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
"일망무제한 시간의 질곡과, 망무제애한 공간의 왜곡을 떨쳐내는 태초의 인력은 결국."
<인터스텔라>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작품으로, SF 역사에 시금석으로 자리매김할 만한 대작이다. 인간의 창의성의 한계는 과연 어디까지일까. 모든 방면에서 유수의 성취를 거둔 <인터스텔라>를 보고 있노라면 이런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다. 가족 혹은 연인 간의 사랑, 삶과 죽음 앞에 선 인간의 심리, 흥미진진한 스토리와 웅장한 음악까지 이 영화는 무엇 하나 놓치지 않는다. 지금부터, 치밀하고도 섬세하게 빚어낸 이 놀라운 걸작을 세밀하게 파헤쳐보고자 한다.
영화의 시대적 배경은 2067년으로, 인류는 기상 악화로 인한 황사와 병충해로 인한 기근에 시달린다. 한편, NASA의 테스트 파일럿이었던 주인공 쿠퍼는 알 수 없는 신호를 받아 NASA 기지를 찾게 되고, 인류 거주 가능 행성 탐사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된다. 하지만 각고의 모험을 감행한 쿠퍼가 맞닥뜨린 것은 존 박사와 만 박사의 거짓말과 배신이었다. 크나큰 시련과 좌절을 뒤로한 채, 미지의 공간 속에서 쿠퍼는 머피와의 극적인 교류에 성공하며 프로젝트를 완수한다. 마침내 쿠퍼는 머피와의 눈물겨운 재회에 성공하지만 아멜리아가 여전히 표류하고 있음을 전해 듣는다. 영화는 아멜리아를 구조하러 나서는 쿠퍼와 구조를 기다리는 아멜리아의 뒷모습을 보여주며 막을 내린다.
이 영화에서 눈여겨 볼만한 것은, 영화의 스토리가 수미상관의 구조를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쿠퍼가 집을 떠나는 장면에서 지구를 떠나는 장면으로 전환될 때, 감독은 J컷을 이용해 화면을 전환시킨다. 후행하는 장면의 사운드를 선행하는 장면에 덧입히는 연출 기법인 J컷을 통해, 삶의 터전인 지구와 집을 일치시키고 있는 것이다. 더 나아가 생각해 본다면 집과 지구, 그리고 쿠퍼의 가족까지도 동일 선상에 놓인다. 훗날, 쿠퍼의 아들과 딸은 각각 농부와 NASA의 직원으로서 장성하게 되는데, 이는 언뜻 보면 쿠퍼 자신의 모습을 나누어 투영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생각해 본다면 쿠퍼의 모험은 집과 지구, 가족뿐 아니라 마치 자신까지도 남겨두고 떠나는 여정이라고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여정은 한편으로 모순적이기도 하다. 그 이유는 이 여정의 목적에 있다. 이 여정의 목적은 인류가 거주할 수 있는 새로운 행성을 찾는 것이다. 다시 말해, 쿠퍼는 집을 찾기 위해 집에서 멀어지는, 집을 지키기 위해 집을 떠나는 역설적인 상황에 놓이게 된다. 이러한 구조는 영화에서 가장 결정적인 순간에 벌어지는 사건과도 맞닿아 있다. 여정의 끝에서 쿠퍼는 자신을 NASA 기지로 안내한 것이 바로 자신이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와 같은 역설적 수미상관의 구조는 이야기를 한층 더 깊이 있게, 또 흥미진진하게 구축하는 중요한 틀이 된다.
