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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그라미 Oct 25. 2024

초핫딜 장어는 죄가 없다.

몇 푼 아끼려다 놓친 것, 아이는 알고 있다.


                                        “초핫딜!! 민물장어 1kg 16900원.”

 

핸드폰의 수많은 알림 속에 영롱하게 빛나는 문구가 있다. 무려 장어. 놓칠 수 없다.

고단백 저지방에 여기저기 좋다는 다양한 영양소가 잔뜩 들어있는. 그렇지만 성인보다 더 먹는 사춘기 장정이 둘이나 되는 5인 가정이 제 값 주고 먹기에는 비싼 아이템이다.


알림을 확인한 그 순간은 내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당장 하던 일을 모두 멈추고 핫딜 천사님이 올려주신 보석 같은 정보를 확인해야 한다. 비록 아이의 손을 잡고 걷고 있을지언정. 아무리 급해도 모정이 먼저인 엄마 아닌가. 일단 아이의 안전과 나의 집중력을 최대로 발휘할 장소를 확보해야 한다. 둘러보니 비둘기 몇 마리가 과자 부스러기를 쪼아 먹는 광경을 구경할 수 있는 벤치가 보인다. 서둘러 벤치에 앉혀놓고 에코백을 뒤져본다. 언젠가 먹다 남은 마이쮸가 손에 잡힌다. 세상 다정하게 까서 입에 쏙 넣어준다. 마이쮸를 다 먹는 동안은 엄마에게 말 시키지 말라는 무언의 부탁이다.




급하게 핸드폰을 연다. 혹시 그 짧은 순간에 품절이 되었을 까바 조마조마하게.

역시나 조회 수와 댓글이 세 자릿수를 넘어간다. 굳이 내가 수고스럽게 가격 비교를 하지 않아도 이미 믿을만한 정보라는 사실이 검증된 것이다. 꼼꼼히 확인할 시간이 없다. 이제 필요한 건 손가락의 스피드이다. 서둘러 스크롤을 내리며 사용할 쿠폰정보와 가격을 눈에 담고 구매링크를 클릭.

다행히 아직 구매가 된다. 은혜로운 판매자님께서 수량을 넉넉히 푸셨군. 수량을 두 개로 하고 결제를 하고 핸드폰을 닫으려는데, 뭔가 이상한 기운이 덮친다. 이럴 때만 빠른 암산 실력 발휘되는 순간이다. 최종 금액이 핫딜 천사님이 알려주신 금액에 곱하기 2를 한 결괏값과 다르다.


다시 한번 핫딜 정보를 꼼꼼하게 확인해 보니 역시나 놓친 게 있다. 한 번에 깔끔하게 되는 쉬운 인생을 너는 아직 겪을 자격이 없다고 신은 굳이 또 확인하게 하신다.

불안한 마음으로 댓글을 클릭한다. 쿠폰 적용한도가 1만 원에 최대 2000원이라 2kg을 한 번에 사면 2천 원밖에 할인이 안 된단다. 2kg는 쿠폰을 2번 받아서 1kg씩 2번에 나눠서 구매해야 한다고. 아, 역시 똑똑한 천사님들. 일말의 고민도 없이 취소 버튼을 누른다. 취소하고 다시 구매하는 그 사이에 품절이 될 수도 있다는 걸 알고 있다. 하지만 못 사면 못 샀지 남들보다 무려 2천 원이나 비싸게 사는 건 용납할 수 없다.


손가락을 한번 털고 다시 시작이다. 구매하고 결제하고 다시 구매하고 결제하기. 같은 과정을 2번 반복하는 비효율적인 활동으로 당당히 장어 2kg을 초핫딜 가격으로 구매했다. 개선장군 마냥 뿌듯하고 입가엔 나도 모르는 미소가 지어졌을 것이다. 웃는 엄마가 좋은 착한 아이는 엄마가 핸드폰만 보던 시간에 조용히 입 다물고 비둘기 밥 먹는 것만 구경했던 따분한 시간은 바로 잊고 같이 웃어준다. 다시 아이 손을 잡고 일어선다. 집에 가자마자 양치하자는 당부를 잊지 않고.




“나 장어 2kg 샀어.”

저녁식사 시간에 남편에게 당당하게 통보한다.

며칠만 기다리라고, 내 오동통하고 고소하고 기름 좔좔 흐르는 장어를 잡아올 테니. 지금 눈앞의 부실한 저녁상은 눈감아달라고, 친구여. 구매 상세페이지에서 봤던 장어의 고운 자태를 떠올리자, 목소리에 힘이 들어간다. 의심하지 말라, 남편이여. 아주 그냥 노릇노릇하게 구워 온 집안을 장어 기름으로 범벅을 해줄 테니. 아무리 생각해 봐도 당신 진짜 장가 잘 갔어. 똑똑한 아내 덕에 그 고운 장어를 그 가격에 배 터지게 먹게 된 거, 고맙게 생각하라고. 장어라는 단어에 눈을 반짝하며 관심을 보이는 남편을 보며 똑똑한 와이프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얼만데?”

아, 이런 핵심을 말하지 않았군. 그게 얼마였냐면 말이지? 어.. 얼마더라?

머뭇거리는 그 찰나를 놓치지 않고 잔소리를 장전하려는 게 보인다. 남편이여, 그 입 다물고 5초만 기다려라. 재빨리 핸드폰을 열고 주문내역을 확인한다.

“삼만 삼천 팔백 원! 벌써 품절됐어!”

이거 봐봐라. 이게 얼마나 희귀템인지 이제 너도 알렸다. 이게 돈만 있다고 살 수 있는 게 아니다. 이제야 슬쩍 꼬리를 내리고는 칭찬에 인색한 남자가 한마디 한다.

다음에 뜨면 부모님네도 사드리라고.

16년 차가 되니 이제 나는 안다.

저 효자 빙의한 한마디가 내 아내의 빠른 판단력과 실행력에 박수를 보내며 경의를 표한다는 말을 돌려한 것임을.

그럼 그럼.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언젠가는 부모님 댁에도 장어 두 마리 넣어드려야지.




이 모든 상황을 고사리 손으로 김에 밥을 싸 먹으면서 아이가 보고 있다.

엄마가 밥 먹다가 핸드폰을 보더니 아빠한테도 보여주고 막 좋다고 웃고 있다.

나도 태블릿 보면서 밥 먹고 싶다고 했다가 한마디 들었다.

“밥 먹을 땐 밥 먹는데 집중하는 거예요.”

거 참 이상하네.

장어? 그게 뭔데? 이상한 냄새나고 가시 많아서 먹기 힘든데 엄마가 키 크는 거라고 눈을 레리꼬 안나보다 더 크게 뜨고서 가시를 뽑아내고 입에 넣어주던 그건가?

뭔데 자꾸 우리 엄마를 핸드폰과 합체시킨단 말인가?

아까 의자에 앉아 마이쮸 안 먹었으면 빨리 집에 와서 내가 좋아하는 돈가스를 먹었을 거 같은데.

밥 다 먹으면 아까 다이X에서 산 티니핑 스티커(3000원) 놀이나 해야겠다.

이때부터 5년 차 인생을 살던 아이는 뭔가 이상함을 감지했나 보다.


아이는 본 대로 자란다고 하는데.. 그날의 내 아이가 본 것은 무엇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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