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C의 시선
2000년도 개봉작인 “그린치(How the Grinch Stole Christmas)”는 전 세계의 어린이들에게 널리 알려진 만화가이자 동화 작가 닥터 수스(Dr. Theophrastus Seuss)가 1957년 발표했던 동명의 크리스마스 동화를 배우이자 감독인 론 하워드(Ronald W. Howard)가 영화로 연출해 낸 판타지 작품입니다. 원작 동화 자체가 워낙 유명하다 보니 개봉 당시는 물론 25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지금까지도 많은 이들이 크리스마스만 되면 머리에 떠올리는 대표적 영화 중 하나로 자리 잡았지요. 1966년 제작된 TV 애니메이션에 이어 두 번째로 발표된 실사 영화인 이 작품 이후 다시 18년이 지난 시점(2018년 11월)에도 “일루미네이션 엔터테인먼트(Illumination Entertainment)”라는 영화사가 동명의 영화를 애니메이션으로 리메이크해 개봉했을 만큼 ‘브랜드’로 정착된 작품이기도 합니다.
이 영화를 생각하며 많은 이들이 떠올릴 이미지는 그린치가 입꼬리를 양옆으로 크게 올리며 ‘음흉하게’ 미소짓는 - “나홀로 집에(Home Alone)” 2편에서도 ‘활용’했었던 - 표정일 듯한데, 주인공 “그린치(Grinch)” 역할을 맡은 배우 짐 캐리(Jim Carrey)의 연기가 영화의 완성도에 가장 크게 기여했다고도 평가될 수 있을 만큼 인정 받는 그의 ‘공헌’으로 인해 이 작품이 그의 대표작 중 하나로까지 여겨지게 되었습니다. “덤 앤 더머(Dumb and Dumber),” “마스크(The Mask),” “에이스 벤츄라(Ace Ventura)” 시리즈, “트루먼 쇼(The Truman Show)” - 저희가 “영상이몽” 초기(2회)에 포스팅했던 - “브루스 올마이티(Bruce Almighty)” 등등 수많은 유명 작품에 출연한 짐 캐리에 대해서는 부연 설명이 필요 없는 데다가, 2년 전쯤 역시 저희가 포스팅했던 “신데렐라 맨(Cinderella Man)”에서 그 영화의 감독으로 소개된 바 있는 론 하워드 또한 이 작품들 외에도 “분노의 역류(Backdraft),” “파 앤드 어웨이(Far and Away),” “뷰티풀 마인드(A Beautiful Mind)” 등의 수작으로 잘 알려진 뛰어난 연출가입니다.
‘심술’ 그 자체로 똘똘 뭉친 데다 외모도 특이한 그린치는 “후(Who)”라고 분류(?)되는 ‘존재’들의 거주지인 “후빌(Whoville)”이 먼발치에서 내려다 보이는 척박한 산에 혼자 살며 그곳 주민들을 원망하고 저주하는 것으로 하루 일과를 삼다시피 하는데, 러닝타임 1시간 45분 동안 이어지는 영화의 스토리가 기반을 두고 있는 것은 바로 후빌의 주민들이 크리스마스를 무척이나 좋아한다는 - 따라서 그린치는 그만큼 크리스마스를 싫어한다는 - 사실입니다. 마을 주민들이 성탄을 기다리며 기쁜 마음으로 들떠 있는 만큼이나 그 ‘꼴’이 보기 싫은 그린치는 어떻게 하면 그들의 성탄을 제대로 망쳐 놓을까에 더욱 골몰하게 되니까요.
자신의 정체가 드러나지 않도록 가면을 쓰고 마을에 잠입한 그가 편지와 소포들이 분주히 오고 가는 우체국에 들어가 우편물을 서로 뒤섞거나 우편함 이곳저곳에 협박문(blackmail), 해고통지서(pink slip), 행운의 편지(chain letter) 등을 마구 뿌려 넣으며 신이 나 있던 차에, 우체국장인 아빠 “루 루 후(Lou Lou Who)”의 심부름으로 우편실에 들어간 소녀 “신디 루 후(Cindy Lou Who)”가 그린치와 마주치게 되면서 온갖 사고가 발생합니다. 자신의 모습을 들킨 그린치가 우편물 분류기(sorting machine)에 빠진 신디를 모르는 척하고 떠나려다 반려견인 “맥스(Max)”의 성화에 못 이겨 어쩔 수없이 꺼내 주었는데, 자신의 목숨을 구해줬다고 도리어 고마워하는 신디는 그때부터 그린치에게 관심을 갖기 시작하며 마을 사람들이 그에 대해 어떻게 평하는지 수소문합니다.
