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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나몬 Dec 31. 2020

2020년 ‘나’에 대한 기록문

다가올 2021년이 기대된다

나에 대해 글을 쓰는 건 거의 처음인 것 같다. 아무런 재료도 없이 음식을 만들어내야만 하는 요리사의 마음처럼, 솔직히 막막하다. 나는 주로 누군가가 차려 논 밥상에 숟가락만 얹는 글을 주로 썼기 때문이다. 가령 리뷰, 레포트처럼 누군가 삶에 대해 풀어나간 것들을 ‘저도요,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그 마음 저도 잘 이해합니다.’라는 식의 글을 많이 썼다. 그래서 그 주체가 갑자기 ‘나’가 되니 글을 쓰는 것이 참 어색하다. 그래도 내가 보는 ‘나’는 어떤 사람인가? 에 대해 쓸 수 있는 좋은 경험이라는 생각이 앞선다. 그럼 두서 없지만 ‘나’에 대한 기록문을 시작해보려고 한다.


나에 대해 무엇을 써야할까? 우선 아트인사이트 에디터 활동에 대해 이야기 하고 싶다. 에디터 활동을 하면서 내 나름대로 많은 것을 배웠다. 첫 번째로 다양한 사람의 생각을 전달하는 방식의 차이에 대해 배웠다. 같은 영화, 연극, 책을 봐도 이렇게 다양한 감상이 가능하다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면서 매우 재미있었다. 그리고 두 번째는 글을 쓰는 방식과 글의 호흡을 배웠다. 글을 쓰는 것도 호흡이 필요하다. 글을 쓴다는 것은 자신의 생각을 나열하고 정리하는 작업이다. 그렇기에 글에도 호흡이 중요하다. 이전에는 글의 호흡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호흡이 있는 줄도 몰랐다. 그러나 타인의 정제된 글을 읽다보니 글에도 호흡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나의 글에도 호흡이 생길 수 있도록 연습하는 중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글을 읽다보면 나와 같은 생각을 한 글을 마주치게 된다. 그럴 때에는 얼굴도 모르지만 묘한 친근감을 느낀다. 문화 예술을 좋아하는 공통점 때문인지 어렴풋이 내가 생각했던 것들에 대해 같은 생각을 한 사람의 글을 읽을때면 ‘나만 이런 것이 아니구나 , 나만 동떨어진게 아니었어’ 라는 위로를 받은 적도 많았기 때문이다. 글을 통해 누군가를 위로하고 위로받는 경험을 하게 된 시간이었다. 


여기서 고백을 하나 하자면, 나는 글 쓰는 것을 좋아하지만 글을 쓰는 걸 매우 귀찮아 한다. 이건 비단 글쓰기에 한정된 것이 아니다. 분명 어떤 일을 하기 전에는 의욕에 가득차 있다.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듯이 자신감 있게 시작하지만 중반부에 들어서면 의욕이 희미해진다. 그리고 최대한 일을 미룰만큼 미룬다. 참 묘한 성격이다. 내가 나를 봐도 ‘얘는 뭐하는 걸까?’ 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으니까 말이다.


철학을 전공한 것도 나의 이러한 성격에 기인해있다. 나는 철학을 전공했다. 철학을 전공한 이유를 물으면 진로를 결정해야할 고3 시기에 들었던 강신주 철학가의 강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 당시 아무 생각 없이 들었던 강신주 철학가의 강연은 나를 철학에 세계로 인도했다. 강신주 선생님의 첫 문장이 아직도 기억난다. “안녕하세요. 철학가 강신주입니다.” 정말 간단한 자기 소개지만 나는 ‘철학가라는 것이 참 멋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강신주 선생님의 자신감이 멋있어보였던거 같기도 하다.) 그렇다. 그냥 철학가가 엄청 멋있어 보였다. 


2020년의 ‘내’가 고3이었던 ‘나’를 생각하면 어렸구나 싶기도 하고 나답다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무언가 하고자하는 게 생기면 어떻게든 해야하는 성격이기 때문이다. 그러다 나중엔 흐지부지 추진력을 잃은 경우도 있지만 그래도 무언가에 꽃이면 어떻게든 해야했다. 진로도 그랬고 교환학생과 워킹 홀리데이를 가게 된 것도 그러하다. 

그렇게 들어간 철학과는 내 상상과는 전혀 달랐다. 첫 수업으로 들은 서양철학이론은 정말 어려웠다. 그리고 나는 철학과가 싫어졌다. 그 사이에 정말 많은 생각들이 오고 갔다. 강의는 이해되지 않았다. 왜 존재와 본질에 대해 생각하는 지 알고 싶지 않았다. 거기다 시험은 어려웠고 서서히 나는 철학에서 낙오되었다. 신입생 ‘나’의 모습은 모든 것이 새로운 청춘의 한 페이지가 떠오르기 보다는 철학 때문에 힘들어하고 고생했던 시간들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 


철학을 싫어했던 ‘내’가 철학에 애정을 갖게 된 계기가 있다. 신기하게도 철학과 사람들과의 소통이었다. 나는 그 당시 철학이 싫었기 때문에 전과를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학년부터 전과 신청이 가능하기에 나는 그저 버틸 뿐이었다. 그렇게 힘들었던 그 시기에 시험은 쳐야되니 울며 겨자먹기로 신청한 철학 스터디는 나를 철학의 매력에 빠지게 했다. 스터디는 별다른 건 없었다. 그저 이해가 안가는 부분을 서로 이야기하고 토론하는 것이었다. 그저 소통할 뿐이었다. 그런데 그 소통이 나에게는 막혀있던 무언가가 빠진 것처럼 속 시원했다. 어려운 문제는 혼자서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배웠으며,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웃는다는 것이 참 좋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게 무사히 철학과를 졸업하고 철학이 내 인생에 어떠한 쓰임새로 남았는지에 고민했다. 철학이 참 좋은데 이게 말로는 표현하기 애매하다.


