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아들의 대결
돈은 많이 벌고 싶은데, 관객이 원하는 건 모르겠고요. 제가 만들고 싶은 거 만들고 싶어요.
- 감독 자아 1 -
딸깍.
유튜브에 단편영화를 찍어서 업로드 했다.
내 딴에는 자극적인 썸네일과 후킹이 가득한 제목을 달아 업로드했다.
업로드 후 열흘 가량 시간이 지난 지금 조회수는 100언저리
실패작이다.
유튜브 스튜디오를 다운로드 받고 세보진 않았지만 하루에 100번 정도는 들어가 조회수를 확인한 듯 하다.
감독 자아 1 아 왜!! 왜 안 보지?
작품이 그렇게 안 좋나?
감독 자아 2 유튜브 알고리즘 얘가 안 뿌려주네.
이거 봐 이거 봐. 노출 수 이거 봐.
기다려봐. 내가 노출 수 올리는 법 찾아보고 올게.
감독 자아 2 내가 찾아왔거든?
초반 3초에는 무조건 후킹이 있어야 한대.
감독 자아 1 싫은데?
감독 자아 2 어…?
감독 자아 1 싫다고.
감독 자아 2 그…
돈 벌고 싶다며.
감독 자아 1 아니. 나도 하고 싶은 게 있잖아.
감독 자아 2 어… 그…
감독 자아 1 나도 노력했어. 썸네일이랑 제목 봐봐.
나 진짜 많이 달라졌어.
감독 자아 2 … 맞지. 맞는데. 나는 지금 영상 얘기하고 있는 건데.
감독 자아 1 싫어.
감독 자아 2 어… 음…
그래.
초반 3초에 후킹이 있어야 한다는 말은 거의 정설인 것 같다.
우리 영상에서 3초 동안 벌어지는 일은 한 집에서 빨래를 천천히 개고 여자의 모습이 나온다.
15초 즈음 한 남자가 등장하고 냉장고 문을 연다.
놀랍게도 아직까지 같은 앵글이다.
약 35초까지 똑같은 앵글이다.
감독 자아 2 저기… 돈 벌고 싶다고…
감독 자아 1 어쩌라고?
솔직히 35초까지 기다려주신 시청자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35초 이후에도 별 다른 큰 사건이 없다.
나 조차 유튜브를 볼 때 별 생각 없이 넘기면서 본다.
자극적인 장면이나 궁금증이 생기는 장면이 나오기 전까지 다른 영상들을 찾아보거나 넘겨본다.
나도 이성적으로 안다.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는 것.
돈을 벌고 싶으면 시청자들이 원하는 컨텐츠를 최대한 분석해서 그에 부합하는 작품을 만드는 것.
뭐 어느 정도 공식화가 된 것 같다.
근데 이와 동시에 바로 질문이 떠오른다.
그 공식에 맞춰도 안 되는 작품 많을걸?
그렇다. 그냥 작품을 그 공식에 맞추고 싶지가 않은 거지.
그냥 자유롭게 작품을 만들고 싶으면서 관심도 받고 싶은 어린 마음이다.
작품을 만들 때, 나는 관심이 가져지는 사람으로부터 출발 할 때가 많다.
또는 신기한 상황, 사건
또 내가 하는 사색
어디선가 본 거, 들은 거, 그런 것들이 섞여서 글이 나온다.
감독 자아 2 그런 거 다 좋은데 초반 3초반 후킹을 만들어 볼까?
감독 자아 1 나는 여백이 좋아.
감독 자아 2 여백?
감독 자아 1 너무 주입되는 느낌이 많으면 별로야.
감독 자아 2 너도 그런 거 많이 보잖아.
감독 자아 1 봐. 보는데. 좋아하진 않아.
여백이 있고 내가 채워넣고 보고 나면 충만한 그런 작품 있잖아.
나는 그런 거 만들고 싶어.
감독 자아 1 나도 그렇긴 해.
감독 자아 2 드디어 나를 이해해주는 구나??
감독 자아 1 우린 참 힘들겠다. 아마.
그 순간 갑자기 감독의 자아 1, 2에게 빛이 나며 순식간에 감독 자아 1, 2는 하나가 된다.
그렇게 감독 자아 3이 탄생한다.
감독 자아 3 응. 우린 힘들 거야.
그래도 해보지 뭐.
만드는 내가 재밌어야 하는데. 작품을 만드는데 내가 좋은 것과 관객이 좋아하는 것 사이에서 저울질을 지금도 당연히 하지만
모르겠다. 창작자로서 작품은 작품대로 순수했으면 좋겠다.
있지도 않은 것 같은 그 기준에 작품을 맞추고 싶지가 않다.
참 안 좋은 결정을 내린 게 분명하다.
그래서 답답해서 글이라도 써야겠다 싶어서 이 답답한 마음을 타자기로 해결한다.
감독 자아 3 진짜 진짜 모순적이다.
근데 이 모순이 아마 계속될 거 같다.
유튜브에 단편영화를 올린다는 이상한 이 행위를 바꿀 생각은 없으니.
뭐 저울질은 매번하겠지만 큰 흐름은 바뀌지 않을 것 같으니.
내 생각을 바꾸기로 했다.
결과에 초연해져보자.
조회수가 나오지 않아도 사람들에게 관심이 조금 없더라도.
우리가 가는 방향대로 천천히 가자.
작품과 이야기에 더 충실하자.
내가 작품으로, 하려는 말에 더 충실하자.
이야기를 고민하고,
앵글을 고민하고,
연기 연출을 고민하고,
미술을 고민하고,
의상 분장을 고민하고,
그냥 그렇게 본질에 더 집중하자.
우리의 작품을 만드는데 최선을 다하고 남들의 선택은 그들에게 맡기자.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부분에 너무 큰 신경을 쓰지말자.
과정에서 충만함을 찾자.
결과에 너무 집착하지 말자.
그러다보면 자연히 따라오겠지.
.
.
.
갑자기 또 빛이 번지며 감독 자아 3은 감독 자아 1과 감독 자아 2로 찢어진다.
감독 자아 2 자연히 안 따라오면?
감독 자아 1 응?
감독 자아 2 평생 안 따라오면
감독 자아 1 평생…?
감독 자아 2 응. 평생. 평생 아무도 안 봐주고 아무도 너의 존재는 물론이고
작품도 안 봐주고 우리에게 관심도 없고 그렇게 평생을 살다가 늙어죽으면?
글 쓰면서 다짐했다.
결과와 과정이 있다면 과정에 충실하면서 살면 조금은 편해진다는 마음을 먹었다는 글을 쓰려고 했다.
분명. 진짜.
편하게 마음 먹으려고 했는데… 아마 이번 생은 그른 것 같다.
나는 계속 내가 하고 싶은 영상 만들면서
사람들의 관심을 원하면서
사람들이 좋아할 영상은 만들지 않으면서
그렇게 지낼 거 같다.
그냥 우연히 그 둘이 만나는 시기가 왔으면 좋겠다는 기도를 할 뿐.
결과가 성공적이지 않더라도 10년 뒤에 사람들이 알아봐주지 않더라도
매일 묵묵하게 자신만의 길을 가는 그런 사람처럼 그런 멋드러진 글로 기억되고 싶다.
평생?
닥쳐.
감독 자아 1 홍보를 이딴 식으로 하냐?
감독 자아 2 그러게 이건 아닌 듯.
기다려봐. 홍보하는 방법 유튜브에서 좀 찾아보고 올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