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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lly Apr 08. 2024

어파이어(2023)

★★★☆ (3.5)

"만남이라는 바다를 등진 채 아욕이라는 화마에 휩싸인다."


- 어파이어

 <어파이어>는 크리스티안 페촐트 감독의 장편 영화로 주인공인 레온이 펜션에서 새로운 사람들과 만난 뒤, 그의 주위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다룬다. 이 작품은 누구나 이해하기 쉬운 비유적 표현으로 한 인물의 이기심과 그악스러운 욕망을 그려낸다.


- 제목의 의미


 본작의 제목인 <어파이어(afire)>가 지닌 사전적 의미는 다음과 같다.

1. 불타서

2. (감정이) 격하여

영화에서는 산불이 걷잡을 수 없이 퍼지는데 이러한 부분을 첫 번째 뜻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불에 타는 것이 산뿐만은 아니다. 후술 하겠지만 주인공인 레온의 심리는 극이 진행될수록 격해진다. 이러한 부분을 두 번째 뜻에서 알아차릴 수 있다. 때문에 영화의 제목은 안팎으로 종잡을 수 없이 퍼지는 불길을 함축적으로 표현했다고 볼 수 있다.


- 작품 속의 붉은색

 누군가 불을 상징하는 색을 떠올려 보라고 한다면 십중팔구 붉은색을 떠올릴 것이다. 이 영화에서도 그러한 점을 작품에 녹여내고 있다. 영화가 시작하면 <어파이어>라는 영화의 제목이 붉은색으로 나타나 영화를 보기 시작한 관객들의 이목을 강렬하게 끔과 동시에 영화에서 무척이나 중요하게 사용되는 소재인 불의 이미지를 강하게 제시한다. 이와 같은 강렬한 붉은색은 나디아에게서도 찾아볼 수 있다. 나디아는 작중 붉은 옷을 즐겨 입는다. 특히 작품의 초반부에 붉은색 원피스를 입고 있는데 이는 나디아가 후에 레온 내면의 욕망에 불을 지피는 데 크게 일조하는 인물임을 암시한다고 볼 수 있다.


- 스스로를 소외시키는 레온

 레온은 영화 전반에 걸쳐 다른 등장인물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한 모습은 영화의 여러 장면을 통해 여실히 드러난다. 레온을 제외한 세 인물은 펜션에서 잠을 자지만 나디아와 데비트로 인한 소음으로 인해 잠을 잘 수 없는 레온은 실외에서 잠을 청한다. 이 장면에서 레온과 나머지 인물들의 관계가 공간적으로 구분되어 있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다음 날 아침, 레온과 나디아의 첫 만남에서도 창문을 사이에 두고 레온은 실외, 나디아와 펠릭스는 실내에 위치하며 홀로 떨어져 있는 레온을 볼 수 있다. 모두 실외에 위치할 때에는 카메라의 위치로 레온의 소외감을 극대화했다. 그들이 함께 모여 저녁 식사를 할 때에는 데비트, 나디아, 펠릭스의 얼굴 정면과 측면을 촬영하는 동시에 레온의 뒷모습을 보여주어 같은 공간에 있음에도 함께 어울리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을 강조했다.


 레온이 이렇게 고립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표면적으로는 일 때문이다. 그는 일이 자신을 허락해주지 않는다는 핑계를 대며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는 시간을 포기하고 있다. 그러나 그가 고립되는 이유는 사실 일이 아닌 그에게 있다. 글을 쓸 수 있는 시간이 주어져도 그는 글을 쓰지 않는다. 레온은 그저 자신을 제외한 나머지 인물들이 서로 화기애애하게 지내는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았을 뿐이고, 그런 그들에게 이유 없이 심술을 부린다고 볼 수 있다. 나디아나 데비트, 펠릭스 모두 레온을 소외시킨 적이 없으며 오히려 함께 어울리려고 했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그는 지킬 필요 없는 자존심을 지켜가며 스스로를 소외시키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 아욕이라는 화마

 작품을 감상한 사람은 누구나 눈치챌 수 있듯 레온은 상당히 자기중심적이고 오만한 면모를 보여준다. 이러한 그의 성격으로 인해 그는 주변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고, 때문에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을 쉽사리 파악하지 못한다. 예를 들어, 레온은 나디아가 문학 전공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고, 펠릭스와 데비트의 관계에 대해서도 뒤늦게 깨달았으며, 헬무트의 발암 사실 또한 나디아가 직접적으로 말해주기 전까진 눈치채지 못한다. 이러한 그의 상황을 산불에 비유할 수 있다. 산불이 그의 주변을 감싸 그를 옥죄어 오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산불의 접근을 눈치채지 못한 것과 같이 그는 자기 자신만을 바라보고, 관계에 적극성을 가지지 않아 자신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눈치채지 못하고 모든 사건이 끝나버린 뒤에 뒤늦게 알아차린다.  


 작품 속에서 산불은 레온의 외부에서만 그를 감싸는 것이 아니다. 레온의 이기심이나 결여된 사회성과 같이 그의 내면에 자리 잡고 있는 요소들, 극이 진행되며 강렬해지는 나디아에 대한 마음 또한 산불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바라본다면 레오는 안팎으로 걷잡을 수 없이 번지는 화마에 휩싸인다고 볼 수 있다. 


