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 J의 시선
유명 예술인, 특히 배우가 세상을 떠나 슬픔을 느낄 때 그 감정의 '정체'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아무리 애정했던 배우였다 하더라도 개인적인 친분이 있는 경우는 사실 드문데, 그럼에도 마치 친구나 친척처럼 가까운 누군가를 잃은 듯 슬퍼하게 되는 이유가 무엇일지 말이다. 대중에게 알려진 모습에 의해 고착된 배우의 ‘이미지’를 토대로 일방적인 친밀감을 느끼는 ‘준 사회적 관계’(parasocial relationship)는 유명인과 팬 사이에 늘 존재해 온 현상이지만, 고 안성기 배우를 향한 거의 전 국민적 수준의 추모를 대중의 ‘일방적’ 관심이나 감상에 기인하는 것으로 보는 데에는 부족함이 있지 않을까 싶다. 한국 영화계의 거물을 잃었다는 공적 손실의 문제를 넘어 다정하고 든든하던 큰 어른을 떠나보낸 듯한 상실감을 느끼게 되는 이유는 그가 자신의 실제 삶에서도 작품 속에서와 똑같이 인간에 대한 관심과 연민을 통해 관객들과 소통하는 ‘상호작용’을 이뤄 낸 사람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배우 안성기를 생각할 때 개인적으로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작품 중 하나는 박광수 감독의 1988년 작 [칠수와 만수]다. 사실 이 영화를 학부(UBC) 재학 시절 ‘흥미’를 근거로 수강했던 "한국 영화의 이해" 수업에서 처음 접하게 되었는데, 이 작품에 대한 에세이를 과제로 제출하면서 나처럼 어린 시절부터 ‘안성기’와 ‘박중훈’을 지켜보며 자라지 않았을 캐나다인 교수가 과연 나의 감상을 제대로 이해해 줄 수 있을지에 대해 의구심이 들었던 기억이 있다(아쉽게도 에세이의 점수는 기억나지 않는다).
제목에서 보여지듯 이 영화의 주인공은 "칠수"(박중훈)와 "만수"(안성기)로, 간판 그리는 일을 함께하면서도 정반대의 성향을 보이는 둘은 환경과 상황에 의해 반 억지로 묶인 사람들이다. 젊다 못해 어린 칠수는 유들유들함을 넘어 뺀질거리기까지 하는 인물로, 미군 남성을 따라 미국에 간 누나에게 초청장을 받으면 마이애미로 이민 가 살 것이라는 호언장담을 입에 달고 사는 데다 첫눈에 반한 대학생 "지나"(배종옥)를 ‘꼬시기’ 위해 미대생이라고 거짓말을 하는 등 대책 없고 철도 없는 극 낙관주의자다. 반면 진지하고 시니컬한 만수는 비전향 장기수로(공산주의 사상가로서) 여전히 감옥 살이를 하고 있는 아버지 때문에 제대로 교육 받거나 일할 수 있는 기회를 모두 빼앗긴 처지로, 절망과 분노가 피부 한꺼풀 아래에서 조용히 요동치고 있는 듯한 사람이다.
경제적, 정치적 격변이 한창 진행 중인 80년대의 열기와 잠재력에 동화된 칠수는 지나를 향한 구애와 ‘미국’이라는 꿈에 자신의 모든 에너지를 쏟아붓지만, 만수의 초라한 집에 얹혀 살며 어쩌다 들어오는 도색 일로 쥐꼬리만한 수입을 손에 쥐는 그의 삶은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두 사람은 아찔한 높이에서 별다른 안전장치 없이 고생스레 일을 하면서도 늘 주위 사람들로부터 무시와 모욕을 당하고, 자신들의 손으로 페인트 칠하는 고층 빌딩이나 그려 내는 광고 간판 속의 부와 여유에서 격리된 채 점점 더 지쳐 간다. 그럼에도 칠수 특유의 넉살, 언젠가는 성공하리라는 혈기에 힘입어 일상의 즐거움을 나름대로 찾으며 하루하루 버티던 중, 미국에 간 칠수 누나로부터의 연락이 끊기고 지나와의 관계도 한계에 부딪히자 어찌어찌 억눌려 있던 그들의 불만과 불안감이 마침내 폭발한다.
