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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리 May 20. 2016

당신이 살던 곳

사랑하는 장소에 대하여

내가 가장 사랑하는 장소는 당신이 살던 곳이다. 분홍빛 커튼에 햇빛이 비치면 텅 빈 집 마루엔 가느다란 그림자가 졌다. 어린 나는 그림자 위에 누워 당신이 쓸고 닦은 마룻바닥을 뒹굴다 잠이 들곤 했다. 낡은 서랍장 위에 놓인 화초들은 당신이 정성스레 돌보던 것이었다. 그곳에서 곧잘 창문을 바라보던 당신의 모습은 훗날 내가 '외로움'이란 단어를 알게 되자, 떠올린 배경이 되었다. 화초는 이내 시름시름 이파리를 떨구고는 얼마 못가 당신을 따라나섰다. 언젠가 편지에 적힌 '화초 같은 딸'이란 말은 영영 사라진 말이 되었다.

당신이 있던 부엌은 늘 온기가 식지 않았다. 단출하던 밥상에 새로운 반찬이 두어 개 더 놓이면 "오늘 아빠 와?"라고 묻던 나였다. 당신은 오이를 양념에 버무리고 생선을 구우며 음식을 정성스레 차리느라 분주했다. 그러다가도 이것은 "네 아빠가 참 좋아하는 거야."라며 만드는 것을 설명했다. 내가 딴청을 피워도 조물조물 손과 입이 부산했다. 내 방 창문은 야외 베란다와 연결돼 넓은 창문틀에 걸터앉을 수 있었다. 나는 음악을 크게 틀고 그곳에 앉아 흥얼대는 것을 좋아했다. 그곳에서 아버지의 차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 당신에게 가장 먼저 알리곤 했다.

안방은 커다란 침대만 들어앉아 문을 열기도 버거운 방이었다. 당신과 나는 그곳에서 함께 잠을 잤다. 밤새 나의 종알거림과 뒤척임을 받아주며 내가 잠이 오길 기다리던 당신이었다.

언제나 정갈하던 집은 구석구석 당신의 손길이 닿은 탓이었다. 늘 입버릇처럼 "이 집은 치워도 치워도 끝이 없다"는 당신의 말은 긴 세월을 사랑 없이 견뎌내기 위한 것, 곧 살아가는 방법이었을 거라 여기게 됐다. 나는 빈자리를 보며 하는 이 뒤늦은 헤아림이 부끄러웠다.


당신이 떠난 후 이사한 집은 이전 집과 비슷한 구조였다. 방은 두 개였으므로 남은 자들에게 하나씩 주어졌다. 각자의 방에서 빈자리를 비로소 꺼내 볼 수 있었다. 방문을 들어서면 가장 솔직한 얼굴이 되었지만, 밤이 되면 침잠하는 곳이기도 했다. 나는 그러다 스스로가 까마득히 사라질까 두려웠다. 새벽녘 방에서 뛰쳐나온 날이 많았다.

거실은 불필요한 공간이었다. 남은 자들이 공유하기엔 서로를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모든 존재의 이유를 당신에게서 찾곤 했으므로 그 간격을 좁혀줄 수 있는 것은 오직 당신뿐이라 여겼다.  

날마다 아버지는 빈 술병을, 나는 빈 봉지를 쌓았다. 끊임없이 허한 속을 채우기 위해 빈 껍질을 부스럭거린 날이 많았다. 그 모든 것을 다 치워버리고 싶다가도 결국 무기력한 몸을 이기지 못하곤 했다. 어느 날 집 앞에 쌓은 술병과 폐휴지를 늙은이에게 건네주던 아버지를 보았다. 언뜻 미소를 건네던 그 얼굴이 낯설었다. 기억을 삼키느라 늘어가던 술병을 팔았지만 곧 다시 술병으로 돌아올 걸 알았다.


살기 위해 버둥거리던 시절이었다. 당신이 떠나고 들었던 최악의 위로, 결국 시간이 해결해줄 거라고, 잊어가며 사는 거라던 말이 현실이 되고야 말았다.

동이 트기도 전이었던 어느 날, 집에선 오랜만에 밥 냄새가 풍겼다. 뱃속이 꼬르륵거렸다. 살아있어도 살아있지 않은 것 같던 시간은 결국 살기 위해 잊어가는 과정이었다. 그렇게 먹고 또 먹을수록 당신이 살던 공간도, 모습도, 목소리도 점점 희미해져 갔다.      


이곳은 더 이상 당신도, 가장 사랑했던 곳도 남아있지 않다. 나는 과연 당신 없는 이곳을 사랑할 수 있을까. 먹고 자며, 버거울 정도로 솔직한 얼굴이 드러나는 곳과 이곳에서 살고 있는 사람을 말이다. 언젠가 더욱 희미해진 당신을 나는 이 글로 얼만큼이나 되새길 수 있을지 가늠해볼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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