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복을 꿈꾸는 중립적 인간>

by 이지은


도전적 인간과 중립적 인간, 회피형 인간. 3가지 유형으로 분류해 볼 때 나는 중립적 인간에 가깝다. 사실 회피형 인간에 가깝지만 무책임한 건 곧 죽어도 싫은 편이라 겨우겨우 중립형 인간으로 살고 있단 게 맞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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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에겐 별거 아닐 수 있지만 내겐 늘 회피하게 되는 공포가 2가지 있다. 하나는 대중 앞에서 말하기이고 또 하나는 운전이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떨리는 건 당연하다고 하지만 나의 경우는 좀 많이 심한 편이다. 콩알 심장의 내향인인 탓도 있겠지만 국민학교 4학년 웅변대회에서 목소리 떨림과 갈라짐을 겪은 후 트라우마가 생긴 것 같다. 상황을 직면해야 나아진다고 하지만, 십중팔구 실패를 경험했고, 그로 인한 창피함과 자괴감은 나를 더 위축시켰다. 이제는 약물로 어느 정도 불안을 낮출 수 있다는 걸 알지만, 아직도 극복하지 못한 문제 중 하나이다. 대중 연설 공포는 그렇다 쳐도 운전은 이해가 안 될 수도 있겠다. ‘하면 늘어’라고 말하는 대표적인 일인데도 내겐 쉽지 않다. 아버지를 병원에 모시고 가야 했던 1년 정도 운전대를 억지로 잡기는 했지만 다시 장롱면허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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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지게 도전해서 당당히 이겨낸 모습을 자랑하고 싶지만, 극복하기 전에 스트레스로 먼저 돌아가실 지경이니 어쩌겠나. 비겁한 변명이라 해도 어쩔 수 없다. 남에게는 절대 피해 주고 싶지 않은 인간이지만 자신에겐 참 피해만 입히는 인간형이다. 그래서 더 핸디캡과 고난을 이겨내고 승리하는 영웅 스토리에 열광하는지도 모르겠다.


3w3R7sh3L3fM634504925160235559.jpg 드라마 '최고의 사랑'의 남주인 독고진은 '극복'을 외치곤 했다.

오래전 재미있게 봤던 ‘최고의 사랑’이란 드라마가 있다. 남주 역할의 차승원이 습관처럼 읊조리던 대사가 있었는데, 바로 ‘극복’이었다. 코믹한 제스처로 극복을 외치는 모습에 웃긴 했지만, 자기 최면을 걸어서라도 정신 승리를 하고픈 마음에 공감했었던 것 같다. 안타깝게도 나는 드라마의 주인공은 아니라서 마지막까지 핸디캡을 극복하지 못할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이게 나인 것을. 영웅을 향해 진심으로 박수를 치는 서브 캐릭터라도 해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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