그린치가 정말 나쁜 사람(?)이라면 자신을 구해 주지 않았을 거란 생각으로 마을 어른들을 찾아다니며 그의 ‘개인사’에 대해 묻기 시작한 신디는, 그린치가 초등학생이던 8살 당시 같은 반 친구였던 “마사 메이 후비어(Martha May Whovier)”를 좋아했지만 - 그녀도 그린치에게 호감이 없지 않았고 - 남다른 외모 때문에 급우들에게 놀림을 당하자 심하게 화를 내며 마을과 학교를 떠나 이후로는 아무도 그를 보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마침 마을의 성탄 축제(Whobilation) 시기를 맞아 축제 인도자(Cheermeister)를 선발하는 과정에 신디가 그린치를 추천하는데, 그 지역 시장으로서 자신이 선정될 것이라 은근히 기대하고 있던(또한 그린치의 어린 시절 마사를 사이에 두고 일종의 ‘경쟁’을 벌이며 그린치를 가장 심하게 괴롭혔던) “어거스터스 메이후 (Augustus MayWho)”가 신디의 그런 제안을 무시하려 들지만, 대다수 주민들이 아이의 당찬 주장에 동조하자 어쩔 수 없이 자신도 그 결정에 동의합니다.
초청장을 직접 들고 그린치의 산꼭대기 집을 방문한 신디는 자신을 내쫓으려 온갖 위협을 가하는 그를 전혀 두려워하지 않으며 초대의 뜻을 전달하고, 아이가 떠나고 난 후 내심 설레는 모습을 보이던 그린치는 맥스의 ‘농간’으로 얼떨결에 후빌까지 가게 됩니다. 그곳에 도착해 자신을 환영해 주는 사람들 사이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던 그린치의 마음이 활짝 열리려던 순간, 어거스터스가 성탄 선물이라며 어린 시절 그에게 아픈 추억을 남긴 면도기(얼굴에 수북하던 털을 깎으려다 흉한 상처를 내게 한)를 의도적으로 건네는 동시에 마사에게 보석과 고급차를 선물하며 청혼하는 모습까지 면전에서 연출하지요. 이런 상황 때문에 다시 화가 치솟은 그린치는 크리스마스 트리와 장식물 등을 부숴 마을을 엉망으로 만든 채 떠나 버리고, 집에 돌아가서는 어떻게 하면 응당한 복수로 후빌 주민들을 괴롭힐 수 있을까에 더욱 골몰하게 됩니다.
맥스를 통해 힌트를 얻은 그는 산타클로스로 변장하고 성탄 전야 다시 마을을 찾아 각 집의 트리와 음식, 선물 상자들을 훔치는데, 하필 신디 집에 들어갔을 때 트리 옮기는 소리를 들은 아이가 거실로 나오는 바람에 들킬 뻔하는 위기를 겪지만, 그가 진짜 산타인 줄로 믿은 신디가 “그린치도 잊지 말아 주세요(Don’t forget Grinch)”라고 부탁하는 말을 들으며 ‘심쿵’의 순간을 맞기도 합니다. 훔친 물건을 썰매에 싣고 집으로 돌아온 그린치가 의기양양해 하는 동안 성탄 아침이 되어 “크리스마스가 사라진” 것을 보고 낙심해 하던 주민들이 “성탄에 가족만 곁에 있다면 다른 것은 필요 없습니다(I don't need anything more for Christmas than my family)”라는 신디 아빠 루 루의 말에 고무되어 다 함께 노래를 부르는데, 그 노래 소리를 듣고 처음에는 기막혀 하던 그린치가 문득 “성탄이란 물건(선물, 상품)과는 관계없는 것이고 그것들을 초월하는 무언가일지 모른다(Maybe Christmas doesn’t come from a store; Christmas perhaps means a little bit more)”는 생각을 갖게 되면서 ‘콩알만 하던’ 심장이 3배로 커진 것을 스스로 깨닫습니다.
