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차 워킹맘, 백수 되어 발리 온 사연
나는 일을 정말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좋아하는 줄 알았다. 휴학 한번 없이 학교를 졸업했었고, 졸업과 동시에 취업, 아이를 낳고도 세 달만에 복직할 정도로 나에게 '일'은 내 인생의 일부였다. 직업과 커리어는 내가 절대 놓을 수 없는 가치였고, 일에서 인정받고 성취감을 느끼는 나는 '일이 살아가는 이유' 같다고 생각했다. (모든 면에서)
10년쯤에 온다는 슬럼프였을까. 서로 다른 사람이 서로를 욱여넣어 섞여 일하는 환경, 가끔씩은 이해할 수 없는 조직 문화와 업무 시스템 (술, 술, 야근, 야근, 술) 도대체 왜 제정신으로 일을 해야 하는데 매일 새벽까지 술을 마셔야 하는 걸까... 더 황당한 건 그 술자리에 내 승진과 업무 평가가 달려 있다는 거다. 결국 나는 사회 초년생 때 겪었던 공황장애를 또 마주했고, 그보다 더 심한 슬럼프에 빠졌다.
내 6살 난 아들은 자폐스팩트럼을 가지고 있다. 아이는 어린이집 하원 이후 주 4회 치료 수업을 병행해야만 했고, 그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 (제대로 된 수업은커녕 매일 울고 나오기만을 반복했다.)
어느 날, 매일 각종 치료수업을 마치고 나온 아이의 얼굴을 정면 마주했다. 눈 밑에 깊게 드리운 다크서클과 지친 표정. 아직 발화도 안된 내 아이의 얼굴이 내게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정말 싫어."
당시 나의 하루는 이랬다.
아침 5-6시 기상 (내 아이는 정말 일찍 일어난다)
아이 어린이집 준비
7시 출근 → 저녁 7시 퇴근 (주 2회는 내가 아이 치료 데려다 주기)
집에 돌아와 저녁준비
아이 재우기
자면 다시 일어나서 집청소 (*회식 있는 날은 여기서부터 다시 반복)
회사 일 마무리
새벽 2~3시 취침
아이의 하루도 다르지 않았다. 어린이집이 끝난 후 억지로 치료 수업에 보내졌고, 그 1시간이 아이에게는 너무나 힘겨운 시간이었을 거다. 나는 단순히 ‘이게 아이를 위한 길이야'라고 스스로를 설득하며 아이를 내 기준에 맞춰 끌어가고 있었다.
결과적으로 나는 열심히 일해서 더 나은 부모, 아이를 위한 더 좋은 환경을 만들겠다고 노력한 거지만, 정작 아이가 원치 않았다는 사실을 지나치게 놓치고 지냈던 거다. (원치 않아도 해야 하는 게 치료긴 하지만..)
결국 나는 ‘나와 나의 아이를 위해’를 핑계 삼아, 발리로 왔다. 나는 나의 가장 중요한 10년 차 커리어에 공백란을 만들어 주기로 했고, 아이도 몇 년간 이어오던 많은 치료를 그만두었다. 나는 그렇게 백수를 선택했고, 아이에겐 자유로움을 선물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