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 J의 시선
여담이지만 로스쿨 1학년 때 동기들이 이제는 영화 [Legally Blonde(금발이 너무해)]를 봐도 예전처럼 맘 편히 즐길 수가 없다고 푸념하는 것을 듣고 - 법을 공부하기 전엔 몰랐던 '설정적 오류'들이 이제는 다 보인다는 뜻에서 - 재미있는 말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 아닌 게 아니라 변호사라는 직업을 갖고 보니 예전과 같은 시선으로 즐길 수 없는 영화들이 여럿 있는데, 이번에 오랜만에 다시 감상한 영화 [Erin Brockovich(에린 브로코비치)] 역시 그중의 하나라고 해야 할 작품이다.
무려 22년(!!) 전 개봉한 이 영화는, 법률 교육이나 훈련을 전혀 받지 못했음에도 거대 기업을 상대로 그들의 부정을 밝혀 내며 어마어마한 승리를 거두었던 "에린 브로코비치"라는 인물에 대한, 실화를 바탕으로 각색된 이야기를 다룬다. 영화 속 주인공 "에린(줄리아 로버츠 분)"은 두 번의 이혼 뒤 세 아이를 혼자 키우는 - 심지어 그중 하나는 아주 어린 아기이다 - 싱글맘으로, 사무실 직원에겐 적합치 않아 보이는 화려한 화장과 옷차림 때문에 번번이 구직에 실패하는 중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교통사고까지 당하게 된 그녀는 보상금이라도 받으려는 생각에 변호사를 고용해 사고를 낸 운전자를 고소하지만, 법정에서 상대편 변호사의 심문에 답하던 중 욱하는 성질(더 정확히 말하면 ‘성깔’)을 참지 못해 결국 패소하고 만다. 더욱더 절박해진 그녀는 자신이 고용했던 변호사 "에드(알버트 피니 분)"의 작은 로펌으로 찾아가 거의 우격다짐식으로 취직하게 된다.
에드의 로펌에서도 '과한' 화장과 옷차림으로 동료 직원들 사이를 겉돌던 에린에게 부동산 관련 사건 하나가 맡겨진다. 이 사건은 캘리포니아의 시골 마을 Hinkley라는 곳에 살며 "Pacific Gas and Electric Company(PG&E)"라는 대규모 전력 회사로부터 자신들 소유의 땅에 대한 구매를 제안 받은 가족의 매각 절차를 돕는 것으로, 그냥 간단한 내용일 뿐 아니라 pro bono(무료 법률 서비스 제공)이기까지 하다. 그닥 중요하지 않은 사건으로 넘어갈 뻔한 일이었지만, 사건 관련 서류 중 가족의 진료 기록에서 발견되는 의문스런 부분을 집요하게 조사하던 에린의 추적으로 PG&E가 운영하는 공장에서 나온 화학물질이 마을의 지하수를 심각하게 오염시켰다는 증거가 발견된다.
이후 Hinkley 주민들을 직접 찾아가 만난 에린은 자신의 상사인 변호사 에드와 함께 오염으로 인한 피해의 범위를 파악하는 동시에 PG&E의 부정에 관한 ‘수사’를 계속해 나간다. 십수 개월에 걸친 꾸준한 노력을 통해 마을 사람들의 신뢰를 얻게 된 에린 덕분에 에드는 PG&E를 상대로 634명의 원고가 포함된 집단 소송을 제기하지만, 이렇게 거대한 사건을 혼자 맡기엔 어렵다는 생각에 에린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대형 로펌을 공동 변호인으로 불러들인다.
