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격차이 4:프랑스에선 이렇게 해
그날 말이야, 소피 집에서 코로나 이후로 처음으로 온 가족이 모여 점심 먹은 날, 어머니께서 물으시더라.
“그 가방, 니콜라가 사준 거니?”
“아뇨, 어머니, 제가 제 카드로 할부로 한국에서 샀어요”
2년 동안 쉼 없이 달려온 내가 기특해서 나한테 선물한 160만 원 셀린느 카바스 미니백. 프랑스에서 샀다면 딱 1000€ 였겠지. 이 정도 가격의 가방이면 망가트려도 별 속상하진 않을 거 같았거든. 디자인도 이쁘고, 가볍고, 내 제일 친한 친구가 트리오페 백을 샀는데 처음으로 명품 가방인데도 이뻐 보이더라.
난 명품에 관심이 별로 없었던 편이야. 왜냐면 원체 물건을 조심히 쓰는 편이 아니라 얼마 못 가서 가죽에 흠집이 나거나 비 맞아 얼룩이 지게 할걸 아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파리에 들고 가면 길 가다 뺏길 거 같았거든. 방금 전에도 지하철에서 뺏길 뻔했다만.
그래서 주로 친구가 홍보행사 끝나고 준 에코백을 들고 다녔어. 생각해보니 참 이 친구는 번번이 다양한 에코백을 줘서, 에코백마저도 내가 직접 산적이 없었어. 아니면 엄마가 내 취향도 아닌 백을 사 오면 너무 실망하지 않게 가끔 들고나가곤 다시 에코백으로 회귀했지.
스타트업 창업을 하고도 마찬가지로, 거래처나, 창업 사관학교를 갈 때도 한동안 에코백에 청바지, 검은 티, 운동화에 뿔테 안경을 쓰고 다녔어. 그러고 다니니 하도 직원으로 오해받아서 결국 오랫동안 놓았던 외모관리를 다시 주워 담는 계기가 됐어. 대표는 내 회사의 이미지를 대표하기도 하니깐. 귀찮아도 신경 쓰기로 했어.
그래서 하나 샀다. 근데 이걸 구구절절이 시어머니한테 설명하긴 어려운 일이지. 이건 외모를 바라보는 문화적 차이니까 말이야. 소피 말로는 프랑스에서는 스타트업 대표가 괴짜 같아 보일수록 더 투자한다고 하더라고.
내가 너에게 글 포스트 사전 허락 맡을 때, 네가 물었어.
“이렇게 우리 이혼에 대한 글을 쓰면, 나중에 한국 사람들이 책을 읽으며, 프랑스 남자는 다 저렇구나 나쁜 편견을 주면 어떻게”라고.
그래서 난 한 달 반 만에 소파 위 벽에 겨우 설치된 이케아의 뭐라고 읽어야 할지 감도 안 오는, BERGSHULT/PERSHULT 선반에 꽂혀 있는, 프랑스어로 된 이다도시의 책, ‘한국 수다로 풀다’를 가리키며 대답했지
“난이다도시랑 똑같이 하는 거야. 정확히 나라만 반대로. 모든 한국인 남편이 이다도시 전남편 같진 않잖아? 좋은 사람도 많아, 단지 좋으면 소문이 안 날 뿐이야”
그리고 난 다시 너에게 물었어
“왜 내가 프랑스에 있다는 이유로 문화적으로 늘 양보해야 하는 입장이야? 난 너와 네 가족에게 한국에선 이렇게 한다고 내 문화를 이해해달라 한적 없는데?”
그래, 난 더 이상 내 꿈과 가족을 양보하기 싫었어. 프랑스에 살기 때문에 네 가족의 모든 기념일과 명절을 나는 다 참여하고 챙기는데, 우리 부모님 생일에는 카톡 영상통화 고작 10분이 다야. 그나마 이번에 한국 가서 한국 번호를 개통하면서 카카오톡 선물하기 기능이라도 된다지만. 나는 점점 우리 가족에게서 어쩔 수 없이 더 바라면 안 되는 딸이 돼가더라고.
처음 프랑스 올 때 우리 부모님이 써주신 편지에는 ‘가서 잘 살아라, 우린 다시 신혼이다’라며 좋아하셨는데 이번에 갈 때는 ‘우린 이제 노년인데 가면 언제 오니?’ 이러시더라. 사업적으로도 코로나 때문에 모든 게 비대면화돼서 내 도움이 더 많이 필요하실 텐데 비행기에 타는 내 발걸음이 공기처럼 가벼웠겠니?
프랑스인들은 이 부모님 걱정하는 마음을 이해를 못해. 프랑스 문화가 아니니까. 그나마 너는 이해를 하니 우리가 왜 이혼을 할 수밖에 없는지 납득하고 내 결정을 지지해줬다는 게 다행 중 불행이다만. 너도 너의 양부모님을 차마 떠날 수가 없어서 날 따라 한국에 못 오잖아. 그러니까 우린 이렇게 싸움 한번 안 하고 어쩔 수 없이 헤어질 수밖에.
[구인: 프랑스 문화를 전채부터 디저트까지 찐으로 경험하고 싶으신 분, 시집살이는 없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