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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나몬 Jan 06. 2022

바다 下

그들의 속사정

초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아버지 일자리 때문에 급하게 이사를 해야 했다. 아쉬움보단 기대감이 더 컸다. 수많은 계단을 올라 집에 가는 것보단 계단을 내려가는 집이 더 편해보였다. 그 집이 빛이 들어오지 않아 아무리 쓸고 닦아도 곰팡이가 피어나는 곳이라는 건 나에게 중요치 않았다.


이사를 하고 나는 중학교에 가기 위해서 교복을 사야 했다. 그러나 엄마는 교복값을 보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몇일 뒤, 교복을 가져왔다. 딱 봐도 내 몸보다 커보였지만, 처음으로 입어보는 교복은 마음을 들뜨게 만들었다. 돌돌 만 바지와 너풀대는 소맷자락을 흔들며 이리저리 엄마 앞을 걸어 다니곤 했다.


등교 첫날, 초등학교보다 큰 교정과 무표정한 표정으로 학생들을 인도하는 선생님을 보니 손에서 땀이 새어나왔다. 교실문을 여니 나를 쳐다보는 수많은 눈동자가 있었다. 나는 헐렁한 교복 바지를 꾹 움켜쥘 수밖에 없었다. 빈 자리에 앉아 주변을 두리번 거렸다. 나에게 말을 걸어주지 않아서 땀이 나는 손바닥을 교복 바지에 벅벅 닦으며 앞에 앉아있는 안경 낀 애에게 말을 건넸다.


“안녕?”


그 애는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어느 동네에 사냐고 물었다. 나는 아무렇지 않게 수내 마을에 산다고 말했다. 대답하자마자 그 애는 입꼬리를 뒤틀며 웃더니 큰 소리로 말했다.


“얘들아! 얘 수내마을 산 대!”


그 순간 나를 쳐다보는 아이들의 눈빛은 나를 죄인으로 만들었다. 그 이후 학교생활은 기억하고 싶지않다. 내 존재는 그 애들보다 늘 아래에 있다는 것을 깨달을 때마다 나의 목소리는 작아졌고 행동은 부자연스러워졌다. 그 시절 내가 배운 건 남들보다 한참 뒤에 그려진 출발선이었다.




엄마는 시골에서 제대로 된 학교도 다녀보지도 못하고 혼기가 차 중매로 아빠를 만났다. 그리고 나를 낳았다. 계속 시골에 있다간 나 또한 시골에 갇혀 평생을 살 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 엄마는 집안 종잣돈을 빼내어 서울로 거처를 옮겼다. 그 이후 엄마는 집안과 연이 끊기고, 나는 말을 하기 시작할 때부터 외할아버지, 외할머니를 본 적이 없었다. 아버지 또한 집안 사정이 여의치 않아서 인지 아니면 돌아가셨는지, 단 한 번도 친할아버지, 친할머니를 본 적이 없다. 나에게 가족은 엄마와 아빠, 둘 뿐이었다.


없는 형편에 자식 한 명 키우기 위해 농사만 하던 아빠는 서울에서 막노동을 시작했고, 엄마는 식당 허드렛일을 하며 생계를 꾸려갔다. 새벽에 일 나가는 아빠와 늦은 저녁 시간까지 일하는 엄마는 하나만 알고, 둘은 몰랐다. 그저 서울만 오면 모든 것이 다 해결될 것이라 믿었던 것이 분명하다. 오히려 상황이 나빠지면 나빠졌지 나아진 것은 없었다. 그러나 부모님은 그 사실을 끝까지 눈치채지 못했다.


중학교 3학년, 나는 또 이사를 가야 했다. 집이 아무리 어둡고 축축해도 그런 집이라도 원하는 사람의 수요는 나날이 늘어갔기에 계속해서 올라가는 월세를 낼 수 없었다. 그래서 부모님은 직장 동료의 차를 빌려 좀 더 싼 월셋집을 찾기 위해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그 전날 늦은 밤까지 일하고, 새벽에 일어나 운전대를 잡은 것이 원인인지, 아니면 빌려준 차가 곧 폐차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오래된 차여서인지 정확한 원인은 아직도 모른다.