과거의 ‘나’는 철학이 싫었다. 그러나 2020년의 ‘나’는 철학을 좋아한다. 


글쓰기도 그러하다. ‘나는 글을 쓰는 것을 좋아해요’ 라고 말할 수 있게 된 건 최근 몇개월 사이에 일어난 일이다. 최근 몇개월 사이에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많은 것을 이룬 시간이기도 하다. 우선 제일 먼저 정기적으로 글을 기고할 수 있게 된 것이고 그와 더불어 글 쓰는 다양한 활동들을 하게 된 것이다. 글을 써서 나의 생각을 정리하는 일이 2020년의 가장 큰 수확이었다. 이렇게 글을 쓰기 전에는 글을 쓰는 건 노동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자유롭게 무언가를 쓰고 그 글을 읽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나에게는 큰 위로이자 치유였다. 그래서 더 욕심이 난다. 더 다양한 글을 쓰고 싶다. 소설을 쓰고 시를 쓰고 책도 출판하고 싶다.


이제 몇 시간 뒤면 2021년이 된다. 2020년은 나에게 어떤 시간인지 생각해보면 생각지도 못한 것을 이룬 해이기도 하고 예상치 못한 일들의 폭격에 우울하기도 했다. 도쿄에서 워킹 홀리데이를 보내는 도중 코로나로 인해 이른 귀국을 했다. 도피성 워홀이라 아무 생각없이 떠난 도쿄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차가웠으며 외로웠고 지치기도 했다. 그러나 혼자 살아가는 법을 배운 시간이기도 했다. 일본어도 못하고 어떤 자신감으로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떠난 건지 내가 선택했지만 스스로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최근 알게된 사람에게 이런 나의 일화를 들려주니 “생각 해놓은 일이 있다면 무조건 해내는 성격이신가 봐요.” 라는 말을 들었다. 나는 그말을 듣고 응?내가? 라는 마음이 앞섰지만 생각해보니 이런 적이 한 두번이 아니었다. 중국어도 모르면서 돌연 베이징으로 교환학생을 가게 된 것 부터 과거를 생각해보면 무언가 하고 싶다는 것이 생기면 어떤 식으로서든 결과를 봤던 것 같다. 나도 모르는 나의 성격을 타인의 입을 통해서 듣게 되면 매우 신기하다. 타인이 바라본 ‘내’가 어쩔땐 더 정확하다. 내가 ‘나’를 바라보게 되면 객관성을 잃고 보게 된다. 나는 나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편이다. 당근을 주기 보단 채찍질을 하며 그렇게 하면 안돼!라고 다그친다. 그래서 그런지 나를 표현하면 부정적인 말들이 우선 쏟아져 나왔고 그런 말들과 생각이 나를 더 움츠러들게 만들었다. 


그래서 누군가 나를 칭찬하는 것에 인색하다. 그런데 지금은 달라졌다. ‘나’를 받아들이게 되었다. 나를 부정적으로 바라볼 이유가 없을 뿐더러 내 나름대로 이만하면 괜찮다고 생각하며 살고 있다. 그렇기에 2020년의 ‘나’는 타인이 바라보는 ‘나’와 내가 보는 ‘나’에 대한 괴리감을 조금씩 줄여나가는 과정이었다. 그건 앞으로 다가올 2021년에도 진행 예정이다.




다가올 내일이 기대가 된다는 것이 얼마나 기쁜일인지 잘 몰랐다. 우울할 때는 1시간의 미래도 생각하기 버거웠으며 두려웠다. 그저 하릴없이 시간이 흘러간다는 생각에 나를 더욱 더 보챘다. 그런데 시간이라는 것이 참 신기하다. 현재를 살고있는 ‘나’에 충실하다보니 미래가 기다려지게 된 것이다. 사람 앞날은 아무것도 짐작할 수 없다. 작년의 ‘나’만 일본에 갈 줄 몰랐으며, 전 세계 전염병이 돌아 이렇게 고생할 줄도 몰랐다. 글을 쓰는 것도 몰랐고 새로운 인연들을 만나는 것도 상상하지 못했다. 순간의 인연과 우연이 현재로 연결되어 미래가 만들어진 것이다. 그래서 나는 다가올 2021년이 기대된다. 분명 슬프고 우울하며 불행하기도 하지만 기쁘고 행복하고 성취감 가득한 일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갈 것이다. 

그리고 나는 나만의 방식대로 헤쳐나갈 것이고 마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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