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가니>는 광주 인화학교 사건을 바탕으로 쓰인 소설 <도가니>를 원작으로 한 동명의 작품이다. 이 영화는 청각 장애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이루어진 끔찍한 성폭행과 아동 학대를 서울에서 온 신입 교사의 시각으로 관객들에게 고발한다.
- 제목의 의미는 무엇일까?
‘도가니’라는 이 작품의 제목은 얼핏 들어선 작품의 내용과 연결점을 찾기 어렵다. 때문에 영화를 감상하고 나니 문득 제목을 ‘도가니’라고 지은 이유가 궁금해져 그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았다.
1.
명사) 쇠붙이를 녹이는 그릇. 단단한 흙이나 흑연 따위로 우묵하게 만든다.
2.
명사) 흥분이나 감격 따위로 들끓는 상태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두 번째 뜻은 비교적 직관적으로 작품과 결부시킬 수 있다. 작중 주인공 일행은 가해자들의 비루하고 추악한 행위로 인해 주체하기 힘들 정도로 들끓는 분노와 분격을 경험한다. 물론 그것은 등장인물만이 느끼는 감정은 아니다. 이 영화를 본 관객들 혹은 어떠한 형태로든 이 사건을 접한 독자들에게도 여실히 느껴지는 감정이다. 한마디로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부글부글 끓게 만든다.’라고 표현할 수 있겠다.
첫 번째 뜻은 간접적으로 작품과 연관시킬 수 있다. 영화의 마지막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우리가 세상을 바꿔야 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우리를 바꾸지 못하게 해야 한다.” 도가니는 위의 적힌 뜻에서 알 수 있듯 쇠를 녹여 쇠의 성질이나 형태를 바꾼다. 쇠를 피해자들로, 쇠를 녹이는 그릇을 피해자들을 둘러싼 세상, 즉 가해자들로 생각한다면 가해자들이 피해자들의 인격을 짓밟지 못하게 해야 하고, 피해자들을 가치 없는 사람으로 만들지 못하게 해야 한다는 의미로도 볼 수 있다. 그렇기에 해당 작품의 제목은 가해자들에게 유린당한 피해자들의 인권을 회복시키기 위한 노력이나 의지로 읽을 수 있다. 혹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바뀌지 않는 가혹한 현실을 이야기하고 있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 포스터 통해 말하고자 한 것
작품의 포스터에선 주인공 일행이 카메라를 정면으로 쳐다보고 있어 관객들로 하여금 눈을 마주치고 있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보통 영화에선 관객과의 눈 맞춤을 지양하는 편이다. 그 이유는 배우가 카메라를 정면으로 바라보게 되면 관객이 자신이 보고 있는 영화가 현실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으며 몰입이 깨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포스터에선 오히려 관객과 부담스러울 정도로 눈을 맞추고 있는데 그 이유는 두 가지로 추측된다. 첫 번째는 이 사건을 일으킨 가해자들과 그들의 행동을 묵비한 방관자들에게 두려움의 감정 혹은 경멸과 혐오의 감정을 전달하기 위함이다. 그다음으로는 이 사건과 무관한, 이 사건을 몰랐던 관객들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점을 미루어 보아 이 영화가 추구하는 목적 중 하나인 사건의 공론화가 핵심적인 소구점으로자리매김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 작품 속 '손'이 가지는 의미
아무래도 폭행당하는 청각 장애인들을 대상으로 한 작품이기에 그들이 사용하는 수화의 핵심인 ‘손’을 클로즈업으로 촬영한 장면이 많았다. 대개는 인물의 얼굴을 클로즈업으로 촬영해 감정을 담는 경우가 많은데, 그들에게는 손이 입과 같은 역할을 하기에 손을 통해 감정을 전달했다는 점이 눈여겨 볼만하다. 흥미로운 점은 교장이나 행정실장, 그 외 교사들의 손은 상당히 추악한 행동을 하는 데에 사용되었다는 점이다. 같은 신체 부위이지만 가해자들이 사용할 때는 폭행이나 성추행과 같은 행위에 역겹게 사용되었고, 피해자들이 사용할 때는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말하는 행위에 처연하게 사용되어 이 둘의 대조가 확연히 드러나도록 했다.
작품 속에서 손과 같은 역할을 하는 장치가 하나 더 있는데, 바로 ‘음악’이다. 가해자들은 성폭행을 하면서 음악을 듣고, 재판에서 가벼운 형량을 받은 뒤 노래를 부른다. 반면, 피해자는 재판장에서 자신이 청각 장애인임에도 불구하고 노랫소리를 희미하게 들을 수 있다는 점을 증명하며 자신의 주장을 입증할 때 음악을 듣는다. 이와 같이 두 대상을 대극점에 위치시키고 그 성질을 극도로 대조시키는 장치로 손과 음악이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 멀리서 보아도 비극, 가까이서 보아도 비극
클로즈업 쇼트에서는 인물의 표정을 자세히 읽을 수 있어 그 인물의 감정에 동화되기 쉽다. 그리고 롱 쇼트에서는 인물과 배경을 한 화면의 담아 그 관계를 함축하기 용이하다. 이 영화에서는 가장 비극적인 장면인 성폭행 장면을 다룰 때에 두 기법을 모두 사용했다. 클로즈업 쇼트로는 인물의 표정을 여실히 드러내 관객이 그 불쾌감과 공포감, 극도의 불안감을 경험하게 했고, 롱 쇼트로는 성폭행을 당하는 피해자를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느낌을 강하게 유발했다.
- 씻을 수 없는 찝찝함을 극대화하는 현실
영화를 보고 실제 사건인 광주 인화학교 사건을 찾아보았고, 영화에서 느낀 불쾌함은 더욱 짙어졌다. 실제로는 7세부터 22세까지 남녀를 가리지 않고 영화에서 보여진 것보다 훨씬 심한 폭행을 당하고, 더 가벼운 형량을 받았다는 사실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영화에서와 마찬가지로 다들 사건을 은폐하고, 책임을 회피하기에 바빴다고 한다. 이 작품을 통해 사건이 공론화되고 나서야 재수사를 시작했다는 사실 또한 역겨움을 더했다. 무엇보다 충격적이었던 것은 사건 이후에도 가해자들이 교직 생활을 이어갔다는 사실이었다.
- 마치며...
이 영화는 그저 영화의 막을 내릴 때 영화와 함께 끝나는 흥미를 제공한 것이 아니라, 훨씬 잔인했던 실제 사건을 전 국민에게 전했다는 점에서 흥미 제공 이상의 가치를 지닌다고 볼 수 있다. 그들을 둘러싼 잔인한 세상이 그들을 바꾸지 못하게 하는 것에서 그칠 것이 아니라, 더 나아가 따뜻하고 포근한 세상이 그들을 둘러싸는 그날이 오기를 우리는 염원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