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막이로 양옆이 막힌 어둑한 독서실이 삶의 일부였던 고등학교 시절, 나와 친구들의 탈출구는 1005-1번 버스였다. 용돈이 빤한 학생에겐 다소 요금이 부담스러운 좌석버스였지만, 1시간 정도면 서울을 한 바퀴 도는 노선이기에 그 정도 투자는 가끔의 사치로 괜찮다 생각했나 보다. 뱅뱅사거리에서 강남역을 거쳐 한남대교를 건너며 잔잔히 일렁이는 한강을 볼 수 있었고, 푸릇하고 때로는 알록달록했던 남산의 풍경도 눈에 담을 수 있었다. 광화문 광장을 빙 돌아 북적북적한 서울역까지, 여러 번 가본 코스임에도 시골에서 처음 상경해 서울 구경 온 아이들처럼 우리들은 매번 들떴다. 창밖을 구경하기보다 ‘이따 떡볶이 먹을까', '독서실 그 오빠랑 그 언니랑 사귄다며', 이런 시답지 않은 사소한 얘기들로 떠들기 바빴지만. 시험을 망한 날이면 혼자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며 심란한 마음을 달래기도 했던 것 같다.
무엇보다 1005-1을 가벼운 마음으로 훌쩍 탈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편도가 아닌 순환버스이기 때문이었다. 버스는 떠난 우리를 늘 제자리로 돌아오게 해 주었다. 길을 잃지 않고 다시 홈그라운드로 돌아올 수 있다는 안도감. 땅에 발을 닿고 있어도 늘 불안했던 10대에게 그것은 꽤 중요한 감정이었으리라.
어른이 된 후에도 타이트한 일정이 아니라면 지하철 보다 버스를 탄다. 길이 막히고 좀 더 돌아갈지라도. 눈을 돌리면 조금씩 변하는 계절이 느껴지고, 창 문을 열면 선선한 바람을 맞을 수도 있으니까. 택시처럼 올라가는 미터기 요금에 조바심 낼 필요도 없으니 마음도 편하다. 순탄치 않은 인생처럼 버스는 몇 번이고 빨간불에 멈춰 설 것이다. 그래도 분명한 건 버스는 원하는 곳으로 데려다줄 것이고, 나는 그곳에 내리게 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