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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씨네프레소 Nov 15. 2022

인간관계는 '사바사' … 세대론 얽매일 필요 없어

[씨네프레소] 영화 '인턴' 리뷰

*주의: 이 글에는 영화의 전개 방향을 추측할 수 있는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꼰대론의 유행은 긍정적 측면이 있다. 본인의 언행 중 꼰대로 분류될 수 있는 여러 요소를 살펴보고 이를 최대한 삼가도록 노력하게 만드는 것이다. 군대와 유교 문화 등이 복합적으로 섞인 한국의 직장은 오랜 기간 '개념 있는 후배'에 대해 강조하는 분위기가 너무 강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렇기에 요 몇 년 새 각 직장을 강타한 꼰대론은 그 역풍으로서 균형을 맞추는 의미가 있다.

영화 `인턴`은 30대 CEO(왼쪽)를 70대 인턴(오른쪽)이 수행하는 일종의 `관계 전복`을 통해 직장 내에서 진실된 소통이 가능한지 살펴보는 영화다. [사진 제공=워너브러더스]

다만 모든 개념화가 그렇듯 꼰대론 역시 개인이 지나치게 자기 검열을 하게 만드는 측면이 있다. 꼰대라는 욕을 먹지 않기 위해 자신의 행동과 발언을 검토하는 도중 업무 인수인계와 인간관계에서 필수적인 최소한의 소통마저 차단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미국 역시 이런 분위기에서 예외는 아니어서 "오케이, 부머(OKBoomer)"라는 말이 베이비붐 세대의 꼰대질을 거부하는 신조어가 됐다. '인턴'(2015)은 70대 인턴이 30대 최고경영자(CEO)와 함께 일하는 과정을 통해 어떻게 하면 꼰대가 되지 않으면서도 직장 내에서 긍정적 인간관계를 추구할 수 있을지 경쾌한 분위기로 고민해보는 영화다.

'어바웃 더 핏'의 창업자 줄스는 자기 일에 대한 애정이 강하다. 자신의 업무 효율을 조금이라도 떨어뜨리는 사람이 곁에 있는 상황을 극도로 기피한다. [사진 제공=워너브러더스]

70대 인턴, 30대 CEO를 수행하다


이야기는 온라인 의류 스타트업 '어바웃 더 핏(About the Fit)'을 배경으로 펼쳐진다. 줄스 오스틴(앤 해서웨이)은 창업 1년 반 만에 직원 220여 명을 두게 될 정도로 능력 있는 CEO다. 사업을 일정 궤도에 올린 어바웃 더 핏은 일종의 사회 공헌 차원에서 65세 이상 노인을 대상으로 시니어 인턴십을 시작하고, 해당 프로그램에 70세 벤 휘태커(로버트 드니로)가 지원하며 두 사람은 대표와 직원으로서 관계를 맺게 된다.

벤 휘태커는 아내와 사별했다. 회사 임원까지 지낸 만큼, 그동안 모아둔 돈은 충분하지만, 다시 한번 자기 효능감을 느끼고 싶어 인턴십에 지원하게 된다. [사진 제공=워너브러더스]

벤은 줄스를 수행하는 일종의 비서 일을 맡는다. 줄스가 시니어 인턴을 탐탁지 않게 여겨 벤은 처음엔 주로 줄스 눈치를 보는 데 시간을 할애한다. 그러다 벤은 모두가 방치해 어지럽혀져 있던 책상을 정리하며 줄스의 눈에 든다. 또 줄스의 운전기사가 음주하는 모습을 발견해 그날부터 운전을 대신하게 되면서 존재감을 확실히 각인한다. 전화번호부 출판 회사에서 임원까지 지냈던 연륜을 살려 자기 자리를 찾은 것이다.

