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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anne Dec 22. 2022

와이키키 브라더스: 변하지 않는 것, 변해야 하는 것

엄마 C의 시선


임순례 감독이 각본과 감독을 맡은 “와이키키 브라더스”는 개인적으로 제가 한국 영화 가운데 최고라 꼽고 있는 작품으로, 그냥 담담하게 스토리를 따르면서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의미와 가치가 있기에 굳이 감상평 같은 '사족'을 붙이지 않아도 좋으리라 여겨지지만, 제가 그처럼 특별하게 생각하는 영화인 만큼 영화평을 시작하는 첫 글에서 다루지 않을 수도 없겠다 싶어 결국 목록의 첫자리에 올리게 되었습니다. 2001년 개봉 당시 이 영화 덕분에 처음 알게 된 임순례 감독은 이후에도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제보자”, “리틀 포레스트” 등 훌륭한 작품들로 꾸준히 관객을 만나 온 실력 있는 연출가지만, 평론가 이동진이 별점 만점을 준 몇 안 되는 한국 영화 중에 속한다는 사실이 무색지 않은 이 영화를, 객관적 기준에서도 임 감독의 작품들 가운데 최고의 위치에 올려 놓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비슷한 시기에 개봉되었던 다른 '비상업적' 영화들(“라이방”, “나비”, “고양이를 부탁해”)과 함께 “와라나고를 부탁해”라는 - 각 영화 제목의 첫 글자를 조합해 만든 말인 - '문화 운동'에 불을 지핀 주역이기도 하지요.


첫 장면부터 해당 야간 업소에서의 마지막 공연임을 - 해고되어 갈 곳이 없게 된 처지임을 - 술손님들에게(그리고 관객들에게) 알려 주는 그들 “와이키키 브라더스”는, 잘 나가던 초창기 당시 7인조에서 시작했지만 여러 사연을 겪은 후 4인조까지 축소되면서 거의 퇴물급으로 전락한, 그리고 리더이자 주인공인 “성우”가 고교 시절 자신의 고향인 수안보에서 결성했던 밴드 활동 중 우연히 지은 명칭을 따라 이름 붙여진 악단입니다. 실직 후 급하게 일자리를 찾고 있던 성우는 자신들이 몸담은 생업의 특성상 선택의 여지가 없음을 뻔히 알면서도 가능하면 고향인 수안보 쪽으로만은 가지 않으려 애를 썼으나, 야간 업소들의 불경기는 물론 노래방과 가라오케의 보급으로 철 지난 연주를 하는 자신들을 찾는 곳이 많지 않아 어쩔 수 없이 그곳으로 향하게 되었고, 고향인 그곳에서 고교 시절 밴드 활동을 함께하던 친구들뿐 아니라 '가창력' 때문에 첫눈에 반했던 짝사랑의 상대도 다시 만나게 됩니다.



수안보로 내려가는 과정에서 한 명이 다시 빠지고 결국 3인조로 축소된 “와이키키 브라더스”의 잔류 멤버 “정석”과 “강수”가, 자신들이 좋아하는 음악을 계속하기 위해 현실적(금전적) 조건들을 희생하며 '지조'를 지키고 있음에 대해 내비치는 표면적 자부심과는 달리, 이상과 현실의 간극이 불러오는 어쩔 수 없는 괴리감을 여자 혹은 술과 도박 등으로 달래며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다면, 그 반대편에 서 있다고 할 - 안정적 직업을 찾아 떠난 - 고교 시절의 밴드 친구 “민수”, “수철”, “인기”는 삶에 찌들어 예전의 순수함은 온데간데없어진, 그리하여 타인에 대한 배려는 커녕 자기 삶 하나 챙기기 힘들어 하는 모습으로 매일을 살고 있는 이들입니다. 그러한 그들의 면면 때문인지 영화를 보는 내내 “현실을 고려하여 자신이 좋아하고 가치 있게 여기는 일을 접어야 하는 시점이 살다 보면 언젠가는 오는 것인가, 그렇다면 그 '시점'은 언제이며 그때를 놓치면 인생의 '낙오자'가 되는 것인가”라는 질문이 매번 제 머릿속을 맴돌곤 합니다.


