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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케 Sep 13. 2021

하늘 위 자갈길을 지나 귀국

고양이의 보은

하늘에도 자갈길이 있는지, 비포장 도로를 달리는 듯한 덜컹거림이 느껴졌어. 그러다  안내 방송이 나오는데 독일어라 그런지  심각하게 느껴지더라.


‘이건 롤러코스터 부가서비스다. 놀이공원 못 간지도 한참 됐는데 잘됐네’


그렇게 롯데월드보단 좀 더 긴 롤러코스터를 타고 인천공항에 도착했어.


비행기에서 빠져나와 전원이 꺼진 체온 검사기 여러 대가 있는 컴컴한 통로를 지나는데 폐허가 된 레지던트 이블 속 주인공이 된 기분이더라.


그리고 외국인과 한국인으로 나눠진 검역 관리 체크포인트에 도착해 PCR 검사지, 자가격리 면제사유서, 여권, 백신 접종증명서를 다시 한번 제출했는데


“혹시 생년월일 같이 기재된 PCR검사지는 따로 없나요? 여기 이 결과서에는 그 내용이 없네요”


고양이의 보은이 이렇게 즉각적으로 올 줄이야. 아까 고양이 집사 재외동포분을 도운 덕에 난 당황하지 않고 다시 답변할 수 있었어.


“아. 그러면 다른 결과지 형식이 있는데 일단 화면으로 보여 드릴게요, 이걸 인쇄해서 드리면 될까요?”


“네, 이걸로 제출해 주세요, 저기 오른쪽으로 가셔서 프린터기에서 인쇄해 오세요”


그렇게 간 증명서 제출용 컴퓨터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로그인했다 로그아웃한 메일 흔적이 있더라.

 ‘다들 처음 겪는 일이라 당황스러웠겠다. 전 세계적으로 또 이 프로토콜을 만들려고 고생들 했겠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로그인 계정 리스트에 내 메일 주소를 더하려는 순간, 검역소 직원이 나타나더니


“이 메일로 보내주시면 제가 인쇄해드릴게요, 그게 빠르세요”


이 효율적인 업무 정신에 내 고국에 옮을 절감 했어. 그렇게 다시 서류를 제출하러 갔는데 옆에 외국인과 앞에 한국분들은 자가격리 14일로 결정돼더라. 죄도 안 짓고 14일 동안 독방 신세라니 그저 안타까웠어. 하지만 어쩌겠어 다른 방법이 없으니.


여권에 해외 예방접종 격리 면제자, PCR제출자 스티커를 붙이고 다시 어플을 깔고 검사를 받고 입국심사에서 검역 계획서를 제출한 후 드디어 짐을 찾을 수 있었어. 컨베어 벨트 옆은 텅텅 빈 채, 캐리어만 빽빽이 쌓여 제 주인을 기다리며 빙빙 돌고 있었고 이도 처음 보는 광경이라 낯설었어. 인천공항에 도착하면 그 특유의 한국에 왔다는 안도감보다 낯선 곳에 떨어진 기분이더라.


난 22.7kg의 술 가방과 그에 비해 평범한 캐리어를 찾은 후 세관신고장으로 갔어.


“와인 7병, 위스키 2병이시네요. 혹시 주류세에 대해 알아보셨어요? 좀 비쌀 텐데”


“아 네! 그 위스키가 원래 1병은 관세 면제이고, 나머지 한 병은 이게 … 진이긴 한데 무알콜이라.. 이것도 술로 분류가 되는지 몰라서 일단 적었어요”


“ 진인데 무알콜이라고요? 그런 게 있나요?”


“네 확인해보시겠어요? 잠시만요 제가 열어서 보여드릴게요”


그리고 술 가방을 열렸는데 하필 잠금장치에 옷이 물렸는지 걸려서 열리지 않았어. 당황한 나머지 직원에게 잠시만 기다리라면서 사정없이 잠금장치 옆을 발로 줘 패고 있는데 직원이 내 캐리어가 불쌍했는지 결국 날 말리더라고.


 “괜…. 괜찮아요, 위스키는 면제해드릴게요”


“아니 제가 혹시 몰라서 캐리어 안 사진을 찍어뒀는데 사진으로라도 보여드릴게요”


그렇게 100원 부족한 십만 원의 세금을 납부하고 다시 동물검역절차를 지나 드디어 공항을 빠져나올 수 있었어. 그리고 아무도 없는 빈 집에 도착하자마자 짐을 내려놓고, 다시 보건소 지정 검역소에 가서 PCR 검사를 받았어.


“어이구 잘하시네! 코도 보여주세요! 옳지 잘한다! 와 잘하셨어요 이제 장갑 벗고 손 소독하고 가시면 됩니다.”


이 나이에 어릴 때도 안 받아본 우쭈쭈를 받으며 콧구멍 2개, 입구멍 1개 무려 3개의 검체 체취를 당하고 귀국을 마무리했지.


집으로 오는 길이 이번엔 참 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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