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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씨네리와인드 Jul 04. 2019

'진범', 의심과 의문 속에 추리의 길을 잃다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상영작] 영화 '진범' / 7월 10일 개봉 예정

온라인 영화 매거진 '씨네리와인드'

(www.cine-rewind.com)


⁕ 본 영화의 리뷰에는 기자의 자의적인 판단이 크게 담겨 있습니다. 판단은 독자 여러분의 몫입니다. 

'부천 초이스: 장편' 초청작 및 7월 10일 개봉 예정 작품 '진범'

서슬 시퍼런 배우들의 연기, 끊어지지 않는 긴장감은 Good

한정된 범위 안에서 예측 가능한 스토리는 너무나도 아쉬워



오는 7월 10일 개봉을 앞두고 제23회 부천국제영화제에 ‘부천 초이스: 장편’ 섹션에 한국 영화로는 유일하게 공식 초청된 것으로 화제를 모았던 영화 ‘진범’은 단편 ‘독개구리’로 큰 주목을 받았던 고정욱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다. 전작과 마찬가지로 인간에 대한 믿음과 의심이라는 주제를 바탕으로 스릴러라는 장르를 선택한 고정욱 감독은 이번 ‘진범’을 통해 “나는 정말 믿을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한 물음을 관객에게 던진다.


영화의 제목과 같이, 등장인물들이 찾고자 하는 것은 바로 ‘진범’. 영화는 두 명의 등장인물을 중심으로 한다. 첫 번째 인물은 아내 ‘유정’이 살해당한 날의 진실을 찾기 위해 불법적인 수단도 마다하지 않으려는 비운의 남자 ‘영훈’(송새벽 役). 두 번째 인물은 그 사건의 용의자로 자신의 남편이 지목되자, 그의 무죄를 입증하기 위해 영훈이 발견한 증거를 증언으로 내세우려는 ‘다연’(유선 役). 두 사람은 그 날의 진상을 밝히기 위해 서로 협력하기로 합의한다.


피로 얼룩졌던 사건 현장을 그대로 재현해놓기까지 하며 아내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밝히고자 하는 영훈. 그러나 사건에 집착이 더해지며 그는 광기 어린 모습을 자주 보이게 되고, 경찰을 믿지 못해 증거를 감추는가 하면 유력한 용의자 ‘상민’(장혁진 役)을 납치하여 폭력을 휘두르기에 이른다. 다연 역시 절박한 것은 마찬가지. 사건에 불리할 만한 남편의 치부를 영훈에게까지 감추고, 이미 깨져버린 일상 속에서 남은 딸을 위해 고군분투하려 하지만, 영훈이 사건을 파헤칠수록 다연 역시 불안함과 의심에 휩싸이며 히스테릭한 상황에 빠지게 된다.



▲ 영화 '진범' 스틸컷.     ©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이처럼 ‘진범’에서 흥미롭게 바라보아야 할 포인트는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독특한 교차방식 아래 서로의 시선으로 상대를 바라보는 영훈과 다연의 감정선이다. 고정욱 감독이 사전에 당부했던 바와 같이, 이 영화는 우리가 ‘누구를 믿어야 되는지’에 대한 날카로운 질문을 던진다. 언뜻 보면 뒤죽박죽인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하나의 답을 향해 달려가는 본 영화는, 절망하다 못해 공황상태에 이르게 된 영훈과 다영 두 인물에 초점을 맞추어 인간이 얼마나 빠르게 무너져 내릴 수 있는지, 그리고 굳건해야만 했던 인간관계와 서로에 대한 믿음이라는 것이 얼마나 빠르게 무너져 버릴 수 있는지에 대한 비극의 리포트를 작성해 보인다.


