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비닐하우스>
텐트폴 영화들의 드센 기운이 영화관을 휘몰아치고 있는 가운데, 이솔희 감독의 영화 <비닐하우스>가 1만 관객을 돌파했다. 영화관 입장권 통합전산망(KOBIS)에 따르면, 영화 <비닐하우스>는 지난 7일 기준 관객수 1만 명을 넘겼다. 이는 올여름 극장가를 겨냥한 텐트폴 영화들 사이에서 달성한 결과이기에 시사하는 의미가 무척 크다고 할 수 있다. 독립영화로써 이례적인 결과일 뿐만 아니라 영화진흥위원회(KOFIC, 코픽) 한국영화아카데미(KAFA, 카파) 제작 영화 중 약 2년 만에 탄생한 1만 관객 동원 영화이기도 하다.
영화 <비닐하우스>를 둘러싸고 7월 26일 개봉해서 한 달이 채 되기 전에 값진 결과들이 지금 이어지고 있다. 사실은 어떤 영화의 완성도와 많은 것들을 관객수로만 평가할 수 없지만, 그래도 열심히 작업한 사람들에게는 소정의 기쁜 소식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이솔희 감독과 김서형 배우는 개봉 이후에도 꾸준히 관객을 만나고 있다. 인디스페이스 GV에 이어 CGV명동씨네라이브러리 라이브러리톡에서도 관객을 맞이했다. 독립영화 역사에 있는 있는 발자국을 남긴 김서형 주연의 영화 <비닐하우스>를 전격 파헤쳐 본다.
※ 이 글은 <비닐하우스>에 대한 약간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버려진 비닐하우스에 살고 있는 문정(김서형)은 어느 노부부를 돌봄 노동을 하고 있다. 소년원에 있는 아들(정우)이 출소하면 함께 살 제대로 된 집을 구하기 위해서다. 생활력이 강하다거나 억측스러운 면은 보이지 않는 문정. 때로는 자신의 뺨과 몸을 후려갈긴다. 작품 초반부터 자신을 그렇게 자학하는데 비닐하우스뿐 아니라 아들이 수감된 소년원에서 면회를 마치고 나온 후 복도에서도 소년원 직원이 지켜보는 와중에도 자신의 뺨을 아주 거세게 때린다. 남편과의 이별 후 생긴 습관적인 행위인지, 아들과 오롯하게 살지 못하는 자신의 현실에 대한 답답함인지. 절망은 늘 문정의 편에서 문정을 괴롭히는 듯했다.
희망이라는 단어와 잘 어울리는 것들도 있다. 머지 않은 아들의 소년원 출소와 요양보호사로서 태강(양재성)의 집. 그러나 둘 중 하나의 희망은 끝내 문정의 삶을 지옥으로 만든다. 치매를 앓고 있는 화옥(연숙)을 돌보다가 갑작스러운 사고가 발생하게 되고 화옥은 뜻하지 않은 죽음에 이르게 된다. 충격적인 상황에서도 병원에 연락을 취하려고 하지만 동시에 울리는 한 통의 전화, 즉 아들의 전화로 그만두게 된다. 내일이면 퇴소할 아들을 생각하니 그럴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문정은 화옥의 시체를 두고도 아무것도 모르는 시각장애인 태강을 어떻게 속일지 궁리한 끝에 시체를 비닐하우스의 장롱에 은닉하고, 화옥의 빈자리를 대신할 사람으로 화옥처럼 치매를 앓고 있는 자신의 어머니(원미원)를 데려온다. 문정은 한순간의 선택으로 돌이킬 수 없는 결정을 내린다.
문정은 자조모임에 참여하고 있다. 이곳에서 문정은 순남(소요)을 알게 된다. 순남은 지적장애 3급 장애인으로 시설의 선생이라 불리는 남자에게 성폭행을 매일같이 당하며 산다. 문정은 그런 순남을 거리에서 목격하고 태강이 자유롭게 쓰라고 한 차로 자신이 사는 비닐하우스로 순남을 데려온다. 순남은 그때부터 문정에게 같이 살자고 억지를 부린다. 문정의 비닐하우스는 물론이고 문정이 아들과 이사 갈 전셋집까지 자신도 함께 살고 싶다고 떼를 쓴다. 작품 후반에서 문정의 비밀스러운 결정을 알고 있는 순남은 자조모임에서 "아무도 모르게 죽여가지고요. 숨겨놔요."라고 말하며 문정을 긴장 속으로 몰아붙인다.