에드나 에린과는 실력도, 경험도, 자본도 비교할 수 없을 수준인 대형 로펌의 변호사들은 특히 에린에 대한 편견으로 그녀를 무시하지만, 에린은 사건에 대한 자신의 이해도와 열정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는 것을 계속해서 증명해 나간다. 한 예로 원고측 변호인들은 오랜 시간이 걸릴 수 있는 재판 대신 판사가 주도하는 조정(“binding arbitration” – 배심원이 있는 전통적 재판과 달리 판사가 분쟁을 조정하는 장치로, 재판 절차보다 빠른 시일 안에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 동시에 판사의 궁극적 결정에 강제력이 있어 항소를 할 수 없다는 단점도 존재한다)을 추진하려 하는데, 재판을 원했던 주민들이 이 계획을 꺼리자 에린이 직접 600명 넘는 원고를 일일이 만나 그들의 동의를 받아 오는 일까지 자임한다. 더욱이 에린은 PG&E의 전 직원이었던 내부 고발자로부터 PG&E가 고의로 오염된 폐수를 방출했다는 증거를 얻어 내고, 결국은 조정을 맡은 판사가 PG&E에게 3억 3천3백만 달러(약 4700억원)를 합의금으로 내도록 지시하는 쾌거를 이룬다. 영화의 말미에 피해자 가족을 찾은 에린은 그 소식을 전하면서 함께 기뻐하고, 전보다 훨씬 좋은 사무실로 이전한 에드의 로펌에서 능숙하게 일한다. 영화의 초반부엔 통장에 16달러 밖에 없었던 그녀가 이제는 에드로부터 2백만 달러의 보너스를 받으며 영화는 막을 내린다.
[에린 브로코비치]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유명 영화 중에서도 특히 유명한 축에 속한다고 할 수 있는데, 개봉 후 20여년의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 이 영화의 문화적 영향력이 - 적어도 북미권에서는 - 유지되고 있는 듯하기 때문이다. 장난스러운 표현이기는 하지만 최근에도 영화나 드라마에서 무언가를 끈질기게 조사하거나 대변하는 인물에게 ‘네가 무슨 Erin Brockovich냐”라며 농담조로 말하는 대사를 들은 적이 있을 뿐더러, 2021년에는 에린 브로코비치의 삶을 바탕으로 한 “Rebel(반대자, 선동자)”이라는 TV 드라마가 방영되기도 했다.
이번에 다시 영화를 감상하면서 에린 브로코비치의 이야기가 사람들에게 ‘잘 먹힐’ 수밖에 없는 이유를 확인할 수 있었는데, 말하자면 그녀의 일대기는 할리우드가(그리고 대부분의 관객들이) 열광할 수밖에 없는 요소들로 가득하다는 것이다. 우선은 한때 미인 대회의 우승자였을 정도로 매력적이었던 주인공이 두 번의 결혼 생활에서 ‘실패’를 겪고(이혼이 무조건 ‘실패’라는 게 아니라 영화적 서사에서 그렇게 다뤄질 수 있다는 뜻이다) 궁지에 몰려 있다가, 다시 한 번 엄청난 ‘승리’를 거두며 반전을 이룬다는 플롯이 있다. 또한 골리앗 같은 거대 기업을 상대로 싸울 수 있는 에린의 무기라고는 그녀의 ‘열정’과 ‘노력’, ‘진심’ 뿐이라는 점도 그 요소 중 하나에 포함된다. 법률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노출이 심한 옷을 즐겨 입는 에린이 어린 자녀를 혼자 키우는 싱글맘이라는 이유로 같은 편에서 일하는 대형 로펌 변호사들조차 그녀를 무시한다는 현실 또한 존재한다. 그렇다 보니 이 모든 역경과 편견 속에서 다윗의 위치인 에린이 끈질긴 노력과 피해자들을 향한 진실된 배려를 통해 결국 승리하게 되었을 때 관객이 느낄 카타르시스는 엄청날 수밖에 없다. 에린 브로코비치와 변호사 에드 매스리(Edward L. Masry)가 주도한 소송을 통해 결정된 3억 3천 3백만 달러의(333 million) 합의금이 당시 집단 소송 합의금 사상 최고의 금액이었다는 사실 역시 특별한 ‘업적’으로 불릴 만하다. 이 영화를 통해 에린 브로코비치가 거의 미국의 '국민 영웅(folk hero)'처럼 된 것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결과이다.
그러나 이미 말했듯 변호사라는 직업인으로 다시 본 이 영화는 예전과 다른 감상을 불러일으켰는데, 어렸을 때 영화를 보고 느꼈던 감정들을 떠올리며 비교하는 과정이 꽤 재미있었다. 조금 얄팍한 부분부터 시작하자면 어렸을 때는 에린의 겉모습만으로 그녀의 지성과 열정을 몰라보는 주변인들에게 화가 났던 반면, 이번에는 에린 주변의 변호사들에 더 깊이 공감하는 내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물론 편견에 사로잡힌 그들의 모습은 여전히 별로이며, 에린의 화려한 외양을 불편해 하는 주변인들로 대변되는, 전문직 여성들을 향한 엄격한 잣대와 검열(동등하고 존중 받아 마땅한 '프로페셔널'로 인정받기 위해 여성들이 지켜야 하는 태도, 말투, 옷차림, 사생활 등등에서)은 전보다 더 현실적이고 씁쓸하게 다가온다.
