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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lly May 27. 2024

혹성탈출 : 진화의 시작(2011)

★★★★★ (5)

"순리를 거슬러 맞이하는 참사, 위계를 거슬러 새로 쓰는 역사."


- 혹성탈출 : 진화의 시작

 <혹성탈출 : 진화의 시작>은 루퍼트 와이엇 감독의 2011년작으로, 소설 <혹성탈출>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이다. 영화를 보지 않은 사람이라도 유인원의 지능이 발달해 인간과 대립하게 된다는 이 시리즈의 대략적인 개요는 알고 있을 것이다. 본작은 그러한 대립의 장엄한 시원을 다루는 SF 블록버스터이다.


- 창문으로 바라본 자유를 향한 욕망

 영화에서 시저가 지내던 다락방의 창문은 중요한 심볼의 역할을 한다. 영화 속 창문 기본적으로 자유를 향한 갈망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지만 시점에 따라 세 가지 의미로 세세히 나눌 수 있.


 먼저, 시저가 윌의 집에서 기거하던 때를 살펴보면 창문은 자유를 향한 갈망의 의미를 지님과 동시에 그러한 욕망을 제압하는 요소로 작용한다. 창문의 첫 번째 특성은 투명성인데 이러한 특성은 시저로 하여금 집 밖의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볼 수 있게 해준다. 영화는 창밖을 바라보는 시저의 모습을 다각도로 보여주며 조금씩 싹을 틔우는 시저의 자유를 향한 갈망과 세상을 향한 호기심을 나타낸다. 창문의 두 번째 특성은 폐쇄성이다. 창문에 따라 다르지만 작중 다락방의 창문은 개폐가 불가능한 구조로 되어있다. 이는 시저의 욕망과 궁금증을 제한하는 장치로써 작동한다.

 다음으로는 시저가 보호 시설의 케이지 속에 갇힌 시점이다. 시저는 케이지 속에서 직접 벽에 자신이 지내던 다락방 창문의 문양을 그려 넣는데 여기서 창문은 자유를 향한 갈망을 의미함과 동시에 자신이 살던 편안하고 아늑한 집으로 귀가하고 싶은 시저의 마음을 의미한다고 볼 수도 있다. 자신이 있는 공간과 자신이 있던 공간 사이의 자그마한 공통점만들어 그 둘 사이의 간극을 최대한 좁히고자 한 것이다. 그러나 이후,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 어렵다는 사실을 깨달은 시저는 이내 자신이 그려놓은 창문 문양을 지우는데 이는 자유를 향한 욕망은 가슴에 간직한 채, 집으로 돌아가고픈 마음만을 내려놓은 것이다. 덧붙여 이 장면은 인간과 침팬지 사이에서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고뇌를 이어가던 시저가 침팬지로서의 본인을 선택한 순간이라고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시저를 필두로 한 유인원들이 보호소를 탈출해 도심으로 향하던 시점이다. 집중해서 보지 않는다면 놓치기 십상이지만 자세히 보면 도로 표지판에 그려진 창문 문양을 확인할 수 있다. 여기서도 기본적으로는 자유를 향한 갈망의 의미를 지니지만 전과는 다른 점이 있다면 유인원들은 그들이 갈망하던 자유를 상당 부분 이루어냈다는 점이다. 시저가 그린 이전의 창문은 전부 자유가 억압당한 제한적 공간인 내부에서 그린 창문이라면 이 장면에서 보여주는 창문은 보호소로부터의 질곡에서 벗어난 외부에서 그린 창문이라고 볼 수 있다.


- 진화의 시작, 혁명의 시원

  시저가 처음 인간의 언어를 구사하는 순간, 즉 “NO!”를 외치는 순간은 대부분의 관객들에게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 중 하나일 것이다. 시저가 말을 하기 전, 시저가 일어남과 동시에 카메라는 시저를 로우 앵글로 담아 그의 위세와 위압감을 극대화시킨다. 그리고 시저를 아크샷으로 촬영해 마치 영웅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들도록 만든다. 그런 시저의 “NO!”는 지금 눈앞에서 자신에게 폭력을 구사하는 인간에게 하는 말인 동시에 여태껏 유인원이라는 이유만으로 부조리한 대우를 받던 자신이 살아온 세상을 향해 소리치는 외침인 것이다.


 이 장면은 보는 이로 하여금 크나큰 충격을 안겨준다. 범용성과 체계성을 띄는 인간의 언어는 오랜 세월 인간의 전유물로 여겨져 왔다. 그런 언어를 인간이 아닌 다른 동물이 구사한다는 것은 영화의 제목과 같이 인간에 대적할 만한 새로운 종의 ‘진화의 시작’을 알리는 총성과도 같이 느껴진다.


- 전투 다리에서 벌어지는 이유

 작품의 후반, 주인공인 시저와 유인원들은 다리에서 인간에 대항해 전투를 벌인다. 작중 가장 강렬한 씬 중 하나인 다리 전투 씬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상당히 흥미롭다.


 다리의 역할은 무엇인가? 바로 멀리 떨어진 두 지점을 잇는 것이다. 우리는 무엇과 무엇이 연결되어 있는지 주목할 필요가 있다. 작품에서 다리는 인간의 거주지인 도심을 유인원들이 살아갈 가능성이 열려있는 자연과 이어준다. 때문에 다리에서 보여준 인간과 유인원의 대립은 로 인한 구속과 질곡에서 자유와 진화로 향하는 마지막 통로 역할을 하는 것이다.