칠수와 만수는 자신들이 방금 끝마친 ‘작품’인 광고 간판 위로 올라가 술을 마시면서, 돈 많은 놈들을 욕하고 소리를 치는 방식으로 불만을 해소하려 든다. 하지만 행색이 남루한 두 남자가 광고탑 위에서 소리 지르는 모습을 쳐다보던 시민들과 공권력이 이들을 점거 농성 중인 노동자로 오해하면서 경찰이 출동해 주변을 포위하는 상황에까지 이른다. 경찰은 투항하라는 경고 방송을 하지만 아무 짓도 하지 않은 그들은 억울할 뿐이고, 서로가 서로의 말을 알아듣는 대신 고함만 지르는 소통의 부재가 이어질수록 양측 사이의 오해는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두 남자가 들고 있는 평범한 소주병이 화염병으로 오인되며 상황이 극단으로까지 치닫자, 처음으로 진실된 불안과 공포를 드러내는 칠수와 달리 만수는 점점 더 광기 어린 분노에 휩쓸린다. 결국 만수는 까마득한 아래에서 그들을 올려다보며 수군대는 사람들의 오해(혹은 기대)에 부응하듯 철탑에서 몸을 던지고, 칠수는 경찰들에게 잡혀가며 군중들 속에 서 있던 지나를 허망하게 바라본다.
[칠수와 만수]를 처음 보고 적지 않은 충격에 빠진 뒤 그 여운이 꽤 오랫동안 마음에 남아 있었다. 이 영화가 전하는 사회적 메시지 그 자체 때문이었다기보다 안성기 배우의 새로운 면을 발견한 듯한 느낌이 이유였던 듯하다. 물론 다른 무겁고 어두운 영화들에서도 열연을 했던 데다 [인정사정 볼 것 없다] 같은 작품에서는 악역까지 맡았던 그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지만 적어도 그때까지 내가 본 영화들에서 안성기 배우가 이토록 암울하고 절망적인 삶을 묘사한 적은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인지 그후로도 이 영화를 보는 것이 감정적으로 조금 힘들었다. ‘밑바닥’ 인생을 사는, 한심한 동시에 애처로운(pathetic이라는 단어의 이중적 의미처럼) 인물들이 끝까지 사회에게 이용과 무시만 당하다가 자멸한다는 희망 없는 내용도 그렇지만 그 서사가 안성기 배우를 통해 재현되는 모습에 마음이 무거웠다. 존경하는 어른이 무너지는 모습을 목도하는 기분이었달까?
실제로도 이 작품은 절망 속에서조차 희망이나 인간의 본성을 캐내어 관객을 감화시키는 의도의 예술보다는 인간과 사회의 어둡고 비루한 그늘을 끌고 와 마주보도록 함으로써 비난 혹은 책망의 의무를 다하는 쪽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칠수와 만수라는 두 인물과 ‘주류’ 사회의 간극이 끝까지 메워지지 않는 허무하고 절망스러운 서사가 발전과 혁신을 통해 풍요로워지는 듯 보이는 체계마저 누군가를 고립시켜 도태되도록 만드는 잔인성에 기초한다는 사실을 신랄하게 고발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이번에 영화를 다시 보면서는 신기하게도 이 비관적인 작품에서 어떤 위로를 느꼈다. 롭 라이너 감독의 사망 이후 다시 본 [프린세스 브라이드]에서 감독 개인의 삶과 영향력이 작품과 연결되며 영화의 메시지가 강화되어 다가온 것과도 비슷하게, 안성기 배우의 삶의 궤적, 또 그가 가진 문화적 상징성이 작품 속 그의 캐릭터에 덧입혀지는 기분이었다. 만수라는 인물 자체보다는 안성기라는 배우가 만수 안에 남긴 흔적과 의미를 곱씹게 된다는 것이다.