그와 동시에 영화를 다시 보며 나는 예전처럼 이 사건에 대한 에린의 열정과 진심에 탄복하기보다 안타깝다는 마음을 더 크게 갖는 스스로도 돌아보게 되었다. 에린은 PG&E가 잘못을 시인하고 벌을 받도록 만들기 위해, 화학물질로 오염된 마을에서 암을 포함한 여러 질병으로 고통 받고 있는 피해자들이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돕기 위해 – 다시 말해 ‘정의’를 이루기 위해 – 자신의 아이들마저 뒷전으로 한 채 모든 시간과 노력, 애정을 일에 쏟아 붓는다. 그를 통해 이뤄 낸 결과는 분명 위대하지만 ‘일’이 곧 ‘인생’이 되어 버린 그녀의 모습은 많은 생각을 불러일으킨다. 일을 ‘사적(personal)'으로 받아들이지 말라고 충고하는 변호사 에드에게 자신의 시간을 통째로 바친 이 일이 ‘사적’인 것이 아니면 대체 무엇이냐며 따지는 에린의 반문이나, 유방암에 걸린 한 피해자가 에린에게 괴로운 심정을 토로하면서 PG&E가 반드시 대가를 치를 것임을 ‘약속’해 달라고 부탁하는 장면 역시 마찬가지이다.
나는 이런 억울한 상황에 놓인 피해자들을 ‘돕고’ 싶어 변호사가 되기를 꿈꿨지만, 법을 공부하고 법적 구조를 보다 자세히 이해할수록 법의 ‘한계’를 더욱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다. 영화에서도 설명되었듯 ‘법’을 통해, 그러니까 재판과 판결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는 상당히 긴 시간과 노력을 필요로 한다. 영화 속에서 에린이 그녀를 무시하는 변호사에게 자신이 ‘18개월 동안이나’ 이 사건을 맡아 왔다고 화를 내는 장면에서 내게 가장 먼저 들었던 생각은 "그것밖에 안 됐어?"였을 정도로 말이다.
또한 옳고 그름, 잘못됨이 비교적 쉽게, 혹은 직관적으로 확정될 수 있는 보통의 상식과 달리 - PG&E의 공장에서 오염된 폐수가 나왔고, 그로 인해 근처 마을의 주민들이 여러 질병에 시달리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접한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PG&E가 잘못을 저질렀다는 판단은 꽤 ‘상식적’인, 혹은 ‘당연한’ 결론이지만 - 법적인 판단은 명확한 인과 관계와 실제적 증거를 필요로 한다. PG&E의 행동으로 마을이 오염되었고 주민들이 피해를 입었다는 결론이 아무리 ‘상식적’이라 할지라도, 해당 기업이 폐수에 오염 물질이 포함되었음을 '알았고', 그로 인해 지역 주민들이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면서도 '고의로' 폐수를 방출했다는 충분한 증거 없이는 법적 책임을 묻기 어려울 수 있다는 말이다.
이런 맥락에서 나는 자신의 인생 자체를 이 사건에 '갈아 넣는', 또 피해자들의 기대와 신뢰를 오롯이 감당하는 에린의 모습이(마냥 멋있게만 보였던 예전과 달리) 안쓰럽게까지 느껴졌다. 영화에서는 – 또 다행히 실제로도 – 에린의 노력은 비교적 짧은 시간에 좋은 결과를 낳았지만, 대부분의 경우에서 이런 식의 승리를 기대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사실 에린의 일화가 할리우드에서 영화로 제작되었다는 것 자체가 그녀의 경험들이 얼마나 이례적인지를 반증한다고도 할 수 있겠다. ‘승리’가, 혹은 ‘옳은’ 결과가 불확실한 상황에서 자신의 삶을 이렇게 쏟아붓는 것이 얼마나 쉽지 않은 선택일까? 피해에 대한 인정이나 ‘보상’이 불투명한 상황에서 피해자들에게 정의로운 결말을 ‘약속’하는 것은, 그들의 문제를 해결해 주리라는 신뢰를 받는 일은 또 얼마나 무거운 부담일까?
