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것을 좋아하는 방식
안녕. 반가워. 오랜만이야.
우선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말해주고 싶어. 나는 책을 좋아해. 도서관에서 책 제목을 보면서 이 책은 무슨 내용일지 상상하면서 책장 사이사이를 걸어가는 걸 좋아해. 그리고 유치한 로맨틱 코미디 영화를 보면서 가슴 설레는 것을 좋아하고 반전 있는 스릴러 영화를 보면서 심장 고동 소리를 느끼는 것도 좋아해. 귀가 시끄러운 음악을 들으면서 오로지 세상에는 음악과 나밖에 없는 순간을 좋아해.
나는 이렇게 좋아하는 게 많아. 아마 놀랐을 거야. “이렇게 좋아하는 게 많은 아이였다고?”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어. 왜냐하면, 나는 내 이야길 한 적이 없으니까. 그래서 네가 나한테 “너는 좋아하는 게 있어?”라고 물을 때 입술이 옴짝달싹했지만, 정작 아무 소리도 낼 수 없었어.
왜일까? 나는 맛있는 것을 먹는 것도 좋아하고, 잠자는 것도 좋아해. 만화 보는 것도 좋아. 글 쓰는 것도 좋아해. 좋아하는 것이 너무 많아서 그중 어떤 것부터 말해야 할 지 좋아하는 것들의 우선순위를 정하느라 바빠서 그런 건지, 아니면 내가 좋아하는 것에 대해 말하는 순간 나는 어떠한 사람이라는 평가에 갇히게 되어서 인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어.
무언가를 좋아하게 되면 자연스레 싫어하는 게 생기더라. 이 둘은 떼려야 뗄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잖아. 그래서 더 말하기가 힘든가 봐. 무언가를 좋아하면 필연적으로 싫어하는 게 생기니까. 그래서 더 숨겨야지.
나는 그렇게 생각했어.
‘나’를 숨기고 살아가는 나. 그게 어느새 당연하게 되어버린 거지. 그렇게 살아가다 보니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사람들이 그렇게 큰 관심이 있지 않다는 걸 알게 되었어. 씁쓸하지만 어느 정도 적응해서 오히려 지금은 더 편해.
그런데 말이야. 가끔은 너한테 말하고 싶어. 나, 이거 좋아해.
좋아하는 마음이 주체가 안 되고, 나만 알기 아까운 감정. 누구나 가지고 있잖아? 세상을 향해 소리치고 싶은 날. 좋아하는 것이 무엇이든 말이야. 그럴 때 나는 상상을 해. 그리고 글을 써. 이 글이 언젠가 너에게 읽히면, ‘내’가 무엇을 좋아했는지, 좋아하고 있는지 알아줬으면 좋겠어.
이 글은 ‘내’가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 숨김없이 적어보았어. 다 읽고 나서 ‘나’라는 사람에 대해 조금이라도 더 알게 되었다면 정말 좋을 거야.
식(食)에 있어서 입맛이 까다롭다. 그래서 “좋아하는 음식이 뭐예요?” 물어보면 대답하기 어렵다. 아귀찜 속 미더덕과 콩나물을 좋아하고, 떡볶이 속 양배추를 좋아한다. 좋아하는 식사법은 자극적인 음식을 먹은 후에 디저트로 달콤한 아이스크림을 먹는 것이다. 이렇게 식사를 마치면 신체적, 정신적으로 만족스러운 한 끼 식사가 끝난다. 살이 찔 수밖에 없지만, 포기할 수 없다.
귀가 시끄러운 음악이 좋다. 잔잔한 발라드보단 비트가 강렬한 댄스 음악이 좋다. 목소리가 마음에 드는 가수가 생기면 전곡 다 플레이리스트에 넣고 질릴 때까지 무한 반복한다. 그중 마음에 드는 곡이 생기면 좋아하는 곡을 오래 듣고 싶은 마음에 일부로 다른 곡을 듣기도 한다.
영화는 장르 안 가리고 다 좋아한다. 그러나 예전에는 고전 명작. 흔히 사람들 입소문 난 영화가 아니면 안 봤고 스릴러, 미스터리 장르가 아니면 보지도 않던 시기가 있었다. <죽을 때까지 꼭 봐야 할 영화 100선>에 든 영화가 있다면 DVD를 빌려 1위부터 100위까지 전부 다 보고 그랬다.
흑백 고전 영화, 중국 고전 영화, 시대, 나라 안 가리고 닥치는 대로 하루 한편 혹은 두 편 미친 듯이 봤다. 그만큼 영화를 좋아했고, 좋아해서 미칠 것 같은 기분이 들 때도 있었다. 그래서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영상 이론을 공부하며 직접 촬영, 편집도 하고 시나리오 각본도 써봤다.
