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비전남편과 이혼사유 3

성격차이 2 난 애니메이션보다 예술작품을 더 좋아해.

by 키케

난 어렸을 때, 일요일 아침 7시에 시작하는 디즈니 동산 만화를 보기 위해 그날만큼은 일찍 일어나곤 했어. 그 동심을 넌 어른이 돼서도 여전히 간직하고 있었어.

일요일 아침마다 새로운 드래곤볼 에피소드를 기다렸다 보는 모습이 신선하고 귀여웠어. 그 아침 일상이 나한테 순수와 동심을 그대로 간직한 어린 왕자의 하루 같아 신선했지.

우리가 연인이 된 첫 해, ‘포켓몬 고’가 출시했고, 우린 동네 애들 사이에 끼어서 잠만보를 잡겠다고 시청 근처 계단에 앉아 기다렸던 날을 잊지 못할 거야. 다시 어렸을 때로 돌아간 거 같아 좋았거든. 선선한 바람 속에 섞여 은은히 나던, 흙먼지 섞인 초여름 라일락 향기도.


15구 보그르넬 레스토랑에서 넌 나에게 프로포즈하며 약속을 하나 했어. (반지는 없었지만)


‘다른 건 몰라도, 내가 지금까지 너에게 해준 모든 것, 영원히 변하지 않을걸 약속할게’.

그리고 넌 그 약속을 정말 지켰어. 너무 잘 지켰지. 하지만 난, 한 곳에 머무르길 좋아하는 집고양이보단 행동반경이 매우 넓은 야생 호랑이야.


난 내 감각을 지루하게 하지 않는 새로운 경험을 원해. 내 호기심은 허기진 아귀 같아서 끊임없이 새로 밥그릇을 채워주지 않으면 내 정신을 대신 집어 먹는 듯하거든.

새로운 현상, 신기술과 스타트업, 새 트렌드의 패션, 처음 만나는 사람들, 처음 맛보는 음식, 처음 가보는 곳, 처음 배우는 단어와 새로운 언어, 신간 서적, 매년 맛이 달라지는 와인들, 먹어도 먹어도 끝이 없는 다양한 프랑스 치즈들, 처음 보는 외국 식물들과 그 미묘한 냄새와 형태, 내 사고체계와 시각을 뒤흔들만한 철학과 이론, 새로운 영감을 주는 예술작품들. 국악과 현대음악까지 새로운 조합의 박자와 음들. 몸의 몰랐던 감각과 자극을 일깨우는 운동들.

결혼 후, 너는 매일 아침 7시 모닝 에스프레소를 내려 주고, 45g의 사료를 강아지 올리에게 준 후, 매일 아침 8시, 저녁 7시 올리를 Rue de Chateau에서 산책시키고, 주말에는 잠시 날씨가 좋으면 공원에 가거나 영화를 보거나 레스토랑을 가거나 그도 아니면 집에서 넷플릭스를 보거나, 한 달에 한 번씩 3일 동안 릴에 있는 시댁에 가고, 매일 저녁 8시, 시어머니 프랑소와의 전화가 오면 같은 안부를 묻고, 나에게 같은 대화와 유머를 반복했어.


하늘을 빠르게 가로지르는 혜성 같이 불타는 운명을 꿈꾸던 나의 삶이 벗어날 수 없는 중력에 붙잡혀 한 곳을 빙빙 같은 속도로 맴도는 위성 같아졌어. 이렇게 내 세계는 한국에서 프랑스로, 프랑스에서 파리로, 파리에서 우리 동네 반경 15km로, 결국엔 길이 220cm 소파로 점점 쪼그라들더라.

아마 난 이런 반복되는 정적인 삶을 원치 않았나 봐. 심장이 두근거릴 정도로 아드레날린이 솟구치는 위험을 감당하며 싸우고 난 후, 내가 강해지는 걸 느끼며 행복해하는 사람이었던거야. 설령 그 싸움에서 지더라도 최선을 다해 부딪혔다면 멋진 도전이었다고 만족하는. 그런 나는 감당하기 어려운 무게로 레그 프레스를 도전하다 다쳐 결국 두 줄로 길게 남은 내 정강이 흉터를 자랑스러워해. 내 한계에 도전했다는 증거니까

이렇게 또 집에 갇힌 채, 아침마다 라데팡스 빌딩의 불빛들을 창 너머로 하염없이 바라 보는 삶이 계속 이어진다면,

창문 멀리 아래에 보이는 길을 걸으려 19층에서 단번에 뛰어내려 무지개 다리를 건너게 된,시누이 소피의 3번째 메인 쿤 고양이 오렌지와 같은 결말을 맞이할지도 몰라.


그동안, 약속을 성실하게 잘 지켜줘서 고마워 하지만 난 더 이상 그 약속을 같이 못 지킬 거 같아.


‘자기 자신을 정확히 아는 것으로부터 시작하라, 자신을 제대로 알지 못하면 사랑을 사랑으로 느낄 수 없다. 사랑하기 위해, 사랑받기 위해, 스스로를 정확히 아는 것부터 시작하라. 자신조차 모르면서 상대를 알기란 불가능한 일이다.’(니체, ‘아침놀’에서)


결혼을 시작했을 때, 나 자신을 정확히 몰랐기 때문에, 너를 그리고 나조차도, 제대로 사랑하지 못한 거 같아. 너의 세계 속에 초대해 살게하고 나 자신을 정확히 알게 해줘서 고마워.


구인 : 향긋한 커피향으로 아침을 시작하고 안정적으로 놀랄일 없는 정적인 일상을 좋아하시는 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