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진항에서 11시에 가파도행 배를 타고 들어가 13시 50분 배를 타고 나왔다. (섬에 들어가는 배표를 살 때 나오는 배 시각이 정해진다.) 4.2km는 긴 거리가 아니었지만, 청보리 속에서 사진도 찍고 바다 건너 보이는 산들을 구경하며 걷기에 두 시간 삼십 분은 조금 빠듯한 시간이었다. 종점에서 점심을 먹고 다시 배 타는 곳으로 서둘러 걸어왔다.
8년 만에 찾은 가파도는 아주 다른 섬인 듯했다. 우도 올레(1-1코스)를 걸을 때도 배에서 내렸을 땐 그 번화된 모습에 적잖이 놀랐다. 그러다 해변에서 벗어나 섬 안으로 들어갈수록 우도만의 매력을 느낄 수 있었기에 이번에도 기대를 했는데, 가파도는 달랐다. 워낙 작은 섬이라 해변을 둘러 번화한 섬은 그 섬 전체 분위기가 되어 있었다.
청보리 축제가 조금 지난 탓에 푸르디푸른 청보리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펼쳐진 보리밭만큼은 가파도에 하룻밤 더 머물고 싶게 해 주었다. 남편은 하루 묵으면서 배가 들어오기 전 이른 아침에 인적이 드문 보리밭을 걸어보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다.
가파도 올레는 거리도 짧지만, 난이도마저도 "하"라서 처음 올레를 걷거나, 많이 걸을 수 없는 날 걷기에 제격이다. 우리는 걷기 여행 마지막 날에 이 코스를 걸었다.
걷기가 워낙 편한 코스라서 주변을 둘러보며 걷기에 좋다. 더군다나 가파도에서는 제주에 있는 일곱 개의 산 중에 여섯 개의 산이 보인다는데, 우리는 맑았던 날씨 덕분에 그 여섯 개의 산을 볼 수 있었다.
8년 전의 가파도를 기대하고 섬에 들어왔던 나에게는 조금은 실망스러웠지만, 가파도에 처음 왔거나 기대감을 높이 두지 않았던 이라면 섬의 아름다움에 감탄하지 않았을까. 누군가는 고층 건물들 사이에서 답답함을 인식조차 하지 못하며 살다가, 배에서 내린 순간부터 끝없이 펼쳐진 가파도의 모습 만으로 크나큰 쉼이 되었을 수 있다.
요 며칠, 사람에 대한 기대를 너무 높이 두었구나 하는 것을 인식하고 있다.
'그러지 말아야지' 하지만 높이 올라가지 않게 잡고 있던 끈을 놓쳤다는 것을 인식하는 순간이 온다. 예외 없이 통증으로 인식되는 순간이다. (상처받는다는 표현을 그리 좋아하지 않지만) 깊이 상처를 받아야만 기대가 저만치 높아져 있다는 것을 보게 된다. 다시 끈을 찾아 단단히 잡고 끌어내려야만 한다는 것을 알아간다.
나조차도 8년 전의 내가 아닌 것을. 8년 전의 가파도를 기대했던 것은 나만의 고집이었다는 것을 알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