영화 속 칠수와 만수는 둘 다 사회의 편견과 냉혹함에 짓밟히는 인물이지만, 엄밀히 말해 칠수보다는 만수가 훨씬 부정적인 상황에 놓여 있다. 이들 둘은 자본주의라는 시스템 속에 존재하는 인간의 상반된 면모를 반영하는 인물들로, 미군 기지가 위치한 동두천 출신인 칠수는 미군 부대 숙소에서 잡일을 하는 아버지, 미군을 따라 간 누나 등 온 가족이 ‘미국’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을 뿐더러 그 자신도 마이애미로 이민을 가겠다는 꿈을 품고 있다. 영화에서 ‘미국’이 내포하는 부와 여유, 성공의 상징성(지나가 "버거킹"에서 일하는 장면이나 칠수와 만수가 미국 브랜드의 위스키 광고 간판을 그리는 모습 등)을 볼 때 칠수의 지향과 목표는 자본주의 ‘안’에서의 도약이다. 물질적 부와 성공을 맹목적 ‘선’이나 ‘득’으로 여기는 체계의 철학을 그대로 흡수한 칠수는 미국으로의 이민을 통해, 혹은 대학생이자 부잣집 딸인 지나와의 결혼을 통해 이룰 수 있는 사회-경제적 ‘신분 상승’을 꿈꾼다. 영화가 제시하는 사회에 대한 칠수의 분노는 누나와의 연락이 끊기고 지나와의 관계가 실패하며 자본주의적 의미의 성공을 놓치고 나서야 본격적으로 표출되는데, 이처럼 그의 분노는 ‘현존하는 사회 안에서는 성공하기 어려운’ 자신의 상황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반면 만수는 아예 체제 ‘밖’에 있는 사람으로, 비슷하게 가난하고 어려운 환경에서 태어났지만 누구든 노력하면 성공에 이를 수 있다는 사회의 신화(또는 거짓에 가까운 약속)를 어느 정도 내면화한 칠수와 달리 발전과 성장의 가능성 자체를 아예 상실했다. 아버지의 죄(‘원죄’로 이해할 수도 있을)가 그를 체제로부터 추방시켰기 때문으로, 비현실적이나마 성공과 출세를 꿈꿀 수 있는 칠수와는 비교될 수 없을 정도의 절망적 상황 속에 있다. 부와 성공을 자랑하는 아름다운 광고 이미지, 사회의 발전을 증명하는 간판들이 만수의 손에서 탄생하지만 그는 현 사회가 누리는 그런 과실에 손을 대지 못한다. 그의 분노는 ‘현존하는 사회에 평생 소속될 수 없는’ 자신의 상황에 기인하는 것이기에, 분위기가 심각해질수록 겁을 먹고 꼬리를 내리는 칠수의 객기와는 달리 점점 더 흉흉한 열기로 불타오르게 된다. 경찰의 경고에 따라 건물에서 내려왔다면 만수가 그렇게까지 슬픈 결말을 맞진 않았을 테지만, 영화 속 만수는 사실 광고탑에서 내려올 수가 없다. 물질적, 경제적 성공이라는 의미의 ‘상승’을 원한 칠수와 달리 만수는 자신이 겪은 외면과 배제를 뒤집는, 그를 인간으로 대우하지 않는 사회의 근본적인 ‘전복’을 바라기 때문이다.
만수를 보고 있으면 돈이 사람보다 중요해진 세상에 항의하는 마지막 수단으로 고공농성에까지 내몰린 현실 속 약자들의 모습이 함께 떠오른다. 낮은 곳에서 짓밟히던 사람들이 어떻게든 자신의 목소리를 전달할 수 있는 방편을 찾다가 물리적으로나마 높은 위치에 오르게 되는 아이러니하고도 가슴 아픈 현실이다. 그런 현실 가운데 가장 높은 곳에서 소리를 질러도 결국 이해 받지 못한 채 소통을 거부 당하는 만수라는 인물이 ‘국민 배우’ 안성기를 통해 구현되었다는 사실에서 작은 위로를 얻는다.
