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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필네씨 Aug 16. 2023

영화에 관한 짧은 고찰

바야흐로 OTT 시대다. 영화주간지 <씨네21>은 해마다 연초에 투자배급사 투자책임자들을 만나 그해 영화산업의 향방을 묻는 특집을 진행하고 있다. 2023년부터는 넷플릭스, 디즈니+, 웨이브, 쿠팡플레이, 티빙과 같은 OTT 플랫폼 콘텐츠 책임자들을 만나는 자리를 신설하기도 했다. <씨네21>은 영화와 시리즈의 경계가 무너지고 OTT의 존재감이 급격히 올라가면서 기존 투자배급사만큼이나 이들이 산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커졌으며, 이 추세는 앞으로 더 가속화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하고 있다.


영화산업의 변화처럼 기존에 '관객'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이제 '이용자', '소비자'로 불리는 게 익숙할 테다. 플랫폼이 관객을 끌어모으는 형식이 아닌 이용자가 콘텐츠를 선택하는 방식으로 플랫폼이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누구든 하나씩 구독하는 VOD 서비스가 있듯이 나는 Netflix와 U+모바일tv를 이용하고 있다. 그런데 내가 OTT를 구독하는 이유는 영화나 드라마, 예능을 보기 위한 수단이 아닌 다큐멘터리나 애니메이션을 보기 위한 목적이 크다. 나는 분명 OTT에서 최대한 많은 프로그램과 시리즈를 보는 것이 가성비를 챙기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나는 왜 영화관에 가는가?


그렇게 가성비 갑인 OTT를 모조리 구독 해제했다. 대체 나는 왜 영화관에 가는 것일까? 매번 티켓을 예매하는 번거로움과 비싼 티켓 비용을 감수하고도 왜 영화관에 가는지를 상기시켰다. 나에겐 그건 번거로움이나 값비싼 행위가 아니었다. 아직은 가치있고 합리적인 선택 행위였다. 그에 대한 구체적인 근거를 좀 더 생각해봤다.


우선 환경적인 측면이 크다. 커다란 스크린, 풍성한 사운드, 편안한 의자. 오직 영화에 몰입하도록 만든 암실 같은 공간이 상상의 나래를 펼치기에 제격이다. 또 영화는 일상과의 관계에서 양면성을 드러낸다. 영화는 시대와 사회를 비추는 거울이라는 말처럼 우리의 삶을 지대하게 반영하고 있지만, 반대로 영화는 현실과 대칭을 이루며 가상의 세계로 기능하기도 한다. 이 세계에서 이룰 수 없는 것들을 가뿐히 실현하는 무한한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는 영화를 '내 집'에서 본다는 게 조금 이질적으로 다가온다.


비일상과 치유로서의 영상매체


영상매체는 과거에 비해 더 접하기 쉬워졌다. 하지만 쇼츠, 릴스 등 짧은 동영상이 현재 주류가 되었기에 (영화는 좀 기다리면 OTT에 올라오기도 하니까) 상대적으로 영화는 덜 일상적인 성격을 띠는 것 같다. 이러한 내외적 측면을 고려하면 내가 쇼츠나 릴스 같은 영상들을 안 보는 이유를 알 법하다.


나는 영상매체로부터 특별한 무언가를 얻고 싶어하는 모양새이다. 감정의 동요라든지, 현실도피의 대안이라든지, 창작의 실현이라든지. 영화는 공간적 쓰임새가 되는 동시에 일종의 타임머신처럼 작동하는 신비로움을 지니고 있다.



영화 <프랑스>를 보면서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감정의 굴레에 빠진 적이 있었다. 두 얼굴의 민낯을 가진 프랑스(레아 세두)의 내면을 관철하는 것은 그리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나는 그와 동일한 감정선에 서있었다. 자신을 둘러싼 세계에 균열이 간다고 생각해봤을 때, 프랑스가 흘리는 눈물이 어떤 구석에서는 공감됐다.


누군가를 걱정한다는 마음만큼 관심과 집착을 잘 표현하는 심상이 있을까? 영화 속 인물에 대한 애정이 극에 달하면 불안과 근심이라는 형태로 변하게 된다. 그들에게 나 자신을 위탁한 듯 여러 감정의 고개를 넘나들며 그들과 하나가 되는 기분을 느끼곤 한다. 그들이 겪은 사건, 사고, 위기, 불행이 나의 결험과 중첩되어 보이는 것은 단지 우연이 아닐지도 모른다. 현실에서 외면받던 나의 감정들이 영화를 통해 종종 치유받는 듯했다.


영화는 말 그대로 영화일 뿐이었지만 나는 영화를 보며 현실을 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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