벤을 탐탁지 않게 여겼던 줄스는 서서히 마음을 연다. 벤의 성실함과 연륜이 그녀 마음을 움직인다. [사진 제공=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자꾸 조언하고 힐끔거리는 인턴, 불편해


줄스의 일정을 따라 운전을 하던 도중 벤은 자기 경험을 바탕으로 이런저런 조언을 건넨다. 그러다 줄스는 벤이 자신을 너무 힐끔대며 쳐다본다고 생각하고, 동료에게 그의 업무를 변경해줄 것을 요청한다. 아무리 경험 많은 시니어라도 엄연히 자신이 사장인데, 정도를 벗어났다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영화 '기생충'(2019)의 박 사장(이선균)이었다면 "선 넘는다"고 일갈했을 수도 있다.

영화 `기생충`의 박사장은 젠틀한 인물로 그려지지만, 상대가 선을 넘는다고 생각하면 얄짤없이 강경한 조치를 취한다. [사진 제공 = CJ ENM]

그러나 벤의 인품에 감화된 줄스는 그것이 본인의 실수였음을 인정하고 다시 자신을 수행하는 일을 맡긴다. 벤은 줄스와 같이 바쁜 CEO가 때때로 감정적 판단을 내릴 수 있음을 이해하고 계속 이전과 같은 태도로 일을 담당한다. '대표가 시키는 데 담당해야지 어쩔 수 있느냐'는 질문이 나올 수 있겠지만, 일종의 마찰이 있은 후에도 '이전과 같은 태도'를 보여준다는 건 좀 다른 차원이다. 이를테면 벤은 '그래, 당신이 CEO라 이거지. 나도 사무적으로만 대하겠어'라며 선을 긋지 않고, 줄스의 행동을 인간 대 인간으로서의 실수로 받아들인 것이다.

줄스에게 감정이 상할 수 있는 상황을 겪고도 벤은 이전처럼 그녀를 대한다. [사진 제공=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사장 남편의 외도를 보고도, 모른 척하다


줄스는 업무적으로도 인간적으로도 점점 벤에게 의지하게 된다. 남편보다 더 잘나가는 아내로서 겪는 개인적 고충을 털어놓고, 자신보다 더 전문적인 CEO를 영입하길 원하는 투자자들의 성화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도 묻는다. 그때마다 벤은 줄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가끔씩 인생 선배로서 도움말도 남긴다.

회사 안에서 걷는 대신 자전거를 타고 다닐 정도로 줄스는 시간 활용에 민감하다. 이동 시간을 줄이는 겸 운동도 함께 하는 것이다. [사진 제공=워너브러더스 코리아]

벤은 어느 날 줄스의 남편이 외도하는 장면을 목격한다. 새 CEO 채용 건으로 함께 출장을 가는 비행기에서 벤은 자신이 본 것을 줄스에게 전해줘야 하는지 몇 차례 고민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끝내 얘기하지 않는다. 그 대신 잡담과 농담으로 줄스의 긴장을 풀어주는 데 집중한다. 신임 CEO 후보 면접 전날 밤 줄스가 남편 외도에 대한 고민을 먼저 털어놨을 때에야 벤은 자신도 알고 있었음을 고백한다. 그리고 본인 업무 시간을 줄여 가정의 평화를 지킨다는 목적으로 외부 CEO를 영입하기보다 본인이 정말 사랑하는 회사를 지속적으로 이끌고 가길 권한다.

줄스와 비행기를 타고 출장을 가는 길에, 벤은 줄스 남편의 외도를 목격했단 사실을 털어놓지 않는다. [사진 제공=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인간관계는 전부 '사바사', 본인의 최선으로 접근할 수밖에 없어


이 영화엔 산업계의 성차별 문제, 노인 일자리 부족, 투자자 입김이 더 센 현대 스타트업 생태계 등 여러 복잡한 이슈가 담겨 있지만, 깊게 들어가진 않는다. 그저 경쾌한 음악과 영상으로 슬쩍 스케치할 뿐이다. 감독 낸시 마이어스에게 이것은 그저 재밌는 상황이다. 대표작 '왓 위민 원트'(2000)에서 세상 모든 여성의 속마음을 듣게 된 남자(멜 깁슨) 이야기를 상상력을 담아 풀어냈듯이, 사회의 일반적 관계에 비춰봤을 때 여러 요소가 전복된 '30대 여성 CEO·70대 남성 인턴'의 상호작용에선 무슨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 살펴보는 것이다. 그래서 관객도 머리 아프지 않게 가벼운 희극으로 즐길 수 있다.

