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올레 11코스

가을 끝에 걸은 제주올레

by 툇마루
11코스를 역방향으로 걸어, 종점인 무릉외갓집에서 스탬프 찍고 출발



걸은 날: 2025년 11월 29일

11코스: 모슬포 - 무릉 올레/ 17.3km (제주올레 홈페이지 www.jejuolle.or 참고)

기온: 8-18℃ / 11월 말 같지 않게 제주의 기온은 높았고, 비행기를 타야 하는 서울의 새벽 기온은 거의 0℃에 가까운 기온이었다.

옷차림: 새벽 비행기를 타고 제주에 도착해서 곧장 11코스를 걸어야 했는데, 기온차가 커서 옷차림에 고민이 많았다. 두꺼운 겉옷은 걷는 동안 무거운 짐이 될 것 같아서, 가벼운 옷을 겹쳐있는 것으로 선택했다. 이너로 짧은 소매 스포츠 티셔츠, 긴소매 스포츠 티셔츠, 경량 이너 패딩, 간절기용 바람막이 재킷을 겹쳐 입었다. 그리고 서울에서의 이동 시간에는 배낭 무게에 부담을 주지 않는 경량 머플러를 이용했다.




2022년에 걷기 시작한 제주올레가 이번 여행에서 11, 12코스를 걷고서야 비로소 끝이 보이는구나 했다. 추자 올레 두 코스와 제주올레 여행자 센터가 있는 6코스, 총 세 코스를 남겨두게 되었다. 제주올레 여행자 센터는 올레길 완주 인증을 받을 수 있는 곳이라, 올레길을 걸어서 그곳에 도착하고 싶은 마음에 마지막 코스로 남겨두었다.


교통편: 김포공항에서 새벽 6시 40분 비행기를 타기 위해 4시에 일어나 서둘러 집을 나섰다. 운행하는 첫 지하철을 타고 공항에 도착했지만 토요일이라 검색대 줄이 길어진 바람에 아슬아슬하게 탑승 시간에 도착할 수 있었다.

제주 공항에서 성게 미역국으로 아침 식사를 하고 (공항 내 식당의 한식은 급히 이동해야 하는 이유가 있지 않다면 가능한 공항 밖으로 나가서 드시길 추천합니다.) 모슬포 방향으로 가는 251-1번 버스를 탔다. 역방향으로 걷기로 했기에 11코스 종점이자 12코스의 시작점인 무릉외갓집으로 가야 했는데, 공항에서 한 번에 가는 버스가 없어 갈아타야 했다. 하지만 갈아타야 하는 버스는 운행 간격이 길었기 때문에 우리는 서광리 정류장에 내려서 택시를 타고 15분 정도 이동했다.


무릉외갓집에서 준비 운동과 스탬프


무릉외갓집에서 간단한 간식거리를 구입하고 걷기 시작했다. 마을을 지나 얼마 걷지 않아 조용한 숲길이 이어졌다. 결코 짧지 않은 '신평-무릉 사이 곶자왈'이었는데 단 한 명의 올레꾼도 만나지 못할 만큼 적막했다. 오로지 새소리, 바람소리, 나뭇가지 부딪는 소리 그리고 우리 부부의 발소리뿐이었다. 오롯이 자연 속에 담길 수 있는 그 적막이 좋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혼자서 걸었다면 꽤나 무서웠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곶자왈 돌길은 배낭을 멘 채 걷기에는 난이도가 상당했다. (발목이 보호되는 등산화를 추천드려요.)



식당, 카페: 숲길을 나와서는 넓게 펼쳐진 밭뷰에 눈이 시원한 길이었다. 그리고 돌길을 걷느라 에너지가 바닥날 무렵 신평리 사거리를 만났고, 올레길 바깥으로 살짝 눈을 돌려 핑크색 식당으로 걸음을 옮겼다. "연달래"라는 한식 뷔페였는데 평소 한식 뷔페 식당은 선호하지 않았음에도, 11코스 도중에 점심을 해결할 만한 식당이 거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1인당 1만 원에 솥밥 제공은 그것만으로 호감이었다. 생각보다 다양한 반찬에 배불리 먹고 에너지를 얻어 다시 걷기 시작했다. (11시부터 14시까지 영업하는 식당이니 올레를 걸으신다면 시간 맞춰 들르시길.)