중력은 작품에 등장하는 가장 중요한 소재 중 하나이다. 중력은 영화 속에 등장하는 수많은 우여곡절의 순간과 결부되어 관객에게 시종 흥미로운 사건을 제공한다. 뿐만 아니라 주제적인 측면에서도 너무나 중요하다고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중력은 작품의 핵심인 사랑에 비유되고 있기 때문이다. 중력은 물체와 물체가 서로를 끌어당기는 힘이다. 마찬가지로 사랑 역시 동일한 특성을 지닌다. 다시 말해, 사랑이란 사람과 사람이 서로를 끌어당기는 감정적인 인력인 것이다. 중력과 사랑이 공유하고 있는 또 다른 특징은 시공간을 초월한다는 점이다. 영화 속 인물들의 대사로 미루어 보아 중력은 시공간을 초월하는 힘이다. 사랑 역시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아무리 긴 시간이 흐른다 해도 사랑은 쿠퍼와 머피를 이어준다. 그렇게 쿠퍼는 터무니없는 각고의 모험을 사랑이라는 초월적 인력으로 이어나간다.
영화 속 가장 인상적인 장면 중 하나를 꼽으라고 한다면 쿠퍼가 인듀어런스 호에 도킹하는 장면을 꼽는 사람도 적지 않을 것이다. 더없이 급박하고 위험한 상황 속, 불가능에 가까운 도킹 시도를 성공해 내는 이 장면은 가히 압도적이다.
케이스 : 그건 불가능해요!(It's not possible!)
쿠퍼 : 아니, 불가피하지.(No, It's necessary.)
불가능한 도전이라고 쿠퍼를 말리는 케이스에게 쿠퍼는 불가피한 일이라고 대답한다. 이 대사는 도킹 장면뿐 아니라, 영화 전반에 적용될 수 있는 대사이다. 왜냐하면 이 모든 여정은 불가능하지만 불가피한 일이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한 두 가지 측면을 살펴본다면 영화의 클라이맥스가 왜 블랙홀에서 펼쳐지는지 이해할 수 있다.
첫 번째 이유는 블랙홀이 중력의 집약체라고 할 수 있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블랙홀엔 빛조차 탈출할 수 없는 막대한 중력이 작용한다. 중력은 곧 사랑과 동일시되기에, 다시 말하면 블랙홀은 엄청난 사랑이 작용하는 곳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사랑을 깨닫는 공간이기도 하다. 쿠퍼와 머피는 시공간을 초월하는 사랑으로 프로젝트를 성공시켜 인류를 구원해 낸다.
두 번째 이유는 블랙홀은 불가해한 공간이기 때문이다. 작중 대사에 따르면, 블랙홀은 여전히 과학이 풀어낼 수 없는 미지의 공간으로 그려진다. 말하자면 불가능한 공간이고, 불가해한 공간인 것이다. 하지만 그렇기에 더욱, 불가능하지만 불가피한 미션의 성공을 역설하는 위 대사가 블랙홀이라는 미지의 공간에 얹히면서 쿠퍼의 여정은 성공적으로 막을 내린다.
쿠퍼가 모험을 감행하면 할수록 딸 머피와의 시간은 점점 더 어긋난다. 그 이유인즉슨, 쿠퍼가 머피로부터 지속적으로 멀어지고 있을 뿐 아니라 여러 행성의 강한 중력의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이에 쿠퍼의 시간은 지구의 시간, 즉 머피의 시간과 점차 어긋나게 되는데, 이는 마치 관계에 대한 비유처럼 보이기도 한다. 쿠퍼와 머피의 관계, 내지는 머피와 톰의 관계가 시간의 왜곡으로 표현되는 것이다. 지속적으로 시간의 어긋남, 즉 관계의 틀어짐이 축적되자 집에 남겠다는 오빠와 지구를 떠나야 한다는 머피의 반목이 극에 달한다. 그러나 결국에 블랙홀 속 쿠퍼와 지구의 머피의 소통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지자 갈등이 해결된다. 이는 곧, 둘의 시간이 동기화되었기에 그들의 관계 역시 조화를 이루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시간과 관계를 동일시하는 관점으로 영화의 클라이맥스를 조명해 본다면, 소통의 도구인 시계 역시 달리 보인다. 왜 하필 시계였을까에 대한 두 가지 새로운 견해를 떠올리게 된다.
