방 재료비에, 이런저런 세금까지 내느라 돈이 별로 없는 엄마에게 뭐 하나라도 도움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 싶었다. 이것 역시 내 솔직한 심정이다.


  …  


 어느 날부터인가, 다방집에 평소 왕래가 없던 동네 청년들이 드나들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필수라는 이름을 가진 나름 경상도 남자치고 상당히 사근사근한 동네 청년이 미스 나 누나를 잘 따랐다. 이 청년이 우리 다방집에 드나들자 점차 그 동네 청년의 친구들까지 우리 다방집에 드나들었다. 그러더니 늦은 밤 시간까지 다방집에서 훌라라는 포커 게임을 했다.

 나는 이 동네 청년들이 훌라를 치고 집에 돌아갈 때까지 긴장을 하곤 했다. 그런데, 엄마는 이 친구들에게 맥주를 내놓기 시작했고 오징어를 구워서 대접했다. 다방에서 술을 파는 것은 엄연한 불법이다. 물론 ‘티’라는 이름의 술을 팔기도 했었다. 그래 봐야 위스키를 흉내 낸 캡틴 Q이라는 싸구려 독주를 따라 준 것뿐이었다. 다방집 입장에서는 티를 시키는 손님은 참 고맙달까? 뭐 그런 생각이 들었다. 자연스럽게 오비 맥주가 냉장고 안에 자리 잡기 시작했고 안주거리인 오징어와 땅콩도 내가 동네 시장에 가서 사 왔다.

 그러나 저러나, 훌라라는 게 일종의 포커 게임인데 일반 세븐 오디에 비해 높고 낮음이 있어서 좀 더 다양하게 승패가 나는 것 같았다. 말했듯이 카지노 도박기를 흉내 낸 우리 다방집 전자 오락기를 통해 며칠 밤을 새 미친 듯 높고 낮음의 여섯 단계의 확률 게임을 했었다.

 100원짜리 동전을 넣어서 베팅을 하는 사행성 오락기인데 나는 엄연히 이 지하 다방집 도련님 아닌가? 엄마가 잠이 들면 담대히 기계의 문을 열고 동전이 들어가는 장치를 테니스 줄로 건드려서 게임을 했다. 결국 여섯 번의 높고 낮음을 맞춘 끝에 카우보이 누나의 주요 부위를 가린 샴페인 병을 보고야 말았다는 것도 알 것이다.

 그것으로 나는 도박의 끝을 봤다고 생각했다. 열과 성을 다했지만 결국 이룰 수 없는 게 도박인 것이다. 그리고 우리 지하실 집이 술집을 하던 시절에 내가 다니던 국민학교 선생님들 몇몇이 우리 집 내실에서 고스톱을 치다가 시비가 붙고 몸싸움까지 하는 걸 보았다. 친구들끼리 친목도모 차원에서 하는 게임이라 할지라도 오만정이 싹 다 떨어졌었다.

 어쨌든 마돈나를 닮아 매력적인 우리 미스 나 누나는 동네 청년들과 스스럼없이 잘 어울려 나갔다. 점차 우리 동네 필수 씨의 입에서 우리 다방 레지 미스 나 누나에게 결혼 언제 할 거냐고 묻는 말이 자꾸 나왔다.

 그런데 본의 아니게 나에게 담배를 가르쳐 준 ‘존’이라는 미군 장교가 우리 다방집에 자꾸만 나타나기 시작한 것도 미스 나 누나 때문이 아닌가 나는 속으로 추측을 했다. 존이 오기만 하면 미스 나 누나는 나를 찾는다. 다 귀찮다. 결국 올 때마다 이 친구가 누나에게 어떤 추파를 던지는데,

 “I miss you so much!” 이 말은 정확히 알아들을 수 있었다.

 “쟈가 뭐라카노?” 미스 나 누나가 내게 물었다.

 “누나가 참 보고 싶었데요.”

 “참말로? 아! 흉하네. 참말로! 됐고 마! 쟈 뭐 무글란 지 물어나 봐 도고!”

 “네? 네!”

 “What do you want? coffee or tea?”


 그나저나 이 모든 일은 미스 나 누나가 우리 다방집에 온 지 불과 2주일 만에 일어난 일이다.



