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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새 Jun 17. 2022

그 날의 새벽 풍경

30분 1글 #8

B가 집에 갔다 서울에 다시 올라오자마자 비가 왔다. 비가 온다고 했으니, 체면은 차려야지, 해서 오는 비가 아니었다. 창문을 하나만 닫으면 소리가 여실하게 다 들려오는 비였다. 잠이 예민한 B는 자려고 누웠던 만큼 창문을 닫는 것이 인지상정이었겠지만 잠옷 입은 몸을 일으켜 바깥으로 향한 창을 활짝 열어젖혔다. 쏴아아아, 비가 나뭇잎을, 잠든 자동차를, 고요한 거리를 때리는 소리가 방 안에 가득 찬다. B는 졸린 눈을 비비며 미소를 짓는다.


몇 달 째 거의 비가 오지 않고 있었다. 한반도 남쪽 어디에도 비다운 비가 온 적이 없었다. 농작물이 말라가고 있을 밭이, 그래서 마음이 탈 부모님이 저절로 머리 속에 그려졌다. B는 더 이상 맑은 날씨가 반갑지 않았다. 주말에 만난 여자친구도 날이 너무 좋지 않냐며 B를 보며 활짝 웃었다. 활짝 핀 해와 활짝 웃는 여자친구 사이에서 B만 홀로 활짝 피지 못했다.


세상도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흘러가고 있었다. 대통령 선거가, 지방선거가, 당권을 두고 다투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코로나 보상금에 대한 이야기가 뉴스를 타고 흘러갔다. 동료들과의 커피 타임에는 MBTI가 몇 달 째 뜨거운 감자였고, 친한 동료들과는 이직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는 이야기였지만 가뭄 이야기는 설 자리가 없었다. 눈치가 빠른 대통령은 선거가 끝나자마자 가뭄을 해결해야 한다고 공언했지만, 어떻게 가뭄을 해결할 것인지는 삼척동자도 모르는 것 같았다.


집에 내려가 만난 친구는 아마 다음 작물을 심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땅이 너무 말랐어." 6월이면 잡초가 무성해지는 시기였으므로 아빠에게 풀을 매주겠다고 이야기하자 아빠는 '잡초도 못 자라는 가뭄'이라고 이야기했다. 과연 집에 가보니 밭은 얼마 전에 풀을 매기라도 한듯 황량했다. 흙들이 푸석푸석 부서졌다. 그 앞에서 할 수 있는 것이라곤 물을 좀 주고 오디나 따며 땅을 쳐다보는 것이었다.


그렇게 딴 오디를 들고 B는 서울로 올라왔다. 가물어서인지 오디는 더 달았지만, 시시각각 비 예보가 사라지는 기상청 예보를 볼 때마다 애가 닳을 지경이었다. 늦게 서울 집에 도착해 물을 틀어 샤워를 끝내고 나왔는데 샤워기 소리가 계속 났다. 샤워기를 켜뒀나, 내가 이직 준비랑 부모님 생각 때문에 정신을 놓고 사는구나, 하면서 화장실 문을 다시 열고 보니 샤워기는 잠겨진 채였다. 화장실에 난 작은 창문 너머로 바깥에서 들려오는 빗소리가 선명했다. B는 정말 오랜만에 빗소리를 들으며 자기로 했다. 빗소리가 세상의 모든 근심이라도 덜어주는 것처럼 느껴져 오늘은 빗소리가 들려도 잘 잘 수 있겠구나 생각이 들었다. 바람은 없었지만 그래도 혹여 비가 들이치더라도 장판을 잘 닦으면 그만이라는 생각을 했다.


한 번 오기 시작한 비는 모두의 염원을 듣기라도 한듯 새벽을 넘어 아침까지 이어졌다. 여전히 쏴아아아 하는 소리가 B의 코고는 소리를 포근하게 덮어주었다. 비가 들이치지 않았던, 그 날의 새벽 풍경이었다.





- 지음의 피드백 (같은 주제로 같이 쓴 지음의 글 링크 https://brunch.co.kr/@cinemansu12/11)


작은새는 뭐랄까, 어떻게 글을 쓰느냐가 내용과 붙어있는 편인듯한 느낌이다. 글의 분위기가 혹은 비유 같은 문학적 수사가 글 자체를 넘어설 때도 종종 있다. 30분 1글의 한 시즌이 끝나간다. 앞으로 작은새는 어떤 글을 누구와 어떻게 쓸까. 글을 쓴다는 것은 작은새를 비롯해서 이 먼지 같은 글들을 우연히 접할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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