첫 번째는 시계가 머피를 향한 쿠퍼의 사랑을 상징하는 물건이기 때문이다. 앞서 서술한 것과 같이 사랑은 시공간을 초월해 프로젝트를 성공으로 이끈 가장 핵심적인 힘이다. 쿠퍼가 머피에게 선물해 준 시계는, 딸을 향한 애정이 듬뿍 담긴 물건이기에 문제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단초가 된다.
두 번째 이유는 시간이 관계와 엮여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작중 모든 갈등과 반목으로 점철된 관계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시간의 동기화이다. 이에 여정을 떠난 쿠퍼의 시간과 머피의 시간이 일치되자 문제가 해결되고, 그 둘의 소통 수단이 시계인 이유는 여기서 기인한다.
소설이나 영화를 비롯한 여러 예술작품을 감상할 때, 그 작품을 더욱 깊게 향유하는 방법 중 하나는 인물의 이름에 착목하는 것이다. <인터스텔라> 역시 마찬가지다. 이 작품에선 딸의 이름인 머피가 그러하다. 머피라는 이름을 들으면, 머피의 법칙이라는 말이 저절로 떠오른다. 머피의 법칙은 "잘못될 수 있는 일은 잘못되게 마련이다."라는 의미를 지닌다. 머피가 이를 나쁜 일이 일어난다는 뜻으로 생각해 쿠퍼에게 항의하자 쿠퍼는 일어날 일은 반드시 일어난다는 뜻이라며 설명해 준다.
머피의 법칙에 대한 쿠퍼의 견해는 딸을 향한 위로의 말에서 그치지 않고, 그가 수행하게 된 프로젝트에 덧입혀진다. 머피는 머피의 법칙을 나쁜 일이 일어난다는 뜻으로 생각한다. 머피의 법칙에 관한 머피의 오해는 좌절되고 실패를 겪는 쿠퍼의 모험을 상징한다. 그러나 쿠퍼는 일어날 일은 반드시 일어난다는 뜻이라며 그녀의 오해를 바로잡아 준다. 이는 곧, 앞선 실패에도 불구하고 부녀가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고, 해피엔딩을 맞이하는 것이 반드시 일어날 일이라는 점을 암시하는 듯 보인다.
작품의 소재는 과학이다. 그중에서도 중력과 관련된 아인슈타인의 일반 상대성 이론이 중용된다. 이와 관련된 과학적 설정을 매우 소상히 다루어 스토리에 디테일을 더한다. 혹자는 이 영화가 지나치게 과학적이라며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하지만 영화를 집중해서 본다면 비교적 쉽게 관련 지식을 터득할 수 있다. 게다가 설령 과학적 설정을 이해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영화를 이해하고 즐기는 데에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전문 지식을 소재로 사용하면서도 쉽게 감상할 수 있도록 만든 것이 이 영화의 강점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인터스텔라>의 진짜 놀라운 점은 위와 같은 사실이 아니다. 이 영화는 과학을 통해 사랑을 비추며 괄목할 만한 성취를 이뤄낸다. 작품의 소재는 과학이지만, 작품의 주제는 사랑이다. 때문에 영화의 소구점이 과학이라고 예단한 관객들에게 신선한 충격과 적잖은 감동을 안겨준다. 다시 말해, 과학과 사랑을 더없이 조화롭게 엮어가며 놀라운 이야기를 선사한다는 점이 이 영화의 진정한 강점이라고 할 수 있다.
과학과 사랑의 연결점은 등장인물을 통해서도 찾아볼 수 있다. 영화 속, 인간의 동료는 과학 기술의 집합체라고 할 수 있는 인공지능 로봇, 타스와 케이스이다. 그들은 쿠퍼 일행과 함께 힘을 합쳐 반복되는 고난을 극복해 낸다. 이와 같은 일련의 과정은 이 작품이 과학과 사랑의 합일을 다루고 있다는 점과 맞닿으며, 과학 기술과 인간의 조화로운 융합을 시사한다.
