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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리 Dec 01. 2015

위로에 관하여

죽음을 넘어선 '기다림'의 힘

나는 당신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헨리 나우엔의 <상처 입은 치유자>에서는 '죽음을 넘어선 기다림'이란 대목이 나온다. 사람이 임종을 앞두고도 자신을 기다려 주는 사람이 단 한 명이라도 있다면 정신으로 생명을 이어간다는 내용이다.


 책에는 수술을 앞두고 있는 해리슨과 젊은 신부 존과의 만남을 실제적인 사례로 나타내고 있다. 해리슨은 병원의 여느 환자들처럼 회복을 바라고 있고 죽음을 두려워하고 있으며 수술을 위한 모든 과정에서 자신의 존재 자체가 자발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에 대해 두려워한다. 그러나 수술 이후의 삶에 대한 질문에는 확신이 없다.


"퇴원하시면 당신을 기다리고 있는 것들이 많으시죠?"

"아무것도, 아무도 없어요. 고된 일만 나를 기다리고 있죠."


 해리슨은 자신이 살든지 죽든지 신경 쓸 사람이 아무도 없다고 한다. 그러나 존과 같은 젊은이에게는 아직 인간이 고립된다는 절망감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없는 얘기다. 짧은 침묵이 흐른 후 존은 내일 일이 잘 되시길 바란다며 대화를 마친다. 해리슨은  다음날 수술 후 마취에서 깨어나지 못한 채 사망한다. 저자는 해리슨에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기다림이었을 거라고 말한다.


당신이 떠나가도록 두지 않겠습니다.
나는 내일 여기서 당신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나를 실망시키지 않기를 바랍니다.

 해리슨이 죽음의 문턱을 넘어서는 것에 변화가 없었을지라도 이 말을 들은 해리슨은 같은 마음으로 떠났을까.

저자는 존이 해리슨 씨의 내일이 되었다면, 해리슨의 내일은 더 이상 끝없이 길고 어두운 터널이 아니었을 거라고 말한다. 이것은 희망없이 죽음을 앞둔 사람들(저자는 자살을 하려는 사람들도 언급한다.) 모두에게 적용될 수 있다. 우리는 희망이 없는 사람에게 무엇을 전할 수 있을까.


사람이 고뇌하고 있을 때는 단 한 번의 눈짓이나,
단 한 번의 악수가 몇 년 동안 쌓아온 우정을 대신할 수도 있습니다.


 저자는 한 시간 남짓 했던 존과 해리슨의 짧은 만남이  한 인간의 생명을 구하는 관계로 이루어지기는 어렵다고 판단하지 않는다. 그것은 기다림의 능력을  과소평가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수술이 끝난 뒤 내일이 오로지 담배 수확과 중노동, 그리고 외로운 삶만을 의미하는 상황에서 해리슨 씨에게 내일의 문턱에서 기다리겠다는 위로는 인간으로서 가장 인격적인 위로였을 것이다.

사실 고뇌에 빠진 사람에게 분명한 메시지를 전하거나 깊은 관심을 드러낼 용기가 가득 찬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그러나 정말로 위로가 필요한 사람에게는 말 한마디, 몸짓 하나도 다르게 다가온다.


  내게도 기억에 남는 위로가 있다. 한동안 입원을 했던 적이 있다. 그때 병동에서 '허그타임'이란 시간이 주어졌다. 담당 간호사가 환자를 안아주는 시간이었다. 사실 내가 입원한 병동에는 중병으로 인해 정기적으로 입원을 하는 환자, 장기입원 환자들이 많아서 간호사와 환자가 친분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입원한지 얼마 되지 않은 나는 괜스레 그 시간이 쑥스러워져서 남의 일처럼 생각하고 있었다. 그때 한 간호사가 다가와 포옹하며 말했다.


"모든 의료진들이 기도하는 마음으로 치료를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꼭 이겨내실 거예요."


 포옹 후 마주친 서로의 두 눈이 붉어져 있었다. 그때의 위로가 가슴속 깊이 박혀있다.

병원은 생사가 넘나드는 곳이고 치유에 대한 갈망이 가장 큰 곳이다. 그렇기에 더욱 외롭고 두려움이 극대화되는 장소이다. 회복을 위한 기다림은 때론 지루함을 넘어 사람을 고립시킨다. 보호자가 옆에 있어도 외로움은 덜해지지 않는데, 기다리는 사람이 없다는 것은 얼마나 비극적인 일일까.


  해리슨이 필요했던 위로는 어떤 멋진 말이나 깊은 관계가 아니었을 것이다. 하다못해 낯선 이에게서라도 수술실에 들어가기 전 의식이 희미해지기 전에 자신을 기다리는 손길을 느꼈다면 달라지지 않았을까.


  결국 위로를 건네는 일은 아주 작은 눈짓에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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