온갖 성탄 관련 물건들을 훔쳐 달아났던 자신을 다시 찾아와 “누구도 성탄을 혼자 맞으면 안 돼요(No one should be alone on Christmas)”라는 따뜻한 말을 건넸던 신디를 그 순간 바라보며 “나도 이제 느낄 수 있어, 너를 사랑해!(I’m feeling! I love you!)”라고 대답한 그린치가 위험에 처한 신디를 구해 마을로 돌아간 뒤 주민들 앞에서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자 그들 역시 그린치를 따뜻하게 맞아 주는데, 값비싼 ‘물건’과 함께 청혼을 받았던 마사 역시 어거스터스에게 반지를 돌려주며 자신이 진심으로 좋아하는 상대는 그린치라는 사실을 내비칩니다. 어린이들을 주 관객으로 하는 만큼 행복하고 아름다운 결말로 영화가 끝나리라는 것은 충분히 예상되는 일이지만, ‘심장’의 크기가 일정 정도인 사람이라면 기대 이상의 감동으로 가슴 뭉클할 엔딩을 가지고 있는 영화가 바로 이 “그린치”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 작품이 전하고자 하는 가장 뚜렷한 주제가 “다름(difference)이란 틀림(wrongness)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라는 – 역시 오래전 저희가 올렸던 “블랙 팬서(Black Panther)”에서도 다루었던 – 메시지일 것으로 추측되는데, 실제로도 영화 내용 중 그린치를 성탄 축제의 인도자로 추천한 신디가 자신의 의견에 반대하는 어거스터스에게 후빌 주민들의 생활 지침서인(‘성경’을 상징하는 듯도 한) “The Book of Who”를 인용하며 “겉모습이 전혀 다른 누군가라도 마땅히 흔쾌한 환영을 받아야 한다(No matter how different a Who may appear, he will always be welcomed with holiday cheer)”라는 말로 같은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처음부터 그린치가 못되고 심술궂은 성격을 갖고 태어났던 것이 아니라 자신을 배척하고 백안시하던 주위 사람들로 인해 그런 태도를 보이게까지 되었다는 점에서, ‘절대다수’와 다른 외적 요인 때문에 오해 받거나 따돌림 당하는 누군가가 빚어낼 수 있는 ‘위험성’까지 설득력 있게 경고하는 것으로 여겨지는 대목입니다.
어른들의 섣부른 예단이나 지레짐작과 비교되는 아이들의 순수한 ‘저돌성’도 영화가 대조하며 부각시키고 싶어 하는 측면이 아닐까 합니다. 어른들이 머릿속으로만 예측하고 미리 계산하며 행동으로 옮기기를 주저하곤 하는 것과 달리 그 같은 편견이나 선입견이 없는 아이들은 눈에 보이는 현상의 이면을 더 정확히 파악하여 필요한 조치를 신속히 취하는 행동력을 갖고 있으니 말이지요. 사실 마음속으로는 지금의 외로운 삶에서 벗어나 다른 이웃들과 어울리며 살고 싶어 하는 그린치의 내심, 게다가 알고 보면 그렇게까지 나쁜 것은 아닌 그의 본성을 꿰뚤어 본 신디는 자신에게 겁을 주어 내쫓으려는 어줍잖은 위협에 개의치 않고 따뜻한 말과 미소로 그린치의 마음을 녹여 결국 그의 심장을 3배로 ‘뻥튀기’ 하는 일에도 기여합니다.
“The Book of Who”라고(“후”들의 지침서?) 이름 붙여진 자신들의 책의 내용을 왜곡하고 그 안에 포함되어 있지도 않은 항목을 마음대로 꾸며 대어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려던 어거스터스에게 “몇 페이지에 그런 내용이 있느냐”며 따지고 드는 신디의 모습이 개인적으로 무척 통쾌하기도 했습니다. 성경 안에 기록되어 있지도 않은 내용, 세상적 상식에 기반하거나 어디선가 들어 본 것 같은 말을 하나님 말씀이라고 끌어대며 자기 주장을 합리화하는 - 더욱이 극단적인 정치 주장의 근거로 성경을 오용하며 욕보이는 - ‘거짓’ 기독교인들의 모습을 자주 보게 되는 작금의 상황에 대해 25년 전 영화 속의 한 소녀가 일침을 가하는 듯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사실 예전부터 이런저런 장면들을 조각조각 보기만 했을 뿐 처음부터 끝까지 ‘마음잡고’ 본 적이 없던 이 영화가 그런 여러 측면으로 인해 저의 개인 목록에는 ‘기대 이상’의 작품 중 하나로 기록될 것 같은데, 어렸을 때 재미있게 본 기억은 있지만 어른이 되어 다시 보니 “그냥 그렇더라”라는 몇몇 사람들의 감상평과 달리 영화를 보는 내내 마음을 울리는 여러 장면들에 깊이 감동 받을 수 있었다는 사실 덕분에 아직 ‘동심’이 남아 있는 저 자신의 ‘정신 세계’에게도 일면 고마운 마음을 갖게 한 영화로 또한 오래 기억될 것 같습니다.
