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격차이 5 : 난 걱정하지 않아, 해결할 뿐
“자기는 좀비들이 공격하면 어떻게 할 거야?”
넌 워킹데드를 보다가 물었고
“나?” 난 바삭한 감자칩을 한입 먹으면서 대답했어. 아무래도 좀비 나오는 영화는 물컹한 살라미나 잠봉은 안 당기더라고.
“난 그냥 반항 안 하고 물릴 건데? 뭣하러 저렇게 피곤하게 계속 싸우면서 살아. 그냥 아무 생각 없는 좀비가 속편 하겠다”
“나는 끝까지 싸울 거야! 어떤 상황에도 사람은 살아남고 적응하게 돼있어! “
‘거참 소년 챔프 주인공 나셨네’ 손에 묻은 감자칩 가루를 크리넥스에 닦으며 널 이해 안 간단 눈으로 난 쳐다봤었지. 그때 우스갯소리로 얘기하던 이 상황이 2019년부터 우리에게 닥칠지도 모르고 말이야.
그런데 사람은 자신이 생각하는 모습과 실제 자기 모습이 일치하지 않을 때가 많더라.
세기말적 팬데믹 상황을 막상 겪으니까 내가 워킹데드의 미숀이 돼있더라고. 좀비랑 싸우다 못해 좀비를 붙잡아서 개처럼 부리는 미숀말야. 난 초반에 길 지나가다 좀비한테 물리는 엔딩 크레디트 한참 뒤에나 나오는 행인 5 인줄 알았는데 말이지.
2019년 가을, 우리는 앞으로 같이 할 일들을 꿈꾸며 결혼을 하러 한국에 들어왔어. 서류가 진행되는 기간 동안, 너는 먼저 일을 하러 프랑스로 돌아갔고, 나는 나머지 절차를 한국에 남아 진행하던 중 코로나가 터진 거지.
국경은 닫히기 시작했고, 나는 언제 프랑스에 다시 들어갈지 예측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그저 손 놓고 아무것도 안 하고 있을 수는 없단 생각에 뭐라도 해야 할거 같았어.
“프랑스에 돌아갈 수 없는데, 창업을 해보고 싶어, 해도 될까?”
난 너의 응원을 받으며, 지역 창업 경진 대회를 나갔고, 대상을 수상하게 되었어. 그 계기로 2020년에는 청년창업 사관학교에 입교하게 됐지. 너는 흔쾌히 허락해줬고 우린 그렇게 결혼과 동시에 2년의 시간을 떨어져 지내고 재회를 시작하자마자 이혼하게 될 줄 그때 우린 몰랐지. 네 허락이 어떤 미래를 그리게 될 줄.
그리고 프랑스에 돌아온 지금도, 다른 바이어들이 자유롭게 프랑스로 들어오지 못하는 이 팬데믹 상황을 새로운 기회로 포착해 미숀의 좀비같이 역으로 이용했어. 난 프랑스에 온 후로 계속된 실패의 기억과 좌절의 수치로 인해 내가 원래 어떤 사람인지 잊고 있었던 거지.
내 콧잔등 오른쪽에는 직경 2mm가량으로 파인 흉터가 있어. 초등학생 때, 어린이공원 놀이터에서 동네 남자애들이 쏜 BB탄 총알에 맞아 생긴 흉터야.
2:1로 치사하게 무기도 없는 민간인이었던 나를 계속 조준해서 쏴 맞추더라고. 난 너무 분해서, 바로 학교 앞 문방구에 가 BB탄 권총이 아닌 BB탄 장총 샷건을 산 후 다음날 걔네를 자동 연사로 갈겨줬지. 결국 도망가더라고.
그렇게 승리의 기분을 만끽하며 피아노 악보들과 함께 BB탄총과 탄창을 피아노 의자 안에 고이 보관했어. 마치 무기고처럼 말이야. 그래서 아직도 가끔 피아노 의자 안에서 BB탄 총알이 나오더라.
나의 잊고 있던 투지는 결국 이 위기상황에서 피아노 의자 안 BB탄 총알처럼 굴러 나오게 된 거야. 그런데 어떤 상황에도 살아남겠다고, 언제나 사람은 희망을 찾을 수 있다고 말했던 너는 너무 약해져 있더라. 순순히 좀비한테 물어 뜯기고 있더라고.