'인턴'을 연출한 낸시 마이어스의 대표작 '왓 위민 원트' 중 한 장면. [사진 제공=파라마운트 픽처스]

그래도 관객으로선 두 사람의 관계가 어떻게 긍정적으로 풀릴 수 있었는지 생각해볼 거리가 있다. 30대 CEO 줄스가 '눈을 깜빡이지 않는' 직원을 기피한다는 얘기를 하고 다닌다든지,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 행동을 한 직원 자리를 하루아침에 바꿔버리는 행위는 직장 상사 갑질이 아닌가. 70대 인턴 벤이 자기 나이를 바탕으로 대표에게 조언을 건네는 것 역시 나이 많은 사람의 '꼰대질'이 아닐까. 필요에 따라 인간적 조언을 남기던 벤이 정작 줄스 남편의 외도를 알고도 모른 척한 것은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선 기만행위가 아닐까. 그래서 두 사람이 상호작용에 성공한 이유를 '선을 철저히 지키며 꼰대가 되는 것을 피했다'는 것에서 찾기는 어려울 것이다.

줄스는 벤이 정장으로 자신을 멋지게 꾸밀 줄 아는 면모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사진 제공=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외려 이 영화는 인간관계는 전부 '사바사'(사람 바이 사람·'사람마다 다르다'는 뜻의 신조어)라는 점을 보여준다. 누군가는 상사의 '점심 맛있게 먹었냐'는 질문을 사생활 침해로 여기겠지만, 누군가는 그런 질문도 없이 업무 지시만 내리는 상사를 비인간적인 일 중독자로 느낄 것이다. MZ세대가 너무 직설적이라며 싫어하는 상사도 있지만, 그들의 솔직한 커뮤니케이션이 업무 효율을 높인다고 좋아하는 상사도 있다. 영화에서 30대 CEO와 70대 인턴이 긍정적 관계를 맺을 수 있었던 것은 결국 두 사람이 서로를 매력적으로 여겼기 때문이지, 선을 철저히 지키려는 상대방의 노력에 감동해서가 아니다. 우리는 모두 다른 세계관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서로 최선을 다함에도 한 번쯤은 상대방의 어떤 행위가 너무 선을 넘는다고 생각하거나, 반대로 너무 냉정하다고 느낄 수 있다. 상대방과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려는 노력을 경주해야겠지만, 어느 순간엔 내 의도와 상관없이 영역을 침범할 수도 있는 것이다. 결국 일단 상대와 긍정적 인간관계를 맺기로 결심했다면, 일정한 신뢰가 바탕이 돼야 조화로운 상호작용이 지속될 수 있음을 영화는 보여준다. 그건 상대방의 세계관에서 최선을 다해 나를 배려해준 것이 지금 상대방이 보여주는 행동일 것이라는 믿음이다.

영화 '인턴' 포스터. [사진 제공=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장르: 코미디·드라마

감독: 낸시 마이어스

출연: 로버트 드니로, 앤 해서웨이

평점: 왓챠피디아(3.9/5.0), IMDb(7.1/10), 로튼토마토 토마토지수(59%) 팝콘지수(73%)

2022년 11월 15일 기준.

감상 가능한 곳: 넷플릭스, 웨이브, 왓챠, 쿠팡플레이



OTT 영화와 드라마를 리뷰하는 '씨네프레소'는 다음, 네이버 등 포털 뉴스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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