딸 J의 시선
유년기의 나는 상당히 깐깐한 아이였는데, 경험도 그닥 없는 주제에 취향이 꽤 확고했고 호불호도 나름 강했다. 영화 애호가인 엄마 덕분에 어렸을 적부터 영화를 좋아하게 된 것은 긍정적인 일이지만 쓸데없이 눈이 높아진 면도 없지 않아서, 어린이 영화, 그러니까 ‘아이들을 위해 만들어진 영화’를 볼 때의 기준이 특히 엄격했다. 디즈니나 지브리, 아드만 스튜디오 등에서 선보이는 ‘애니메이션’은 정말 좋아했으나(지금도 여전히 그렇다) 실제 인간 배우들이 등장하는 ‘실사’로서의 아동 영화는 취급도 하지 않았더랬다. 나름의 이유를 설명하자면, 대부분의 애니메이션이 처음부터 ‘아이들’을 위한 예술 형식으로 ‘전문성’을 가지고 제작되는 반면 실사 영화는 ‘어른 용’ 포맷을 아이들 눈높이에 맞춘답시고 대충 희석시켜 내놓은 유치한 결과물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뭐 이런 이유로 나의 어린 시절 크게 흥행했던 2000년 작 [그린치]나 2003년 작 [엘프](Elf) 등의 작품들을 무시하다가 오히려 어른이 되고 나서야 '제대로'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이번 편에 다루는 [그린치]는 닥터 수스(Dr. Seuss)라고 불리는 유명한 동화 작가의 책 “How the Grinch Stole Christmas”(그린치가 크리스마스를 훔친 방법)를 원작으로 한다. 냉정하게 말할 때 이미 1966년 같은 내용으로 제작된 애니메이션 클래식(삽입곡인 “You’re a Mean One, Mr. Grinch”가 특히 유명하다)을 능가할 버전은 없다고 생각되지만, ‘그린치’라는 미지의 초록색 존재가 여전히 대중문화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는 이유에는 이 작품의 공 또한 크다고 본다. 여담이지만 과거의 애니메이션이 실사 영화로 리메이크 되었던 [그린치]가 2018년에는 다시 한 번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었다는 것도 재미있는 사실이다.
[그린치]의 내용은 아주 간단한데, 작품 배경은 인간과 요정, 그 중간 어디쯤에 있는 것으로 보이는 "후"(Who)라는 종족이 모여 사는 마을 "후빌"(Whoville)의 성탄 기간이다. 이 "후"들은 가히 크리스마스에 미친 존재들로, 무언가에 씌인 사람들처럼 크리스마스 쇼핑을 하고 경쟁적으로 자신들의 집을 꾸며 댄다. 보이는 것, 물질적 축하에만 정신이 팔린 어른들 사이에서 예전만큼의 즐거움을 느끼지 못하고 우울해하던 어린 소녀 "신디 루"(테일러 맘센)는 마을 사람들을 골탕 먹이기 위해 우체국에 숨어든 "그린치"(짐 캐리)와 그의 강아지 "맥스"와 우연히 맞닥뜨리게 된다.
마을 바깥의 높은 산 꼭대기에서 타인을 배척하며 혼자 살고 있는 이 그린치라는 인물은 이름만 들어도 아이들이 겁을 먹을 정도로("망태 할아버지" 비스무리한… 무언가로 이해하면 될 듯하다) 공포의 대상인데, 그를 보고 놀란 신디 루는 뒷걸음질치다가 우체국 안의 위험한 장비 속으로 떨어진다. 그린치는 그런 신디를 강아지 맥스의 눈총(?) 때문에 마지못해 구해 주고, 신디는 자신을 구해 준 그린치가 소문과 달리 사실은 착한 심성을 가졌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오래전 그와 인연이 있던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그를 이해하려 노력한다.