어렸을 적, 변호사라는 직업에 매력을 느꼈던 가장 큰 이유는 소외된 이들을 대변할 수 있는 ‘과업’이라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법적 책임과 과실을 따지며 의뢰인을 보호하는 변호인의 의무가 자신의 입장이나 울분을 호소하기 원하는 약자의 바람과 언제나 양립하진 않는다는 것을 깨달은 지금은, 관객을 그 약자의 입장에 대입시켜 공감과 연민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작가나 배우 같은 예술인의 힘에서 보다 큰 의미를 발견한다. 아무리 고함을 쳐도 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는 이들에게 목소리를 빌려 주고 궁지에 몰린 사람들을 대신해 높고 위험한 곳에 올라 포효함으로써 잔인한 사회가 인간을 극한으로 몰아가는 모습을 직접 표현한 안성기 배우의 대변이 사회가 약자와의 소통에 이르는 긴 여정 속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 주리라 믿는다. 우리 모두에게 익숙한 온화하고 다정한 그의 표정만큼이나 세상의 편견과 탄압에 분노하는 만수의 얼굴이 오래도록 기억되었으면 한다. 자신의 삶과 연기를 통해 관객들과 따뜻한 대화를 나눈 배우가 그랬듯 우리 역시 영화를 통해 사회에 전달하고자 했던 그의 말에 정성스레 응답할 수 있기를.
엄마 C의 시선
지난번 올렸던 글에서 언급한 것처럼 이달 초 타계한 배우 안성기 씨를 추모하는 저희 나름의 방식으로 그의 유작들 중 하나인 “칠수와 만수”를 다루기로 딸과 의견을 모았습니다. 책임감과 사명감, 타인에의 배려 등으로 주위의 모범이 되어 온 배우가 사회적 약자와 소외된 이웃들을 따스한 시선으로 주목하는 작품들에 늘 관심을 갖고 참여했을 뿐 아니라 실제 삶 속에서도 그런 정신을 구현해 왔던바, 특히 이 작품에 그의 그런 진심이 뚜렷하게 담겨 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김대중 대통령(“국민의 정부”) 시절 받았다는 문화관광부(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직 제의를 시작으로 수차례나 국회 비례의원직 제안이 주어졌음에도 매번 정중히 사양하곤 했다는 그는, 장학사업이나 단편영화 제작지원 사업의 후원, 유니세프 친선대사직과 “365 생명사랑운동”(자살 예방 캠페인) 공동대표직 수행 등 공익적 성격이 있는 일에는 발벗고 나선 것으로 알려져 있는 인물이기도 합니다.
비교적 그의 초기작에 속하는 “칠수와 만수”는 – 아역으로 출연했던 1950-60년대의 영화들을 제외한다면 – 성인이 되어 충무로에 다시 돌아온 그가 “바람 불어 좋은 날”(1980), “고래사냥”(1984),” “깊고 푸른 밤”(1985), “기쁜 우리 젊은 날”(1987) 등의 문제작들 이후 “88 서울 올림픽”이라고 불리며 지금까지 회자되는 큰 행사가 개최되었던 1988년 주연한 작품으로, 이후에도 “투캅스,” “태백산맥,” “실미도”에 이어 저희가 이 공간에서 소개했던 “라디오 스타,” “인정사정 볼 것 없다,” “부러진 화살” 등 수많은 문제작들에서 주인공으로 열연한 바 있습니다. 1950년대 아역 배우로 시작하여 2020년대까지 이어진 연기 생활 동안 그가 출연했던 작품은 대략 170~200편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되며, 1980, 1990, 2000, 2010년대에 걸쳐 빠짐없이 주연상을 수상한 국내 유일의 배우로 일컬어지는 이 배우의 첫 남우주연상 수상(1982)과 마지막 남우주연상 수상(2012) 사이에 무려 30년의 시차가 있다는 사실 역시 보기 드문 사례로 알려져 있습니다.
본래 극단 “연우무대”가 오종우 극본, 이상우 연출로 제작 공연했던 동명의 연극 작품(“동아연극상” 연출상, “백상예술대상” 작품상과 연출상을 수상했던)인 “칠수와 만수”는, 이후 “그들도 우리처럼,” “그 섬에 가고 싶다” 등의 작품을 연출하는 박광수 감독이 영화로 제작, 발표한 그의 데뷔작입니다. 1980년대의 서울을 배경으로, 농촌에서 상경(만수)했거나 미군 기지촌 출신(칠수)이라는 ‘불리한’ 조건 때문에 각박한 서울 한복판에서 사회 기저층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두 주인공의 고달픈 삶을 풍자와 유머를 가미해 그려 낸 이 작품은, 사회 비판적 시각과 더불어 어려운 이웃들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잃지 않는 감독 박광수 특유의 연출력과, 안성기, 박중훈, 배종옥 등 이후 한국 영화계의 중견 연기자로 자리 잡는 배우들의 젊은 시절 모습을 엿볼 수 있는 재미, 또한 이미 45년 전이 된 과거 서울의 모습을 회고하며 감상할 수 있다는 ‘문화사’적 특성도 가지고 있는 영화이지요.