한국영화아카데미에서 오랜만에 같은 기수에서 여러 가지 성격의 흥미로운 작품들이 많이 나온 해이다. 15기에서 영화 <지옥만세>, <비닐하우스>, <만분의 일초> 예고편을 공개했는데, 그중 비닐하우스가 극장가에서 가장 먼저 만나본 작품이었다. 내가 이 작품을 선택한 이유는 비닐하우스가 마치 '비밀하우스'처럼 신비롭지만 손대서는 안될 것 같은 판도라의 상자같은 인상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감독은 어떻게 영화를 만들게 되었을까. 우선 <비닐하우스>가 이솔희 감독의 첫 장편영화다.
일말의 기대감을 가지고 이 영화를 봤다. 캐스팅이 무려 김서형 배우였기 때문이다. 이 영화에 기대하지 못한 어떤 부분들도 있었고 예상 가능한 흐름도 있었다. 일단 거대한 비닐하우스라는 어떤 캐릭터처럼 보여주고 시작한다. 무생물을 마치 어떤 유기체로서 담아내고 있다는 점이 벌써부터 짙은 인상을 주었다. 검은 천을 둘러싸고 있다는 점에서 시각적인 충격을 주기도 하고 약간의 공포감을 주는 소리를 몰고 오기도 했다. 이 영화의 속도감과 이 영화가 짚어내고 있는 사회적 문제들도 간과할 수 없는 중요한 요소겠지만 감독에게는 '이면'을 보고 싶은 욕망이 넘쳐난다. 덩그러니 놓여 있는 비닐하우스는 어느 인물만큼이나 압도적인 존재감을 표출한다. 강렬한 이미지의 비닐하우스는 마치 무생물의 문정을 빗대어 보여주는 듯했다.
이 감독에 따르면 <비닐하우스>는 이렇게 시작됐다. 선해보이는 인간들의 밑바닥을 막 뒤집어서 파헤치고 싶어하는 욕구가 있었고, 이 영화뿐만 아니라 자신이 가진 성향 자체도 좀 그런 게 있어 자기 자신을 그렇게 보기도 한다고. 그래서 좀 속지 않아야겠다는 생각하고 경계하고 의심하는 행위가 감독한테는 재미로 느껴지는 것 같는데, 창작자로서 무척 흥미로운 태도이다. 실제로 그것이 캐릭터를 만들 때 혹은 바라보게 될 때 중요한 가치가 되었다. 문정의 이면을 보고, 태강의 이면을 보고. 그렇게 모든 사람의 이면을 투영한 결과가 '비닐하우스'라는 영화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문정은 돌봄 노동을 하는 사람이다. '돌봄'이라는 키워드로 문정이라는 캐릭터를 다시 한 번 읽어보면, 문정이 누구를 돌보느냐 그 대상에 따라서 이 캐릭터가 본인의 노동을 생각하는 가치가 조금 달라진다고 생각이 들었다. 예를 들면 치매를 겪는 어머니를 대할 때는 진이 좀 빠져 있는 상태이다. 관성적으로 뭔가를 하는 사람처럼 보인다. 그런데 실제로 요양보호사로 일하고 있는 태강과 화옥의 집에 갔을 때는 그게 '일'이라서 나오는 태도일 수 있겠지만, 문정에게 묘한 생기가 돈다는 느낌을 받았다.
아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영화에서 구체적으로 다루고 있지 않지만 상상해보면, 크게 보면 육아라는 것도 '돌봄'의 테마의 연장선이다. 그런데 문정이 그렇게 아들과의 관계가 아주 즐거웠을 것 같지 않다라는 어떤 암시들이 영화 안에 있다. 문정은 다정하고 상냥한 엄마라기보단 무뚝뚝하고 건조한 엄마로서의 태도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많은 돌봄에도 정작 자기 자신을 돌보지 않는다는 굉장한 아이러니가 있는 캐릭터이다. 돌봄이란 문정을 분명히 지치게 하고, 힘들게도 하지만 동시에 실제로 문정을 살게 하고 움직이게 만드는 동력이겠구나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문정에게 돌봄은 결코 단순한 행위가 아니다.