주인공 성우와 고교 밴드에서 함께 음악을 하던, “철밥통”이라는 공무원 신분에서 하루 아침에 실업자가 된 친구 수철이 죽기 직전 - 사고사인지 자살인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 성우와 마지막으로 만나 술을 마시며 건넸던 말인 “행복하니? 우리들 중에 저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사는 놈 너밖에 없잖아. 그렇게 좋아하는 음악 하면서 사니까 행복하냐구”라는 질문이 이 영화가 관객에게 던지는 핵심적 '생각 거리'일 것으로 짐작되지만, 그 질문에 대한 성우의 내면적 대답이 무엇이든 영화가 막바지에 이를 즈음 주인공인 성우에 대해 갖게 되는 이미지는, 많은 영화에서 특수 기법으로 사용하곤 하는, 중심 인물은 중앙에서 움직임 없이 서 있고 다른 상황이나 인물들이 포물선을 그리며 옆으로 휙휙 지나치는 장면을 연상시키는데, 아마도 이것은 주위 사람들이 이런저런 모양으로 바뀌고 변하며 분주히 움직이는 동안에도 그만은 언제나 같은 자리에 꿋꿋이 서 있는 모습으로 기억 되기 때문 아닐까라는 자문자답을 하게 됩니다. 마치 '유랑극단'의 단원이나 되듯 실제 그의 몸은 이곳저곳을 정처 없이 떠돌고 있는데도 말입니다.





신앙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흐르는 강물을 거꾸로 거슬러 오르는 연어”처럼 세상의 가치관에 거역하는 삶을 살아 냄이 각자의 본분일 것입니다. 평생 돈도 못 벌 밴드 생활을 꿋꿋이 하면서 음악에 대한 '지조'를 지키는 일이 돈벌이를 위해 영혼 없는 직장 생활을 선택하는 것보다 더 기독교인다운 삶임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돈이 사람의 가치를 결정하고 돈과 지위가 없으면 최소한의 존엄조차 보장 받지 못하는 세상 속에서도 그 돈과 힘을 얻기 위해 남에게 해를 주거나 편법을 사용하지 않고 흔들림 없이 자기 자리를 지키는 것이 불가능한 일은 아니며, 그것이 바로 어디에 서 있든 부름 받은 우리의 목표여야 한다는 말을 하고 싶을 뿐입니다. 술과 도박으로도 채워지지 않는 외로움과 열등감을 마약으로 달래려거나 어린 자녀가 있는 유부녀와의 잠자리도 전혀 꺼리지 않는 자신의 동료들과 지근 거리의 삶을 살면서도 정작 본인은 그 어떤 색깔에도 물들지 않고 - “근주자적 근묵자흑(近朱者赤 近墨者黑)”이라는 속담이 무색할 만큼 - 사랑하는 음악만을 곁에 둔 채 선한 모습으로 늘 제자리를 지키고 있는 성우이기에 떠났던 동료들조차 절박한 상황을 맞으면 그에게 찾아와 어려움을 호소하는 것일 테니까요.


“와이키키 브라더스”가 자신들의 마지막 무대임을 - 자기들의 절박한 처지를 - 조용하게 '호소'하던 첫장면에서도, 더욱이 전쟁 고아로 평생을 힘겹게 살다 노년을 출장 연주자로 떠돌며 결국 알코올 중독자로 생을 마감할 성우의 음악 '스승'이 드럼 연주 도중 갑자기 쓰러져도, 부둥켜 안고 추던 춤을 계속 추기에만 바빠 크게 괘념조차 않는 듯한 나이트클럽의 손님들도 아마 나름대로는 각자의 삶을 치열하게, 그리고 외로운 고투를 벌이면서 살아가고 있을 것입니다. 홀로 서야 하는 일이 너무나 고단하기에 이런저런 사람들과 살을 부비며 살고 싶어 애를 쓰지만 그럴수록 외로움이 더욱 짙어 갈 인간 군상들의 면면을 바라보며 느끼는 아픔과 더불어, 성우의 첫사랑이자 남편과 사별하고 트럭 행상으로 야채를 팔며 억척스럽게 살던 “인희”가 무대에 올라 노래하는 마지막 장면에서 절정에 이르게 되는 안타까움과 안쓰러움이 뒤섞인 감정은, 볼 때마다 매번 지치지도 않는 눈물을 불러 내고는 합니다. “사랑”에 그토록 갈급하면서도 불완전한 인간 사이의 사랑을 갈구할수록 더 큰 목마름과 더 깊은 생채기를 남기는 불완전한 우리임을 알고 있는 만큼, 인희의 지금의 “행복” 또한 영원하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에, 그리고 그 갈급함의 해결책을 잘못된 곳에서 찾으려는 길 잃은 사람들을 향한 측은한 마음을 감추기 어려워 어김없이 흘리게 되는 눈물이지요.