민방위 훈련 중인 시내의 모습을 비추며 시작하는 영화는, 버스에서 졸다 내린 칠수가 훈련으로 발이 묶여 한 건물 앞에 서 있던 “지나”를 우연히 보곤 그녀를 뒤따라 전자오락실로 – 시간을 때우려 그녀가 잠시 들어간 – 그리고 그녀의 아르바이트 근무지인 패스트푸드점 매장으로 계속 따라다니며 말을 걸거나 초상화를 그려 주는 등으로 환심을 사기 위해 노력하는 장면들을 보여 줍니다. 이러느라 자신의 일터인 극장 간판 제작 작업실에 늦게 출근하는 바람에 사장과 티격태격하다 직장을 그만 둔 그는, 그곳에 가끔씩 일을 도우러 오던(본업은 고층 건물 외벽 도색공인) 만수를 따라가 조수로 써 달라며 사정하더니 그의 집에도 쫓아가 더부살이까지 합니다. 미국에 사는 누나가 곧 초청장을 보내 줄 테니 그때까지만 잠시 신세를 지겠다는 핑계를 늘어놓으면서 말이지요.
안성기와 박중훈이 공동 주연한 영화들 대부분이 그렇듯 이 영화 역시 서로가 닮은 듯도 전혀 다른 듯도 한, 즉 서로 간의 공통점과 상이점이 병존하는 두 사람의 성향과 현실을 기반으로 내용이 전개되는 “버디 무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상범인 아버지가 27년째 장기수로 재소 중인 “박만수”는 ‘연좌제’에 묶여 여권이 발급되지 않는 바람에 해외 취업조차 불가능한 처지로, 답답한 마음에 술을 마시다 포장마차에서 시비가 붙어도 그런 ‘낙인’으로 인해 쉽게 훈방도 되지 않는 사람입니다. 한편 미군 주둔지인 경기도 동두천에서 포주인 후처에게 얹혀 사는 술주정뱅이를 아버지로 둔 “장칠수”는 상당한 소질을 보이는 그림 실력 덕분에 극장 간판 그림을 그리다 이제는 페인트공으로 살아가고 있지만, 흰소리 잘 하고 허풍 치기 좋아하는 성격 때문에 대학생인 지나를 ‘꼬시’며 자신이 미대생이고 마이애미에 있는 형에게로 곧 갈 거라는 거짓말까지 아무렇지 않게 해 대는 인물이지요.
일감이 없어 어렵게 지내다 간신히 찾은 일인 빌딩의 옥탑 광고 - 양주 광고인 - 간판을 그리던 그들 둘은 춥고 배고프고 위험한 작업을 참고 버티다 “해가 길어졌으니 늦게까지 일하라”는 지시를 받고 ‘열이 받아’ 간판 설치물 꼭대기까지 올라가 앉았다가 각자의 처지에 대해 솔직한 대화를 나누게 됩니다. 부잣집 딸인 지나가 부모님이 권하는 상대와의 약혼을 결정하며 헤어지게 되었음을 고백한 칠수와, 회갑을 앞두고 가족들의 요청으로 힘들게 얻어 낸 3일간의 가석방조차 아버지 스스로 거부했다는 소식을 들은 만수의 답답한 형편 말이지요. 앉아 있던 자리에서 갑자기 벌떡 일어나 “서울에 있는 높은 놈, 배운 놈, 잘난 놈, 있는 놈 모두 다 내 얘기를 들어 봐라. 나도 말 좀 해야겠다”면서 “높은 곳에 있을 때 큰소리 좀 쳐 보자"고 장난 삼아 소리를 지르기 시작한 만수와 그에 동조한 칠수는, 길을 지나다 우연히 그들의 모습(높은 곳에 올라서서 손을 휘저으며 무언가를 외쳐 대는)을 올려다본 행인들로부터 자신의 뜻을 관철시키기 위해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는 사람들로 오인 받게 됩니다.