사건 중심으로 이 영화를 본다면 의도치 않은 살인, 즉 사고가 발생한다. 이때 문정이 대처한 방법은 화옥 대신 자신의 어머니를 태강의 집으로 데려온 것이다. 그게 앞을 보지 못한 태강의 상황과 맞물리면서 기대하지 않았던 어떤 스릴을 만들어내는 장르성을 가지게 된다. 이는 영화를 구상하면서 나온 흐름이거나 자연스러운 선택은 아니었다고 한다. (반전) 처음에 감독은 되게 우울함을 가진 윤리적인 드라마로 풀어봐야겠다고 생각하면서 각본 작업을 했고 편집할 때까지도 스스로 인지를 못했다고 한다. 감독은 부산국제영화제에 이르러서야 자신의 영화가 범죄/스릴러임을 깨달았다고 한다.
감독 내지는 각본가의 시선에서 이 영화가 윤리의 드라마에 가까운 이유는 인간의 심리를 들여다보려 애쓰고 있어서다. 그 촘촘함이 아이러니하게도 사건을 일으키고, 그것이 범죄가 되었을 때 인간은 어떤 선택을 할지 결정을 내리게 한다. 숨막히게 조여오는 진실을 향해 관객은 스릴감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태강이 문정의 어머니로 대체된 새로운 화옥을 얼굴과 손을 만질 때 그리고 화옥이 아닌 것을 직감했을 때 느끼는 감정은 스릴러라는 장르성에 부합한다. 이는 영화 후반에 이르러 자살을 시도하기 전 화옥을 목졸라 죽이려는 태강의 이면적 모습을 통해서도 감각할 수 있다. 비극적 선택의 불가피성과 서스펜스를 동반한다.
감독과 배우 사이에는 어떤 언어적인 교류가 크게 없이도 이 작품에 대한 이해가 서로 있었던 것 같다. 이 영화에서는 문정이 엄마로 나오는 어떤 그 지점이 제일 중요했다. 그 '엄마'로 인해서 누구를 탓하고 살지는 않았지만 나를 지치게 했던 건 비닐하우스에 살게 된 내 모습이나 간병인으로 일하면서 돌봄을 실천하는 문제가 아니라 엄마에서 어떤 주고받는 영역들이 부족하고 희박했지만 정말 아들이랑 살고 싶었을 것이다. 문정을 연기한 김서형 배우는 최후의 문정이 뭐 하나라도 잡아야 된다면 그게 아들이었고, 자신이 연기할 때 지탱했던 중심축이었다고 한다. 그러한 이유로 소년원 면회실에서는 아들을 똑바로 쳐다보는 것과 달리 요양시설에서 자신의 어머니에게는 최대한 눈길을 주려 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준다.
영화는 인간 본성, 표면과 이면, 죽음과 나이듦, 오류, 파국, 역설 등 다양한 가치관이 곁들여져 있다. 누군가에게는 인생을 바라보는 태도에 변화를 줄 수 있는 작품이 될 수 있겠다. 감독, 배우, 관객 모두에게 해당될 것이다. 실제로 김서형 배우는 엄마와의 관계가 깊이 들어가 있는 작품이라고 밝힌 바 있다. 궁극적으로 삶을 만들어 가는 건 언제나 선택과 결정에 달려 있다는 것을 직설하는 듯하다. 엔딩에 이르러 비닐하우스를 태우는 설정은 단순히 범행 증거를 인멸하는 것을 넘어서 문정의 아픈 과거를 태우며 '흘러가고 싶다'고 상념하는 것만 같았다. 과거의 아프고 돌봄이 필요했던 내 삶은 이젠 끝이라고 선언하듯이.
끝으로 영화 <비닐하우스>에 대한 별점과 한줄평을 남기려 한다.
★★★☆
검은 천막에 감춰진 이면을 들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