챕터 4 여독 2
난 얼른 소파에 앉아 짖는 소리가 잦아들 때까지 간식을 주고, 배를 긁어주고, 머리를 쓰다듬고, 난 정신이 없었고 추석 당일, 형부는 처가 식구랑 같이 먹을 점심상을 차리느라 부엌에서 정신이 없어 보여.
“오늘 밥은 엄마가 하셔? 아니면 외식이야?”
“오늘 엄마가 요리하시는 거 같던데?”
“아.. 남편이랑 미리 좀 먹고 가야겠네”
요리를 매우 귀찮아하는 우리 엄마의 음식은 2차 가공까지 가지 못해. 굽거나 찌거나 삶거나 자르거나 에어 그치곤 해. 형부 입장에선 본식도 내오기 전, 전식에서 끝나는 기분인지, 언제부터인가 처갓집에 초대를 받으면 미리 밥을 먹고 오더라. 이번 추석은 음식 솜씨 좋은 형부가 먼저 초대해서 다행이야.
새로 이사한 언니 집 식탁엔 형부가 직접 한 갈비찜과 나물, 전, 김치 그리고 언니가 사 온 잡채가 놓였어.
“와 자네 덕에 명절 기분 나네!” 15년 만에 명절에 온 가족이 모여서 그런 건지, 푸짐한 식탁 때문인지 아빠가 유독 들떠 보이셔. 사실 나도 그래, 추석에 게맛살이 들어간 꼬치전이 먹고 싶었거든.
MBTI 중 T만 있는 우리 가족 간의 평범한 식탁 위 대화가 시작됐어. 오로지 이성과 팩트만 오가는 참 당연한 가족 간의 대화 혹은 브리핑, 혹은 식탁 회의가 오갔고 유일한 F 유형인 형부가 발언을 했어.
“다 잘 될 거예요"
“…”
너무나도 낯선 이 문장에 모두 황당해서 순간 정적이 흘렀어.
사실관계를 확인하며 정보를 교환하는 방식의 가족 간의 대화와는 다른,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답이었거든. 그리곤 다들 너무 재밌어서 웃기 시작했어.
갑자기 왜 그런지 어안이 벙벙한 형부에게 언니가 설명했어
“아니 너무 낯설어서 그래, 지금까지 아무도 이런 말을 한 적이 없거든. 남편 진짜 찐 F네”
식사가 끝나고 더 이상 교환할 근황이 없다 판단하신 건지, 도착한 지 한 시간 만에 부모님은 떠나시고 나는 좀 더 언니네에 있다 가기로 했어.
“밥 먹으러 오라 했다고 진짜 밥만 먹고 가시네”
“그러게 엄마 아빠다워. 용건만 간단히” 난 다시 소파에 누웠고 내 위로 개가 누웠어. 따뜻하고 폭신한 체온이 배부터 퍼지기 시작했고 배도 부르고 나른해지더라.
왜 나한테 한국 남자랑 결혼해 다시 살 생각하지 말라는 지 모르겠어, 우리 집 분위기 좋기만 한데 말이야. 항상 사람 나름인 거지. 지금 당장은 아직 마무리 중인 결혼 생각 보단 그저 누워 쉬고 싶단 생각뿐이야.
“이래서 이 집 여자들은 안돼. 큰일이다 나중에 내 딸이 닮으면 어떻게 해. 어휴"
양천구 최수종이란 별명을 챔피언 타이틀처럼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형부가 혀를 차며 말을 했어
“처제, 만약에 제부 아니 니콜라가 한국으로 갈 테니 기다려 달라 그랬으면 기다렸을 거지?”
난 아무렇지 않은 척 ‘에이… 아니지!’라고 대답하고 싶었지만 흔들리는 눈을 숨기려고 애꿎은 개만 쓰다듬으며 시선을 피했어
“봐봐. 어휴… 기다렸겠네! 이 집 여자들은 이래서 큰일이야 처제 성격상 또! 그래! 그럼 내가 기다리면서 다 준비하고 있을 게! 이러면서 소처럼 일이나 했겠지. 어휴 XX아 넌 혹여라도 태어나서 이모 닮으면 안 된다”
양천구 최수종의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딸인지 아들인지도 모를 자기 자식 걱정을 시킨 내가 괜히 미안해질 지경이더라.
다시 누워서 언니와 형부의 대화를 듣고 보았고, 저런 모습이 부부인가 싶더라. 끊임없이 재잘대고 별일 아닌 걸로 깔깔거리고. 우린 마지막으로 재잘 된 게 언제였더라. 2년 전이었던가. 3년 전이었던가.
함께 한 날보다 떨어진 시간이 늘어져서 다시 그날의 거리까지 재보기 너무 멀게 느껴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