그 과정에서 신디 루는 아기 시절의 그린치를 발견해 키워 준 할머니들, 어린 그린치와 함께 학교를 다니며 썸(!) 비슷한 관계였던 "마사 메이"(크리스틴 버랜스키), 마사 메이를 좋아하는 마음에 그린치를 괴롭혔던 후빌의 시장 "어거스터스"(제프리 탬버)와 인터뷰하게 되고, 그린치가 다른 "후"들과 다른 외모 때문에 놀림 당한 상처로 마음의 문을 닫은 것으로 유추한다. 이후 신디 루는 그린치를 마을 크리스마스 전야제 파티의 주인공으로 추천하면서 그린치가 사는 "크럼피트" 산 꼭대기에 올라가 그에게 직접 파티 초대장을 전달하기까지 한다. 절대 참석하지 않을 것처럼 튕기던 그린치는 모두의 예상과 달리 파티에 등장하고 심지어 꽤 즐거운 시간도 보내지만, 학창 시절의 앙금이 남은 시장 어거스터스가 대중들 앞에서 그린치의 유년기 트라우마를 건드리며 분위기는 난장판이 되고 만다.
분노한 그린치는 파티를 엉망으로 만들고 광장의 크리스마스 트리를 불태워 버린 뒤 급기야 마을이 크리스마스를 즐기지 못하도록 방해할 계획까지 세운다. 크리스마스 이브의 밤, 산타로 변장해 집집마다 침입한 그린치는 크리스마스 선물과 장식, 음식들을 싹싹 훔쳐 달아나면서 다음 날 아침 일어난 "후"들이 서로 화내며 싸우는 소음이 들리길 기대한다. 실제로 어거스터스와 몇몇 "후"들은 그린치를 마을에 초대한 신디를 비난하지만, 딸을 감싸는 신디 루의 아버지가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크리스마스를 보낼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를 표현하자 마을 사람들 또한 그에 동의하며 언제나처럼 크리스마스를 환영하는 노래를 함께 부른다. 아름다운 노랫소리에 당황하던 그린치는 크리스마스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되고, "후"들에게 크리스마스를 ‘돌려주기’ 위해 다시 한 번 후빌로 향한다.
앞서 언급했듯 나는 이 영화를 어른이 되고서야 처음 봤는데, 별 기대없이 틀었다가 무척 즐거운 경험을 했다. 물론 이 영화를 객관적으로 ‘훌륭하다’거나 ‘심오하다’고 보기는 어려울 테고, 크리스마스의 진정한 의미는 선물을 주고 받는 상업적, 물질적 기쁨이 아니라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있는 충만함에서 온다는 영화의 메시지는(예수님의 탄생을 다루지 않는 세속적 ‘크리스마스’ 작품들 대부분이 그렇듯) 뻔한 이야기로 들릴 수 있다. 그럼에도 이 영화를 매년 크리스마스 시즌마다 볼 만큼 애정하게 된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고, 그중에서 가장 큰 것은 사실 내용과 무관한 작품의 외적 요소이다.
일단 이 작품은 제작진과 캐스팅이 어마어마하다.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당시 론 하워드가 영화의 감독이라는 사실을 시작 부분에서 발견하고 깜짝 놀랐던 기억이 있다. 물론 론 하워드의 필모그래피를 볼 때 작품들의 수준이 약간 들쭉날쭉한 경향도 없지 않지만 어쨌든 누추한 곳에 귀한 손님이 오신 듯한 인상을 주는 것만은 분명하다. 주연인 짐 캐리뿐 아니라 조연을 맡은 배우들 또한 그 면면이 화려한데, 코미디계의 전설인 몰리 섀넌과 빌 어윈, 디바 크리스틴 버랜스키(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배우 중 하나다)가 등장하는 데다가 무려 앤서니 홉킨스가 영화의 내레이션을 맡았다. 이들 모두가 영화 속에서 우스꽝스런 분장을 하고도 진지하게 자신의 배역에 임하는 것을 보고 있자면 뭔가 뭉클한 감동이 느껴진다. 아이들의 행복과 순수함을 지켜 주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어른들의 노력을 눈으로 확인하고 있는 기분이랄까. 우리 모두 저 탑배우들이 [그린치] 안에서 아이들을 위해 열심히 연기하는 것처럼만 살 수 있다면 이 세상이 훨씬 더 다정하고 아름다운 곳이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다른 측면에서 이 영화는 어른들에게도 충분히 재미있을 수 있는 작품으로, 다 자라고 나서 보니 어린아이들은 이해하지 못할 ‘성인용’ 유머나 - 성적인 의미를 뜻하는 것이 아니다 - 재치 있는 설정들도 넘쳐 난다. 예쁘고 아기자기한 소품과 의상들, 정말로 동화 속 존재 같은 "후"들의 순진한 얼굴 사이에서 때묻은(?) 농담을 발견하는 것도 작품 나름의 재미이다.