좋아한 영화는 나에게 꿈이 되었다. 그러나 꿈은 이루지 못했고, 좋아하는 것을 넘어 꿈이 되었기에 그 결과가 더 씁쓸했다. 현재는 예전만큼 영화를 많이 보진 않는다. 좋아하지도, 싫지도 않다. 적당히, 미지근하게 좋아한다. 그것이 지금 내가 영화를 좋아하는 방식이다.
좋아하는 것과 좋아하는 방식이 사람마다 다르듯이 좋아함에 있어서 각기 다른 온도가 있다. 좋아하는 마음이 너무 커지면 그 마음은 손으로 만질 수도 없이 뜨겁다. 그래서 이 마음을 가지고 세상의 차가움에 맞서곤 한다. 그런데 이렇게 뜨거운 마음이 식어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사람이 정상 체온보다 뜨거운 온도를 가지고 있으려면 그만큼의 에너지가 필요하다. 이건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다. 사람은 살아가면서 여러 사건을 마주치며, 지기도 하고 이기기도 한다. 이 과정을 겪다 보면 마음속 뜨거웠던 온도가 시간이 지날수록 낮아진다.
강렬하고 뜨거워야 좋아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좋아함=1,000℃]이었다. 그런데 아니었다. 좋아함에 있어서 햇살의 온도도 좋아하는 마음이고, 바닷가의 서늘한 온도도 좋아하는 마음이었다. 좋아하는 것에는 사람마다 각자의 온도가 있으며 각각의 체온이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좋아하는 것마다 온도가 다르다. 먹는 건 구름이 가득하지만, 그 사이로 비추는 햇살만큼 좋아하고, 음악은 낙엽이 떨어지는 날의 온도로 좋아한다. 지금의 나에게 영화는 잔잔한 파도가 치는 바닷가의 온도만큼 좋아한다.
요즘 제일 뜨거운 건 글쓰기다. 글쓰기가 재밌다고 생각한 건 일 년 전이다. 그리고 내가 글 쓰는 사람이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된 건 육 개월 전이다. 글 쓰는 거 완전 뿌듯한데? 라고 생각한 건 얼마 되지 않았다.
최근에 소설을 썼다. 글을 쓰다 보니 책을 만들고 싶었다. 어떻게 만들어야 하나 고민하고 있을 때 좋은 기회가 생겨 글쓰기 모임을 통해 책을 출판하게 되었다. 취미활동에 불과하지만 그래도 내가 쓴 글이 종이로 된 책이 된다는 사실이 오랜만에 가슴을 설레게 했다.
처음으로 간 글쓰기 모임은 어색했지만 모임에서 작가님이 글을 어떻게 쓰는지 알려주고 각자 쓴 글을 피드백하면서 점점 그 모임에 익숙해져갔다. 처음에는 어떤 글을 써야 할지 막막했다. 막연하게 소설을 쓰고 싶어서 참여한 모임이지만, 소설을 쓴 경험이 없어서 막상 쓰라고 하니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모임 첫날 서로 각자 무슨 글을 쓸지 이야기하는 시간이 있었다. 나는 어쩌지 하는 심정으로 다른 사람들이 말하는 것만 마냥 듣고 있었다. 그런데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나도 무언갈 쓰고 싶은 마음이 빠르게 생겨났다. 그날 모임이 끝나고 집으로 가는 버스에서 어떤 글을 쓸까? 어떤 소설을 쓸까 계속 머릿속으로 상상하며 집으로 갔다.
그리고 머릿속에 떠오른 장면을 통해 이야기를 꾸며나갔다. 신기한 건 이전에 소설을 써본 적이 없어서 나만의 세계를 창조해 낼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노트북을 켜자마자 막힘없이 글을 써 내려가는 모습이 신기하기도 하면서 글을 쓰는 자체의 행위가 즐겁다는 걸 느꼈다.
처음에는 미지근한 온도가 점차 뜨거워지는 걸 느꼈던 순간이었다. 소설은 그동안 쓴 글과는 달랐다. 이 세상에 있지만, 그 세상에는 없는 인물과 공간을 만든다. 그리고 등장인물들 간 얽혀가는 사건을 만들고 그 속에서 서로 관계를 만들어가는 과정이 즐거웠다. 머릿속에 둥둥 떠다닌 것들이 손끝을 통해 세상 밖으로 나오는 순간이 좋았다.
