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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다섯 번째 기일에서야 모인 우리들

by 툇마루

아버지는 괘씸하셨을까. 당신의 다섯 번째 기일이 될 때까지 무심했던 우리 다섯 남매가.


살아생전 아버지는 어머니께는 물론, 자식들에게도 결국 사랑을 주는 법을 배우지 못하고 떠나셨다. 무어라도 주어야 할 것 같으셨는지 상처만큼은 충분히 주셨다. 병상에 누워 말씀이 가능했던 마지막 순간까지 그분에게 살가운 말은 없었다. 하지만 우리 오 남매에게 아쉬움이나 서운한 감정은 없었다. 아주 오래전부터 익숙했던 것이었으니까.

그런 아버지였지만 편찮으시기 시작하면서 우리는 각자에게 남아있는 '도리'라는 것을 끄집어내어 할 수 있는 만큼의 도리를 행동으로 보였다. 그럼에도 좋아하시는 대중목욕탕에 매주말 모시고 다닐 만큼 묵묵히 도리를 다한 형제는 고작 돈으로 대신하거나, 짧은 전화 통화로 대신하는 남은 넷을 부끄럽게 만들기도 했다. 렇게 각자 남은 도리를 보였던 것처럼,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도 우리 오 남매는 기일에도 각자의 도리대로, 각자 아버지의 기일을 지켰다.

그러다 네 번째 기일이 지날 무렵부터 우리 안에서 모여야 하지 않을까 하는 작은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고, 다섯 번째 기일에 우리는 모두 모였다. 지난 4년 간 따로 기일을 보내면서 어떤 마음이었는지, 어떤 생각이었는지 이야기했다. 그리고 우리는... 아버지에 대해서 처음으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아버지의 폭언,

아버지의 퇴근시간,

아버지의 절약,

아버지의 생활력,

아버지의 자전거,

아버지의 글씨,

그리고 아버지의 노래...


첫째 둘째 셋째 아들에게는 불러주지 않았던, 넷째 다섯째 딸들에게 불러주셨던 아버지의 노래가 있었다.

"금화니까 금딸, 정화니까 정딸~"

내 기억 속에선 까맣게 지워져 있었던 노래가, 모여서 이야기하다 보니 생각났고, 순간 목에서 굵은 무엇이 올라와 눈물로 터졌다.

아버지로 인해 힘든 날들이 너무 많았고, 그 아픔이 너무 깊었기에 우리는 아버지와의 그런 시간들을 전혀 떠올리지 못했던 것 같다.


그날 우리는 우리 안에 꽁꽁 얼어있던 어떤 것이 녹기 시작하는 느낌을 공유했다. 그리고 이제는 매해 모여서 아버지를 이야기하기로 했다. 아직 녹지 않은 얼음 아래 있는 것으로라도 이야기가 가능하다는 것은 쉽지 않은 깨달음이었다. 더욱 신기한 것은 아버지의 기일을 지키기로 하면서 우리 오 남매 사이에 있던 살얼음들도 조금씩 녹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아버지는 반가우셨을까. 어린 우리가 웃으며 장난치던 때처럼, 옹기종기 모여서 함께 울고 웃는 모습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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