하지만 확실한 건 내 가족은 이제 없다. 나는 부산물이다. 우리 부모님도, 할아버지, 할머니도. 주요 부품을 공정하다 잘못 만들어진 애물단지다. 그러니 나는 죽을 때까지 그려진 선을 넘지 못할 것이다. 우리 부모님이 그랬던 것처럼. 꼭대기에 있는 집이든, 지하 동굴같은 집이든,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내가 바꿀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래서 나는 감추기로 했다. 나의 모든 것을.


일 년 늦게 들어간 고등학교에선 나를 숨길 수 있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빠른 년 생으로 태어난 나는 학교를 일 년 늦게 들어가도 이상하게 보지 않았다. 그렇게 시작된 내 고등학교 생활은 너무나도 쉬웠다. 거짓말은 점점 자연스러워졌고, 그 속에 나를 맞춰갔다.


나를 숨기니 친구가 생겼다. 해보지 못한 것보다 해본 것들이 늘어가기 시작했으며 내 삶이 남들과 같은 선에 있는 듯이 느껴졌다. 고3이 되고, 다들 대학에 가야 한다며 학원과 과외를 시작했다. 덩달아 나도 대학을 가겠다며 야간 자율학습을 시작했다. 정작 야자실에서 공부를 하기보단 잠자기 바빴지만 말이다. 야자 할 때마다 만나는 사람들은 매번 똑같았는데 그중 늘 나와 마주치는 녀석이 있었다. 그 애는 우리 학년에서 가장 유명한 왕따였다. 딱히 괴롭힘을 당한다거나 놀림을 받는 건 아니고 철저한 무시와 외면이 그 애가 겪는 일이었다.


왕따를 당하는 이유는 딱 하나였다. 없이 살아서. 빈티나 보여서. 그 이유 말곤 없었다. 그런데 나와 그 애는 야자실뿐만 아니라 교무실, 상담실, 방과 후 학습 활동에서도 매번 만난다. 나 또한 없이 사니 그 애를 마주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나는 감추고 그 애는 감추지 않는다. 그것뿐이다. 나는 늘 그 애와 눈이 마주치려고 할 때마다 피했다. 뭐가 좋은지 늘 잔잔한 미소를 지으며 선생님과 대화하는 그 애를 볼 때마다, 내 마음속은 무언가가 아지랑이처럼 피어올랐다.


그러던 어느 날 야자 끝나기 30분 전 갑자기 폭우가 쏟아졌다. 예상치 못했던 폭우라 야자실 안은 금세 소란스러워졌고, 학생들은 핸드폰을 꺼내 전화하거나 메시지를 보내기 시작했다. 나는 그 모습을 관망하며 가만히 창문으로 쏟아지는 빗소리만 듣고 있었다. 야자가 끝나기 전까지 이 비가 그치길 바라며 하늘을 쳐다봤지만, 비는 야자가 끝나고서도 엄청난 기세로 퍼부었다.


야자실에 있던 아이들은 하나둘 교정을 빠져나가고, 나는 멍하니 하늘만 올려다보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차가워지는 몸을 느끼며 집에 가려고 빗 속으로 뛰어들려고 할 때 왼편에서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소리가 들려오는 쪽을 쳐다보니 그 애가 서 있었다.


그 애 옆에는 어머니처럼 보이는 사람이 있었고 그 애는 나에게 다가와 어디까지 가느냐고 물었다. 그동안 말 한번 나누지도 않았는데 나를 친한 친구인 양 대하는 그 애를 슬쩍 쳐다보며 무시하고 가려는데 아무 말이 없는 나에게 우산을 빌려줄 테니 쓰고 가라며 쥐가 그려진 우산을 건넸다. 그 애가 내민 우산을 내려다봤다. 그리고 나는 고개를 들고 처음으로 그 애의 눈을 보며 말했다.


“필요 없어.”