글의 흐름, 맞춤법, 문단 표기 방식도 다 신경을 써가며 만들어낸 첫 소설을 통해 내가 좋아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좋아하고 있는지 그 방식을 깨달았다. 이 과정은 내가 좋아하는 것을 더 좋아할 수 있게 만들었다. 책을 좋아하니까 글을 직접 써보고 싶었다. 더 나아가 책을 만들고 싶어서 소설을 써보며 좋아하는 것들이 점점 내 안에서 그 부피감을 키워나가는 느낌이 좋다.
사람이 좋아하는 것만 하며 살 수는 없고, 좋아하는 일이 직업이 되기도 어렵다. 나에게 “그렇게 좋아하니까, 작가가 되는 거니?”라고 물으면” 아니요. 그건 아닙니다.”라고 말한다. 좋아하는 건 좋아하는 대로, 지금 이 마음이 천천히 그리고 오래 가기를 바라고 있다.
나는 빠르게 뜨거워지지만 그만큼 쉽게 식는다. 그 과정이 주기적으로 반복된다. 어느 날은 글쓰기에 빠져서 정신없이 쓰다가 다음날 만화에 빠지면 계속 만화만 본다. 꾸준히 오랫동안 좋아해야지. 이건 내가 좋아하는 것을 오랫동안 좋아하고 싶어 하는 나의 바람이다.
현재는 공모전에 나가볼까 생각 중이다. 긴 호흡의 글을 쓰는 건 나에겐 도전이다. 그래서 목표는 상이 아닌 완주가 목표다. 이 도전을 통해 좋아하는 것을 오래 좋아하기 위한 연습을 시작하고 있다.
좋아하는 것에 있어선 한없이 가볍게 떠다니고 싶다. 좋아하는 것들이 내 속에서 무거워지지 않도록 애쓰는 사람이다. 무거워지면 언젠가 가라앉기 마련이니까. 좋아하는 것이 무겁지 않게. 늘 둥둥 구름처럼 떠다니길 바란다.
그런데 조절하기 어렵다. 좋아하다 보면 같은 관심사를 가진 다른 사람을 만난다. 그리고 그들이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는 방식을 보면서 ‘어? 나는 그런 방식으로 좋아하지 않는데.’라고 생각하며 내가 좋아하는 방식이 틀린 건가? 싶은 마음이 들 때가 있다.
그래서 남들이 좋아하는 방식에 휩쓸려 이것저것 시도해보다가 나와 맞지 않는 방식에 제풀에 지쳐버린다. 나라는 사람은 늘 확인받고 싶어했다. 그게 무엇이든 간에 내가 하는 것이 맞는 건지 아닌지 말이다. 그래서 누군가 “응, 맞아.”라고 말해주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이러한 성격은 내가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는 방식에도 영향을 끼쳤다. 내가 좋아하는 것에 대한 남들의 확인이 필요했다. 확인받는 방법도 좋아하는 것에 따라 다르다. 먹는 것에서는 내가 맛있다고 생각한 음식을 남들과 같이 먹었을 때, 타인이 맛있다고 말하면 내 취향을 인정받은 기분이 든다. 그 뒤엔 계속 그것만 먹는다.
그리고 음악적 취향에 있어서 내가 좋아하는 노래가 어떤 사이트에서 놓치면 후회하는 명곡에 오르면 내 노래도 아닌데 괜스레 뿌듯해지기도 한다. 그리고 책이나 영화는 이미 남들에게 꼭 봐야 할 책. 꼭 봐야 할 영화만 골라서 본다.
그러다 보니 빠르게 변해가는 흐름에 맞춰 좋아하는 것을 오랫동안 좋아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이 글을 통해 내가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 말해주고 싶었다. 이것만큼은 강렬하게 뜨겁지만은 않더라도 오래가기를. 무거워서 가라앉지않고 풍선처럼 둥둥 떠다니길.
결국 무엇을 좋아하는 데 옳고 그름은 없다. 정답과 오답도 없다. 그저 ‘나’라는 사람이 좋아하는 것과 ‘나’라는 사람이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는 방식만 있을 뿐이다. 그러니 마음껏 좋아하고 내가 좋아하는 것을 오랫동안 좋아하고 싶다.
이 글을 읽고 나에 대해 얼마나 알게 되었을까? 나를 이상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을까? 두렵기도 하지만 나를 알게 되어서 좋았다고 생각해준다면 기쁠 것 같아. 이건 너에게 보내는 나라는 사람에 관한 이야기야. 바쁘지만 무료하고, 무료하지만 바쁜 날들 속에서 ‘나’에 대해 읽어줘서 고마워. 앞으로 잘 지내보자. 늘 가장 가까운 곳에서 응원하고 있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