알고도 모른 척 '무시'했다면 죄일지언정 진정 몰라서 '무지'한 것이라면 결코 죄라고 할 수 없기에, 주소가 틀린 “집”을 찾아 나서는 그들 중 어느 누구도 밉거나 한심하다고 생각되기는 커녕 도리어 딱하고 안쓰러운 마음만 앞설 뿐입니다. 주로 무대에서 불린 대중가요인 삽입곡들 하나하나의 제목(“내게도 사랑이”, “사랑, 사랑, 사랑”, “사랑밖에 난 몰라” 등)은 물론이지만 노랫말들 역시 온통 “사랑”으로 점철되어 있으면서도 실제의 삶은 사랑과 거리가 멀기만 한 그들 모두가, 또한 몸은 정작 수안보와 여수, 울릉도 등을 떠도는 '주제'에 한 번도 가 본 적 없는 “와이키키”를 자신들의 이름으로 삼은 그들의 삶이, 지난한 현실 가운데에서도 막연한 이상향을 바라며 실존하지 않는 곳을 찾아 헤매는 많은 이들의 모습을 대변하는 것 아닐까 생각하게도 됩니다. 2001년,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21 년 전,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 광화문에 있던 독립 영화 상영관인 - 극장 문을 나서며 마주한 눈이 부시도록 밝은 바깥 세상 앞에서, 방금 떠나온 어두운 화면 속 이야기가 훨씬 더 현실처럼 여겨지던, 그래서 그 밝은 '실제' 세상에 대한 이질감으로 한참을 망연히 서 있게 만들던 설명하기 어려운 느낌은, 21년이 지난 지금도 전혀 달라지지 않은 채 영화를 볼 때마다 그 마음 그대로 그 자리에 서 있게 합니다.




딸 J의 시선


나는 [와이키키 브라더스]를 꽤 어린 나이에 처음 보았다. 정확한 시기는 기억나지 않지만 아무리 많이 잡아도 11살 언저리였을 것이다. [와라나고를 부탁해], 그러니까 [와이키키 브라더스] • [라이방] • [나비] • [고양이를 부탁해]를 선두로 한국 독립 영화계가 들썩였다는 그 당시, 영화광인 엄마도 함께 들썩들썩했던 기억이 있다. 아이에겐 내용이 어려울 것이라거나, ‘어른’을 위한 소재라 ‘아이’에게는 적합한 작품이 아니라는 등의 제한을 어린 딸에게 적용한 적이 별로 없는 문화적 자유주의자 엄마 덕분에 [와이키키 브라더스]를 그때 함께 관람하게 되었다.


그 첫 관람에서의 감상을 자세히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어린 나이에도 뭔가 ‘좋은’ 영화임을 감지했던 막연한 직감과는 별개로 이 영화를 그리 ‘좋아’하지 않았던 것만은 확실히 기억난다. 나와 달리 [와이키키]에 대한 애정이 남다른 엄마에겐 내색하지 않았던지라 그분께선 처음 듣는 소리겠지만(엄마 미안해요) 그 이후 영화를 여러 번 다시 보았음에도 내 감상은 처음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었다. 굳이 표현하자면 그 예술적 가치는 충분히 공감하나 일부러 찾아보게 되진 않는 작품이랄까? 그래서 [와이키키]에 나오는 대사 한 부분(“선생님, ‘너훈아’가 아닌데요?” “어? 아니야?”)이 우리만의 농담이 되었을 정도로 이 영화가 엄마를 통해 내 삶에 큰 영향력을 가지게 되었음에도 엄마처럼 이 영화를 ‘좋아’하기는 어려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의 애정 어린 로비 활동으로 “영상이몽”이 다룰 첫 영화가 [와이키키 브라더스]로 결정된 이후, 이 영화를 다시 보는 것에 대한 기대감은 결코 작지 않았다. 어렸을 때 봤던 영화를 최근 다시 접했을 때, 그동안 내가 변한 것만큼 나의 감상도, 영화를 이해하는 방식과 깊이도 변화한다는 사실을 종종 깨달았기 때문이다.





