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메이션으로 보는 이직의 시대
<토이 스토리 4>는 이직의 매너를 논하는 작품이다. 오랜만에 우디, 버즈, 햄, 렉스 등 친구들과 만난 보 핍은 누군가의 장난감이 되길 거부하며 길거리에서 독자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현실세계 고용관계에서 보면 우디와 친구들은 증권사에서 많이 보이는 케이스로, 팀 단위로 계약하며 이 회사(앤디)에서 저 회사(보니)로 넘어가는 커리어 패스에 해당하고, 보 핍은 스타트업을 창업해 보다 자유로운 사업 구상을 펼치고 있는 쪽에 속할 것이다. 우디와 보 핍은 서로 다른 직장에서 근무하게 된 후로 두 사람이 각자 누리는 복지만큼이나 가치관이 달라졌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처음엔 갈등을 빚지만, 결국엔 상대의 삶을 이해하고 응원하기로 한다. 이 영화가 국내에서 27일까지 334만 명이나 동원한 것은 이런 현실적인 고민들이 성인 관객의 마음까지 움직이는 데 성공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그렇다면 세계 최고의 직장으로 꼽히는 월트디즈니 자회사인 픽사에서는 이런 이직에 대한 영화를 왜 만들게 됐을까? 그들은 과연 직원 퇴사 문제로 한 번이라도 고민해본 적이 있을까?
놀랍게도 그렇다. 이달 25일 개봉한 애니메이션 '레드슈즈'가 주목받는 것은 국산 애니메이션으로 디즈니 급의 그래픽을 갖췄을 뿐만 아니라 실제 디즈니 수석 애니메이터 출신인 김상진 감독이 캐릭터 작업을 도맡았기 때문이다.
최근 만난 김상진 감독에게 어째서 최고의 직장 디즈니를 그만두고, 한국 애니메이션 스튜디오 로커스로 합류하게 됐냐고 물었더니, 그는 "한국말로 일해보고 싶었다"고 대답했다.
업계 최고 기업에서 후발 주자 회사로 옮겨가는 직장인이 느는 추세다. 빅히트엔터테인먼트는 한국 문화산업과 정보기술(IT) 기업의 핵심 인재를 빨아들이고 있다. 물론, 빅히트의 경우 이미 방탄소년단(BTS)의 성공으로 이미 최고 기업의 지위에 오른 것이 아니냐는 질문이 가능하겠지만, 아직까지도 증권가에서는 이 회사의 높은 BTS 의존도를 리스크로 꼽는다는 점에선 안정적인 기업으로 분류되진 않는다고 할 수 있겠다.
근래에 이뤄진 빅히트로의 이직 중 엔터테인먼트 업계를 가장 뜨겁게 달군 건 민희진 전 SM 이사의 이동이었다. 그는 빅히트에 브랜드 총괄(Chief Brand Officer·CBO)로 합류했다. 민 CBO는 SM에서 소녀시대, 샤이니, 에프엑스(f(x)), 엑소, 레드벨벳, 엔시티(NCT) 등 아이돌 그룹의 독특한 앨범 콘셉트를 만든 인물이다. 엔터테인먼트 업계에 생소하던 '비주얼 디렉팅'과 '콘셉트'라는 키워드를 수면 위로 끌어올려 가치를 재정립하고 확산해 시장 흐름을 바꾼 선구자라는 평가를 받는다. 새 직장 빅히트에서는 새로 선보일 걸그룹 이미지 제작을 총괄하고, 본인이 주도하는 새로운 음악 레이블을 출범할 계획이다.
국민 캐릭터 라이언의 제작 노하우도 일정 부분 빅히트로 흡수됐다. 연초 빅히트는 천혜림 전 카카오 브랜드아트셀 셀장을 받아들였다. 그는 카카오가 다음을 인수하기 전인 2014년 다음에 입사해 '카카오프렌즈' 최고 인기 캐릭터 라이언을 만든 팀의 일원으로 활약했다. 라이언은 웬만한 임직원보다 더 큰 매출을 내 카카오 내에서 '라 전무'로 받들어진다고 한다. 천 전 셀장은 빅히트에서 캐릭터 관련 사업을 담당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동고동락하던 동료가 회사를 떠나는 건 서운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이처럼 이직이 일상화된 시대에 퇴사자를 비난하거나, 이전 직장을 매도하는 건 현명하지 않은 선택일지 모른다. 오히려 기존 직원이 이직함으로써 회사의 네트워크를 쉽게 확장하게 됐다고 여기면 어떨까. 회사 간 합종연횡도 어느 때보다 활발한 이 세대엔 경쟁기업에 인맥을 구축해두는 것의 중요성도 점점 커지고 있다. 이미 우리 회사를 한 번 거쳐 간 인맥을 잘만 활용한다면 상대 기업과 관계를 맺기가 훨씬 용이할 것이다.
CJ ENM에서 '도깨비' '시그널' '미스터 션샤인' 등을 히트시킨 김성수 전 고문은 올해 카카오M 대표로 자리를 옮겼다. 콘텐츠 시장에서 양사가 벌이고 있는 혈투만 본다면 굉장히 자극적인 뉴스이겠지만, 두 기업은 물밑에서 협력 관계도 돈독히 하고 있다. 일례로 올해 tvN에서 방영된 '진심이 닿다'는 카카오M 자회사 메가몬스터와 CJ ENM 자회사 스튜디오드래곤이 공동 제작했다. 카카오M은 지난해 말부터 배우 이병헌, 공유, 김태리 등의 소속사도 활발하게 인수하고 있는 까닭에 다수 방송 채널을 가진 CJ ENM과 협업할 일이 더 잦아질 수밖에 없다.
국내 최고 기업인 삼성전자조차도 직원 이직을 막지 못하는 세상이다. 직원의 이직에 "우리 회사가 이 정도로 별 볼 일 없어지다니"라며 상처 받지 말고, 기업의 자원을 확장하는 기회로 반겨보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