그 말을 내뱉은 뒤 나는 빗속으로 뛰어들었고 빈틈없이 내리는 비를 맞으며 내가 가지지 못한 것들에 대해 읊조렸다. 나는 가졌다고 생각했지만 가지지 못했고, 그 애는 가지지 못했다고 생각했지만 가졌다. 그것이 그 애와 나의 차이였다. 그 다음 날 나는 감기에 걸렸다. 열에 들뜬 몸에 정신이 혼미한 와중에도 그 애를 만나면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고민했던 것이 무색하게도 그 이후, 그 애를 볼 수 없었다. 성철이에게 물어보니 빚쟁이들에게 도망쳐 어디 먼 섬으로 도망을 갔다는데? 라고 웃으며 말한 뒤 다시 핸드폰 게임에 집중하는 뒷모습을 보며 그 말이 진짜인지 아닌 지 다시 물어보고 싶었지만 물어볼 수 없었다.


나는 그 날을 잊고 싶었지만 잊지 못했다. 아니 잊지 못할 것이다. 이 기억은 나의 무게다. 이 기억의 무게는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무거워지며 나를 짓누른다. 나는 또 하나의 잊을 수 없는 기억에서 영원히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저기요! 물 넘쳐요!”


뜨거운 물이 내 손 전체를 뒤덮었다. 나는 뜨거움을 느끼자마자 라면을 바닥에 떨어트리고 말았다. 주변에는 웅성거리는 소리와 나를 쳐다보는 눈길이 느껴졌다. 편의점 직원이 달려나와 괜찮냐고 물어봤지만 나는 아무말도 할 수 없었다. 욱신거리는 손을 주머니에 집어넣으며 편의점을 뛰쳐 나왔다. 숨이 차 잠시 뜀박질을 멈췄을 때 맞은편 도로에서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야! 준오야!”


소리가 들려오는 곳을 쳐다보니 그곳에는 그 애가 있었다. 신호등이 켜지고 점점 나에게로 다가오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내가 꿈을 꾸는 건가 싶었지만, 여전히 욱신거리는 손등이 꿈이 아닌 현실이라는 것을 상기시켜 주었다.


“하하, 준오 맞지? 나 기억하려나… 잘 지냈어? 여기서 널 만날 거라곤 상상도 못 해서 나도 모르게 이름부터 불렀네, 그래도 같은 동창이니 이해해줘. 아, 내가 졸업을 못 해서 동창도 아닌가?”


멋쩍은 표정이지만 여전히 잔잔한 미소를 지으며 나를 보는 그 애는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무슨 말을 해야 할 지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다. 말을 한다고 해도 내 입에서는 제대로 된 말이 나올 리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입술만 들썩 거리고 있었다. 그때 내 볼에 빗방울이 떨어졌다.


“어? 또 비 오려나 봐, 어제도 갑자기 폭우가 내려서 가게 정리도 못 하고 정신없었는데 오늘도 오려나 보네, 아, 나 저기 건널목에 철물점 하거든. 우산 안 가져온 거 같은데 우산 가지고 가, 여기서 가까워 시간 많이 안 잡아먹을게.”


그 말을 듣자마자 나는 몸에 힘이 풀리고 말았다. 여기서 또 도망칠 거냐? 어디선가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기도 했다.


“빚…”


“어? 뭐라고?”


“학교에서 너 사라진 거 빚쟁이한테 도망치느라 섬으로 도망갔다고…”


“하하하, 그런 말이 있었어? 뭐 반은 맞고 반은 틀리긴 했는데, 빚 때문에 졸업 못한 건 맞지만, 여기가 섬은 아니니까.”


그 말을 하며 웃는 그 애의 모습은 전혀 구김살이 없어 보였다.


“비 더 내린다. 어서 가자. 여기서 금방이야. 바쁠 텐데 갑자기 말 걸어서 미안하다. 만나면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었거든.”


하고 싶었던 말이라는 소리를 들으니 몸이 차게 식어갔다. 나는 그 말을 듣고도 제정신으로 서 있을 수 있을까? 나는 그 애의 말을 듣고도 여기서 더 무너지지 않을 자신이 없었다. 신호등을 기다리면서 그 애는 빨간 내 손등을 보더니 말을 이어갔다.


“그냥 고맙다는 말, 하고 싶어서.”


당혹스러움에 나는 재빨리 고개를 돌려 그 애를 쳐다보았다. 나는 누군가에게 고맙다는 말을 들을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내  쪽에서 미안하다, 고맙다는 말을 달고 살아야 하는 사람이다. 고맙다고 말하는 그 애의 눈을 보는 순간 그 말이 거짓이 아님을 느낄 수 있었다.