우리 부부는 올레길을 걸을 때만큼은 점심을 먹고 곧바로 카페에 들르지 않는다. 점심 먹으면서 다리를 쉬어주고, 다시 휴식이 필요할 때 카페를 찾아 쉬어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연달래 식당에서 나와서 얼마 안 가 카페가 두어 군데 있었지만 들어갈 수 없었다. (그 이후로 대정여고까지 카페는 없었다.)



11코스를 걸으면서 2023년에 읽은 김연수 작가의 <이토록 평범한 미래>를 떠올렸다. 그 소설이 좋아서 그 해에 두 번을 읽었다. 덕분에 정난주라는 인물을 알게 되었는데, 11코스 도중에 "정난주마리아 묘"라는 표지판이 보였다. 현재는 교회를 떠나 있기는 하지만 신앙의 여부와 상관없이 이런 장소를 만나면 들르는 것을 좋아한다. 13코스에서 "세상에서 가장 작은 교회"(순례자의 교회)를 만났을 때도 그곳에 잠시 머무른 시간이 좋았다. 마찬가지로 이곳을 둘러보고 싶었지만, 오랜만에 멘 배낭 때문인지 유독 지쳐 한 걸음이라도 코스 밖을 걷는 일은 할 수가 없었다.



모슬봉을 앞두고 지도상에 미처 등록되지 않은 작은 카페라도 있기를 바랐지만 전혀 만날 수가 없어서 그늘에 서서 짧게 쉬었다. 더위도 추위도 걱정 없이 쉴 수 있는 날씨여서 다행이었다. 물을 마시고, 젤리를 먹으며 다리를 풀고 모슬봉을 올랐다. 경사가 급한 구간이 길지 않아서 평소라면 크게 어려운 길은 아니었지만, 배낭의 무게를 버티지 못하고 결국 남편에게 배낭을 맡겼다. 배낭을 맡기는 것만큼은 하고 싶지 않았건만. 미안한 마음으로 모슬봉에 올랐지만, 오르고 뒤돌아본 정경에 마음이 곧장 시원해졌다. 구름에 가린 한라산이었지만, 산방산과 나란히 보이는 모습은 또 다른 장관이었다.



모슬봉에서 내려와 대정여고 근처 카페에서 다리를 쉬었다가 다시 배낭을 메고 하모체육공원에 도착했다.

1년 만에 걸은 제주올레는 마냥 행복한 길일수는 없었다. 걷기 좋은 날씨에 어디 아픈 곳도 없이 컨디션도 좋았지만 배낭과 돌길은 곶자왈을, 돌담길을 온전히 누리지 못하게 만들었다.

하모체육공원에서 숙소까지 800m는 어떻게 걸었는지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샤워를 하고 산뜻한 옷을 갈아입고, 등산화가 아닌 가벼운 슬리퍼를 신고 저녁을 먹으러 나서면서, 다시 내일의 올레길이 기대되기 시작했다. 매번 올레를 걸으러 올 때마다 느끼는 신기한 감정이다. 다리 근육이 회복되기도 전에 이런 기대감은 어떻게 가능할까.

종아리에 파스를 붙이고 시원한 기운이 마저 다 퍼지기도 전에 잠에 빠져들었다. 올레를 걸을 때면 가져온 책은 한두 줄 채 읽지 못하고 잠들게 된다. 길을 걸으면 깊은 생각을 할 수 있을 거란 기대는 접은 지 오래다. 오히려 생각이 비워지고 언제 잠이 드는지 모르게 잠에 빠지는 그 단순함을 더욱 애정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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