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를 지켜라!
이번에 찾아오는 개기월식까지 안드로메다 왕자를 만나지 못하면 지구는 파괴된다. 병구는 외계인으로부터 지구를 지키기 위해 지구에 잔입 해있는 외계인 납치 계획을 세운다. 병구의 표적은 유제 화학 사장 강만식이다. 그는 비리, 스캔들, 공장 폭발 사고 등 사건 사고의 중심에 서 있는 인물이다.
고군분투 끝에 강만식 납치에 성공한 병구는 안드로메다 왕자와 만나게 해 달라고 요구한다. 한편, 강만식 납치범을 찾는 수색이 시작되고, 강만식은 자신이 외계인이라 주장하는 정신 이상자 병구에게 벗어나기 위해 모진 고문을 견딘다.
강만식은 도망치기 위해 병구의 내면 어둠을 파고든다. 강만식은 진짜로 외계인일지 아니면 병구가 가진 정신질환 때문에 헛소리하는 것인지 진실을 알 수 없는 심리전이 계속된다. 지구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가? 병구는 개기월식이 끝나기 전에 지구를 지킬 수 있을까?
병구가 지구를 지킬 수 있을까? 그는 헐크처럼 힘이 세지 않다. 그리고 강만식 돈 400만원을 찾아 어머니 병원비를 지급해야 할 만큼 돈이 많지 않다. 친구라고 부를 사람은 없다. 거기다 정신질환 때문에 약도 꾸준히 복용해야 한다. 이러한 그가 지구를 지키는 거대한 임무를 해결할 수 있을까?
영웅의 조건 중 그 어떤 것도 부합하지 않는 그가 유일하게 두각을 나타내는 분야가 있다. 바로 우주와 외계인 관련한 방대한 지식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병구는 외계인 강만식을 납치해 지구를 지켜야 했다. 그에게 지구를 지켜야 하는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병구 인생에 가장 소중했던 세 명의 여자가 있다. 어머니, 첫사랑 지원, 그리고 순이이다.
풍족하진 않지만, 화목한 병구의 가족의 커다란 불행이 찾아왔다. 광부로 일하던 병구의 아버지가 광산이 무너지면서 크게 다치게 되고 그 이후 장애를 갖게 된 아버지는 더는 일을 하지 못하게 된다. 그 이후 극심한 우울증에 걸린 아버지는 병구의 눈앞에서 자살한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뒤 홀로 병구를 지키기 위해 어머니는 닥치는 대로 일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빈곤한 학창 시절을 보내야 했던 병구는 학급회비를 내지 못해 학우들 앞에서 선생에게 무자비한 체벌을 받아야 했다. 철저한 외면과 소외 그리고 멸시로 가득 찬 학창 시절이었지만 이러한 모진 일들은 어머니가 있기에 버틸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시장에서 장사하는 어머니에게 폭력을 가하는 깡패에 맞서다 병구는 깡패를 우발적으로 죽이게 된다. 하루아침에 살인자가 된 그는 감옥에 가고 만기 복역을 한 뒤 다시 사회에 나와 어머니와 같은 공장에서 일하게 된 병구는 그곳에서 첫사랑 지원을 만난다.
어머니와 지원과 행복하게 살고 싶었던 병구에게 또다시 불행이 찾아온다. 공장에 폭력배들이 들이닥쳐 공장을 부숴버리기 시작했다. 혼돈 속 병구는 지원이 맞아 쓰려져 있는 것을 보았지만 무력하게 움직이지 못한다. 그리고 공장에서 유독 화학약품에 노출된 어머니는 정신을 잃고 쓰러져 그 이후 식물인간이 되고 만다.
한순간에 모든 것을 잃게 된 병구는 공장을 불태우고 독극물을 노출한 공장 소유주 강만식에 대항하고자 했다. 무력하고 외로운 싸움이었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1인 시위와 계란까지 던져 분노를 표출했지만, 병구에게 관심을 두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병구의 외침은 그 누구에게도 닿지 않았다.
"근데 다 알면서 어디 있었는데 내가 미쳐갈 때 어디 있었어! 니들이 더 나빠! 니들이 죽인 거야!"
마지막으로 순이는 병구를 도와 지구를 지키는 데 도움을 준다. 공중곡예를 하며 서커스 단원으로 살아가던 순이에게는 병구는 첫사랑이었다. 그래서 병구의 행동이 이해가 가지 않지만, 최선을 다해 도와준다. 그러나 병구를 돕다 강만식의 술수에 죽음을 맞게 된다.
병구는 미쳐갔다. 세상, 사회, 사람이 그를 미치게 했다. 그렇지만 병구는 지구를 지키기로 마음먹었다. 자신이 사랑했던 것들이 이 지구에 남아 있었기 때문에.
포스터가 흥행 실패의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힐 정도로 포스터만 보면 가벼운 코미디 영화처럼 보인다. 그러나 <지구를 지켜라>는 고어 영화에 가까울 정도로 고문의 수위가 꽤 높을뿐더러 내용 또한 어둡고 심오하다. 개봉 당시 흥행에는 참패했지만, 영화는 매력적이다. 도대체 누구의 말이 진실인지 알 수 없는 심리전과 어이없고 황당한 고문 방식, 괴이한 CG와 분장 거기다 배우의 탄탄한 연기는 극의 몰입도를 높인다.