소주병을 화염병으로 오해할 만큼 그들의 행동이 노사 문제와 관련된 심각한 농성으로 여겨지는 바람에 경찰이 출동하고 기자들이 몰려오다 구급차까지 대기하는가 하면, 전경 출동에 이어 자신들이 있던 강남 고속버스터미널 근처의 “청록회관” 건물 위로 헬기까지 날아 오르며 뜻하지 않게 일이 커진 데 당황한 그들은 우왕좌왕하느라 밤이 되어도 건물 위에서 내려오지 못합니다. 그들이 사는 집을 가택수색했던 경찰이 아버지로 인해 사회에 불만을 품은 박만수가 의도적으로 벌인 일이라 짐작하며 특공대를 올려 보내자, 처음부터 겁을 먹고 내려가려던 칠수는 그들 손에 순순히 끌려가는 반면 자신을 설득하겠다고 확성기로 아버지 이야기를 들먹이는 - “당신의 아버지가 아무리 사회에 물의를 끼쳤다고 해도 당신까지 사회의 ‘암적인’ 존재가 되어서야 되겠느냐”는 - 망발을 듣던 만수는 철탑에서 뛰어내리는 극단적 선택을 합니다.
무척 오랜만에 영화를 다시 본 후의 감상 중 ‘가벼운’ 측면부터 먼저 언급하자면, 극장 간판 그리는 일을 그만 둔 칠수가 자신을 계속 따라오면서 스스로를 “알고 보면 괜찮은 놈”이라고 어필하는 것을 들은 - 그에 대한 첫인상이 그리 좋지 않았던 듯한 - 만수의 “사람은 알고 보면 안 돼. 보고 알아야지”라거나 “순간의 선택이 10년을 좌우한다더라”라고 한 말이 자신의 미래에 대한 복선이 아니었을까 하는 추측입니다. 사실 사회에 대한 불만이라면 어느 누구 못지않았을, 그런 분노와 억울함을 마음 깊이에 꾹꾹 누르며 참고 살아 왔을 그였지만, 광고판 꼭대기에 먼저 올라가 앉아 있던 칠수를 발견해 따라 올라가고 그곳에서 칠수가 자신의 ‘실상’을 고백(자신은 동두천 ‘하우스 보이’의 아들이며 미국에 간다는 것도 다 거짓말이고 여대생 지나는 돈 많은 남자와 약혼할 예정이라는)하면서 만수의 여동생이 보냈던 편지의 내용(아버지가 가석방을 거부한다는)도 상기시키는 대화들을 이어 가지 않았었다면 만수가 그런 의도치 않은 상황에 처해 스스로 목숨을 포기하는 결정까지 내릴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테니까요.