자세한 이야기에 앞서 간단하게 영화의 줄거리를 요약하자면, [와이키키 브라더스]는 동일한 이름의 밴드로 활동하는 사람들, 더 정확히는 그 밴드에 남은 유일한 ‘원년 멤버’이자 ‘리더’라 할 수 있는 “성우”의 이야기다. 밴드 멤버들과 함께 ‘업소’들, 다시 말해 나이트클럽 밤무대와 지방 행사 등등을 전전하던 성우가 고교 졸업 후 단 한 번도 찾지 않았던 고향인 수안보 ‘와이키키 호텔’의 전속 밴드로 귀향하며 시작되는 이야기는, 고향에서 그가 고교 시절 함께 밴드를 했던 – 그리고 지금은 약사, 구청 직원, 환경 운동가 등 다양한 직업을 가진 - 친구들, 첫사랑 “인희”, 지긋이 나이가 들고 알코올 중독이 되어 버린 예전 음악학원 원장 등 자신의 학창 시절 중 인물들과 재회하면서 무르익는다. 이와 거의 동시에, 안 그래도 삐걱이던 밴드 와이키키 브라더스는 드러머 “강수”와 건반 “정석” 간의 불화로 거의 해체되며, 성우의 음악 활동은 더욱 위태로운 상황에 놓인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이 글을 준비하며 다시 본 [와이키키 브라더스]는 내게 예전과 전혀 다른 영화로 느껴졌다. 아마도 10대와 20대 초반에 이 영화를 보며 내가 느꼈던 ‘불편함’의 원인을 발견하게 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지금보다 더 어렸을 때의 나는 영화 전체에 퍼져 있는 어떤 패배 감성, 그러니까 “내가(혹은 우리가) 어쩌다 이렇게 됐지”라고 여러 인물들이 반복하는 대사로 대표될 수 있는 필연성과 불가피성이 두려웠던 듯하다. 현실을 무시하고 꿈만 쫓으면 ‘저 꼴’이 된다는 교훈(?)을 성우가 제시하고 있는 듯하지만, 그렇다고 현실과 타협해 살고 있는 성우의 친구들도 그닥 행복해 보이지는 않는다. 영화 곳곳에서 성우는 친구들과 순수하게 밴드 활동을 하며 음악을 사랑했던 학창 시절을 회상하는데, 그가 추억하는 어린 시절이 맑고 아름다울수록 영화 속의 현실은 더욱 잔혹해져만 간다. 아직 아무것도 이룬 것이 없던 학창 시절의 성우와 친구들은 동네 나이트클럽에서 공연하는 밴드 선배 형들에게도 열등감을 느끼지만, 동시에 “우리는 저런 ‘삼류 밴드’가 아닌 Rolling Stones나 Queen을 목표로 삼겠다”는 패기를 부릴 수도 있었다. 그랬던 그들이 나이가 들어 결국 그 ‘삼류 밴드’가 되어 있는 모습은, 아직은 ‘무엇이든 될 수 있는’ 나이였던 나에게 지금의 푸르른 꿈들과 가능성, 잠재력들도 자칫하면 저렇게 빛바랜 모양이 되리라는 위협처럼 느껴졌던 모양이다. “그 무엇도 될 수 있다”는 말은 동시에 “그 어떤 것도 될 수 없다”는 가능성도 포함한다는 생각에 선득한 마음이 들었던 건 아니었을지.