물론 짐 캐리의 활약 또한 빼놓을 수 없다. 개인적으로 이 배우의 정신없는, 혹은 정신 나간 듯한 “manic” 코미디 스타일을 항상 좋아하진 않지만 그가 작품에 쏟아붓는 열정과 에너지만큼은 언제나 존경스러운데, 특히 이 작품의 경우 그가 아니었다면 누가 이 "그린치" 역할을 감당할 수 있었을지 상상도 되지 않는다. 이 영화 속의 그린치는 알고 보면 슬픈 과거와 사연을 가진, 공감을 자아내는(sympathetic) 대상이자 폭발적 장난기와 악의를 뿜어내는 파괴적 존재이기도 한 만큼, 이런 캐릭터를 연기하며 균형을 맞추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일 수 없다. 물론 어린이용 영화이다 보니 어느 정도의 ‘오버 액션’이 허용된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이 작품 속의 짐 캐리는 마치 플레이도처럼 유연한 얼굴 근육을 사용해 극과 극의 감정을 표정으로 구현하며 심술궂지만 사랑스러운 그린치로서 극의 중심을 단단히 잡아 준다.
이렇듯 영화 안에서의 그린치는 알고 보면 불쌍한, 나름의 사정이 있는 ‘반 영웅’(anti-hero)의 위치를 갖지만(2014년 작 [말레피센트]나 2021년 작 [크루엘라] 등 아동용 작품 속 악역을 재조명하는 트렌드의 선두주자라고도 할 수 있겠다), 글을 쓰기 위해 이번에 영화를 다시 보면서는 - 재미있게도 - 그린치가 그다지 안쓰럽게 느껴지지 않았다. 이 작품 속의 그린치는 사실 ‘다르기’ 때문에 차별 당한 경험을 가진 약자인 셈으로, 인간과 비슷하게 생긴 다른 "후"들과 달리 피부가 초록색이고 털(...)이 많다는 이유로 같은 반 학생들에게 놀림을 당한 그는 ‘다름’을 이유로 배척되고 무시당하는 사회적 소수자들과 비슷한 입장이다. 다만 지금 보니 애가 좀 쪼잔한 면이 있는데, 물론 어린 나이에 자신의 외모 때문에, 더 정확히는 자신의 ‘정체성’ 때문에 남들에게 놀림 받고 손가락질 당하는 것은 엄청난 상처가 되는 일이지만 그럼에도 그린치에게는 그 상처에서 회복될 수 있을 환경과 조건이 나름대로 충분했다. 사랑해 주는 가족이 있고 알 수 없는… 이유로 이성적 관심을 보이는 또래 친구 마사 메이도 있을 뿐더러 화가 났을 때 교실을 난장판으로 만드는 꼴을 보아하니 힘도 꽤 세다. 그러니까 이 어린 그린치가 그냥 불의와 차별, 편견을 맨몸으로 맞아야 하는 상황은 아니었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어린 그린치는 아이들의 놀림에 불같이 화를 내며 자신이 마사 메이를 위해 직접 만든 선물(다시 말해 자신의 노력의 산물)뿐 아니라 교실 전체를 마구 부숴 ‘파괴’한 뒤, 그것도 모자라 자신을 사랑해 주는 가족이 있는 집을 떠나 높고 험한 산속 동굴로 들어가 스스로를 고립시켜 버린다. 상처를 받았을 때 우리가 반응하는 방식에 대해 여러 생각을 하게 만드는 서사로서, 본인이 겪은 고통을 성장의 발판으로 삼아 다른 사람들이 비슷한 아픔을 겪지 않도록 돕는 방식으로 회복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소수에게 받은 상처 때문에 다른 모두를 배척하고 자신의 고통만을 벗 삼아 그 어두운 감정에 더욱 빠져드는 사람도 있는 것이다. 그린치는 어린 시절 같은 반 학생들이 자신과 자신이 만든 크리스마스 선물을 비웃었다는 한 번의 기억 때문에 평생 크리스마스를 증오하고, 자기와 상관없는 다른 사람들이 크리스마스를 즐기는 것조차 견디기 힘들어한다. 상처에 매몰된 채 어렸을 때와 조금도 달라지지 않은, 성장하지 않은 상태로 여전히 남아 있는 모습이다. 이렇다 보니 그린치는 자기 혼자 크리스마스를 싫어하거나 무시하는 것을 넘어 남들에게서도 크리스마스를 ‘빼앗기 위해’ 능동적인 노력을 하게 된다.