좀비가 튀어나오기 전 나오는 좀비보다 더 기분 나쁜 그 전주곡. 영화에서 그 음악을 무시하고 문을 열거나, 허튼짓을 하면 꼭 누가 다치거나 죽더라고.
내 예감과 직감이 그래. ‘에이.. 설마 아니겠지’하고 인생에서 저 전주곡이 들려올 때마다 애써 무시하면 꼭 그 ‘설마’는 이뤄지더라. 그런 일을 번번이 겪은 후로는 난 그 전주곡이 미미하게 연주되기 시작하면 이젠 무시하지 않고 그 소리가 어디서 들려오는지 심히 고민하고 그 근원을 샅샅이 뒤지기 시작해. 마치 외출 준비하는데 실수로 떨어뜨린 귀걸이 한 짝을 찾듯이 말이야.
소박하지만 그래도 포근했던 파리 집으로 돌아온 첫날, 문을 열고 들어가면 라비앙로즈가 흘러나올 줄 알았는데 웬걸 워킹데드 테마곡이 들리더라고.
언뜻 보면 2년 전과 같은 공간 같지만 미묘하게 다른, 예전과 같은 사람 같지만 미묘하게 다른 분위기. 이 집 어디에 좀비가 숨어 있는지 찾기까지는 절대 난 안심할 수 없음을 직감했어.
“자기야, 자, 여기 이 진저브레드 단추가 도안보다 더 크게 짜였잖아, 균일하게 짜야지”
2016년 크리스마스 전, 친구들에게 나눠 줄 진저브레드를 구울 때, 평소엔 다정하다가도 요리할 때만큼은 내 사소한 실수를 절대 안 넘어가 주더라?
‘아니. 진저브레드가 입을 진짜 옷을 납품하는 것도 아니고, 1초면 뱃속으로 사라질 초코 단추 하나에 그렇게 날 혼낼 일이야? 초코가 더 크면 달고 좋은 거 아냐?’ 난 속으로 투덜거리면서도 나보다 섬세한 남자의 모습에 내심 흐뭇했어. 건축을 공부한 뒤로 1mm, 0.7mm, 0.5mm, 0.3mm의 굵기에도 시각적으로 예민해진 내가 진저브레드까지 일하듯 하고 싶지 않았지만 말이야.
넌 그런 사람이었어.
그랬던 네가, 내가 돌아온 첫날, 장시간 비행에 목이 마르니 물 한잔 달라고 한 나에게 2016년 크리스마스 마켓에서 산 뱅쇼 플라스틱 컵에 물을 담아 주더라. 부엌 기름과 먼지가 엉겨 묻어 끈적하고 불쾌한 플라스틱 냄새가 올라오는 물컵을 받았을 때, 난 큰 문제가 있음을 1차적으로 느꼈고,
그래서 바로 일어나 부엌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내가 떠날 때 두고 간 2년 전 그 빵이 그대로 곰팡이가 슬어 있는 걸 발견했을 때 난 너무 놀랐어.
그다음 주, 샐러드를 만들어 먹게 상추를 사 와 달라고 부탁했더니, 거의 반은 다 썩어 30개쯤 되는 잎사귀 중 겨우 5 잎 만을 건진 바타비아를 사 왔지.
그냥 내 심부름이 귀찮아서 우회적으로 반항하는 심리인가 생각할 수 있겠지만 이건 그런 문제가 아니었어.
이것들은 다 네가 삶에 무력해졌음을 나타낸 징조들이었어. 넌 2년 동안 아무것도 안 하고 내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다, 결국 절망이란 좀비에 순순히 물려버린 거야.
어릴 적, 어머니에게 버림받은 너에게 사랑하는 사람과 분리되는 기약 없는 기다림은 인생에 다시는 견딜 수 없는 고통이었겠지. 그 사실을 깨달은 새벽, 나는 너무 미안하고 괴로워 몰래 숨죽이며 이를 악물고 울었어.
그래, 이게 내가 너에게 헤어지자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야, 넌 모르겠지만. 평소처럼 걱정 말라고, 언제든 여기서 변하지 않고 기다리겠다고 말하겠지만, 안돼. 그런 건 삶이 아니야.
난 사업을 위해 이번에 또 한국에 돌아가야 하는데, 내가 다시 널 그 불확실한 무한의 시간을 견디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 아무 생각 없어 보이는 좀비만큼 지켜보기 슬픈 존재가 없더라고.
[구인: 일요일마다 빵 굽기 좋아하시는 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