에린 브로코비치가 참여했던 소송은 성공했을지언정, Hinkley 마을의 주민들은 여전히 오염된 물로 고통 받고 있다는 사실도, 그리고 2019년 개봉된 영화 “Dark Waters(다크 워터스)”에서 폭로되었듯 - 독성 폐기물(PFOA)의 유출로 인류의 99%를 중독에 빠뜨린 미국 화학기업 "듀폰(Dupont)"의 실화를 다룬 - 이익만 쫓느라 환경을 오염시키며 걷잡을 수 없는 인명 피해를 일으킨 기업은 PG&E 하나뿐이 아니란 사실도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 세상에는 얼마나 많은, 똑같이 노력했고 진심을 다했으나 ‘성공하지 못한’ 에린 브로코비치들이 있을까? 세상의 속성에 대해 알면 알수록 ‘옳은’ 삶을 산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깨닫게 된다. 눈먼 자본주의가 낳은 탐욕과 이기심, 제도적 불의와 편향된 특례, 구조화된 편견과 차별이라는 무시무시한 골리앗 앞에서 ‘정의’를 추구하고 ‘상식적인’ 결과를 기대하는 개개인이 얼마나 작고 힘없는 존재로 전락하는지 말이다.
그럼에도, 자칭 '비관적 낙관주의자'인 나는, 결국은 골리앗을 무너뜨리는 다윗이 등장하리란 믿음에서 위로를 얻는다. 골리앗도 오랜 시간 수 없는 이스라엘인들에게 피해를 입히며 기세등등했겠지만, 하나님이 허락하신 시간을 넘기고 나서는 다윗에게 무릎을 꿇었으니 말이다. 아무도 다윗 같이 연약한 자가 골리앗을 쓰러뜨릴 것이라 기대하지 않았고, 그 누구도 에린처럼 '배경' 없는 인물이 PG&E라는 대기업을 상대로 이길 수 있으리라 예상하지 못했던 것처럼, ‘옳게 좀’ 살아 보고자 아등바등하는 우리들 중 누가 어떤 방식으로 쓰임을 받을지 알 수 없는 일일 테다. 거대하고 견고해 보이는 이 세상의 불의들이 언젠가 예기치 않게, 조금은 어이없이 무너지는 모습을 보게 될 날을 기대한다.
엄마 C의 시선
“에린 브로코비치(Erin Brockovich)”는 2000년 개봉되었던 미국 영화의 제목이지만, 동시에 대기업인 “PG&E”와 1992-93년 벌인 법적 분쟁에서 승소하며 피해자들이 3억 3300만 달러의 배상금을 받을 수 있도록 도운 실재 인물의 이름이기도 합니다. 1960년 생인 그녀는 1981년 미인 대회에서 입상한 경력에 이어 두 번의 이혼이라는 특이한 ‘경력’까지 보유한 세 아이의 엄마로, 생계를 위해 ‘막무가내로’ 변호사 사무실에 입사해 일하던 중 한 거대 기업의 공장이 끼친 폐해가 이웃 주민들의 건강에 심각한 위협을 불러 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이를 법적 중재안으로 연결시켜 미국 역사상(1993년 기준) 최고 금액을 손해배상금으로 받아 낸 기록적 사건의 주인공입니다.
