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독 행복하다는 감정에 인색한, 평생 잔잔한 우울에 한 발을 담그고 산 나에게, 그날 하루는 특별했다. 핫플레이스에 간 것도 아니었고, 산해진미를 먹은 날도 아니었다. 평범한 보통날 중에서도 별거 없던 보통날이었다. 그렇다고 몇 년, 몇 월, 며칠이었는지 날짜가 기억나지는 않는다. 인생의 8할을 프리랜서로 살면서, 시간에 자유로울 것 같지만 오히려 더 매여 살았고, 일이 없는 날도 괜히 만들어서라도 뭔가를 해야 할 것 같은 중압감을 느꼈다. 그날은 날씨가 좋다는 이유로 바람이나 쐴까 하며 무작정 나왔던 것 같다. 신사동에 살았던 그때, 지나가는 사람도 많지 않은 평일 오후, 매일 걷던 그 도심 길을 산책했다. 비싼 커피값도 아까워 현대백화점 옥상 공원에 앉아 공짜 커피를 마셨다. 좋은 원두에 바리스타가 내린 커피가 아니었음에도 기분 좋은 선선한 바람과 섞인 커피 향이 좋았다. 올려다본 하늘은 100퍼센트 가을이다 느낄 만큼 새파랬다. 마음의 소리가 ‘어라, 나 지금 행복하네’라고 속삭였다. 시간은 슬로모션으로 흘렀고, 나는 오래간만에 마음의 평화를 느꼈던 것 같다.
요즘도 여전히 매일 걷고 또 걷는다. 차가 없는 뚜벅이란 이유 때문이기도 하지만, 괜히 건강을 위해 만보에 도전해야 할 것 같은 강박도 한몫한다. 마음의 조급함은 걸음을 재촉하고, 걸음이 느린 건 왠지 게으른 느림보 같아 더 속력을 내게 된다. 몸과 마음은 생각보다 더 끈끈하게 연결되어 있다. 복잡한 잡념과 무기력을 떨쳐내려 빨리 걸으면 심장은 튼튼해질지 몰라도 마음까지 숨 차 허덕이게 된다. 100m 달리기도, 42.195km의 마라톤도 그 나름대로의 필요가 있겠지만, 그냥 춤추듯 걷고 싶다. 그렇게 걷다 보면 어디에 도착하든, 그 순간은 오롯이 행복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