 지난 금요일, 그러니까 어제 오후, 수업 이 끝난 후에 옆으로 난 머리 까락으로 아슬아슬하게 윗머리를 덮으셔서 더욱 애달프게 보이시는 우리 담임선생님께서 직접 나를 교무실로 부르셨다. 그리고는 뜻 밖에 말씀을 하셨다. 1학기 말에 했던 IQ 검사에서 내가 우리 학교 전체를 통틀어 1등을 했다고 했다.


 “네?”

 “이 노무 쉨키야! 니가 1등이야. 인마야! 함 봐봐! IQ 지수 159! 봐! 똑똑히 니 눈까리로 보라 말이다! 어잉!”  

 “네에?” 나는 깜짝 놀랐다.

 “근데 인마야! 니 와이리 공부를 모하노! 성적 꼬라지가 이게 뭐꼬? 어잉!”

 “네? 네!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내가 마 딴 반 쌤들한테 음청시리 부끄럽다 아이가! 으잉! 난다 긴다 수재들이 모인 학굔데 전교 100 동도 못 드는 니 IQ가 1등이라 하니까네 내가 뭐라꼬 다른 선생들 앞에서…… 할 말이 없다 아니가? 어잉! 니 이거 봐 바! 하필 이번 모의고사 시험이 159등이 뭐꼬? 아이큐 159가 159등! 말이 되나? 니 생각을 해바봐! 그리고 여 수학 성적 봐 바라! 수학 성적! 딱 보라 카니 까네! 머리 좋다는 놈이 수학 성적이 이게 뭐꼬? 어잉! 완죤히 개판 아이가! 어잉!”


 하필 선생님은 수학 얘기가 나오자 버릇처럼 머리를 쿡! 쥐어박았다. 아이! 왜 머리를? 울컥했지만 교감이나 교장이 날리는 뺨 싸다구에 비하면야! 뭐!

 이실직고를 하자면 중학교 때 내 IQ는 90이었다. 시험도 아니고 별생각 없이 검사를 했는데 정말 90이었다. 어디서 들으니 강아지 아이큐도 95 라는데 자존심이 좀 상했다. 맞나? 돌고래인가?

 지난 1학기 IQ 검사 때 중학교 시절과 달리 아무리 IQ 측정에 열과 성을 다했다고 해도 단 3년 만에 아이큐가 무려 70 가까이 오르는 것은 무리다. 납득이 안 된다. 납득이! 어떻게 이게 말이 된단 말인가?

 사실 이번 아이큐 검사에서는 다른 시험들과 다르게 반칙을 썼다. 쉬운 문제는 빨리 풀고 애매한 것들은 공부 잘하는 아이들 마음속을 다녀보고 확률이 높은 답을 썼다. 그래서 그랬는지 지난번 아이큐 시험이 끝나고 나서는 하루 꼬박 앓았던 기억이 났다.

 “네, 네,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선생님.”

 “마! 봐라! 성재야! 어무이 혼자 고생하시는데 정신 똑바로 쳐 묵고! 쉨끼야! 알아무근나?”

 “네! 선생님. 명심하겠습니다.”

 “내가 두고 볼끼다잉! 머리 좋은 쉨끼가 좋은 머리 나뚜고 공부를 안 해 뿌믄…… 그기 더 나쁜 기야! 알겠나?”

 “네, 알겠습니다. 선생님.”


 교무실을 닫고 나오면서 씁쓸했다. 교무실 선생님들이 모두 나를 주목했다. 애달픈 머리를 한 우리 담임 선생님이 고래고래 떠드는 바람에 육중한 체격의 교감을 비롯해 전교의 선생님들이 내 얼굴을 다 알아버렸다. IQ 159에 전교 159등!!!  

 더군다나 이렇게 선생에게 야단 아닌 야단까지 맞다니……. 단지 자존심 때문에 반칙을 썼는데 너무나 예상외의 결과가 나왔다. 이렇게 쪽이 팔릴 거라면 애당초 반칙 같은 걸 쓰는 게 아니었다. 그냥 IQ 90으로 살았으면 이런 일은 없었을 것이다. 머리가 나쁜데 159등이나 했으니 그나마 노력을 많이 했구나 칭찬을 듣지 않았을까? 아! 세상 조용히 학교를 다니자 마음을 먹었지만, 그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리고 다시 뭔가 꺼림칙한 미술시간이 왔다. 이런 느낌은 별로 빗겨 나 본 적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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