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가 다르다‘란 말은 누가 처음 사용한 걸까?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그 뉘앙스가 참으로 잘 전달되는 말인 듯하다. 뭔가 콕 집어낼 수는 없지만 싸한 분위기가 느껴질 때도, 미묘한 화기애애함이 감돌 때도 우린 이 말을 쓰게 된다.
생각해 보니 이런 표현에 공감되는 건 내가 예민한 사람이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분위기 파악이 좀 느린 사람이라면 감각적인 공기의 변화 따위엔 별로 관심이 없는 쪽일 테니까. 공기의 흐름에 민감하다는 건 생각보다 많이 피곤하다. 어색한 공기가 흐르면 괜히 무슨 얘기라도 해야 할 것 같아 쓸데없는 말을 하게 되고. 핑크빛 기류라도 흐를 때면 없는 핑계를 만들어 자리를 피해 줘야 할 것 같고. 이래저래 안 봐도 될 눈치를 보게 된다고 해야 할까.
센서티브 한 사람들은 감각적인 공기의 변화뿐만 아니라 물리적인 공기의 변화도 빨리 알아채기 마련인데, 그 점은 마음에 든다. 바람 속에 스민 가을 냄새가 더 진하게 느껴지고, 피톤치드 가득한 숲에선 몸 구석구석 정화되는 느낌을 받는다. 그럴 때면 숨 쉬며 살아가는 게 그리 나쁘지 않다는 기분이 든다. 예술가들 중에 이런 타입이 많다고 하던데 신은 나에겐 섬세한 감각만 주시고, 재능은 덜 주셨다. 통탄할 일이다. 다음 생엔 살기 편하도록 둔감하게 만드시던가 재능을 콸콸 한 통 쏟아부으시던가, 꼭 택일해 주시길 바란다. 신께서는 아마도 ‘꿈도 크네. 누가 인간으로 환생하게 해 준대 ‘라 생각하시겠지만. 차라리 공기로 태어나도 좋겠다. 그러면 못다 한 세계여행이나 맘껏 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