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펑크:엣지러너>는 이마이시 히로유키 감독의 장편 애니메이션으로, 게임 <사이버펑크 2077>을 원작으로 한다. 뛰어난 작화와 탁월한 스토리 전개, 적재적소에 활용된 훌륭한 OST로 시청자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해주는 작품이다. 게임에 문외한인 나에겐 게임과 애니메이션의 결합이라는 요소 자체도 신선하게 다가온 듯하다. 참고로, 애니메이션은 영화보다 일일이 분석하기 어렵다는 점을 감안해 가벼운 마음으로 글을 써 내려갔다. 때문에 이 글이 본작에 대한 상세한 해설보다는 훌륭한 예술 작품에 대한 나의 견해를 중점적으로 다룬 글임에 독자의 양해를 구한다.
사이버 펑크 장르의 가장 큰 매력은 뭘까? 수많은 관객을 사로잡는 사이버 펑크만의 매력을 한 마디로 정리하자면 '화려한 시궁창'이 아닐까. 우리가 선망하는 고도로 발달된 미래의 과학 기술과 그 이면에 도사리고 있는 암울하고 썩은 내 나는 인생. 사이버 펑크 특유의 암울하고 비관적인 분위기는 고도의 과학 기술을 따라갈 수 없는 인간의 유약함에서 기인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메울 수 없는 간극을 지닌 기술과 인간, 이러한 양자의 공존이 만들어내는 대비는 우리를 강력하게 사로잡는다. <사이버펑크:엣지러너>는 50년 가까이 되는 장르의 핵심 요소인 '화려한 시궁창'을 현대적 감각으로 해석해 내는 데 성공한다.
스토리 역시 상당히 흥미롭고, 이를 뒷받침해 주는 작화 또한 훌륭하다. 하지만 본작의 가장 큰 장점은 탁월한 캐릭터 묘사이다. 영화나 애니메이션을 비롯한 작품에서 캐릭터를 매력적으로 창조해 내는 일은 굉장히 중요하다. 때로는 훌륭한 작품과 그렇지 못한 작품을 나누는 기준점이 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등장인물이 많은 작품의 경우 그러한 과제를 능숙히 해내는 것은 더욱 어려워진다. <원피스>와 같이 매우 긴 서사를 지닌 작품이 아닌 이상, 등장인물이 많으면 인물을 한 명 한 명 조명하며 세세히 묘사해 내기가 쉽지 않다. 일례로 <인사이드 아웃 2>가 그런 부분에서 아쉬웠다고 말할 수 있다. 게다가, 설령 다수의 캐릭터를 일일이 묘사한다 하더라도 오히려 스토리가 산으로 갈 위험이 있다.
물론 어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창작자는 그러한 과제를 해결해야 하는 위치에 놓인다. 그리고 엣지러너는 그 과제를 훌륭히 수행했다고 말할 수 있다. 등장인물이 많은 편인 작품에 속할 뿐 아니라, 짧은 분량의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캐릭터를 중간중간 하나씩 소거하는 방식을 선택해 난관을 헤쳐나간다. 소거된 캐릭터들의 서사 역시 훌륭하며 그 분량도 적절하다. 뿐만 아니라 매력적인 캐릭터들 간의 상호작용 역시 뛰어나, 얽히고설키는 관계를 흥미롭게 직조한다.
주관적인 견해이지만 예술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을'보다 '어떻게'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수많은 영화, 책, 애니메이션에서 다루는 주제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 대부분의 경우 사랑, 꿈, 자아, 인생, 삶과 죽음 정도로 국한된다. 엣지러너 역시 마찬가지로 사이버 펑크와 액션이라는 소재를 기반으로, 루시와 데이비드의 애절한 사랑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관객의 마음에 흡인력으로 작용하는 것은 이 이야기가 사랑을 다룬 이야기라는 점이 아니다. 사랑이라는 주제 위에 덧입혀지는 엣지러너만의 특색 있는 색채가 바로 그것이다.
<인터스텔라>, <이터널 선샤인>, <라라랜드>, <캐롤>, <그녀>, <화양연화> 등 사랑에 대해 착목한 작품은 끝도 없이 나열할 수 있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작품들은 각자 저마다의 개성으로 독창적이고 훌륭한 작품들이다. 진부한 주제와 뛰어난 작품성은 병립 불가한 것이 아니다. 현대에 와서는 그 흔한 주제를 어떻게 다루느냐, 어떻게 그려내느냐가 훨씬 중요한 과제로 자리매김한다. 엣지러너가 다루는 주제나 스토리 역시 마찬가지로 굉장히 창의적이고 독창적이라고 보기는 어렵지만, 이는 결코 작품의 미학성을 한정 짓는 한계점일 수 없다. 엣지러너는 흥미로운 설정과 매력적인 캐릭터, 화려한 작화, 적재적소에 활용된 음악,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와 회상 몽타주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연출 등으로 개성있는 수작으로 거듭났다.
아쉬운 점은 설정과 분량에서 발견할 수 있다. 엣지러너는 기존에 있는 게임을 원작으로 하는 애니메이션이기에 설정이 상당히 방대하다. 하지만 짧은 분량의 소치로 그 방대한 설정을 전부 담아내는 데 어려움을 겪는 것처럼 보인다. 시대적 배경이나, 나이트 시티라는 도시에 관한 설명, 아라사카나 밀리테크와 같은 기업의 역할 및 구체적인 관계, 테키, 러너, 솔로, 픽서 등 각 역할에 대한 설명이 부족한 것은 사실이다. 최종 보스로 등장하게 되는 아담 스매셔 역시 아무런 사전 정보 없이 갑자기 등장해 당황스러움을 더한다. 물론 쉽지 않은 일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서 언급한 캐릭터 관런 문제처럼 창작자는 자신의 역량으로 어려움을 극복해내야 한다. 더 많은 분량을 확보했다면 한층 더 뛰어난 작품으로 도약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