분명히 취향을 타는 영화인 것은 확실하다. 그러나 이 취향이 맞는다면 매우 만족스러운 영화가 될 것이다.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병구의 불행 서사로 이루어져 있다. 병구의 삶은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소외되고 고독하고 불행했다. 병구에게 관심을 가진 사람은 단 세 명뿐이었다. 수많은 사람 중 단 세 명만은 지키고 싶었다. 그러나 병구는 그 누구도 지킬 수 없었다. 모두 병구의 눈앞에서 처참하게 죽어갔다.
사회적 약자는 늘 사회에서 소외당했다. 아무리 소리치고 울부짖어도 아무도 관심을 가져다주지 않는다. 어떤 사연을 가졌는지, 왜 그래야만 했는지 신경조차 쓰지 않는다. 철저한 외면, 그것이 병구가 느낀 세상이었다. 그래서 그는 잔혹한 폭력성에 눈을 뜨고 만다. 자신이 받았던 폭력에 폭력으로 대항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서 병구는 자신을 때리고 괴롭힌 자들을 외계인이라 부르며 납치하고 고문하고 살인한다. 그들이 진짜 외계인이었을까? 병구가 그렇게 잔혹해질 수밖에 없던 이유는 단 하나 철저한 외면이었다.
강만식이 병구의 일기를 읽고 그의 불행했던 삶을 알고 펑펑 울면서 그 공간을 부수는 장면이 있다. 이 장면이 가장 기억에 남는데 그 이유는 강만식, 즉 병구가 그렇게 만나고 싶어 했던 안드로메다 왕자가 지구에 희망이 없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는 가장 큰 역할을 한 장면이기 때문이다.
세상이 병구를 외면한 것, 병구와 같은 일은 계속해서 발생하고 없어지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병구의 잔혹한 폭력성을 깨닫게 된 것이다. 소외와 차별 그리고 폭력성은 정말로 지구를 없애지 않으면 영원히 해결되지 않는 문제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구에서 불행했던 병구는 그래도 자신이 죽어가는 와중에도 끝까지 지구를 지키고 싶었다.
"엄마, 이제 엄마한테 갈 수 있어. 그런데 내가 죽으면 지구는 누가 지키지?"
누가 봐도 불행한 인생을 산 병구는 외계인 강만식의 눈에도 눈물이 날 만큼 슬픈 삶을 살아왔다. 그렇지만 외계인 강만식은 알지 못했다. 병구는 자신을 철저하게 외면했던 지구였지만 그래도 끝까지 지구를 지키고 싶었다.
지구에서 행복했기 때문이다. 오래가지 못했지만, 화목했던 어린 시절, 첫사랑과 이야기를 나눴던 시간, 순이에게 인형을 선물했던 일, 이 모든 것이 지구가 있었기에 느껴볼 수 있었던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그 기억을 갖게 해준 지구를 지키고 싶었다. 그리고 병구가 가장 지키고 싶었던 어머니는 정신을 잃기 전 한 말이 있었다. “지구를 지켜줘”
비록 그 과정에서 병구는 폭력을 가했고 잔혹했다. 외계인 강만식의 말대로 인간의 유전자에는 잔혹한 폭력성이 내재하여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잘 생각해봐. 너희들은 정상이 아니야. 미쳤어! 이 우주 어디에도 니들처럼 같은 종을 학대하고 그걸 즐기는 생물은 없어!"
전쟁, 학살, 테러, 폭력, 끊임없는 분노의 끝은 있는 것일까? 진정으로 인간의 폭력성이 없어지지 않는다면 지구는 파괴되어야 할까? 인간이 잔혹해지고 폭력을 가하는 것은 어쩌면 단 하나의 진정한 관심과 사랑이 있었다면 해결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런 일은 영화에서도 현실에서도 그렇게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 것 같다. 영화 속 지구는 결국 파괴되었다. 외계인 강만식은 더는 지구에는 희망이 없다는 결론을 내렸기 때문이다. 병구는 지구가 존재하는 한 계속해서 나타날 것이고 고통받을 것이다.
현실도 별반 다를 것이 없다. 인간의 폭력성은 점점 과감하고 잔혹해진다. 그와 더불어 그들을 외면하고 무시하는 차별 또한 계속된다. 폭력과 차별은 없어진다기보단 그 모습을 변형해 인간과 같이 살아가고 있다. 폭력은 또 다른 폭력을 낳고, 차별은 또 다른 차별을 낳는다.
다양하게 변주되고 변형되는 폭력과 차별 속에서 단 하나의 진정한 관심과 사랑을 바란다. 조금이라도 주변에 관심을 갖고 다가간다면 자그마한 변화가 일어나지 않을까? 우리는 다 각자만의 이야기가 있다. 그리고 그 이야기가 펼쳐질 이 지구를 지키고 싶다. 병구가 그렇게 지키고 싶어 했던 지구, 우리는 그 지구에서 행복하기도 불행하기도 하면서 살아간다. 그래서 아직은 이 지구에 희망이 있다고 믿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