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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nctuary Mar 16. 2021

영화와 영성(Spirituality)(1)

할리우드 영화에 드러난 영적 주제와 구원의 문제

<스타워즈> <반지의 제왕> <해리 포터>
 <매트릭스> <아바타>
<나니아 연대기> <인터스텔라> <라이언킹>


우리가 익히 잘 알고 있는 이 영화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우선 할리우드에서 거대 자본으로 제작된 대작 영화라는 점에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영화들을 블록버스터 영화라고도 부른다. <라이언 킹>이 애니메이션 영화라는 점만 제외하고는 제시된 작품들 대다수가 SF(Science Fiction) 혹은 판타지 영화 장르라는 점을 공통점으로 꼽을 수 있다. 내용적인 면에서 신화적인 주제, 영웅을 다룬 주제로 느슨하게 묶을 수도 있겠다. 모두 맞는 말이다. 그런데 이 작품들을 조금 다른 각도에서 바라볼 수 있다. 바로 "영성(spirituality.靈性)" 혹은 영적 주제가 담긴 영화라고 말이다. ‘영성'이라면 <십계>나 <예수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 같은 종교영화에서나 찾을 일이지 더 많은 사람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엄청난 자본과 인력, 최신 테크놀로지를 쏟아붓고 만들어진 할리우드 상업 영화에서 '영성'이 웬말인가?


                                                                                            ⓒ The Walt Disney Company


                                                                                                   ⓒ 워너브라더스


이쯤해서 용어의 개념 정리가 필요하다. 원래 '영성’은 그리스도교적 배경에서 유래된 것으로 '궁극성을 향한 인간 본래의 열망'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 글에서 사용하는 '영성'이란 용어는 제도권 종교에서 쓰이는 것과는 조금 다른 층위에서 정의된다. 여기서 ‘영성’이란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신비한 어떤 것이 아니라, 지금의 객관적인 상황을 초월해서 새로운 차원으로 볼 수 있는 능력을 뜻한다. 따라서 구체적이고 특정한 종교에만 국한되는개념을 벗어나 오히려 어떠한 종교적 표현의 형태에도 우선하는 개념이라고 볼 수 있다. 사실 이 글에서 영성을 종교적 전제와 별도로 포지셔닝하기 훨씬 이전부터 이미 영성의 범주는 현대 대중문화 안에서 폭넓게 확장되어왔다.



인간의 보편적 심성에 대한 진지한 성찰
현재의 자기 자신과 환경 너머를 보고, 현실을 뛰어 넘어 의미와 가치를 찾는 능력
방향과 의미를 위한, 정체성과 초월성을 위한 인간의 탐색


미국 대중문화의 다양한 영역을 통해 드러나는 현대인의 영성 추구 성향을 연구한 베리 테일러 (Barry Taylor)는 오늘날 대중들이 한마디로 ‘영적’이라는 용어를 선호하는 현상에 주목한다. 테일러는 사람들이 종교적 의무감에 대한 부담 때문에 ‘경건한(holy)’ 혹은 ‘종교적(religious)’이라는 말은 회피하지만 ‘영적(spiritual)’이라는 말은 즐겨 사용한다고 지적한다. 우리도 종종 할리우드 스타들이 자랑하듯이 토크쇼나 그들의 SNS에서 이렇게 말하는 것을 발견하곤 한다.


I am spiritual ...
but not religious.

미국 MIT 사회심리학 교수인 셰리 터클(Sherry Turkle)은 테크놀로지와 인간관계를 다룬 <외로워지는 사람들(Alone Together)>에서 과학기술과 기술문명은 사람들에게 삶의 윤택함과 편리함을 가져다주었고, 현대인들은 이전보다 많은 사람들과 관계하고 24시간 연결된 상태로 살아가지만 늘 피상적이고 가상적인 관계로 남아있어 점점 외로워지는 존재가 되었다고 말한다.


현대 사회에서 경쟁은 점점 치열해지고 가족은 쉽게 해체되며 빈부의 격차는 심해지고 인터넷에서 만나는 세상과 SNS에 익숙해질수록 사람들은 점점 타인과 직접적인 관계맺는 일을 두려워한다. 과거 어떤 세대보다 '함께함'을 갈망하지만 그 어떤 세대보다 자신을 타인에게 내어주는 것을 두려워하는 세대가 우리들의 현재 모습일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세상이 각박해지고 내가 있을 자리를 찾기가 힘들어질수록 인간은 쉽게 부서지지 않는 견고한 관계와 세상과의 지속적인 연결을 꿈꾸며, 변하지 않는 것, 영원한 것, 나아가 궁극적이고 본질적인 것을 갈망한다.


