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비전남편과 이혼여행 Day 3

햇살보다 따뜻한 북쪽에서 내려온 너의 온기

by 키케

오전 9시 보르도 관광청 앞에서 시작되는 생떼밀리옹 와인 투어는 아쉽게도 강아지 올리는 참가 할 수 없어서 숙소에 두기로 했어. 사실 올리도 쉬고 싶을 거야. 어제 하루 종일 같이 시내를 돌아다닌 끝에 마지막 그라브 와이너리 방문 때는 옆에서 꾸벅꾸벅 졸더라. 개도 오래 걸으면 사람처럼 근육통이 생기는지 궁금하네.

가이드는 보르도 메독 지역에서 태어나고 자란 얀이 맡았어. 우리 외에도 영국인 한나와 샨, 미국인 부부 로렌과 스티븐이 오늘 투어를 함께 하게 됐지. 서로 짤막한 자기소개를 마친 후, 생떼밀리옹으로 가는 벤에 다 같이 올라탔어. 얀은 보르도 지방, 프랑스 와인의 유래와 법 등 프랑스 와인을 잘 모르는 사람도 알기 쉽게 쉬운 영어로 설명하며 중간에 질문을 하는 등 매우 능숙하게 투어를 진행하더라.


사실 난 와인을 좋아하지만 프랑스 와인밖에 모르고, 그래서 내 머릿속 와인 맛은 프랑스 지역별로 기억하고 있다 보니 사실 와인을 품종으로 말하면 무슨 맛인지 잘 모르곤 했어, 단일품종으로 마신 적이 적기 때문이었지. 그 이유가 프랑스 외 신세계(미국, 호주, 남미 등)의 와인은 포도 품종으로 구분하고 프랑스 와인은 지역으로 구분해서 그렇단 것도 이번에 처음 알았어.

‘어떤 와인이 최고의 와인이냐’는 얀의 질문에, 넌 프렌치 악센트가 잔뜩 섞인 H묵음의 영어 발음으로 ‘같이 마시는 사람이 즐겁게 마실 수 있는 와인’라고 대답했지. 참 프랑스인다운 대답이야.

벤에서 내려 자전거로 갈아타고 우린 본격적으로 생떼밀리옹 지역 와이너리 투어를 시작했어. 뜨거운 태양과 달리 선선한 바람이 불어왔고, 그 공기 안에 섞인 부드러운 땅과 나무 냄새를 맡으며 자전거 페달을 밝았어. 이 순간은 영원히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고 맴돌 거 같아.


여행을 떠나기 전, 시음 와인을 모두 마시지 말고, 맛만 보고 통에 뱉으라는 소피의 충고를 넌 잘 따랐고, 난 입에 들어온 와인은 뱉지 않는다는 내 신념을 따라 다 삼켰지.

뜨거운 태양에 빠르게 올라 온 알코올 기운 때문에 나는 그만 언덕을 올라가다 휘청이며 균형을 잃고 자전거에서 떨어져 굴렀어. 아픈 것보다 창피한 게 더 싫은 난 바로 벌떡 일어나 주위를 살펴 내가 넘어진 걸 본 사람이 없는지부터 둘러봤고, 넌 자전거에서 내려 바로 달려와 내가 어디를 다쳤는지부터 살폈어.


“소독해야겠다, 상처가 꽤 심하게 났어”


나는 대충 옷에 묻은 먼지부터 쓱쓱 털고, 미스트로 상처에 붙은 흙을 씻어 낸 후, 뜯어져 말린 피부를 펴 상처 위로 다시 덮곤, 자전거에 올라타며 말했어


“나중에! 사람들 없을 때 하자. 괜히 호들갑 떨어서 이목을 집중시키고 싶지 않아. 이 정도로 안 죽어”


“그럼 이따가 설명할 때 소독하자, 덧나면 흉터 남아”


“괜찮아, 흉 진다고 사람 안 죽어”


난 다시 페달을 밟으며 먼저 출발했고 이런 성격 때문에 몸에 흉터가 점점 늘어나는 날 잔뜩 걱정하는 눈으로 넌 뒤따라 왔어.

투어 중 쉬는 시간마다, 넌 살뜰히 챙겨 온 응급 구급약 파우치백에서 알코올을 꺼내 내가 다친걸 다른 사람에게 들키지 않게 몰래 치료해줬어. 자존심 센 참 피곤한 여자야. 정글에 사는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약해진 걸 남한테 들키기 싫은지 모르겠어 나도.


마지막으로 밴드까지 붙이고는 넌 파우치백을 다시 정리 해 넣는데 그 안에 내 알레르기 약과 진통제가 보이더라. 참 다정하고 섬세한 사람이야 넌. 너의 그 따뜻함이 난 여전히 좋아.


아름다운 이별을 마무리하려 시작한 이 여행이 어째 잘라낸 미련만 자꾸 자라나게 하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