 덧붙여, 헬무트가 있는 병원으로 향하던 레온은 산불에 의해 불에 타 죽는 멧돼지를 발견한다. 여기서 우리는 멧돼지가 레온에 비유되는 존재임을 금세 알아차릴 수 있다. 불행히도 자신을 둘러싼 화마를 눈치채지 못한 채 생을 마감하는 멧돼지는 레온에 비유되어 레온의 미래를 암시하고 있다는 해석을 가능하게 한다.


- 레온이 외면한 기회

 그렇다면 레온이 자신의 안팎을 사로잡은 불길로부터 도망칠 길은 없었을까? 사실 그에게는 작품 전반에 걸쳐 언제든 불길로부터 구원받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레온의 친구인 펠릭스가 쓰는 포트폴리오는 물에 관한 것이고, 펠릭스는 거듭 그에게 바다에 수영하러 가자며 그를 설득한다. 이러한 부분들을 고려한다면 펠릭스는 물을 상징하는 인물이라고 볼 수 있다. 펠릭스뿐 아니라 데비트도 그를 구할 수 있는 인물이었다. 그는 바다에서 일하며 심지어는 사람을 구하는 인명구조원이기 때문이다. 레온은 바닷가에 가서도 수영을 하지 않고, 모래사장에 머무는데 이는 그에게 구원의 손길이 코앞까지 다가와도 그 손을 잡지 않는 레온의 모습을 보여준다. 왜냐하면 그는 앞서 말한 것과 같이 자신의 이기심으로 인해 주변으로부터 스스로를 소외시키고 있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레온이 자신의 처지를 깨달을 수 있는 기회는 이외에도 있었다. 레온이 중요한 얘기를 하려고 할 때마다 주변의 방해를 받아 그의 말이 끊기는 장면을 살펴볼 수 있다. 나디아가 문학을 전공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레온은 그녀에게 왜 그 사실을 말하지 않았냐며 따지려 드는데 순간 헬무트가 쓰러져 레온의 말이 끊기고 만다. 그리고 레온이 나디아에게 자신의 마음을 고백할 때에도 펠릭스와 데비트의 죽음을 알리러 온 경찰들에 의해 고백을 방해받는다. 이러한 상황들은 레온에게 그를 휩싸는 산불을 알리는 경종으로써 작용한다고 생각된다. 그가 하려 한 말들은 모두 그에게만 중요한 이야기들이었고, 그의 주위에는 그보다 훨씬 중요한 일들이 펼쳐지고 있었다. 이러한 점을 생각한다면 위와 같은 상황은 자신만을 생각하는 그에게 그를 둘러싼 산불을 환기시키는 경고의 역할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


- 여전히 열려있는 미래

 모든 사건이 마무리되고 난 후 레온은 그에게 벌어진 사건을 하나의 책으로 만든다. 그가 이 이야기를 책으로 썼다는 것은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책쓰는 것은 레온의 주된 관심사이다. 그런 그가 본인이 펜션에서 겪은 일을 책으로 썼다는 것자신뿐 아니라 자신을 둘러싼 관계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는 뜻이다. 그가 가진 가장 심각한 문제 하나는 자기 이외의 사람들에게 관심이 없다는 것인데 집필통해 그러한 문제를 극복했다고 있다.


 또한 레온이 그의 경험을 바탕으로 책을 집필했다는 사실은 영화 자체가 그가 쓴 책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들게 한다. 영화에서는 레온의 이기적인 면모, 주위에 무관심함을 보여주는 면모가 여실히 드러난다. 그런데 그러한 모습들을 그 스스로 바라보며 자신의 책에 담았다고 본다면 그는 이제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며 자신의 언행을 반성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는 뜻이다. 


 펠릭스는 바다에서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의 사진을 찍는다. 펠릭스는 각각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의 뒷모습과 앞모습을 찍는데 유일하게 나디아의 사진만 앞모습을 찍은 사진 대신 바다를 찍은 사진으로 대체되어 있었다. 이는 펠릭스가 그 사람들이 바라보는 바다를 찍어보는 것도 좋겠다고 얘기한 헬무트의 제안을 받아들인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왜 나디아의 사진만이 그녀의 앞모습 대신 바다로 대체된 것일까? 헬무트의 발언을 통해 알 수 있듯 사진 속 바다는 그냥 바다가 아니 나디아가 바라보고 있는 바다이다. 즉, 나디아는 눈에 바다를 품고 있는 여성이고, 레온을 구원할 수 있는 여성이다. 그러한 상황 속에서 레온은 나디아, 펠릭스, 데비트와 있었던 일을 책으로 만들어냈고, 이로 인해 앞서 말한 것과 같이 자신의 모습을 되돌아보고 주변과의 관계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 되었다. 레온은 자신을 구원해 줄 수 있는 여성인 나디아와 재회하고 나디아는 이전과 달라진 그에게 미소를 지으며 영화는 끝이 난다. 자신의 한계를 극복한 그에게 나디아가 보여준 미소는 긍정적인 미래를 암시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 마치며...


 작품은 레온과 그를 둘러싼 세계를 산불이라는 소재로 훌륭하게 그려내었다. 이 작품에서는 내면의 문제를 지닌 한 사람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의 한계를 극복하고 이겨내기 위한 기회를 지속적으로 제시하기도 한다. 레온과 같이 부족한 사회성이나 이기심이 아니라 하더라도 우리는 누구나 자신만의 문제가 있기 마련이다. 우리는 항상 부족한 존재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는 사실을 이 영화는 우리에게 상기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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