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마음 단상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툇마루 Jul 20. 2023

마음에도 사치가 필요해요

라이프코치의 도움을 받아 천천히 '나'를 알아가는 중이다. 어쩌다 보니 50년을 살아온 나에게 주는 선물이 되어가고 있다.


나를 들여다보고 다독여주는 시간이 사치라고 생각한 때가 있었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전 세계 사람들이 어쩔 수 없는 사회적 단절을 겪던 초기였다. '코로나 블루'라 불리는 우울이 소리 없이 사람들 사이에 스며들었고 나도 그 블루를 겪게 되었다. 그러다 온라인상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프로그램을 발견하게 되었고,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에 다른 두 개의 프로그램을 동시에 신청하게 되었다. (섣불렀다는 것을 알고 둘 중 하나는 도중에 정리하게 되었지만.) 심리학에 기반해서 자신을 들여다볼 수 있는 책을 읽고 챕터별로 자신의 이야기를 나누는 프로그램과, 자신의 어린 시절부터 되짚어보게 하는 프로그램이었다. 

6개월 즈음이 지났을까. 나를 위한 시간이 너무 길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점점 그 시간들이 사치스럽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이 정도 징징거렸으면 이제 마음 추슬러야지. 언제까지 이럴 거야'라는 자책을 했다. 도중에 그만두지 않고 이어가던 프로그램은 책 서너 권쯤에서 멤버 모두(총 여섯 명)의 시기가 맞아서 마무리하게 되었지만, 그 이후로 이 정도면 넘치도록 나에게 투자했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꽤 오래전부터, 물리적으로는 못할지언정 마음으로라도 함께 해야 할 것이 세상에 쌓여 있다고 생각했다. 부담이었지만 해야 할 의무라 여겼다. 환경을 생각하며 절제하는 지구인이어야 했고, 누가 보지 않더라도 사회 질서는 지키는 사회구성원이어야 했으며, 아이들을 밝게 존중하는 어른의 모습이어야 했고, 어디 한 구석에라도 좋은 영향을 미치는 사람이어야 했다. 맞다. 나는 누가 알아주든 말든 "훌륭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남편에게 물었다. 나는 어떤 사람인 것 같냐고. 처음엔 장난스럽게 대답하던 남편도 나의 진지함을 따라 점점 진지한 대답을 내주었다. 서너 개의 대답 중에 '자신에게 엄격한 사람'이라는 답이 있었다.


오래전 이효리 씨가 방송에서 어떤 아이에게 "뭘 훌륭한 사람이 돼, 그냥 아무나 돼!"라고 말해서 화제가 된 적이 있다. 꼭 훌륭한 사람이 되지 않아도 되니 하고 싶은 걸 하라는 의미였다. 그때는 그 말을 하는 이효리 씨가 멋있다고 생각하면서도 정작 내게는 그 말을 적용하지 못했다. 여전히 엄격하게 많은 것을 지켜내며 지내오다가 '내가 힘들구나'를 알게 되면서 그 말을 적용하게 되었다. '그냥 아무나'가 되기 위해서 힘을 빼기로 했고, 코칭을 시작하게 되었다. 사치라고 여겼던 시간을 심지어 넉넉하게 가져가 보기로 했다. 세 번의 시간이 지났을 뿐인데, 엄격했던 마음이 풀어지려는 것이 조금씩 느껴진다. 그리고, 내게 엄격했던 만큼 남에게도 엄격했다는 것을 보게 되었다. 그리곤 남에게 가져다 대던 잣대가 살짝 말캉해진다는 것을 느낀다. 미세한 만큼이지만.

신기했다. 코칭 중엔 나를 들여다볼 뿐 남에 대한 이야기는 없었음에도 예상하지 못했던 말캉함이 생기다니. 그렇다고 드라마틱하게 어려웠던 관계가 진전되거나 한 것은 아니지만 기대감이 생긴다.


어렸을 때 어른의 물음에 "훌륭한 사람이 되고 싶어요!"라고 대답한 적이 있는지 없는지는 전혀 기억이 없다. 자라면서 어떤 욕구가 어떤 방식으로 내면에 작용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이제는 훌륭한 사람이 되지 않아도 된다는 욕구가 또 다른 방식으로 나의 내면에 잘 작용해 주기를 바랄 뿐이다. 즐겁게 의무를 누리는 '그냥 아무나'가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참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