지금 생각해 보면 ‘꿈’, 다시 말해 어떤 직업 혹은 진로로 정의되는 미래와 인생의 방향이 가장 중요한 시기였으니 어쩌면 당연한 감상이었을지 모르겠다. 어찌 되었건 나는 여태까지 이 영화를 ‘꿈’을 포기한 자와 포기하지 않은 자, 그러니까 음악을 포기한 친구들과 밴드 멤버들, 그리고 악착같이 그것을 붙잡고 있는 성우의 대조로만 이해했었다. 그렇다보니 자연스럽게 이 영화를 꿈을 버리지 못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 혹은 ‘철이 들지 않은’ 사람의 이야기로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다시 본 성우는 사실 ‘변하고 싶지 않아 하는’ 사람이었다. 꿈을 포기하지 못했다는 말과 비슷한 맥락이지만 본질적으로는 같지 않다는 게 내 생각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밴드 멤버들이 떠나는 동안 성우가 혼자 자리를 지키는 이유는 소위 ‘밤무대를 뛰면서’라도 음악을 하고 싶은 그 꿈을 놓지 못해서라기보다, 어린 시절 친구들과 축제에서 또 해변에서 기타를 치며 좋아하는 노래를 불렀던 ‘그때’와 ‘그때의 자신’에서 ‘변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란 생각이 든다. 고향에 내려온 성우에게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이자 전 밴드 멤버들은 “넌 변한 게 없네”, “여전하네”와 같은 말을 하는데, 칭찬이든 아니든 어릴 적 ‘꿈’을 아직도 놓지 못해 변변한 직업도 없이 업소에서 공연을 하며 사는 성우이다 보니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의미심장하게 들릴 수 있는 말이다. 성우도 오랜만에 만난 첫사랑 인희에게 “넌 옛날이나 지금이나 대단하네”, “노래 실력 여전하네”와 같은 말들을 건넨다.


그런데 이 ‘변하지 않으’려는, 혹은 변화를 두려워하는 성우의 행보는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점점 더 난관에 부딪히게 된다. 음악 선생님을 좋아하느라 학생 성우에겐 별 관심이 없었던 예전과 달리, 지금의 인희는 성우와의 관계에 꽤 적극적으로 나오지만 그에 반해 성우에게서는 별다른 움직임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사별한 인희의 전 남편 얘기를 듣던 도중, 그녀가 학창 시절에 좋아했던 음악 선생님과 결혼했으리라 생각했었다고 말한다든지, 노래방에서 혼자 노래하고 있는 인희를 발견하고 들어와 그녀의 노래 실력이 여전하다며 칭찬하는 등의 모습은, 어렸을 적 좋아했던 그 소녀가 삶에 지쳐 억척스러워진 어른이 되고 나서도 아직 ‘변하지 않은’ 부분을 찾아내려는 노력으로 읽혀진다. 고교 시절을 회상하며 “그때가 내 인생의 하이라이트였는데”라고(듣는 내가 다 애잔해지는) 한탄 겸 농담을 던지는 인희가 과거를 ‘과거’로 정리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성우는 여전히 그 분리를 어려워하는 듯한 모습이다. 심지어 곁에 있던 밴드 멤버들이 모두 떠나고 혼자 있는 그를 찾아와 이것저것 챙겨주는 인희에게 “너 예전과 많이 바뀐 것 같다”라며 건네는 그의 말은 어쩌면 비난 같기도, 혹은 투정 같기도 하다. “원래 여자는 아이 낳으면 다 바뀌어” 하면서 뭔가 멋쩍게 답하는 인희도 그 비난을 어렴풋이나마 느꼈던 것이었을지 모른다.





그렇기에 ‘변하지 않으려는’ 성우는 더욱 외로워 보인다. 모두가 좋게든, 나쁘게든 변해 가고 있고, 자신을 둘러싼 환경과 세상도 변해가고 있는데 혼자만 변하지 않으려고 애를 쓰는 노력은 얼마나 힘겨울까? 세상이 그 무정한 이치대로 흘러가는 가운데, 그처럼 거대하고 막강한 흐름을 혼자 붙잡아 두려는 사람의 외로움과 고독함은 그저 음악에 대한 ‘꿈’을 함께했던 주변인들이 하나 둘씩 곁을 떠나는 것에 대한 슬픔이나 외로움과는 궤를 달리하지 않을까 싶다.


