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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리 Dec 15. 2015

음식에 관하여

아빠, 슬픈 국


우리 아빠는 미식가이다. 여느 음식점에 가든지 음식에 대해 조언을 하거나 아빠의 까다로운 입맛에 통과할 경우 주방장의 비법을 얻어오곤 하셨다. 나는 어린 마음에도 외식을 할 때마다 아빠의 통과의례가 시작되겠구나 싶어 괜스레 긴장하곤 했다.


어린 시절, 타지에서 일하시던 아빠가 집에 오시면 종종 음식을 해주시곤 했다. 그때마다 나는 주로 먹던 엄마의 음식보다 강한 맛이 나는 아빠의 음식을 더 맛있게 먹었다. 아빠가 엄마보다 잘하는 음식은 주로 찌개, 조림, 닭볶음탕과 같은 술안주류였다. 엄마도 음식 잘하기론 둘째 가라면 서러운 실력이었다. 담백하고 깊은 맛을 내는 국물요리와 찜, 야채 무침 등을 잘하셨다. 그러나 까다로운 아빠는 엄마의 요리에 단 한 번도 그냥 만족하신 적이 없었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나서부터는 아빠가 우리 집 요리를 오롯이 맡게 되었다.

나는 아직도 아빠가 김치를 처음 담그던 날을 잊지 못한다. 아빠의 김치는 짰고, 커다란 김치통을 다루는 모습은 어쩐지 낯설었다. 그러나 아빠는 계속해서 다양한 요리를 하셨다. 어느 날 저녁엔 큰 장아찌 통을 꺼내시며 말씀하셨다.

이건 네 엄마가 알려준 방법대로 만든 거야.


엄마가 돌아가시기 전, 아빠는 병실에서 애처가라고 소문이 날 정도로 음식을 열심히 만들어서 엄마에게 가져다주곤 했다. 항암제 부작용으로 입맛을 잃은 엄마도 아빠의 음식만큼은 거부할 수 없었다. 나는 그때서야 비로소 엄마 아빠가 서로를 사랑하는 데에 확신을 가졌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나서는 남겨진 반찬마저 그리웠다. 밥을 먹을 때마다 엄마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엄마가 담근 김치, 장아찌가 줄어드는 모습에 애가 타는 심정이었다.


어느 날 버스에서 들리던 라디오에서 '슬픈 국'이란 시가 낭송됐다. 처음 듣는 시였으나, 어느새 머릿속에 맴돌았다.


모든 국은 어쩐지
괜히 슬프다
왜 슬프냐 하면
모른다 무조건
슬프다
냉잇국 이건 쑥국 이건
너무 슬퍼서
고깃국은 발음도 못하겠다
...
(생략)


나중에 찾아본 시는 김영승의 '슬픈 국'이란 시였다. 시를 떠올리며 국이 왜 슬픈가를 생각했었다.


그 무렵 아빠는 사골국을 자주 끓이곤 하셨다. 때때로 나는 밤에 불을 끄지 않아 바싹 쫄아든 국냄비를 처리하다가 속으로 참 귀찮은 음식이라고 생각했다. 사골국은 새벽 무렵 아빠가 일터에 나가시기 전에 속을 채우기 위한 음식이었다. 그 모습을 떠올리니 알 것만 같았다.


때때로 음식은 삶을 연명하기 위한 것인지 허한 속을 달래는지 분간이 안될 때가 있다. 속이 허할 때 무작정 음식을 삼킬 때가 종종 있지 않은가. 즐기는 음식에는 마음이 쏟아지기도 하나보다. 행여 사람이 없을 때도 음식만으로 그 사람을 떠오르게 만든다. 사람과 음식은 뗄레야 뗄 수가 없으니, 국이 왜 슬픈지에 대해선 알만하겠다.


드물지만 내가 하는 음식은 엄마를 따라서 담백하고 싱거운 편이다. 타지 생활을 하던 아빠에 비해 엄마와 살았던 시절이 더 많아서일까. 아빠는 여전히 내 음식에 대한 평가엔 인색하시지만, 음식의 맛보다도 함께 마주 보는 식사에 더 마음을 쏟으시는 것 같다. 내일은 오랜만에 쇠고기 뭇국을  끓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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