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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음 Jun 17. 2022

단비를 기다리며

30분 1글 #8

비가 내렸다, 끝이 보이지 않을 것 같았던 가뭄에 도움이 될까? 


울산의 지역방송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요점은 5월 한 달 동안 내린 비의 양이 평년의 5%밖에 안 되었다는 기사였다. 점점 서울공화국이 되어가는 대한민국 사회에서 올해 봄은 그저 화창한 날이 많은 봄날, 코로나 시국의 끝자락, 그런 느낌이었던 것 같다. 대선과 대통령 취임까지 겹쳐 언론은 정치 이슈로 도배가 되었고 개인적인 사정과 상관없이 세상은 시끄러웠다. 


비가 정말 안 내리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는 데는 사실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평소에도 수위가 그렇게 높지 않은 홍제천과 불광천이지만 올해 봄에는 유독 강바닥의 모래가 자주 보였다. 비와 햇살을 맞으라고 내놓은 올리브 나무 화분에 혹여나 말라 죽을까봐 물뿌리개로 물을 주고 있는 나를 보며, 가뭄이구나 싶었다. 

  

사실 사는 데는 하나도 불편함이 없었다. 비가 안 오니 신발과 바지가 젖을 일이 없어서 너무 좋았고, 출퇴근길이 번잡스럽지 않아서 너무 좋았다. 수도꼭지를 틀면 물이 나오고 편의점에 널린 게 생수니 말이다. 그렇게 하루하루 지나서 6월 초를 넘겼다. 생각해보면 가문 것 치고는 산불이 평소보다 적게 난 것 같았다 싶을만큼 조용히 가물었던 시즌이었다. 겨울에 눈이 별로 오지 않았던 것을 감안하면 가뭄은 사실 훨씬 그 이전부터 진행하고 있었다. 그렇게 치면 벌써 반년이나 가물어 있던 것일까.


가뭄이 피부로 느껴지지 않는 가뭄 속에서 나는 어느새 비를 기다리고 있었다. 확고부동한 이유는 모르겠다. 하지만 막연하면서도 간절하게 시원하게 비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혹여나 흐리지만, 분명히 기상청이 비가 온다고 했지만 안오는 날이면, 하늘과 기상청을 동시에 원망했다. 언제나 그렇듯이 비는 올 것이기 때문에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비가 왔다. 어젯밤에 우두두 하는, 오래된 갈색 알루미늄 샤시로 된 창문을 때리는 빗방울 소리가 들리더니 밤새 왔나보다. 해가 뜨고, 오전과 오후에 걸쳐 비는 계속 내리고 있다. 남부지방 일부와 제주에는 지난주부터 비가 슬슬 온 것 같았는데, 서울에 이렇게 내리는 것을 보면 중부지방 일부에도 이제 비가 내리나보다. 


가물었던 나날들을 보내니 비가 왔다. 누군가는 하늘을 원망하며, 누군가는 정부를 원망하며, 누군가는 우울에 빠져 지났을 나날이었다. 다행히 비가 왔다. 설마 비가 오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하지만 이런 생각도 든다. 정말 비가 오지 않는다면? 비가 오더라도 가뭄이 해결되지 않는 만큼 가문 것이라면...


물론 다행히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확률이 크다. 어쨌든 우리나라는 온난하고, 비가 꽤 자주 오는(물론 특정시기에 집중되지만) 곳이니까. 하루하루 비가 안 오는 것에 걱정할 수 있다. 비는 내가 내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니 막연하게 버티는 것에 지칠 수도 있다. 하지만 비가 왔고, 다시 해가 비치고, 새들의 울음 소리가 들린다. 어딘가에는 아직 비가 안 내렸을 수도 있다. 또 언제 다시 비가 내릴 지는 알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버티고 기다리는 것이 답이라면, 그렇게 해야할 것이다. 




- 작은새의 피드백(같은 주제로 같이 쓴 작은새의 글 : https://brunch.co.kr/@4eeeac81451f407/45)


마지막이어서인지 어떤 이유에서인지 편안하게 자신의 이야기가 들어간 글을 쓴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맨 마지막 문장을 쓰게 된 본인만의 이유가 있는 것 같은데, 나중에 다시 쓰게 되면 그 부분을 더 넣어서 이어 쓴다면 아주 맛난 글이 될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비가 안 오는 것이 오히려 편했음에도 알 수 없는 이유로 비를 기다리는 본인의 모습이 솔직하게 드러난 것은 재미있는 부분 중 하나였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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