“기억할지 모르겠지만, 우리 야자 끝나고 비 엄청나게 내리던 날 우리 엄마가 마중 온 적 있었는데 그때 나 솔직히 부끄러웠다. 허름한 옷차림에 고장 난 우산 들고 한 손에는 미키 마우스 그려진 우산 손에 꼭 들고 나 기다리고 있는데 진짜 도망치고 싶었거든, 근데 그때 네가 보이더라, 비 내리는 거 가만히 보고 있길래 아, 우산을 안 가져왔구나, 라는 생각이 드니까 엄마한테 가서 친구가 우산 안 가져온 거 같은데 우산 빌려주겠다고 말하고 너한테 갔지, 근데 너는 괜찮다고 하고 바로 가더라. 그때는 좀 뻘쭘하고 오지랖이었나? 하고 그 길로 엄마랑 같이 우산 쓰면서 집으로 갔거든, 엄마랑 이런저런 이야기도 하면서 집으로 가는데…”


말소리가 멈추자 나는 고개를 돌려 그 애를 쳐다봤다. 그러자 나를 보고 슬쩍 웃으며 다시 목소리를 가다듬고 말을 이어갔다.


“우리 집이 좀 가팔라서 언덕길 계단 오르다가…빗물 때문에 엄마가 크게 다쳐서… 병원 신세 지고 이것저것 해볼 만큼 하려고 했는데 결국 뭐…돌아가셨지만, 병원비 구하느라 학교도 졸업 못 하고 이것저것 고생하긴 했는데 장례식장에서 엄마 웃는 모습 보는데 너 생각이 나더라, 그때 도망치지 않길 잘했다. 도망치지 않고 엄마한테 가서 이것저것 학교 이야기, 친구 이야기하면서 웃으면서 집 가던 추억이 있어서 참 다행이다. 그 생각이 들더라고. 너 아니었으면 추억조차 만들지 못했을 거다. 고마워.”


고개를 푹 숙일 수밖에 없었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저 도망쳤을 뿐이다. 그런데 그 애는 도망치는 내 모습이 고마웠다고 말한다. 어머니와의 마지막 추억을 좋게 마무리할 수 있었다며 웃고 있는 그 애한테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최대한 몸을 웅크리며 숨을 몰아쉬는 것뿐이었다.


“여기 잠깐만 있어, 금방 우산 갖다 줄게.”


고개를 올려다본 곳에는 미키 철물점이라 적힌 간판이 있었다. 웃음이 나왔다. 전혀 변하지 않았구나. 나는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토해내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미안하다.”


나는 그 말을 내뱉고 나니 몸이 가벼워진 기분을 느꼈다. 한결 가벼워진 몸으로 철물점에서 나오는 그 애를 보면서 말했다.


“고마워.”


그 애는 미소를 지으며 나에게 우산과 연고를 건네주었다. 연고를 주머니에 넣고 우산을 펼치며 나는 쏟아지는 빗속을 향해 걸었다. 걸어가는 나의 뒤로 “연고 꼭 발라! 그거 직방이다!” 라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우산 손잡이와 연고를 꽉 쥐며 내가 온 만큼 돌아가기 위해 걸었다.





바닷가에 점점 가까워지자 무서운 기세로 내리던 비가 점점 그쳐갔다. 나는 들고 있던 우산을 모래사장에 놓고 털썩 주저앉아 손등에 연고를 발랐다. 고개를 들고 쳐다본 바다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파도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더 나아지고 싶었고, 잘 살고 싶었다. 그러나 세상이 나는 그렇게 살면 안 된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도망칠 수 있을 만큼 최대한 도망쳤다. 근데 도망치지 못했다. 아니, 도망칠 수 없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쉼 없이 파도를 만들어내는 바다처럼 그렇게 살아갈 수밖에 없다.  


나는 모래사장에서 일어나 바다를 향해 걸어갔다. 주머니 속에 있는 핸드폰을 꺼내 한참을 만지작거렸다. 바닷물에 바짓단이 젖어 들어가기 시작했고 나는 익숙한 번호 11자리를 눌렀다. 핸드폰에서 들려오는 신호음을 들으며 나는 계속해서 바다를 향해 걸어갔다.  











- <바다> 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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