그런데, 근래 들어 '영성' 개념의 외연이 확장되면서 사람들이 쉽게 접근하게 된 점은 긍정적일 수 있으나, 이런 열망이 현대 소비 자본주의 사회의 속성과 맞물려 '영성'은 점점 상업화되고 개인화되며 소비상품이 되어 가는 경향이 보인다. 자기 계발 열풍, 개인의 실존적 치유에 대한 (지나친) 관심과 웰빙 문화, 그리고 건강에 대한 강박관념 등이 그런 사례로 비판받기도 한다. 소위 '힐링' 산업의 중심에 영성이 놓이게 된 것이다 (이 부분애 대한 심도있는 분석은 다음 기회에 해보기로 한다).


최첨단 테크놀로지가 인간관계까지 지배하게 된 현상을 비판적으로 바라본 터클의 지적은 영적인 삶과 태도에 대한 절실한 요구를 가지고 있지만 일관되고 타당한 영성 개념이 주어져있지 않아 혼란스러운 우리의 현실과 상응한다. 그렇다면, 특정 종교를 가지기는 (의무감 때문에) 부담스럽고 불편하지만, 영적인 것에 대한 관심과 열망은 간절한 사람들에게 앞에서 설명한 개방성과 확장성을 담보한 '영성'을 찾기 위한 방법은 무엇일까?





종교학자 M. 엘리아데에 의하면 근대에 들어와 영화라고 하는 "꿈의 공장"이 무수한 신화적 주제들을 넘겨받아 사용한다고 말한다. 종교적이었던 고대의 인간들이 근대 이후 세속화되고 비종교적이 되었지만 스스로 의식하지 못해도 여전히 인간 존재의 가장 밑바닥에는 근원적인 것에 대한 열망이 다양한 방식으로 흔적을 남긴다고 말한다. 축제, 독서, 영화 관람의 행위가 바로 그것들이다.


종교와 문화와의 관계를 연구한 반 데르 레우후, 폴 틸리히를 비롯한 많은 학자들 역시 문화와 영적체험과의 관련성에 대해 주목해왔다. 이들에 따르면 영화는 "낯선 시간"의 경험을 통해 일상의 다른 어떤 도구보다 영적인 체험에 쉽게, 깊이있게 접근할 수 있는 매개체이다.


영화가 탄생한 이후 지금까지 서구를 중심으로 종교적 색채를 띤 영화들은 셀 수 없이 많이 만들어졌다. 그러나 소위 '종교영화' 장르에 속하는 이들 영화들은 더이상 글로벌 관객에게 영향을 미치지 못하게 되었고 (그래서 매우 드물게 제작되고 있다) 우리나라 영화계의 경우 더욱 그러하다.


ⓒ pinterest.co.kr


여기서 주목할 부분은 2000년대 이후 제작되어 전세계 관객들에게 호응을 얻은 굵직한 할리우드 영화들을 잘 살펴보면, 뚜렷한 종교색을 배제하면서도 포괄적으로 영적인 주제를 심심치 않게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잘 알다시피 영화는 시대적인 변화와 요구를  적극적으로 반영하면서 다양한 방식으로 진화한다. 따라서 이 글의 서두에서 밝혔듯이 할리우드가 글로벌 콘텐츠 생산의 주체로서 수용자인 전세계 관객에게 미치는 막대한 영향력을 생각해볼 때, 할리우드에서 나타나고 있는 이런 새로운 경향은 흥미로우면서도 한번쯤 진지하게 그 본질과 의미가 무엇인지 탐색할 가치가 있다.


오늘날 영화는 대중에게 가장 큰 파급력을 가진 매체이며 영화관은 (최근에는 코로나로 인해 안방의 스크린 역시) 현대인의 놀이터이자 소통의 공간이다. 뿐만 아니라 영화는 문화가 생성되고 소비되는 곳이자 이 글이 주목하는 '영적인 체험'이 이루어지는 곳이 된다.


다시 말하면, 현대 과학과 지식의 놀라운 진보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가지고 있는 보다 근원적인 것, 본질적인 것에 대한 갈망영화를 통해 표출될 수 있는 것이다. 앞에서 제시한 <스타워즈> <해리 포터><매트릭스>를 비롯한 대형 판타지 SF 영화들은 시리즈로 제작되며 대중에게 큰 공감대를 이끌어냈다. 우리가 미처 생각지못한 관점으로 이들 작품을 본다면, 다양한 규모와 장르로 제작된 많은 할리우드 영화들이 외면 혹은 내면적으로 '영적인 주제'에 연관이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이들 영화에는 그동안 눈여겨보지 않았을 뿐 인간의 근원적 본질과 구원의 문제들이 생생하게 드러나있다. 다음 글에서는 어떤 작품들에서 이러한 경향을 뚜렷하게 찾아볼 수있는지 찾아볼 것이다. 


                                                                                                          






[참고 자료]

로버트 존스톤, 『영화와 영성(Reel Spiritualty)』, 전의우 역,  서울: IVP, 2003.

마크 A. 매킨토쉬, 『신비주의 신학: 영성과 신학의 어우름』, 정연복 역, 다산글방, 2000.

터클, 셰리, 『외로워지는 사람들』, 이은주 역, 청림출판, 2012.

도니 조하·이안 마셜, 『영성지능 SQ』, 조혜정 역, 룩스,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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