그럼에도 처음에 말했듯 영화는 변하지 않으려는 그의 무의미한 노력을 따스하게 감싸 준다. 사실 이런 영화에서 해피엔딩, 새드엔딩을 따지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지만, 영화는 변한 게 없으면서도 결국 변화함으로 성우에게, 또 모두에게 그럭저럭 해피엔딩을, 해결의 실마리를 가져다 준다. 물론 크게 변한 것은 없다. 밴드를 떠난 사람들이 마음을 바꿔 돌아오지도 않았고, 정석은 저러다가 언제 또 난봉꾼 끼가 도질지 모르며, 인희와 성우의 관계도 영 애매하니까. 다만 변화의 조짐은 있다. 인희가 가수로 합류한, 어쩌면 별 것 없는 변화이지만 그것은 변하지 않으려던 성우에게 이 영화가, 그리고 감독의 따스한 시선이 건넨 아주 다정하고 작은 전환점일지 모른다. 웃으면서 연주하는 정석과 성우, 또 두 사람과 번갈아 가며 시선을 맞추는 인희, 뭔가 은은한 행복을 얼굴에 띄우고 있는 세 인물이 “사랑 밖엔 난 몰라”를 연주하는 동안 왠지 숨통이 트이는 기분이었다.





나는 우리 믿음의 성장이 더 많은 예배에 참석하고, 더 많은 설교 말씀을 듣고, ‘교회’ 안에서 보내는 시간을 차곡차곡 쌓는 것만으로 이루어진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아주 개인적인 경험이지만 하나님과 첫사랑에 빠졌던 시절, 사랑에 '눈이 멀었던’ 때의 나의 ‘믿음’은 아직 설익고 오만하기만 해서 남을 정죄하고 세상을 선과 악이라는 이분법으로만 나누려는 수준이었기에, ‘교회’ 혹은 ‘신앙’의 테두리 안에만 계속 갇혀 있었다면 그런 태도가 지금도 크게 변하지 않았을 것이라 추측한다. 내 믿음의 성장은 단순한 양적 증가(‘신앙적’ 지식이나 시간, 경험의 축적)가 아닌 어떤 본질적인 ‘변화’로 표현해야 할 것 같은데, 어쩌면 역설적으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죄 많은 ‘세상’에 대한 이해가 깊어질수록, 그리고 죄를 짓는(지을 수 밖에 없는) 인간이 불쌍하고 안쓰러우며 공감될수록 – 다시 말해 세상을 보는 나의 눈이 ‘변할’수록 – 주님의 본질에, 그분의 헤아릴 수 없는 사랑에 더 가까이 가닿는 것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감상을 통해 한때 한심하게만, 혹은 불쌍하게만 보였던 성우와 주변 인물들, 또 그들의 삶을 보는 나의 눈이 변했음을 느끼게 된 것에 감사했다. 저마다의 외로움을 안고 사는 그들이 이제는 애틋하고 사랑스럽기만 하다. 설령 감독의 의도는 그것이 아니었을지라도 등장 인물들의 가장 냉혹한 현실을 숨김없이, 가차 없이 파고들면서 동시에 그런 밑바닥을 가장 따스하고 다정하게 감싸는 이 영화의 시선이, 결국은 약하고 외롭고 두려움이 많아 그저 허둥댈 수밖에 없는 우리들을 보시는 주님의 눈빛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기도 하다. 어둡기만 한 듯한, 영원히 바뀌지 않을 것만 같은 현실 속에서도 어떻게든 당신의 위로와 사랑의 한 조각이 우리에게 이르게 함으로써 변화와 희망을 기약하심, 더 이상 외롭지 않은 어떤 해피엔딩에 기어코 다다르게 하심을 모두 포함해서.


마지막 장면에 흐르는 노래의 가사처럼 그들 모두가 “지나간 세월을 모두 잊어 버리”고 “내일은 당신 때문에 행복”하리란 희망을 가져 본다. 무엇보다 오랫동안 변하지 않았던 이 영화를 대하는 내 마음이 ‘변화’된 것이 정말 기쁘다. 앞으로는 엄마처럼 이 ‘좋은’ 영화를 진심으로 ‘좋아'할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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