하지만 그런 부분은 표피적이고 비본질적인 측면일 뿐 무엇이든 억지로 참고 누르는 일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기에 만수가 품고 있던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은 비등점에 이르면 언제고 터져 버렸을 것이 분명합니다. 요즈음 한국에서 “아빠 찬스,” “엄마 찬스” 같은 말들이 만들어져 회자되곤 하는 모양이지만 그런 신조어가 생기기 이전에도 부모의 학력, 재산, 지위와 같이 다음 대로 ‘세습’되는 SES(Socio-Economic Status: 사회경제적 지위)가 자녀들에게 날개를 달아 주는 요인도, 발목을 잡아 주저앉히는 요소가 되기도 하는 것은 동서고금을 불문하고 오랜 세월 잔존되어 온 병폐이니 말이지요. 특히 이 영화가 개봉된 1980년대 당시에는 아직도 미군 부대가 주둔하던 특정 지역에서 접대부로 일하던 여성들의 문제, 남북 분단이라는 현실이 낳은 ‘이념’ 문제(혹은 그에 대한 오해나 누명 씌우기)로 인해 일가족뿐 아니라 ‘삼족’이 그 굴레를 안고 평생 고통 받는 일이 비일비재했음을 생각하면 그런 사안들에 현미경을 들이댄 이 작품과 그런 작품에 동참하며 목소리를 같이 냈던 사람들이 담당한 계몽(!)적 역할의 공로는 결코 적다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약하고 소외된 사람들, 자신의 목소리를 스스로 낼 수 없는 ‘주변인(outsider)’들을 향한 관심을 유지하며 응원을 보내는 것은 양식 있는 민주 시민이라면 - 더욱이 스스로를 기독교인으로 일컫는 사람이라면 - 누구에게나 맡겨진 임무이자 소명(욥 36:15; 시 10:14; 12:5; 140:12; 사 1:17; 미 6:8; 마 23:23; 막 12:33)이지만, 이 영화가 공개된 당시만 해도 상식에 가까웠던 이런 원칙들이 오히려 최근의 사회에서 특정 이념을 가진 일부 집단의 편향된 사고인 양 인식되거나 매도되는 현실에 안타까움을 느낄 때가 많습니다. 특히 저의 세대가 학부나 대학원에 재학하던 시절에는 자신들보다 배움이 적고 사회 경제적으로 어려운 처지에 놓인 사람들을 대신해 - 그들에게 ‘빚진’ 마음을 가지고 - 목소리를 내는 일을 당연한 책무로 생각하며 ‘자유’와 ‘정의’가 그 본연의 개념을 실현하도록 돕는 일을 숭고한 목표로 여겼음에 반해, 지금의 2-30대 청년들이 그런 사고 자체를 부정적 시각으로 바라보며 이미 오염된 ‘자유’와 ‘공정’이라는 어휘를 더욱 왜곡된 관점에서 이해하는 듯한 경향을 드러내는 현상에는 더욱 그러합니다. 물론 여러 경제적 상황이 예전과 다르다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평등하고 정의로운 사회 구현을 최고의 가치로 여겨야 할 젊은이들, 하나님의 사랑을 마음에 새겨 힘없고 불안정한 위치의 사람들을 돕는 일에 모든 것을 걸어야 할 기독교인들이 그렇게 살아서는 결코 안 될 것입니다.
그럼에도 이 영화에 대한 본질적 감상은 역시 아쉽게 우리 곁을 떠난 배우 안성기 씨에 대한 회고와 추모로 마무리되어야 마땅하겠지요. 저 개인적으로는 “깊고 푸른 밤”을 통해 그와 처음 ‘조우’했었기에 그 작품에서의 강렬한 인상이 지금도 뇌리에 남아 있긴 하지만, 배우 본인이 가장 좋아했다는 - 그리고 저희도 무척 좋아하기에 이미 다루었던 영화인 - “라디오 스타”에서의 사람 좋은 미소야말로 고 안성기 씨의 대표적 이미지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최근 시청한 그의 장례식 영상에서 큰아들 다빈 씨가 자신의 다섯 살 때 아버지가 건넸다는 편지를 읽는 것을 듣다가 그의 사람됨을 대변할 두 문장에 이르러 가슴이 뭉클해졌습니다: “남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되었으면 한다. 이 세상에서 참으로 바꿀 수 없이 필요한 것이라면 착한 사람이란 것을 잊지 말아라.”
요즘 자주 듣게 되는 “착한 가격,” “착한 가게” 등의 표현으로 물질적인 부분에는 ‘착한’이라는 형용사를 즐겨 사용하는 우리가 정작 사람의 ‘착함’에 대해서는 쉽게 간과하거나 평가절하하는 풍조 속에서, 세상이 가장 필요로 하는 ‘착한 사람’이 되기 위해 삶의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한 배우가 추구했던 가치인 “남들이 눈길 주지 않는, 사회적으로 소외되고 경시되는 사람들에의 관심과 배려”의 정신이 오래도록 기억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의 그런 아름다운 정신을 어느 누구도 ‘이념’이나 ‘진영’의 문제로 비난하지 않듯, “20/30”으로 일컬어지는 오늘날의 젊은이들, 편향되고 왜곡된 사고와 행위로 주님의 고귀한 이름을 실추시키는 일부 기독교인들도 세상이 필요로 하는 ‘착한 사람’으로 살고자 최선을 다하는 일에 동참할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하며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