영화 속, 시각효과에 대해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영화는 보이지 않는 것 혹은 보지 못한 것들을 시각적으로 너무나도 탁월하게 묘사해 낸다. 관객은 블랙홀과 웜홀, 그리고 행성이 보여주는 경이로운 경관에 압도된다. 특히 블랙홀을 묘사하는 장면에서는 마치 실제로 우주 공간에 놓여 블랙홀을 보고 있는 것과도 같은 황홀경에 빠지게 마련이다.
그런데 보이지 않는 것은 과학적 상상력뿐만이 아니다. 영화의 주제인 사랑 역시 마찬가지다. 사랑은 추상적인 감정이기에 보이지 않고, 볼 수 없다. 시각적인 측면과 주제적인 측면이 모두 비가시적인 것이다. 다시 말해, 본 작은 보이지 않는 과학적 상상력과 사랑을 모두 탁월하게 그려냈다고 할 수 있다.
영화의 중반부, 쿠퍼 일행은 에드먼즈 박사의 행성과 만 박사의 행성 중 어디로 향할 것인가에 관한 문제를 맞닥뜨리며 양자택일의 기로에 놓인다. 에드먼즈 박사의 행성은 신호가 끊긴 반면, 만 박사의 행성에선 신호가 지속적으로 오고 있었기 때문에 쿠퍼를 비롯한 일행은 만 박사의 행성으로 향할 것을 주장한다. 오직 아멜리아만이 줄곧 만 박사의 행성이 아닌 에드먼즈 박사의 행성을 탐험하자는 입장을 견지한다. 하지만 그들이 과거 연인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며, 팀원들은 그녀가 판단력을 상실했다고 여기고 만 박사의 행성으로 향한다.
그러나 계산 결과와는 반대로 만 박사의 행성이 아닌 에드먼즈 박사의 행성이 인류의 새로운 터전이 될 가능성이 훨씬 높았음을 엔딩씬은 보여주고 있다. 그 이유인즉슨, 에드먼즈 행성은 아멜리아와 에드먼즈 박사 사이에 감정적 인력, 즉 두 사람의 사랑이 서로를 이끄는 곳이기 때문이다. 영화의 엔딩씬에선 에드먼즈 행성에서 구조를 기다리는 브랜드 박사를 비추며, 마지막까지 이성이나 논리에 선행하는 사랑의 힘에 대해 끈질기게 천착한다.
에드먼즈 행성이 인류의 새로운 터전이 될 수 있음을 짐작해 볼 수 있는 근거는 이외에도 많다. 머피는 에드먼즈 행성이 인류의 새로운 터전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에드먼즈 행성에서 표류하고 있는 아멜리아의 모습에 그녀의 희망적인 대사가 얹히게 된다. 뿐만 아니라 영화는 마지막으로 브랜드의 뒷모습과 과학 기지들을 보여준다. 원경에 위치한 과학기지들은 마치 인간의 거주를 암시하는 것처럼 보인다. 결국, 영화는 사랑의 힘을 통해 인류의 미래에 관한 희망을 긍정하며 막을 내린다.
어마무시한 태초의 폭발로 시작한 우주. 수없이 반복된 핵융합을 통해 92억 년이 지나 만들어진 태양계. 태양계의 행성 중 유일하게 생명이 피어난 지구. 46억 년이 지나 지금 여기서 만난 우리. 138억 년이라는 영겁의 시간과 무한히 확장되고 있는 광활한 우주 공간 속에서 지금 내 눈앞의 바로 너. 터무니없는 확률로 만난 우린 어떻게 서로를 미워할 수 있을까. 우린 여태껏 누군가를 비난하고 공박하는 데에 일생을 허비하고 있지는 않았는가. 지독하리 만치 짧은 순간을 유영하는 우린 서로 사랑해야만 한다. 쿠퍼와 아멜리아의 험난한 여정을 가슴에 새긴 채 극장을 나오며, 우린 이윽고 깨닫고 만다. 일망무제한 시간의 질곡과, 망무제애한 공간의 왜곡을 떨쳐내는 태초의 인력은 결국은 사랑이었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