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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트래비스 Mar 05. 2024

뒤늦게 풀어보는 말레이시아 한달살기 썰

Day1. 역시나 환상은 깨지라고 있는 법

오랜만이다.
2월 3일부터 3월 2일까지 말레이시아의 수도 쿠알라룸푸르에서 두 아이와 함께 한달살기를 하고 왔다.

'작가님, 글쓰기를 꾸준히 하지 않으면....'으로 시작했던가? 어쨌든 글쓰기가 중단되자 간간이 나를 일깨웠던 브런치의 푸시알림을 보면서도 단 한 편의 글을 올리지 못했다. 새로운 것에 두려움 많고 예민함으론 따라올 자가 없는 두 아이의 국제학교 체험까지 해야 했기에 무지 바빴다는 핑계를 대본다.

마냥 놀기만 하면 되는 한달살기가 아니었음을 한번더 강조하며...(아무도 신경쓰지 않는데 왜 이런 부연을 계속 하는지 ㅋㅋ) 이제부터라도 말레이시아 한달살기 썰을 풀어보려 한다.

작년에 이미 두 아들과 함께 말레이 한달살기를 다녀온, 나의 유일한 동네 친구 '5단지 여신'이 올겨울에도 다녀온다며 "너도 생각해봐"라고 마음에 불을 지폈다.

처음엔 정말 생각만 했고, 나 혼자 둘 데리고 어림없지 싶어 더 이상 떠올리지 않았는데, 한달살기 설명회까지 들어보고 나니 마음이 동했다.

동남아 중 치안이 괜찮고, 짧게나마 국제학교 체험이 가능한데 예상보다 저렴한 비용이라니...(이게 젤 큰 포인트) 15년 가까이 단기 스쿨링을 운영해오신 '원장님'의 믿음직한 포스도 한몫했다. 한번 다녀가곤 아이만 보내는 집도 여럿이라니 얼마나 만족스러우면 그럴까 싶었다.

그날 집에 와서 이런 게 있다며 남편한테 슬쩍 흘렸더니 첫마디가 "자기 돈으로 가는거지?"

세상엔 매를 부르는 소리가 참 많다고 생각하며 한숨 쉬고 있는데 이 얘길 들은 딸의 반응이 매우 의외였다. "나 갈래! 엄마 안 가면 혼자라도 갈래!"

5학년까지 영어학원을 여섯 번 바꾼 내딸이 국제학교에 관심을? 게다가 집에선 쉼없이 떠드는데 영어학원만 가면 과묵의 아이콘이 되는 아들도 가고 싶어 하다니! 나는 이 자체로 신기해하며 한달살기를 추진했고 결국 그날이 왔다.

2월 3일부터 3월 2일까지 말레이시아의 수도 쿠알라룸푸르에서, 4성급 호텔에 머물며 초등 자녀 둘을 영국식 국제학교에 보내고 그사이 엄마는 여행과 일상을 적절히 누리다 돌아가면 되는 일정이다!

머릿속에 이런 해외 한달살기 판타지를 차곡차곡 채워놨는데 역시나 환상은 깨지라고 있는 법. 출국 단계에서부터 산산이 부서졌다.

첫 번째 화근은 아들의 축구공. 기어이 축구공을 가져 간다길래 찾아보니 위탁수하물만 아니면 되네? 에휴 그래 배낭에 넣어 메고 가라 했는데 웬걸. 수하물 엑스레이 검사에서 잡히고 말았다.

쫌이따 바람 빠지실 카타르 월드컵 공인구 알리흘라

바람 뺀 공만 갖고 탈 수 있다는 걸 태어나서 처음 알게 된 나와 아들은 망연자실. 옆에서 지켜보던 딸도 만만치 않게 짜증을 냈고, 아들은 이와중에 안해도 될 말을 대방출했다. "공에 바람 다시 넣을 수 있는 거죠? 이 공이 월드컵 공이라 원래 18만원짜린데여..."

아들아 조용히 좀... 눈으로 레이저를 쏘는데 인천공항 직원께선 그 모습을 귀엽게 보셨는지 "이 공이 그렇게 비싸? 딱 봐도 좋아보이네"라고 친절히 말씀하시며 그렇지 않은 태도로 사정없이 바람을 빼주셨다.

그러곤 어디선가 또 쓰윽, 좀더 연륜이 느껴지는 직원이 나타나 "바람 안 뺀 공은 비행기에서 터지니까 미리 빼고 가야 하는 거"라는 추가 설명까지 해주셨다.

모든 상황을 이해한 아들은 그제서야 편안해진 표정으로 바람 빠진 공을 주섬주섬 챙겼다. 짜증이 났지만 이 모습이 귀엽고 재밌기도 했다.(쫌이따 큰거 오는 줄도 모르고)

이런 일로 지체됐지만 우린 일찍 왔고 밤비행긴데 뭐 어때, 라는 여유까지 장착했다. 처음 예약 당시 오후 3시 55분이었던 비행기가 며칠 뒤 오후 8시 10분 출발로 바뀌었고, 말레이에 도착하면 새벽 2시가 되는 일정이니 급할 게 없었다.

그래 추가요금 내면서까지 사먹을 맛은 아니읍읍

그렇게 에어아시아(aka.저가항공)에 탑승하여 돈 주고 산 기내식이 입에 안맞네, 엄마께 더 맛있네 하며 싸우는 아이들과 씨름하고, 비행의 절반을 패드만 ㅊ보는 모습에 열받아서 "이런 것들 데리고 한달살기 미쳤지"라며 좌절을 반복하다 말레이에 도착했다.

착륙 후에도 대기해야만 했던 에어아시아. 시간은 어느덧 2시 40분이 다 됐고, 마중나와 있는 홈스테이 원장님이 너무 오래 기다리셨겠다 싶어 마음이 급해졌다.

얼른 비행모드를 끄고 현지 e심을 켜자마자 밀물처럼 몰아치는 부재중전화와 메시지들. 그중 젤 빨리 봐야 할 건 원장님의 연락인데...

OMG! 공항 픽업이 틀어졌다. 비행기 밖에도 원장님이 안 계시다니!

변경된 항공일정을 원장님께 구두로 전달하여 새벽 2시 픽업도 문제없다는 답신을 받았던 나로서는 마음을 푹 놨었다. 여러 가족을 관리하는 원장님은 이런 변경을 주로 갠톡으로 최종 확인하시는데, 구두 전달 외엔 알림하지 않았던 내 불찰이 더해져 업데이트가 안 된거다.

이럴수록 정신차리고 택시 타면 만사 오케이! 라는 생각으로 입국심사대로 향하는데 나에겐 자식이 둘이 있다. 배가 아프다는 아들이 걷기도 힘들다며 자꾸 처지는데 그 옆엔 화장실 급하고 여긴 왜케 덥냐며 짜증내는 딸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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