그런데 사실 크리스마스는 ‘훔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딸을 비난하는 시장에게 맞서던 신디 루 아버지의 “You can’t hurt Christmas!”(“크리스마스는 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에요”)라는 대사에도 나타나듯 그린치는 선물과 음식, 장식물들을 훔쳤을 뿐, 크리스마스라는 개념이나 가능성 자체를 빼앗은 것이 아니니 말이다. 우리가 실망했을 때, 불의를 경험했을 때, 혹은 상처를 입었을 때, 과연 무언가를 ‘빼앗겼다’고 볼 수 있는지에 대한 고찰로도 이어질 수 있는 대사이다. 물리적으로 탄압 당하고 권리를 빼앗겨도 인간의 영혼 속에 내재된 본질적 요소들, 즉 인간성과 인류애, 하나님을 향한 경외심 등은 힘으로 탈취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 어떤 약탈이나 가학도 우리 안의 고귀한 것들을 ‘빼앗아 갈’ 수 없다. 그저 우리가 놓아 버리는 것일 뿐.
‘나쁜 일을 당하지 않을 수 있도록’ 기도하던 믿음이 성숙해지면서 ‘나쁜 일을 당하더라도 지혜롭게 반응할 수 있도록’ 기도하는 방향으로 바뀌고 있음을 느낀다. 타인에게서 오는 상처, 불공정한 사회와 세상 아래에서 겪는 불이익과 억울함에 반응하는 방법은 본인만이 선택할 수 있으며 그 누구도 빼앗아 갈 수 없다. 누군가에게 상처를 받았다고 해서 세상 전체를 원망하며 혼자 어둠 속에 틀어박히는, 내가 겪은 아픔을 남들도 똑같이 경험하기를 바라는 이기심은 타인 때문에, 혹은 세상 때문에 일어나는 변절이 아니라 내가 가진 신념이, 정신이, 사랑이 그 정도뿐이었다는 반증일지 모른다.
상처를 받아도 참고 용서하라는, 자신을 죽인 자들을 위해서까지 용서를 명하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예전에는 그저 ‘옳고’ ‘신성한’ 뭔가로만 생각했던 것과 달리, 이제는 왼뺨을 맞으면 오른뺨도 내미는 것만큼 ‘강하고’ ‘도전적인’ 대응 방식이 있을까 생각하게 된다. 아무리 힘들고 고통스러워도 겨우 그 정도에 무너질 사랑과 인내심, 세상을 향한 긍휼이 아니라는 선언으로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적절한 비유는 아닐지 모르지만 요즘 말로 표현하면 ‘가짜 광기’와 ‘찐 광기’의 차이라고 할까? 어렸을 적의 트라우마로 여전히 크리스마스를 싫어하며 다른 이들의 크리스마스도 망치겠다고 온 마을의 선물과 음식을 훔쳐 달아난 그린치보다, 그에게 보인 호의가 마을을 쑥대밭으로 만드는 결과로 돌아왔음에도 상처 입는 대신 크리스마스에 혼자 있을 그린치가 걱정돼 다시 한 번 그의 높고 추운 산을 찾아간 어린 신디 루가 훨씬 강하고 '두려운' 상대인 것처럼 말이다.
주변 사람들과 세상으로부터 받은 상처를 안고 어두운 동굴 속으로 들어가 그 고통이 곪아 들도록 방치하는 이들을 사회 곳곳에서 보게 된다. 실망하고 상처 입는 것은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피할 수 없는 일이지만 그 아픔이 우리 본연의 인간성과 자긍심을 던져 버리고 타인의 행복을 시기하며 그들의 고통을 바라는 독으로 변하는 것은 각자의 결단으로 충분히 막을 수 있는 일이라 생각한다. 즐거움과 평안, 행복만이 가득해야 할 크리스마스, 우리의 영혼 속 선하고 고귀한 것들을 빼앗으려는 모든 방해와 시련이 오히려 우리 안의 사랑과 이타심을 더욱 밝게 빛내는 원료가 될 수 있기를 기도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