극을 이끌어가는 송새벽과 유선은 이미 보증된 베테랑 연기자인 만큼 이번 영화에서도 믿음을 저버리지 않는다. 송새벽은 종래 익숙한 특유의 어눌한 발성 아래 코믹스러운 연기가 아닌, 아내를 잃고 한 순간에 나락으로 빠져 한 서려 서슬 시퍼런 영훈 역을 맡아 광기를 표출하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 폭발적인 연기를 선보인다. 지난 2014년 ‘도희야’에서 선보였던 강렬한 악역을 떠올리게 할 만큼 인상적인 모습이다. 특히 석연치 않은 아내의 죽음의 과정을 해석하기 위해 스스로의 목을 조르고 몸부림치기까지 하는 송새벽의 모습은 찬사를 보내기에 부족함이 없다. ‘스릴러 퀸’ 유선의 연기도 마찬가지. 영화의 후반부에 이를수록 절망과 간절함이 중첩되어 영훈과 함께 광기에 휩싸이게 되는 그녀의 모습은 분출 직전에 이른 화산을 연상케 한다. 두 사람의 연기 덕분에 적어도 본 영화의 긴장감은 함부로 끊어지지 않고 계속된다.


한편으로, 영화의 배경인 집안 구조의 디자인은 영화 ‘숨바꼭질’로 이름을 알린 이민희 미술감독의 작품.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빌라 아래 버건디 색상을 주로 채택하여 유머 하나 없이 진지하고 다운된 톤을 유지하고 등장인물들의 죄책감과 슬픔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또한 법조계와 경찰서 형사계의 협조를 받으며 디테일을 유지하고자 했던 것 역시 이번 ‘진범’의 장점이라 할 수 있겠다.


▲ 영화 '진범' 스틸컷.     ©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그러나 아쉬운 점도 만만치 않다. 우선, 이 영화의 등장인물이 그리 많지 않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이는 다시 말하자면 반전을 이뤄낼 수 있는 범위가 매우 협소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영화가 채택한 형식은 전형적인 ‘후더닛’ 미스터리이다. 영화의 제목에서부터, 이 영화는 진범이 누구인지에 대한 의문을 던진다. 그렇다면, 영화는 진범이 누구인지 최대한 숨김으로써 구조를 더욱 탄탄하게 만들고 관객들의 궁금증을 증폭시켜야 한다. 문제는 여기부터다. ‘진범’은 반전의 요소가 너무 얄팍하고, 추리를 너무 쉽게 허용하며 관객들을 허탈하게 만든다. 6개월이라는 시간 속에서 ‘진범’은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헷갈림과 궁금증을 동시에 전달하기 위한 작업을 서두르지만, 근본적으로 ‘용의자 명단의 리스트’가 한정되어 있는 까닭에 별다른 고민 없이 결말을 예측하도록 한다. 이 과정에서 나름 신경을 많이 쓴 것 같은 사건의 진행 과정은 별 의미가 없어 보일 정도로 허술해 보인다. 다시 말해 이 영화는 스릴러 장르의 흥미를 증폭시키는 요소 중 가장 중요한 ‘추리’라는 부분을 관객에게서 뺏다시피 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니 두 주연배우의 폭발적인 연기에도 빛이 바랜다. 비극적인 한 사건을 두고 서서히 미쳐가는 두 사람의 모습을 연기한 송새벽과 유선은 언제나 그랬듯이 자신의 몫을 해냈다. 그러나 이미 대부분의 추리를 마친 상황에서 두 사람의 눈물과 고함에 동정과 안타까움을 느끼끼는 했으나 그것이 다소의 피곤함을 동반하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아내의 죽음에 대해 미친 듯이 집착하는 영훈을 두고 사건을 담당한 형사는 이렇게 말한다. 지금 당신의 행동이, 정말 진실을 알고 싶어 그러는 것인지, 아니면 그저 “자신의 판단이 틀렸다는 것을 인정할 수 없기 때문에” 사건을 놓지 못하는 것인지. 의심에 대한 물음을 나누어보고자 했던 ‘진범’의 의의는 훌륭하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와 같은 아쉬운 내용이 담긴 영화가 과연 흥행할 수 있을 지에 대해 자꾸만 의문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인 듯하다.



글 / 씨네리와인드 강준혁

보도자료 및 제보 / cinerewind@cinerewind.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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