이 영화를 연출한 스티븐 소더버그(Steven Soderbergh)는 26세에 만든 데뷔작(“Sex, Lies and Videotapes”)으로 칸느 영화제의 그랑프리(황금종려상)를 수상하며 일찍이 재능을 인정 받은 감독으로, 대중적으로는 “Ocean’s Series(Eleven, Twelve, Thirteen)”의 연출자로 가장 유명하겠지만 저 개인적으론 “트래픽(Traffic)”이라는 그의 작품을 훨씬 좋아합니다 - 같은 해 만든 자신의 영화 “에린 브로코비치”와 2001년 아카데미 감독상을 놓고 ‘경합’을 벌이다 본인의 작품을 본인이 ‘제치고’ 수상의 영예를 누리게 해 준 영화이기도 하지요(이는 아카데미 역사상 유래 없는 일이라고 합니다). 주인공 “에린 브로코비치”를 연기한 줄리아 로버츠(Julia Roberts)는 별도의 설명이 필요 없을 유명 배우로서, 여러 로맨틱 코미디에서 우아하고 지적인 자신의 이미지에 부합하는 역할들을 맡았지만, 결정적 유명세를 안겨 준 “귀여운 여인(Pretty Woman)”에서의 매춘부 역할에 이어 ‘교양 없는’ 옷차림과 말투를 일삼는 “에린” 역의 이 영화에서도 본모습에 어울리지 않을 듯한 역할을 훌륭히 소화해 내 결국 2001년 아카데미 여우 주연상을 획득하게 되었습니다.
주인공인 실재 인물 “에린 브로코비치”는 두 번의 이혼 후 아이 셋을 혼자 키우고 있는 싱글맘으로, 일자리를 구하려고 이곳저곳을 찾아다니지만 학력과 경력의 부족에 더한 '부적절한' 외양 때문에 마땅한 직장을 찾지 못하는데, 인터뷰에서 다시 고배를 마시고 돌아가던 길에 교차로에서 신호 위반 차량에 부딪히는 사고를 당합니다. 피해 보상을 요구하고자 소송을 제기했지만 역시 ‘교양 없는’ 대응으로 패소한 후 자신의 소송을 맡았던 변호사 “에드 메스리(Ed Masrey)”에게 막무가내로 떼를 써 그의 회사에서 일을 시작하게 되지요. 연금이나 보험 혜택 등이 없는 임시직 수준의 위치인데다 사무직에 어울리지 않는 복장과 말투로 직장 동료들로부터도 따돌림을 당하는 처지임에도, 크게 괘념치 않는 그녀는 성실하게 일을 배워 갑니다.
그런 에린이 1992년 어느 날 정리하던 서류 더미 속에서 이상한 의료 기록을 발견합니다. 사실 그녀의 '고용주'인 에드가 법률 지식이 전무한 에린에게 그 서류를 맡긴 것은 그 일이 지역 주민의 부동산 거래 서류 작성을 도와 주는 - 사회봉사 차원에서 - 프로보노(pro bono) 사건, 즉 ‘돈이 되지 않는 일’이기 때문이었지만, 부동산 서류에 병원 진료 기록과 청구서가 포함되어 있는 점이 이해되지 않아 나름대로 열심히 서류를 검토하던 에린이 뜻밖에도 “PG&E(퍼시픽 가스 앤 일렉트릭: Pacific Gas & Electric)”사와 관련된 심상치 않은 정보를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서류를 면밀히 분석하는 가운데 대기업인 PG&E 공장에서 주변 환경에 심각한 위해가 될 수 있는 크롬 성분을 상수도에 유출하고도 조직적으로 이를 숨기려 했다는, 다시 말해 “6가 크롬(hexavalent chromium)”이라는 산업용 독성 물질을 배출하고도 지역 주민들에게는 그것이 ‘유익한’ 크롬이라는 거짓을 일삼았단 사실을 알게 된 에린은, 주민들의 이견과 주위의 반대, 세 아이를 돌봐 주는 이웃이자 자신을 사랑하는 조지(George)와의 갈등 등 여러 난관을 돌파하고 결국 법원 조정에서 승리함으로써 손배 사상 최고 금액인 총 3억 3300만달러의 배상금을 받아 냅니다.