 작품 속 다리가 보여주는 특징은 연결성뿐만이 아니다. 다리라는 공간은 사방으로 뻗어나갈 수 있는 공간이 아닌 앞 혹은 뒤로밖에 이동할 수 없는 공간이라는 점을 눈여겨 볼만하다. 이는 유인원들에게 진격 외에 다른 길은 없다는 뜻으로 생각할 수 있다. 다시 인간의 실험체로 억압받으며 살 것인지, 자신들만의 자유롭고 독립적인 삶을 영위할 것인지, 그 여부가 한 번의 전투에 달려있기에 유인원들은 더욱 필사적으로 싸우지 않을 수 없는 상황 속에 놓이게 된다.


 이러한 전투는 본작의 첫 장면과의 대비를 통해 더욱 두드러진다. 영화는 침팬지들의 본거지인 정글 속에서 인간에게 사냥당하는 시저의 엄마를 보여주며 시작한다. 다리에서의 전투 씬은 이와 극명한 차이를 보여준다. 사방으로 움직일 수 있는 자신들의 본거지인 정글에서조차 열세에 놓이던 유인원은 지능이 발달함에 따라 앞뒤로 밖에 움직일 수 없는 인간의 건축물인 다리에서 우위를 점한다. 심지어 시저의 뛰어난 전략은 다리의 전후 방향뿐 아니라 상하 방향까지 이용할 수 있도록 하여 공간적 한계를 극복하고, 인간의 건축물인 다리를 자신들의 공간으로 바꾸어버린다. 인간을 압도하는 전투를 벌이는 모습이, 영화 초반 인간에게 포획당하던 모습과는 대비되어 다리에서의 전투 씬은 더욱 빛을 발한다.


- 영화가 보여주는 심도의 미학


 나는 이 영화를 보며 심도를 훌륭하게 활용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서 ‘심도’란 관객의 시선과 영화의 스크린을 수직 방향으로 잇는 움직임을 말한다. 작중 심도가 돋보인 장면은 크게 둘로 나뉜다.


 먼저, 피사체는 정지해 있고 카메라가 움직이는 방식으로 촬영된 장면이다. 이는 시저가 처음 보호소에 갇혔을 때 확인할 수 있다. 영화에서는 양옆 케이지 안에 갇힌 유인원들의 모습을 카메라가 뒤로 이동하며 촬영한다. 패닝과 같이 카메라를 좌우로 움직이는 기법이 아닌 카메라를 전후로 움직이는 기법을 통해 프레임 내에 담기는 유인원의 수를 극대화하여 학대받는 유인원의 수가 적지 않음을 강조한다. 동시에 카메라는 학대받는 유인원과 그들을 둘러싼 참담한 보호소의 환경을 촬영해 유인원이 당하는 부조리한 대우의 참혹성을 드러낸다. 이 장면이 심도를 탁월하게 활용한 장면이라 생각한 이유는 이뿐만이 아니다. 바로 카메라를 ‘뒤로’ 이동시켰다는 점이 눈여겨 볼만하다. 카메라를 앞으로 이동시키며 촬영하는 경우와 달리, 카메라를 뒤로 이동시키며 촬영하면 그 끝을 알 수 없기에 갇혀있는 유인원의 수를 정확히 파악하기 어렵다. 때문에 관객은 눈앞에 보이는 내화면 뿐 아니라 카메라의 뒤에 있는 외화면까지 케이지 속에 갇혀 있는 유인원들이 가득할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는 것이다. 더욱 나아가서는 카메라가 아닌 영화를 보고 있는 관객의 뒤쪽까지 그러한 광경이 기다리고 있다는 느낌이 들게 한다.


 다음으로, 카메라는 정지해 있고 피사체가 움직이는 장면이다. 이는 영화 후반부, 유인원들이 보호소에서 탈출해 도심으로 다가오는 장면에서 확인할 수 있다. 차를 운전하던 사람, 조깅을 하던 사람은 멀리서 수없이 많은 나뭇잎이 떨어지는 광경을 목격한다. 나무를 타고 도심으로 이동하는 유인원들로 인해 나뭇잎이 떨어지는 것이지만 유인원의 모습이 보이지 않기에 영화 속 인물들은 이를 알지 못한다. 따라서 이 장면은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지 못한 채 기이한 광경을 목격하는 영화 속 인물들의 감정을 관객에게 잘 전달해 준다. 한편, 유인원들이 접근하는 중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관객들에게는 유인원들의 모습을 보여주지 않고도, 간접적으로 그들의 위압감과 기세를 보여준다는 측면에서 탁월한 장면이라고 말할 수 있다. 비록 짧은 장면이지만 뇌리에 깊게 박힌 장면이다.


- 마치며...


 본작에서는 인간 측 인물들이 상대적으로 평면적인 인물로 그려진다. 인물이 평면적으로 그려진다는 말은 자칫 부정적인 어조로 다가올 수 있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이 작품에선 윌의 과거를 통해 개인적인 서사를 보여주거나, 윌의 가치관이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영화의 핵심은 인간이 아닌 유인원이기 때문이다. 불긴한 것을 넣지 않고, 꼭 필요한 요소들로만 영화를 완성시켰다는 점은 이 영화의 작품성을 높이는 데 일조한다. 인류와 맞먹는 뛰어난 지능을 갖게 된 유인원의 시초, 인간과 침팬지 사이에서 정체성에 대한 고뇌를 보여주는 존재, 인간에 대항하는 새로운 존재의 등장, 그들의 첨예한 대립까지 <혹성탈출 : 진화의 시작>은 탁월하게 다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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