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
"화려하게 덧칠하고, 조악하게 덮어놓은 생의 이면에 산적되는 무능과 오욕의 나날."
<플로리다 프로젝트>는 션 베이커 감독의 영화로, 위태로운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모녀의 삶을 보여준다. 알록달록한 색감과 매력적인 등장인물, 흥미로운 이야기에 시종 눈을 뗄 수 없는 영화이다.
영화는 말썽을 부리는 아이들을 보여주며 시작한다. 무니를 중심으로 한 아이들은 다른 사람의 차에 침을 뱉거나, 모텔의 차단기를 내려 전기를 차단시키는 등 수많은 말썽을 부리며 관객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다. 관객은 심한 장난을 치는 무니와 아이들을 나무라게 되지만, 곧 그 비난의 화살은 무니의 어머니인 헬리에게로 향한다. 모종의 이유로 무니만 남게 되자 관객은 무니의 삶의 이면에 산적되는 오욕의 나날을 목도하게 된다. 잡상인으로서 하루하루 삶을 연명해 나가는 처지 속, 헬리는 무능과 무책임의 극치를 보여준다. 이에 무니를 보호하기 위해 모녀를 방문한 아동보호기관은 무니를 헬리로부터 떼어놓으려 한다. 자신의 상황을 인지한 무니가 친구인 젠시에게 자신의 처지를 읍소하자, 젠시는 무니를 디즈니 랜드로 데려가며 영화는 막을 내린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매직 캐슬 모텔의 색은 굉장히 부자연스럽게 느껴진다. 밝은 파스텔톤의 색상은, 하루하루를 간신히 살아가는 무니 모자를 보여주는 영화의 주제적인 측면과도 맞물리지 않기에 더욱 어색하게 느껴진다. 왜 이렇게까지 영화의 색상은 부자연스럽게 느껴지는가. 아름다워 보이는 것들 이면에 숨겨진 무능과 그러한 무능이 야기하는 오욕. 영화는 이 위에 억지로 페인트를 덧칠하며, 영화 속에서 펼쳐지는 참극을 숨기려 한다. 하지만 끝내, 참극은 관객의 눈앞에 놓이게 된다. 감독은 진실을 '드러내기 위해 감추는' 역설적인 방식을 택하여, 영화의 모든 참혹한 과정이 더욱 부각된다.
관리인 바비는 영화 전반에 걸쳐 시종 모텔을 리모델링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호텔 벽을 분홍빛, 보랏빛으로 색칠하고, 썩은 매트리스를 버리는 장면을 통해 이를 알 수 있다. 이러한 바비의 행동은 더욱 나은 현실을 만들어보려는 노력의 일환처럼 다가온다. 그럼에도 영화의 마지막까지 망가져 있는 세탁기는 여전히 해결해야 할 문제가 남아있음을 암시한다. 하지만 바비는 세탁기를 이번 주말까지 고치겠다고 말하는데, 이는 곧 남아있는 문제 역시 끊임없이 타개해 나가겠다는 바비의 의지를 보여주는 듯하다.
영화의 초반부에 보이는 아이들의 행동은, 관객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다. 3명의 아이들은 떼를 지어 놀러 다니며 수도 없이 말썽을 일으킨다. 하지만 영화가 진행될수록 같이 놀던 아이들은 하나둘씩 사라지고, 관객의 시선은 무니와 헬리에게 집중된다. 무니의 주변 환경, 인물을 덜어내며 관객은 무니의 삶의 이면을 자연스레 목도한다. '짜증 나는 아이'였던 무니는 '불쌍한 아이'로, '무책임한 엄마'였던 헬리는 '무능력하기까지 한 엄마'로 다시금 자리매김한다.
우리는 영화 속 공간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플로리다는 디즈니 랜드가 위치한 곳이다. 때문에 디즈니 랜드가 있는 플로리다는 많은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의 공간일 텐데, 무니에겐 그렇지 않다. 무니가 마주하는 것은 호텔을 잘못 찾아온 관광객이나, 티켓을 도둑맞은 남성이다. 이들은 모두 디즈니 랜드에 가지 못한 사람들이다. 이에 무니는 시종 꿈과 희망의 실패를 목도하고 마는 것이다. 이런 설정은 행복한 기억으로 가득해야 할 무니의 유년기의 어긋남을 은유하는 것처럼 보인다.
자신조차 인지하고 있지 못하지만, 실은 무니는 망가질 대로 망가진 삶으로부터의 탈피를 원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영화 전반에 걸쳐, 무니는 음식물을 게걸스럽게 먹어치우는 모습을 자주 보여준다. 평소 먹거리가 풍족하지 못한 상황에 놓여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주제적인 측면에서 생각해 본다면, 이는 마치 무니가 어긋나지 않은 유년기, 혹은 안온한 꿈과 희망을 갈구하는 듯이 보이기도 한다.
무니가 안정을 희구하는 것처럼 보이는 장면은 또 있다. 하늘 위로 지나가는 헬리콥터를 바라보며 무니는 구세주라고 칭한다. 그리고 헬기에게 조금이라도 더 다가가기 위해 테이블 위로 올라간다. 이때 소아 성애자로 추정되는 남성이 아이들에게 다가가고, 바비가 나타나 아이들로부터 남성을 떼어놓는다. 이러한 상황에 착목한다면, 헬기와 바비, 그리고 구세주가 동일시되는 것을 눈치챌 수 있다. 앞서 언급했다시피 바비는 현실의 문제를 끊임없이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는 인물이다. 그리고 무니를 구하는 것 역시, 그러한 노력의 일환인 것이다. 또한 영화의 마지막 시퀀스에서, 무니가 헬리로부터 분리될 위기에 처해졌을 때, 보이진 않지만 헬기의 소리가 들린다. 청각적으로는 헬기의 프로펠러 소리를, 시각적으로는 바비의 모습을 병치하는 방식으로, 영화는 무니의 구세주를 형상화한다. 드디어 무니를 무능과 오욕의 수렁으로부터 구조해 줄 구세주가 나타난 것이다. 하지만 이와 같은 생각은 영화의 마지막에 이르러 발목을 잡히고 만다.
갈등이 극에 달하는 마지막 시퀀스에서, 자신의 상황을 인지한 무니는 더없이 서럽게 통곡한다. 이에, 방탕하고 문란한 생활을 영위하는 무능력한 엄마로부터 아이를 떼어놓는 것이 옳은지, 혹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가 원한다면 엄마와 함께하는 것이 옳은지에 대한 질문 앞에 관객은 머뭇거리게 된다. 그러는 사이, 무니는 자신의 친구인 젠시에게 달려가 자신을 다시는 못 볼지도 모른다며 읍소한다. 그 모습을 본 젠시는 무니를 디즈니랜드로 데려간다. 여태껏 좌절된 무니의 꿈과 희망을 되찾아주려는 노력의 일환인 것이다. 젠시는 앞서 보여준 모든 이해관계나, 불가해한 반목으로부터 벗어나, 무니가 아무 조건 없이 해피 엔딩을 맞이할 수 있는 공간으로 무니를 이끌고 가며 영화는 끝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