이 사건의 실제 배경인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힝클리(Hinkley)는 사막(Mojave Desert) 한 가운데에 위치한 마을로, 지하수를 파서 식수로 사용하던 지역이라고 합니다. 캘리포니아 일대에 전기와 천연가스를 공급하는 에너지 회사 PG&E가 1950년대 힝클리 인근에 가스 공급을 위한 공장을 설립했는데, 냉각수 탑의 녹 제거용으로 사용한 후 땅에 버린 크롬이 지하수를 오염시키면서 힝클리 주민들에게 암을 포함한 각종 질병을 유발하게 했던 것이지요. 이때 벌어진 미국 최대의 집단 소송 사건을 그린 영화인 만큼 내용 중 어려운 법률 용어나 지식들이 등장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감독은 이 영화를 법적 공방을 다루는 '법정 영화'로보다 “에린 브로코비치”라는 이름의 한 여성이 – 전문적 법률 지식은 물론 내세울 만한 학력이나 경력도 갖추지 못한 – 뜻하지 않은 불행에 직면해 당황하는 마을 주민들과 어떻게 소통하고 공감하는지에 더욱 초점을 맞춰 연출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갑작스런 건강 이상과 치명적 화학물질의 연관성을 부인하고 싶어 하는 사람에서부터, 건강이나 목숨이 돈으로 환산되는 것을 탐탁지 않아 하는 이들, 확률상 승산이 없어 보이는 법적 분쟁에 기대를 걸었다가 실망할까 두려워하는 사람까지, 각자의 드러내지 않은 진심을 헤아리고 보듬는 그녀의 능력이 600명 넘는 관련자들을 한 마음으로 묶어 결국 손해배상 판결에서의 승리를 이뤄 내는 원동력이 되었다는 점에서 말이지요.
최근 들었던 설교에서의, 통계상으로 쉽게 언급되는 ‘수치’를 두고 “각 숫자(number) 뒤에는 각각의 이름(name)이 있고, 그 이름 뒤에는 각자의 이야기(story)가 있다”라고 한 표현에 깊이 공감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사건이 진행되면서 원고의 숫자가 무려 634명에 이르자 힘에 부친 에드가 협업 상대로 찾은 파트너(대형 사건의 경험이 많은) 측에서 일류대 출신의 여성 변호사를 데려오지만, 법률 지식이나 실무 경험에서 에린은 비교도 되지 않을 전문가인 그녀에게 주민들이 오히려 마음을 닫고 대화하지 않으려 하는 모습이나, “감상적인 내용(story)은 빼고 facts와 dates, time(수치/숫자)만 이야기하라”며 주민들을 다그치다 돌아와선 각 세대의 전화번호 같은 기본적 정보도 서류에 없다고 자신에게 면박을 주는 그녀를 향해 주민들의 전화번호는 물론 그들의 구체적 신상 정보까지 끝없이 나열하는 에린의 모습은, 극적 대비를 통해 영화의 핵심 메시지를 관객에게 전달합니다.
흔히 “계란으로 바위 치기”, 혹은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 등으로 불리는 승률 낮은 게임에서, 그렇기에 대다수의 전문 변호사와 법률 회사들이 연루되기를 거절하던 위험 부담이 큰 법적 분쟁에서, 주위의 만류와 회유, 협박 등을 물리치고 에린이 끝까지 소신을 굽히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을 물론 법률적 지식과 경험의 부족 때문으로 이해할 수도 있겠지만 –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세상적' 표현처럼 – 재판에서 지는 일이 두려워 가담하기를 꺼리는 주민을 설득하며 그녀가 했던 “지금 중요한 것은 이기느냐 지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그들이 거짓말을 했고 그 거짓말에 속았음을 알기에 나서서 싸워야 한단 사실”이라는 말을 통해, 그녀의 원동력은 '무지'를 바탕으로 한 무모한 추진력이 아니라 “옳은 일에 대한 믿음”이었음을 깨닫게 됩니다.
일과 자신 중 하나를 택하라는 '식상한 대사’를 읊조리는 조지에게 에린이 건넸던 “세상에 태어난 이후 처음으로 누군가로부터 존경 받는 일을 하게 된 만큼 절대 이 일을 포기할 수 없다”는 대답은, 상대방의 존경이, 그리고 그 존경에 힘입어 다시 상대에게 전해지는 진심이, 어떻게 세상을 변화시키는 일에 기여할 수 있는지 구체적으로 알려 줍니다. 우리의 겉모습과 관계없이 - 심지어 그 '실체'와도 관계없이 - 먼저 귀하다, 의롭다 해 주신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서 주고 받는 존경과 사랑은 물론이거니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이들 가운데 함께 나누는 사랑과 존중, 믿음과 신의가 그분이 원하시는 세상을 만드는 일에 어떻게 한걸음 더 다가갈 수 있게 하는지, 하나의 실마리를 제공하는 영화가 아닐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